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에서 독하게 일하던 명현지 셰프를 잡아끈 두 글자, '엄마'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순위를 남깁니다. 출연자의 이미지도 남깁니다. 그 이미지는 때로 한 사람을 대변하기도 합니다. 노출 시간이 짧은 탈락자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방송에서 다하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습니다. 제작진과 심사위원의 의견도 기다립니다. <편집자말>
[이선필,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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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정식집 '아선재'를 운영하고 있는 명현지 셰프. 손님에게 나갈 메뉴를 보며 재료를 준비 중이다. |
| ⓒ 이주연 |
그곳에서 그는 2년여간 한식을 책임졌다. 7일 오후 서울 대치동 한정식집 아선재에서 만난 명 셰프는 "최대한 한식이라는 걸 많은 분께 설명하고 알리고 싶었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아직 한식이 해외에선 많이 낯설게 받아들여지던 때였다. 이런 이력과 열정은 훗날 여러 방송 프로그램 출연의 마중물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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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현지 셰프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유학 시절 친구들에게 자신이 만든 음식을 내며 요리의 재미를 알아갔다고 했다. |
| ⓒ 이주연 |
그때까지 명 셰프는 연기자를 꿈꾸던 소녀였다. 그러다 중학생 시절은 미국에서, 고등학생 시절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보내며 자연스럽게 요리를 취미 삼아 주변에 선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인생 처음으로 선보인 요리는 다름 아닌 크리스마스 케이크였다. 명 셰프는 "고1 땐가 스스로 재료를 준비하고 완성해 낸 케이크를 친구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에 처음으로 뿌듯함을 느꼈다"고 기억했다.
"그때부터 타르트와 피자, 남아공식 음식 등을 만들며 재미를 느꼈다. 여러 유명한 셰프들이 쓴 책을 보고, 혼자 재료를 사서 공부하곤 했다. 제가 환경이 자주 바뀌고 영어도 서툴러서 놀림도 받았고, 선생님들에게 차별을 겪기도 했었다. 제 인사만 안 받아주더라. 남아공에서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였는데 인종차별이 한창 심했거든. 근데 요리할 때만큼은 즐거워지더라."
실제로 대학 졸업 직전까지 연기 학원에 다니며 기획사 면접을 보기도 했고, 아나운서 시험도 준비했다고 한다. "당시 기획사 관계자분이 제게 살쪘다며 독설을 하셨는데 그게 상처였다"며 명 셰프는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채 진로를 고민하다가, 가장 즐겁게 오래 붙들고 있던 일이 결국 요리였다는 생각이 들어 진지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취미라지만 잠시도 요리를 놓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때만 해도 양식 쪽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절 많이 설득하셨다. 이왕이면 한식을 배우라고 말이다. 엄마 가게에서 막내 스태프의 일부터 차근차근 배웠다. 주변 사람들에겐 연기 공부한다고 떠들었는데 갑자기 요리한다는 게 창피해 알리지 않고 조용히 일했다, 늦은 출발이라는 생각에 더 치열하기도 했고.
여러 요리 대회에도 나가기 시작했다. 터키에서 열린 대회에서 개인전(2007년)을 치르고 시간이 남아서 구경하고 있다가, 한국 국가대표로 참가한 선배님들을 만나게 됐다. 영어로 레시피 작성하는 걸 도와달라셔서 합류했는데 절 좋게 보셨는지, 당시 팀장이 절 두바이 '버즈 알 아랍' 호텔 쪽에 추천해 주셨다. 그리고 전화 면접을 봤는데 합격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면접관이 에드워드 권 셰프였다고 하더라.
두바이에서는 나름 독하게 일했다. 처음에는 남자들 사이에서 조용히 일했는데, 장난이라며 제 팔을 치고 지나가거나 툭툭 건드리는 일이 있었다. 한 싱가포르 출신 주방장이 제게 가만히 있으면 우습게 본다며 화가 날 때 화를 내라고 조언하더라. 그때부터 건드리는 이들이 있다면 저도 격하게 표현하고 그랬다. 무거운 재료 상자나 물통 같은 것도 혼자 들고 다니며 주변 도움을 받지 않았다. 정말 악착같이 일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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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바이에서는 나름 독하게 일했다. 무거운 재료 상자나 물통을 들 때도 (남자들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
| ⓒ 이주연 |
두바이에서의 2년, 그리고 1년여의 영국 유학 생활을 거치고 돌아온 명현지 셰프는 자신만의 업장을 내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때가 있었다. 서울 성수동의 한 폐공장 건물을 두고 내부 인테리어 설계까지 마쳤던 명 셰프는 돌연 준비를 접었다. 그리고 2019년 8월 13일, '한미리'가 있던 자리에 '아선재'(아름다운 음식이 있는 집)가 들어섰다.
"한미리가 경영이 어려워져서 문을 닫았었다. 빈 건물로 남겨져 있는데 건물주분이 엄마에게 연락해서 다시 식당을 열 생각이 없는지 물었다더라. 내 꿈을 작게나마 성수에서 이루느냐, 엄마의 꿈을 이뤄주느냐 고민하다가 엄마와 함께 그 꿈을 이루기로 마음먹었다. 솔직히 두바이에선 제 경력에 비해 너무 과분한 타이틀이었다. 여성 셰프로 한식을 총괄한다는 게 버겁기도 했다.
그럼에도 제가 맛 하나는 잘 낸다고 자부했다. 엄마에게 이어받은 게 있고, 창의력도 있는 편이라 현지에서 제한된 재료를 가지고도 제법 한식의 맛을 냈다. 할리우드 배우 휴 잭맨이 딸과 함께 오셨는데 기회다 싶어 갈비찜이고, 물김치며, 냉채라고 설명했던 기억이 있다. 한국이라는 나라를 매우 좋아하는데 이렇게 다양한 한국 음식을 먹어보진 못했다더라. 그때의 뿌듯함을 아선재에서 이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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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꿈을 작게나마 성수에서 이루느냐 엄마의 꿈을 이뤄주느냐 고민하다가 엄마와 함께 그 꿈을 이루기로 마음먹었다." |
| ⓒ 이주연 |
"두바이에서 근무할 때 에드워드 권 셰프님도 그랬고, 엄마에게도 그런 자세를 배웠다. 재료 손질 때도 최대한 버리는 부분이 없도록 고민한다. 부추전 같은 걸 하더라도 부추 조각 하나가 그릇에 붙어 있나 보는 식이다. 요리하는 마음 상태도 중요하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요리하면 그 결과물이 안 좋다는 걸 여러 번 확인했다.
사실 제가 주방에선 좀 예민한 편이거든. 언제였던가 주방에서 제가 화내는 모습을 엄마가 보고 엄청 뭐라 하셨다. 다 같이 요리하는 식구들인데, 아침부터 짜증 내면 누가 즐겁게 일할 수 있겠냐면서 말이다. 두바이 때와 달리 여긴 제 업장이고, 지금 같이 일하는 분들도 엄마가 운영할 때부터 계신 분들이다. 그런 전통을 잘 이어가야지."
2대에 걸쳐 운영하는 덕에 엄마의 손님이 명 셰프의 손님이 되는 과정도 흥미로워 보였다. "한미리 때 상견례 하신 분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온다거나 부모님을 모시고 왔던 분들이 부모님을 여의고 자녀들과 와서 추억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울컥한다"며 명 셰프는 "그런 사연과 추억을 제게 나눠주실 때 요리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요리라는 게 제겐 삶의 연결고리 같다. 요리할 때 제 감정, 그것을 받는 사람의 감정을 배우게 되거든. 제 요리가 누군가에겐 맛없을 수 있다. 그걸 기분 나빠할 게 아니라 하나의 채찍질로 생각하면 된다. 재료와 기술을 차치하고서라도 요리는 제게 인생을 알려주는 스승과도 같다. 제가 만나고 부딪히고 했던 사람들이 대부분 요리로 연결돼 있잖나. 그때 그날의 기억, 분위기, 대화들이 요리를 통해 소환되곤 한다. 그런 기억들에서 힘을 얻을 때 이게 바로 요리하는 사람의 마음일 수 있구나 생각하게 되더라."
결국 사람을 통해 힘을 얻고 사람 때문에 요리하는 것 아닐까. 명 셰프도 끄덕였다. "같은 업종에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교류하는 게 큰 도움이 되더라"며 그는 "그런 인연, 연결감이 제 삶을 지탱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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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요리가 누군가에겐 맛없을 수 있다. 그걸 기분 나빠할 게 아니라 하나의 채찍질로 생각하면 된다." |
| ⓒ 이주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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