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잘한 상처를 어루만지느라 밤이 깊어지는 시
[안준철 기자]
|
|
| ▲ 김영춘 시인의 네 번째 시집 <너는 왜 가끔 시가 되느냐>(달, 2026년) 표지 |
| ⓒ 안준철 |
엉덩이 뒤편의 구석진 고기인 줄 알았다
앞산의 뒤에도 산이 있어서
끝내는 뒷산을 그리워하게 된다더니
모든 작업이 끝난 뒤의
숨어 있는 고기라는구나
사람들이 요즘 별나게 좋아한다는데
고기 노릇을 할까 말까 하다가
뒤처진 살코기
엉거주춤 나선 고기의 부스러기들
드디어 맛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지
뼈와 뼈 사이의 그늘을 헤집고
뒤처진 인생을 마주하는 듯한
뭉클해지는 내 발걸음 앞에서
되뇌어보는 이름만으로도
곧 허물없는 사이가 되고 말 것 같은
뒷고기라니
자잘한 상처를 나누느라
밤이 깊어질 것만 같은 뒷고기라니
- <뒷고기> 전문
시 속에 시가 있다. "앞산의 뒤에도 산이 있어서/끝내는 뒷산을 그리워하게 된다더니"를 두고 하는 말이다. 시를 읽다 말고 이렇게 혼잣말처럼 되뇌었다. '앞산의 뒤에도 산이 있지. 앞산 뒤에 있으니까 뒷산이겠고. 끝내는 뒷산을 그리워하게 된다는 말이 맞네!'
이어지는 "엉거주춤 나선 고기의 부스러기들/드디어 맛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지"에서는 어쩔 수 없이 코끝이 찡해진다. "자잘한 상처를 나누느라/밤이 깊어질 것만 같은 뒷고기라니"라고 시가 끝나자 나는 또 혼잣말이듯 이렇게 중얼거린다.
'아이고 이 사람 또 거기에 눈길이 갔구먼. 김영춘 시인답네.'
<다정한 것에 대하여> 이후 3년 만에 네 번째 시집을 펴내는 김영춘 시인의 시집 <너는 왜 가끔 시가 되느냐>(2026년 4월 출간)에는 더욱 짙고 깊어진 다정함과 그리움의 서정을 간결하게 펼쳐가고 있다. 시집 어디를 펼쳐도 누군가의 상처를 다독이는 마음으로 가득하다. 시를 한 편 더 읽어보자.
그대가/이 깊은 밤에
사는 일을 적어가고 있었으면
더 아픈 일 곁에 있었으면
오래 멀리 가고 있었으면
가는 길에/가끔씩
꽃도 들여다보고 있었으면
- <몇 조각의 말> 전문
시집 첫 자리에 앉힌 이 시는 "슬픔을 배경으로 하고 있을 지라도 살아 있는 어떤 것들은 어떻게든 피어났으면 좋겠는데('시인의 말' 중에서)"라고 적은 시인의 마음과 결이 닿아 있다. 시인은 시집의 시작에 앞서 "돌아보는 일이 많아졌다"라고 말한다. "어딘가로부터 꽤 멀리 떠나"온 자신을 의식하며 하는 말이겠다.
이런 꾸준한 시인으로서의 자기성찰은 시인의 오랜 바람대로 "맑은 날의 저녁나절처럼 조촐한 빛으로 시를 빚어낼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었을 것이다.
시 <파문>에서는 "물결이 머뭇머뭇 퍼져나"가는 것을 보며 "누가 물결을 울린 것인가/밀어낸 것인가"라고 묻는다. 또한 물결이 "울먹이듯 떨리며 퍼져나"가는 것을 보며 "무엇이 다가와서 네 마음을 만진 것인가"라고 묻는다. 이 시는 "누군가에게로 가서/사람의 무엇인가가 된다"라고 갈무리된다. 그 무엇이 무엇일까? 김영춘은 그걸 의뭉하게 감춘다. 이 또한 그의 시의 맛이 아닐까.
이 시를 읽으면서 나는 문득 사진을 그만 찍을까보다, 싶었다. 괜히 사진 핑계를 대는 것이겠지만, 그동안 내가 본 것은 피상적인 풍경뿐이었구나 하는 반성이 생겨서다. 시인은 "머뭇머뭇 퍼져나가"는 파문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사진이나 찍고 일어선 나는 보지 못한 내면의 풍경을 보고야 말았을 것이다. 또 이런 시는 어떤가?
새 한 마리 제 꼬리를 끌고
제 삶으로 날아갔다
이름이 가물거려서
우는 소리는 어땠나 생각하지만
울음소리만으로/누구인가를 알아챈 날이 언제였던가
멀지 않은 곳에 있을 너를
또 한 번 부르지 못하고/서 있다
- <이름을 잊었네> 전문
"울음소리만으로/누구인가를 알아챈 날이 언제였던가"와 같은 시구는 깊이 음미하지 않으면 그 참맛을 놓치기 쉽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김진경 시인은 시집 발문에서 김영춘 시인이 구사하는 말맛에 대하여 "심심한 것 같으면서도 짭조름한 게 은근히 맛있어 밥을 당기게 하는" 맛이요, "은근히 살아보고 싶게 만드는 그 말맛"이라고 적었다. 곰곰이 음미하지 않으면 그것이 전하는 삶의 기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맛이라는 뜻이겠다.
시 <가을바람>에서 시인은 "말을 엿듣는 사람"이 된다. 엄마가 아기를 유모차에 싣고 밀고 가면서 쉴새없이 어린 것과 눈을 맞추며 중얼거리는 것을 본다. 아니, 듣는다. 엄마는 "왜 그치지 않을까요?/왜그치지 않을까요?"하고 혼잣말인지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 하는 말인지 중얼거린다.
그때 시적 화자는 "얇은 홑것 한 장을 덮고 있는/저 맑은 얼굴"을 흘깃 건너다보다가 "가을바람 때문이라오/나도 모르게 나오려던 말을 얼른 삼킨"다. 시는 이렇게 갈무리된다.
엄마가 그것을 왜 모르랴
쉬지 않고 중얼거리며 전해주고 싶은 속삭임은
가을바람/그 아래로 아기는 누워 딱꾹질을 한다
왜 그치지 않을까요/왜 그치지 않을까요
가을바람에게 묻는다
- <가을바람> 부분
김영춘 시인과 나는 오래전부터 어떤 인연으로 묶인 사이였지만, 내가 은퇴 후 고향인 전주로 이사를 와서야 우정의 일들이 무르익어 갔다. 당시 나는 암투병 중이었고, 다정이 몸에 밴 그는 나의 어둠을 조금이라도 거두어주려는 마음을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를 만나자마자 단박에 알게 된다. 내가 어둠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 후 우리의 만남은 그의 다정함과 나의 밝음의 이중주 같았다고 할까. 나의 밝음을 닮은 시다. 하지만 김영춘의 밝음이다.
연못에서 연못물이 자고 일어났습니다
연못에서 연꽃이 자고 일어나 피었습니다
연못에서 잠자리가 자고 일어나 세상을 두리번거립니다
푹 자고 일어나야만 아침인 모양입니다
모두 정신이 싱싱합니다
- <아침> 전문
김영춘 시인은 전북 고창의 바닷가 가까운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1988년 <실천문학> 복간호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시집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나비의 사랑>, <다정한 것에 대하여>가 있다. 오랫동안 아이들과 함께 학교에 있었다. 이번 시집에 학교와 관련된 시가 몇 편 실렸다. 그중 하나. 어릴 적 학교 풍경이 삼삼하다. 시인의 다정함이 어디서 왔는지 알 만하다.
어릴 적 우리 선생님 결혼식/교실 두 칸을/열었다 닫았다 했지/젊은 날의 모든 것으로 혼인하느라/제일 넓게 텄지/도회지에서 버스를 타고 내려온/새색시/차멀미는 괜찮았는지/굴풋해지는 점심나절에서야/식은 오르고/계집아이 사내아이/마을에 핀 꽃을 모아들고 걸어 들어갔지/제일 근사한 옷 빨아 입고/멈칫 멈칫/두근두근 드렸지/백년가약의 손길도 교실이었던/선생님의 결혼식
- <모든 것> 부분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낙선보다 두려운 건 침묵"...'성소수자' 노동자의 정면승부
- 누가 이 많은 전기를 옮기려 하는가
- 3살 아들의 기도...한국 최초 시각장애인 박사의 감동적인 답변
- 모두가 도다리 쑥국 먹는 계절에 유독 생각나는 생선
- 초저녁 잠 많은 노인들이 밤 10시에 본방 사수 하는 프로그램
- 담장 너머 마주친 어린 오소리, 그 '위험한 외출'의 이유
- '봉화 호랑이'와 '홍천 호랑이'가 건넨 질문
- 민주당·진보당과 선거연대? 혁신당 "평택 시민들이 주인공"
- 트럼프 "총격, 이란과 무관할 것으로 생각"
- 구포초 체육대회서 처음 만난 한동훈·박민식, 하정우는 불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