한화의 수상한 응원가... '달관'해서 웃는 게 아닙니다
그들은 누구인가. 어떻게 야구팬이 되었고, 무엇을 견디며 남았으며, 무엇 때문에 떠났는가. 이 연재는 한국야구의 역사가 아니라, 한국 야구팬들의 역사를 탐구하려는 시도다. 승패의 기록이 아니라 함께 웃고 울었던 시간, 구단과 선수의 이름이 아니라 그들을 응원하던 사람들의 감정을 따라간다. 이 연재는 분석이나 비판을 전면에 내세우는 대신 "우리는"이라는 1인칭 복수의 시점으로, 야구팬들에게 보내는 연대의 편지다. <기자말>
[김은식 기자]
2014년 10월 13일, 대전 한밭야구장에서 이글스의 그해 마지막 홈경기가 열렸다. 경기가 끝난 뒤에는 불꽃놀이가 예정돼 있었고, 그라운드로 직접 내려가서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순서도 마련돼 있었다. 그 전날까지도 4연패를 당하며 최하위를 확정하고 있었지만, 역시 시즌 마지막 경기였던 만큼 관중석은 제법 그득했다.
이글스의 선발은 자타공인 에이스 이태양. 시즌 7승에 5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고졸 3년 차 투수였지만, 어쨌거나 그가 그해 이글스의 에이스라는 사실에 이견은 없었다. 그리고 에이스라면, 마지막 홈경기라면 조금 더 힘을 내줄 거라는 막연한 믿음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2회 초 1사 상황에서 강판될 때까지 5점을 내줬고, 에이스가 무너진 마당에 더 나은 투수가 있을 리도 없었다. 결국 5회가 끝났을 때 이미 9대 0. 응원 소리가 점점 줄어들고, 누군가 던진 "동전이라도 넣고 쳐라 이 놈들아"라는 허탈한 농담에 반응하던 멋쩍은 쓴웃음소리마저 잦아들고 있었다.
그리고 7회 초, 또다시 안타와 볼넷과 안타를 마치 재방송 화면 보여주듯 반복하더니 점수 차는 14대 0까지 벌어졌다. 10점 차라는 것은, 야구맷집이 아직 덜 여문 이들에게 심리적 저항선이 되곤 한다. 그리고 하필 그날, 한밭구장 떡볶이가 맛있다는 말에 홀려 나선 열 살 먹은 아들과 내가 그곳 1루 쪽 응원석에 앉아 있었다. 어쩌다보니 아무 연고도 없던 대전에서 몇 년째 생활하던 때였다. 닭 다리로 떡볶이 국물을 바닥까지 닦아가며 먹어 치우고는 우렁찬 목소리로 "최강 한화"를 외치며 주변 어르신들의 대견한 시선을 모으던 아들이, 10점 차의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갑자기 고장나버렸다. "한화 져라" "최강 삼성" "대구막창 최고!"
홈팀 응원석에서, 장난으로라도 원정팀 응원 구호를 외치는 일은 생각보다 위험할 수도 있다. 더구나 홈팀이 크게 지는 날이라면 더욱 그렇다. 당황한 나는 아이 입을 틀어막으려 했고, 아이는 오히려 필사적으로 내 손을 뜯어내며 더욱 기를 쓰고 외쳐댔다. "망해라 한화" "삼성 파이팅" 약이 바짝 오른 열 살은 생각보다 억셌고, 주변의 어르신들은 그냥 두라고 손을 저었다. 그저 웃으며.
결국 엉망진창이었던 그날 경기는 22대 1로 끝났다. 외국인 타자 피에의 희생플라이로 그나마 1점을 만드는 순간 팬들은 열광했고, TV 화면에 비친 그 모습은 승패와 무관한 1점에도 기뻐할 줄 아는 멋진 모습으로 비쳤던 모양이다만, 사실 함성은 지르면서도 나직이 나누던 한숨과 쓴웃음까지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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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즌이 끝날 때마다, 이글스는 다시 일어설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너무 오래 누워있었다. 어쨌거나 그 날 이후 아들은 이글스 셔츠와 점퍼를 입지 않았고, 라이온스를 시작으로 이 팀 저 팀을 떠돌다가 작년에야 집이 잠실야구장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마침 한화를 딛고 우승한 트윈스 팬으로 정착했다. 사진은 2015년 9월 30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와 삼성의 경기 직후 한화 선수단의 모습. |
| ⓒ 연합뉴스 |
물론 정확히 전성기가 겹쳤던 해태 타이거즈에 밀려 번번이 조연으로 시즌을 마무리하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이글스는 강팀의 상징이었고 '되는 집안'의 대표적 사례였다. 80년대 말의 첫 번째 전성기를 보낸 뒤에도 90년대의 정민철과 구대성, 2000년대의 김태균과 이범호를 거치며 리그의 역사를 대표할 만한 슈퍼스타들이 제 발로 걸어 들어왔고 그 사이에도 초창기의 주역들이 꾸준히 뒤를 받치며 '신구조화'를 이뤄갔다.
하지만 그 길었던 순탄한 세월들이 문제였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강팀의 전통 속에서 굳이 세대교체라든가, 리빌딩이라든가 하는 것에 대해 고려해 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장들의 노쇠화가 본격화되고 대체자들의 유입이 원활하지 못했던 2000년대 중반에도 입단하자마자 신인왕과 MVP를 석권한 류현진이라는 압도적인 에이스의 힘, 그리고 꾸준히 노장들을 재활용해가며 성적을 뽑아낸 명장 김인식 감독의 힘으로 해마다 가을야구에 눈도장을 찍으며 체질 개선의 기회는 계속 흘러 지나갔다. 여느 팀보다 대여섯 살씩은 많은 선수들로 주전을 꾸린 채 꾸준히 성적을 낸다는 것은, 좋게 말하면 저력이었지만 냉정하게는 곪아가는 상처에 붙여놓은 반창고였다. 망가져 본 적이 없는 팀은, 다시 만드는 법을 배울 일도 없었다.
그래서 추락은 준비 없이 찾아왔다. 시즌 막바지에 추월당하며 포스트시즌 진출권을 놓쳤던 2008년 시즌 뒤, 힘겹게 버티던 것들이 한꺼번에 무너지면서 문득 최하위라는 낯선 순위로 내쳐지고 말았던 것이다. 류현진과 김태균과 이범호가 각자의 자리에서 리그 최고의 선수로 빛났지만, 그 외의 모든 자리가 아득한 구멍이었다.
게다가 SK와 두산이 주도했던, 젊고 빠른 선수들을 중심으로 한 베이스를 더 빼앗는 치밀한 야구의 흐름 속에서 느리고 둔탁해져 버린 이글스는 버텨낼 수 없었다. 세상은 빠르게 바뀌고 있었지만, 이글스는 과거의 방식으로 현재를, 그것도 이미 과거의 활력을 잃어버린 과거의 선수들로 버티고 있었다. 물론 류현진, 김태균, 이범호마저 모두 미국과 일본으로 떠난 뒤로는 더 이상 말할 것이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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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수들은 해마다 웃을 수 없었다. 그래서 더욱 팬들은 웃는 수밖에 없었다. |
| ⓒ 연합뉴스 |
2009년부터 2014년까지 6번의 시즌 중 이글스는 5번 꼴찌를 했고, 한 번은 꼴찌에서 2등을 했다. 2013년부터는 1군 리그에 참가하는 구단 수가 9개로 늘면서 꼴찌를 가리키는 숫자도 9로 바뀌었고,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9위도 한화 몫이었다. 롯데 팬들이 자조하던 '888 8577'이라는 숫자가 무색해지는 '886899'였다.
대전 경기의 8회 말 공격 때 모든 홈 관중들이 일어나 '최/강/한/화'를 외치는 육성응원을 벌인 것은 어쨌거나 팀이 그럭저럭 강했던 2007년부터였다. 팀 성적이 좋든 나쁘든 '최강'이라거나 '막강' 같은 단어를 넣는 것은 이상한 일도 특이한 일도 아니다. 그러니까 아마 일부러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 텐데도, 사람들은 측은한 눈빛을 보내기 시작했다. 꼴찌팀이, 그러니까 최약체팀 팬들이 목소리를 모아 우렁차게 포효하는 '최강한화' 구호는 이제 정신승리, 혹은 서로를 향한 눈물겨운 역설적 위로의 목소리로 해석됐다.
물론 깊은 수렁에서 허우적대던 2011년부터, 윤항기의 30여 년 전 히트곡 <나는 행복합니다>를 응원가로 부르기 시작했던 것은 좀 수상한 점이 있다. '나는 행복하다'는 노랫말이 울려 퍼지는 순간 이글스가 이기는 경우보다는 지는, 그것도 크고 처참하고 절망적으로 지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그런 순간 '저 팀의 팬들은 이미 이기고 지는 것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린 사람들'이라는 인상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글스의 팬들은 이전의 '꼴찌팀 팬들'과는 다른 느낌으로 자리 잡았다. 삼미와 쌍방울의 팬들이 조롱을 당했고 롯데 팬들이 동정을 샀다면, 이글스의 팬들은 일종의 존경을 받기 시작했다. '보살팬', '암 걸릴 것 같은 고통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사람들', '진정 야구를 사랑하는 분들'. 뭐 뿌리를 파보면 같은 얘기겠지만, 어쨌거나 조금 다르게 뒤틀린 조롱과 동정이 존경의 가죽을 쓰고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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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화 이글스의 육성응원 '최, 강, 한, 화'는 한화가 최강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동안에 오히려 명성을 얻었다. |
| ⓒ 한화그룹 광고 |
계속 진다. 노력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래도 계속 진다. 선수들이 머리도 가장 많이 밀었고 양말도 가장 많이 뒤집었으며, 특별훈련도 가장 많이 소화했다. 2군 연습장 근처에 유흥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선수단에 전통이 없는 것도, 기강 잡을 선배가 부족한 것도 아니다. 구단은 팬들마저 걱정할 만큼 돈을 퍼붓기도 했다. 대한민국에서 '명장'이라 불리는 지도자들을 줄줄이 모셔보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이제 해볼 것도 없고 요구할 것도 없다. 화를 내거나, 떠나거나, 아니면 웃거나. 이글스 팬들은 마지막을 택했을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입술을 깨물며 웃는다. 웃고 나서 한숨을 쉰다.
그렇다면 왜 떠나지 않는지 물을 수도 있다. 처음에는 생생한 빛나는 추억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정훈으로부터 장종훈을 거쳐, 이강돈, 강석천 혹은 데이비스와 로마이어 등등 그야말로 '다이너마이트'처럼 연쇄폭발하던 방망이들. 혹은 몇 차례나 퍼펙트게임 직전까지 갔던 송진우와 정민철, 혹은 그야말로 타자를 압도한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던 구대성과 류현진까지, 빛나던 에이스들의 몸짓과 눈빛들.
하지만 그 추억들이 점점 흐려지고 지워지는 순간에도, 그래서 태반이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전설로만 전해지는 오늘에도 남은 그들의 발목을 잡는 것은, 오히려 그 반대편의 기억들일 지도 모른다. 이기지 못해 고개를 들지 못하는 얼굴, 어떻게든 해보려다 더 크게 저질러 버린 실패 뒤의 침묵, 그리고 팬들보다 더 난감해하는 선수들의 표정. 속상해 내 가슴을 치면서도 차마 그 앞으로 욕을 하지 못한 경험들. 그들이 어떻게든 다시 한번 웃는 모습을 보지 않고는, 떠나더라도 마음을 끊지 못할 것 같은 미련 때문이다.
함께 웃은 기억보다 함께 눈물 흘린 기억이 더 깊다. 하지만 함께 눈물 흘린 기억조차도 눈물조차 나지 않아 한숨 쉬며 말을 잇지 못한 시간들을 함께한 기억을 이기지는 못 한다. 더 괴로울 수 없는 시간을 함께한 이들은 역설적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믿음직한 동반자다. 떠나려면 진작 떠났겠지. 남았으니 계속 남겠지. 함께 남아서 버티다보면, 웃는 날도 오기야 하겠지. 뭐 꼭 당장은 아니라도, 그렇게 함께 웃는다면 참 눈물 나겠지, 하면서.
그래서 이글스 팬들은 오늘도 웃는다. 괜찮아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 떠날 수 없으니 남기 위해서. 그래서 언젠가 정말로 웃을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지금까지 삼켜온 시간들을 다 토해내 울기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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