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호랑이'와 '홍천 호랑이'가 건넨 질문

정재학 2026. 4. 26.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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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아리의 거룩한 장도] 봉화 국립백두대간수목원과 홍천 '나는 숲이다'

천안시 학예연구사이자 20여 년 동안 문화유산을 연구하고 탐방해 온 문화유산 전문 여행작가입니다. '거룩한 장도, 한국 호랑이를 찾아서'라는 주제를 지속적으로 다룹니다. <기자말>

[정재학 기자]

대전 오월드 동물원에서 2살 수컷 늑대인 '늑구'가 탈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비록 9일 만에 생포되어 해프닝으로 끝났고 그 바람에 늑구가 일약 전국구 유명세를 치르게 되었다. 하지만 동물원의 울타리 등 관리 허점과 동물복지에 대한 성토가 빗발쳐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우리가 '보호'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가두고 있는지를 되묻게 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동물복지라는 말은 더 이상 관념이 아니다. 생명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이자, 인간이 자연과 맺는 관계의 윤리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산과 숲은 전 국토의 약 7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우리 일상생활에서 아주 중요하고 밀접한 생태 조건이다. 그런데 개발과 관리라는 이름으로 그 속살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숲은 점점 정형화되고, 인간만을 위한 장소로 변모되고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숲은 단순한 녹지 공간이 아니다. 생태계의 근간이며, 기억과 시간, 그리고 생명의 층위가 겹겹이 쌓인 공간이다. 그리고 그 숲의 정점에는 언제나 호랑이가 있었다. 그래서 호랑이숲을 찾아 지난 4월 15일에 봉화군으로 길을 나섰다.

봉화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의 호랑이

봉화로 향하는 길은 점점 깊은 산속으로 스며들었다. 굽이진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풍경이 달라지고, 숲은 더 짙어진다. 이 길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인간의 시간에서 자연의 시간으로 넘어가는 통로처럼 느껴졌다.

봉화가 어딘가. 백두대간의 허리에 해당하고 그 유명한 금강송 춘양목의 고장이 아닌가. 첩첩산중이란 말이 어울리고 산중 대부분이 소나무로 이루어져 있어 그 밀도가 빈틈없이 울창했다. 이러니 호랑이가 활동하기 적합한 환경이지 아니었을까 싶다.
▲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전경 백두대간 산림 자원을 수집.보존.전시하기 위해 2017년에 출범했다.
ⓒ 정재학
▲ 호랑이트램 수목원을 트램으로 탐방할 수 있다.
ⓒ 정재학
▲ 호랑이 철제조각상 철제로 만든 호랑이 조각이 인상적이다.
ⓒ 정재학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백두대간과 고산 지역 산림 생물자원을 수집·보전·전시하며 생물 다양성을 증진하기 위해 2017년에 출범한 기관이다. 특히 백두산 호랑이 종을 보존하기 위해 호랑이숲을 조성했다는 점이 이곳만의 특장점이다.
방문자센터를 지나 입구부터 온통 호랑이다. 관람차인 호랑이트램부터 느린 우체통, 철제 조각작품, 대형 휴게 구조물, 도로 바닥부터 안내판까지 호랑이가 아닌 곳이 없을 정도로 콘텐츠가 풍부했다. 입구에서 호랑이숲까지 걸어서 20여 분 걸리는데, 지루하지 않을 정도였다.
▲ 호랑이숲 가는 길 코스는 숲길과 도로길이 있는데, 숲길을 걸어보길 권장한다.
ⓒ 정재학
▲ 호랑이 '도' 2013년생 암컷 호랑이로 뛰어난 미모로 미스 백두호랑이라 불린다.
ⓒ 정재학
코스는 도로로 포장된 길과 숲으로 조성된 길이 있었는데, 숲길과 도로를 병행하며 호랑이를 만나러 올라갔다. 거의 호랑이숲에 도착할 무렵 도로 바닥을 보니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 '저기! 호랑이다'라는 글귀를 만났다. 때마침 '어흥' 소리를 내며 한 호랑이가 어슬렁어슬렁 걷기 시작했다.
여기에서는 모두 여섯 마리 호랑이를 사육하고 있었는데 보통 오전, 오후로 한 마리씩 우리에 풀어놓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 친구가 '도'라는 이름을 가진 2013년생 암컷 호랑이였다. 조심성이 많고 소심하지만 가장 뛰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미스 백두 호랑이란다.
▲ 호랑이숲 관람대 인공구조물과 너무 가깝고 개방적인 관람대가 아쉽다.
ⓒ 정재학
하지만 이내 실망감이 몰려왔다. 축구장 6개 크기 규모의 사육환경이 무색할 정도로 생각보다 규모가 작았다. 또한 동물원에서나 볼 법한 인공 구조물, 너무도 가깝고 개방적인 관람환경 등은 아쉬웠다. 그들이 받을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였다.

공교롭게도 일부러 유리 벽을 두드려 호랑이의 심기를 건드리는 관람객들이 있었다. 좀 더 높은 트리하우스 같은 관람탑, 좀 더 격리된 관람대, 좀 더 호랑이의 생태를 이해할 수 있는 전시 공간으로 인간과 호랑이가 공존할 수 있는 곳으로 개선되기를 기대해 본다.

시베리아 야생 호랑이 다큐 감독이 만든 숲

봉화를 떠나 다음 목적지인 홍천으로 향했다. 역시 강원도답게 길이 구불구불 멀미가 날 정도로 곡예 운전해야 했지만, 펼쳐진 숲과 강은 다시 감정을 정화하기에 충분했다. 홍천 소재 '나는 숲이다'는 이름처럼 '머무는 공간'이라기보다 '스며드는 공간'에 가까운 문화복합 숲이었다.

주차장에 도착해 조성된 숲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인위적으로 만들었지만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길, 자연스럽게 자란 나무들, 그리고 그사이를 흐르는 물과 바람. 이곳의 숲은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함께 존재하기 위한 공간이었다.
▲ 나는 숲이다 입구 집 모양의 안내부스가 인상적이다.
ⓒ 정재학
▲ 펜션 전경 머무는 공간이라기 보다는 스며드는 공간에 가까운 문화복합 숲
ⓒ 정재학
▲ 이끼연못 전경 이끼가 자라는 연못이 인상적이다. 보이는 건물에는 야생곰 사진을 볼 수 있다.
ⓒ 정재학
▲ 트리하우스 전경 이곳에 트리하우스를 조성해 관람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 정재학
이곳에서 시베리아 야생 호랑이를 촬영하셨고 이 분야 다큐 일인자이자 주인장인 최기순 감독을 만났다. 이 숲은 30여 년 전에 사들여 최대한 자연에 거스르지 않고 최소한의 손길로 조금씩 조금씩 일구고 있다고 하신다.
트리하우스, 이끼 연못, 자작나무 숲길 등은 마음을 정화하는데 충분했다. 저녁에는 반딧불이도 수십 마리가 보일 정도라고 하니 하루 정도 묵고 가고 싶은 숲이었다. 또한 이곳에는 숲뮤지엄, 표범갤러리, 나는 숲이다 카페, 펜션 등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 숲뮤지엄 전경 카페로 조성된 숲뮤지엄에는 야생호랑이 다큐 영상과 호랑이 사진을 감상할 수 있다.
ⓒ 정재학
▲ 최기순 감독과 호랑이 촬영천막 여러 차례 야생호랑이 촬영을 하면서 사용했던 천막들을 보여주고 있다.
ⓒ 정재학
▲ 호랑이 촬영천막 15m 높이 나무 위에 조성된 호랑이 촬영 천막
ⓒ 정재학
하지만, 이 숲이 특별한 것은 야생 호랑이를 사진과 영상으로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그는 1997년 '시베리아 야생 호랑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호랑이를 기록해 왔다. 오랜 시간 카메라 뒤에서, 더 많은 시간을 숲 속에서 야생 호랑이와 동고동락하면서 지내왔다.
호랑이를 찍는 건 기다림이지만 그 바탕은 숲과 호랑이에 대한 존중이란다. 다큐 촬영 당시, 15m 나무 위에 얇은 천막 하나에 의지해 숲 속에서 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존재를 위해, 인간의 시간을 내려놓는 작업이었다. 그가 보여준 사진 속 호랑이는 우리가 수목원에서 본모습과는 아주 달랐다. 더 거칠고, 더 자유롭고, 더 멀리 있었다.
▲ 시베리아 호랑이 촬영 장소 저 멀리 호랑이를 촬영하던 천막이 보인다. 가는 길에 선명하게 찍힌 호랑이 발자국
ⓒ 정재학
▲ 호랑이발자국 문신 20년 만에 다시 만난 호랑이를 기념하기 위해 새긴 문신
ⓒ 정재학
아울러 그의 팔뚝에 호랑이 발자국 문신이 있기에 물어보니, 20여 년 전에 처음 야생 호랑이를 만났고 그 후 20년 후에 호랑이를 다시 만나게 된 기념으로 새긴 거란다. 이는 마치 "이건 제가 따라간 길이에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그의 삶의 궤적이었다.

앞으로 이 숲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그의 고민도 들었다. 글로 머리로 이해하는 보여주기식 숲이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직접 체득하면서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숲으로 만들고 싶다고 한다.

숲은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다. 그곳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공간일 뿐이다. 동물복지는 결국 인간의 태도에서 시작된다. 보호라는 이름으로 가두는 것이 아니라, 공존할 수 있는 방식을 찾는 것이다. 숲 역시 마찬가지다. 개발이 아니라, 최소한의 개입과 세심한 관리로 유지되어야 한다.

봉화의 호랑이숲과 홍천의 작은 숲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자연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 호랑이는 더 이상 우리 곁에 없지만, 그 부재는 오히려 더 큰 존재로 남아 있다. 숲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속에,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 속에. 어쩌면, 진짜 호랑이숲은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우리가 자연을 대하는 방식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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