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광고의 새로운 문법… “책보다 사람, 광고보다 소통”
많은 한국인은 오늘도 유튜브에 접속해 정보를 얻고 음악을 듣고 뉴스를 보고 위안을 받습니다. ‘유튜버’와 ‘인터뷰’의 첫 자음을 딴 ‘ㅇㅌㅂ’은 이렇듯 많은 이의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유튜버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해외연수를 마치고 복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동료 기자에게 “민음사TV를 운영하는 조아란 마케팅부장을 인터뷰이로 섭외했는데 관심 있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민음사TV는 출판사 민음사의 유튜브 채널이다. 구독자 42만명. 출판사 가운데 가장 성공한 사례로 꼽히는 채널이었다. 편집자와 마케터를 겸하고 있는 다른 출판사 본부장에게 조 부장에 대해 물으니 “스타 마케터”라며 “덕분에 민음사가 굳건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는 아니라며 “만나면 우리 회사 올 생각 없는지 물어봐 달라”고 했다.
가뜩이나 적은 독서 인구가 더 줄어 ‘오늘 망하나 내일 망하나’ 걱정하는 출판업계에서 조 부장은 어떤 가능성의 문을 열어준 존재인 듯 보였다. 좋은 책이 나와도 읽히지 않으면 종잇더미, 팔리지 않으면 재고일 뿐이다. 그래서 팔릴 책만 만들다시피 하는 게 언젠가부터의 출판시장이다. 이런 시장에서 고전이 주력인 민음사는 뭐랄까, 아무래도 장사하기 쉽지 않은 회사다.
“소셜미디어(SNS) 중심으로 마케팅이 시작되면서 저희가 곤란했던 게 바로 그 지점이었어요. 책이 인플루언서들한테 노출되거나 SNS에서 소개가 돼야 잘 팔린다고 하는데 민음사는 그렇게 쉽게 후킹(유인)될 만한 책을 안 내는 거예요.”
지난 1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지하 1층의 민음사TV 스튜디오에서 만난 조아란(40) 부장은 난감해하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다 지난 일인데도 지금 당면한 일인 것처럼 막막함이 목소리에 담겨 있었다.
SNS 마케팅 붐이 일던 당시 조 부장은 인플루언서를 관리하는 회사로부터 “어떤 책을 누가 읽는다고 노출하면 꽤 잘 팔린다”며 대행사를 써보라는 제안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물론 적극적으로 검토했다. 그리고 좌절했다.
“예를 들어 ‘저희 회사에서 이게 가장 힐링되고 쉬운 책입니다. 이거 SNS에 노출될 만해요’라고 제안하면 회신 오는 게 ‘(책이) 너무 어렵다’는 거예요. 너무 충격적이었던 건 민음사에서 나온 책 중에 가장 말랑말랑하고 재밌는 책이라고 생각한 책조차도 어렵다는 말을 들은 거였어요.”
그 책은 일본 소설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에세이였다. 주로 일상 속 감정과 위로에 초점을 맞추는 그의 글은 문장도 평이해 쉽게 읽히는 축에 속한다. 일본 평단에서는 “너무 가볍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런 작가의 책 소개마저 거절당한 조 부장은 마케터로서 막다른 길에 선 기분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 길로 못 가는구나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다”고 그는 말했다.
스튜디오와 연결된 사무실에서는 간간이 말소리가 들려왔다. 조 부장과 함께 막힌 길을 뚫고 직접 유튜브 채널이라는 ‘전용도로’를 낸 이들이었다. 조 부장이 팀장인 콘텐츠기획팀은 직원 2명, 프리랜서 피디 4명으로 구성돼 있다.
2019년 4월 개설한 민음사TV가 자리를 잡고 나서는 눈치 보지 않고 민음사 책을 소개할 수 있게 됐다. 연예인이나 기업으로부터 출연하고 싶다거나 콜라보(협업)를 하고 싶다는 제안도 들어온다. 이때 보통은 신간 등 출판사가 팔고 싶은 책을 먼저 정하지만 민음사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먼저 묻는다. 콘텐츠를 책에 맞추는 게 아니라 콘텐츠에 맞는 책을 고른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어떤 회사에서 오셔서 ‘민음사에서 밀고 싶은 책이 있으면 저희랑 콜라보 한번 해보시겠어요’라고 해요. 그러면 저희는 ‘밀고 싶은 책이 따로 없으니 제품이랑 제일 잘 어울리는 책으로 하면 좋을 거 같아요’라고 접근해요. 저희가 하고 싶은 이야기,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 앞에 있고 그다음에 책이 있는 거죠. 구간(기존 책)이 많은 출판사의 장점 같아요.”
민음사는 세계문학을 꾸준히 번역·출간해온 출판사다. 1998년부터 늘려온 세계문학전집은 400권 이상으로 국내 최대 규모다. 콘텐츠 부자인 셈이지만 일반 독자로서는 난도가 높아 쉽게 손이 가지 않는 작품이 많다. 이런 책을 유튜브 콘텐츠로 풀어내는 능력이 민음사TV의 강점으로 꼽힌다.
조 부장은 “유튜브를 운영하면서 ‘어떤 책을 파느냐’보다 ‘누가 이야기하느냐’가 더 중요한 시대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고 말했다.
“‘벽돌 책’처럼 진입 장벽이 높은 책들도 민음사TV에서 아이콘이 된 편집자분들이 소개하면 같이 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사람으로 돌파해 나가는 거죠. 어떤 고전 판매량이 갑자기 늘어나면 누군가가 추천한 게 많아요. 발견성을 높이는 데는 사람이 여전히 중요한데 민음사TV는 그런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을 직접 만들어냈다는 데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민음사TV가 콘텐츠 플랫폼으로 자리를 잡는 과정에도 책보다 사람 이야기가 있었다. 직원들의 직장생활이나 개인사를 다룬 콘텐츠가 인기를 끌었다. 그러면서 사람이 몰렸고 책 이야기를 듣는 사람도 늘었다.
“출판사는 보통 신간이 나오면 그 책을 광고하는 식으로 가잖아요. 유튜브를 하게 되면 그런 문법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처음부터 대표님께 ‘책 광고 안 하고 그냥 재밌는 콘텐츠를 만드는 브랜드 채널로 키워보고 싶은데 그거 허락해주시면 해보겠다’고 말씀드렸는데 오케이하셨어요.”
출판 마케팅을 위한 채널인데 회사 입장에서는 ‘샛길로 빠지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돌아온 답변은 이랬다.
“채널이 재밌어서 사람들이 많이 보고 영향력이 생기면 그때는 뭘 팔아도 된다, 하지만 보는 사람도 없는데 ‘이 상품 좋다’ 소문 내봤자 아무도 안 본다, 그런 관점에서 일단 재미있는 얘기를 하는 채널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그렇게 어느 정도 설득을 하고 시작했어요.”
대표는 지금도 유튜브 콘텐츠나 운영 등에 대해 ‘터치’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게 가장 큰 성공 요인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조 부장은 덧붙였다.
“예전 광고는 연예인들이나 스타들이 ‘이 제품 좋다’고 말하는 식이었잖아요. 여전히 유효하지만 소비자들도 이제는 그게 광고일 뿐이라는 걸 너무 잘 안다는 거죠. 점점 더 브랜드가 사람처럼 소통이 돼야 신뢰도 얻을 수 있는 구조가 돼 가고 있는 것 같아요. 또 어떻게 보면 저희가 완전히 딴짓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민음사 책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 같아요.”
민음사TV에서 언급된 책이 실제로 판매가 늘어나는지도 궁금했다. 조 부장은 “워낙 많은 책들이 소개되니까 일일이 다 체크하지 않는데 판매량 변화가 눈에 띄는 책들이 있다”고 했다.
“일주일에 한 권도 안 팔리던 책이 있을 수도 있거든요. 또 예전에는 늘 상위권에 있는 책이 정해져 있었어요. 그런데 유튜브에서 소개가 되면 민음사 유료 멤버십(북클럽 회원)에서 그 책이 가장 많이 선택된다든가 하는 변화들이 조금씩 있어요.”
민음사TV가 제약 없이 콘텐츠를 만드는 듯 보이지만 나름대로 조심하는 부분도 있다고 한다.
“회사 채널이니까 사실 많이 조심해요. 말보다도 논쟁이 될 만한 이야기는 피하는 편이에요. 또 ‘어그로’를 끌기보단 조회수가 덜 나와도 무리하지 않게 정도를 가는 쪽이에요. 어차피 저희 팬들한테 작동하지도 않겠지만 말이죠.”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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