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까지 가지 못한 아쉬움, 인천이 달래줍니다

전갑남 2026. 4. 26.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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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 하나개, 소무의도로 이어지는 봄날의 섬 기행

[전갑남 기자]

봄날이면 몸보다 먼저 마음이 바람을 찾아 나선다. 동해까지 달려가고 싶은 충동도 잠시, 왕복 여덟 시간의 현실 앞에서 방향을 틀었다. 그렇게 우리 일행이 닿은 곳은 바다를 품고도 한결 여유로운 섬, 무의도였다. 이름부터 어딘지 모르게 비어 있는 듯, 그러나 그 속에 수많은 이야기를 품은 섬을 찾아 나섰다.

이름 속에 숨겨진 춤사위와 날 것의 첫인상

무의도(舞衣島), 이름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춤출 무(舞)에 옷 의(衣)라. 섬의 생김새가 마치 선녀가 하늘거리며 내려와 춤을 추는 옷자락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혹은 장군이 복장을 갖추고 춤을 추는 형상이라고도 하니, 무의도는 애초 정적인 땅이라기보다 하나의 거대한 몸짓이었던 셈이다. 이름의 유래를 곱씹으며 섬을 바라보니, 잔잔하게 굽이치는 해안선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무의도의 대표적인 휴식처인 하나개 유원지 입구. 투박한 섬의 첫인상과 달리 해수욕장으로 들어서는 길은 설렘으로 가득하다.
ⓒ 전갑남
인천공항을 지나 다리를 건너자마자 풍경은 도시의 결을 벗는다. 무의도의 첫인상은 다듬어지지 않은 날 것 그대로다. 어느 곳은 흙먼지 풍기는 비포장도로에다 검불로 둘러싸인 밭과 낡은 집들이 투박하게 서 있다. 정갈한 맛은 없지만, 그것이 외려 무의도다운 본색이다.

하지만 이 투박한 매력을 알아본 것일까. 4월의 끝자락, 주말을 맞은 무의도는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엄청나다. 사람들의 소란마저 제 춤사위의 일부인 양 묵묵히 받아내며, 섬은 흙먼지 속에서도 진짜 '쉼'의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바다는 낮게 숨 쉬고, 길은 느리게 이어진다.

비극의 역사 위에 핀 은빛 윤슬, 실미도

무의도의 투박한 길을 지나 먼저 찾은 곳은 영화 속 실미도다. 한때 비극적인 실화의 현장이자 금기의 땅이었던 이곳! 영화의 마지막, 자신들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버스 차창에 피로 이름을 적어 내려가던 그 처절한 순간이 환청처럼 귓가를 스친다. 영화가 남긴 강렬한 잔상 때문에 섬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왠지 모를 묵직한 긴장감이 서린다.
 실미도는 하루에 두 번 바다가 길을 내어주는 신비로운 시간이 펼쳐진다.
ⓒ 전갑남
 실미도 백사장에 새겨진 앙증맞은 갈매기 발자국들. 누군가 일부러 새긴 문양처럼 정교해, 섬의 무거운 역사마저 하얗게 잊게 한다.
ⓒ 전갑남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미도가 품은 아픈 역사를 읽는다.
ⓒ 전갑남
막상 마주한 실미도는 그 아픈 역사마저 하얗게 잊게 할 만큼 눈부신 반전을 품고 있었다. 백사장에 발을 내딛자 밀가루처럼 고운 모래가 포근하게 발등을 감싼다. 모래 위로 파도가 만든 윤슬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마치 보석을 뿌려놓은 듯 반짝이는 은빛 물결이 눈부시다.

모래 위 앙증맞은 갈매기 발자국인가? 누군가 일부러 새겨놓은 문양처럼 정교하다. 사진을 찍으니 멋진 작품 하나가 나온다. 붉은 선혈의 이미지로 기억되던 섬은 이제 과거의 아픔을 씻어내듯 평화롭게 여행자를 맞이하고 있었다.

기암괴석의 절경과 가슴이 뚫리는 바다

다음 발길은 하나개해수욕장. 이곳의 백미는 단연 해안 데크길이다. 해안 절벽이 펼친 기암괴석과 산이 품은 푸르름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나무 데크를 따라 걷다 보면 저마다의 사연을 담아 이름이 붙여진 기암괴석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금방이라도 포효할 듯 사자를 닮은 바위가 바다를 호령하고, 자연이 오랜 세월 공들여 깎아낸 조각품들은 거대한 예술품으로 다가온다.
 하나개해수욕장의 백미인 해안데크길. 오랜 세월 자연이 깎아낸 기암괴석의 절경과 푸른 바다가 어우러져 감탄사를 자아낸다.
ⓒ 전갑남
 해안 절벽을 따라 이어진 나무 데크길. 억겁의 세월을 견뎌온 바위의 결과 그 틈에 자라난 소나무의 강인함이 느껴진다.
ⓒ 전갑남
눈을 바다로 돌리자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가 눈 속으로 들이친다. 시야가 넓어지는 만큼 답답했던 몸도 마음도 시원하게 뚫린 것 같다. 층층이 쌓인 바위의 결과 그 틈을 비집고 자라난 소나무의 강인함은 어떤 인위적인 조형물보다 기품이 넘친다. 아름다운 풍경 앞에 우리 일행들 사이에서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이렇게 가까운 데 이런 풍경이 있었나?"
"멀리 떠나야만 보이는 건 아니었구먼."
"우리가 놓치고 있던 건 바다가 아니라 거리였네!"

억겁의 세월을 견뎌온 기암괴석이 파도와 맞닿아 빚어낸 이 장엄한 풍경은 어느 유명한 외국의 해안 절벽과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다. 바다 건너를 기웃거리던 마음이 비로소 우리 곁의 이 눈부신 비경 위에 오롯이 내려앉는다.

금강산도 식후경, 소무의도가 건네는 위로

무의도에 딸린 또 하나의 섬 소무의도로 들기 전, 금강산도 식후경! 우리는 다리를 건너기 전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광명항 수산물 직판장'이란 간판이 붙었다. 어촌계 식당은 여느 유명 관광지의 상업적인 음식점 같지 않아 정겹다. 뜨내기 손님을 대하는 차가움 대신 넉넉한 인심과 친절함이 먼저 반긴다. 가격 또한 그리 비싸지 않아 마음까지 편안해진다.
 무의도의 별미, 산낙지 탕탕이와 홍합 칼국수. 무의도를 여행하는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 전갑남
꿈틀대며 싱싱함을 뽐내는 산낙지를 시작으로 시원한 물회, 그리고 홍합이 그릇 넘치게 가득 들어간 칼국수가 차례로 오른다. 입안에 착 감기는 산낙지의 쫄깃함과 홍합에서 우러난 국물의 시원함이 여행자의 입맛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기막힌 안주가 차려지니 일행들 사이에서 흥겨운 추임새가 터져 나온다.

"이보게, 막걸리랑 소주도 한 잔 해야지!"
"허허, 싱싱한 안주가 좋으니 술이 아주 술술 넘어가구먼!"

기분 좋게 배를 채우고 무의도와 소무의도를 잇는 좁은 '배부른 다리'를 건낸다. 다리 중간이 배부른 것처럼 솟아 있어, 걷다 보면 마치 파도의 등을 타고 바다를 건너는 묘한 기분이 든다. 이 다리를 건너는 것만으로도 소무의도의 진수를 맛본다.
 무의도와 소무의도를 잇는 소무의도 인도교. 가운데가 배부른 것처럼 솟아 있어, 마치 파도의 등을 타고 바다를 건너는 묘한 기분을 선사한다.
ⓒ 전갑남
 소무의도의 어촌 광명항. 햇살 머금은 포구와 잔잔한 물결 위에 머무는 여유가 평화롭다.
ⓒ 전갑남
다리 너머 소박한 마을은 화려함 대신 옹기종기 모여 있는 낮은 지붕들과 골목길에 밴 사람 냄새가 마음을 평온하게 한다. 생각 같아서는 섬을 한 바퀴 휘감는 둘레길을 끝까지 걷고 싶었지만,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 했다.

다리를 빠져나오는데 들어갈 때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총총걸음으로 섬을 향한다. 수도권에서 가까이할 수 있는 섬 여행을 맛보려는 사람들 같다.

강원도까지 가지 못한 아쉬움은 어느새 사라졌다. 대신 우리는 바람의 결을 더 천천히 느낄 수 있었다. 무의도와 실미도, 그리고 소무의도는 멀리 떠나지 않아도 충분히 깊은 여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봄날, 콧바람이 쐬고 싶을 때 꼭 멀리 가지 않아도 좋다. 바다는 늘 가까운 곳에서도 조용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한결 가벼워진 봄의 옷자락이 춤을 추듯 휘날리고, 여인들의 밝은 웃음소리가 봄바람을 타고 멀리 들려온다.

덧붙이는 글 | 4월 25일(토)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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