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 많은 전기를 옮기려 하는가
[월간 옥이네]
|
|
| ▲ 전남과 전북, 충남, 충북 등은 지역에서 소비하지도 않을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한 경유지로 내몰리면서, 또 다시 송전선로 갈등을 겪을 상황에 놓이게 됐다. |
| ⓒ 월간 옥이네 |
전남과 전북, 충남, 충북 등은 지역에서 소비하지도 않을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한 경유지로 내몰리면서, 또 다시 송전선로 갈등을 겪을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 같은 계획이 발표된 이후, 해당 지역에서는 동시다발적으로 주민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정부와 사업자는 신재생에너지와 신규 양수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력을 국가기간 전력망과 연계하기 위한 사업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설명회에 참석한 주민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명목은 에너지 전환이지만, 실제로는 수도권 산업단지, 특히 용인 반도체 공장에 공급할 전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주민설명회 현장에서는 "왜 우리가 쓰지도 않을 전기를 위해 삶의 터전을 내줘야 하느냐"는 질문이 반복된다. 전기를 생산하는 지역과 소비하는 지역이 분리된 구조 속에서 송전선로는 또다시 농촌과 지역을 관통하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지역 주민들이 떠안게 된다. 이번 초고압 송전선로 건설 계획이 안고 있는 모순 역시 이 지점에서 드러난다.
전자파, 위험하지 않다? "사전예방적 관점 전환 필요"
충북 영동군에는 두 개의 초고압 송전선로 건설이 계획됐다. 장수에서 영동에 이르는 58.8km 구간에 34만5천 볼트 송전선과 변전소, 개폐소 등을 설치하는 게 핵심이다. 신장수-무주영동 개폐소 송전선로 건설사업이 진행되는 곳으로 전북 장수군·진안군·무주군, 충남 금산군, 경북 김천시, 경남 함양군·거창군, 충북 영동군 등 8개 시군이 포함됐다.
영동 개폐소에서 시작해 청주 서원구 개폐소를 잇는 70km 구간에도 34만5천 볼트 송전선과 변전소가 설치될 예정이다. 무주영동-신서원 송전선로 건설사업은 충북 청주시·옥천군·보은군·영동군, 충남 금산군, 대전 대덕구·동구·유성구·서구·중구 등 10개 시군구를 지난다. 각 구간에는 100기가 넘는 송전탑을 세워야 할 상황이다.
주민설명회 자리에서는 송전선, 송전탑에서 나오는 전자계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실질적으로 없다는 설명이 이어졌지만, 그 자리에 모인 주민들을 얼마나 설득했을지는 미지수다. 한전은 전남 여수 봉두마을에서 2개월간 진행한 역학조사 결과를 근거로 전자파와 암 발생 간 관련성이 관찰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한국(833밀리가우스 이하)은 일본(2000), 독일·영국·스위스(1000) 보다 전자계 노출 기준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설명도 더했다. 무엇보다도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자파가 암을 유발하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해 2B등급으로 분류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부 연구 자료는 이를 반박한다. 1992년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에서 내놓은 고압송전선 주변 지역 소아암 발병률 관련 논문이 대표적이다. 연구소는 1960~1985년 25년간 고압송전이 지나는 마을 주민을 조사했다. 22만~40만 볼트 고압송전으로부터 300m 이내 거주하는 주민 16만5천여 명이 조사 대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결과적으로 자기장노출수치의 최대치가 2밀리가우스일 때 백혈병 발병률은 2.7배로 증가했다. 상한치가 3밀리가우스일 경우에는 3.8배로 증가했다. 같은 연구소에서 1997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주거지에서 자기장노출이 2밀리가우스일 경우 성인 백혈병 상대적 위험도는 1.3배로 증가하고, 급성 및 만성 척수백혈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고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스웨덴 연구는 한전이 작성한 송전선 전자계 노출량 조사연구 결과를 해석할 때 유의미하다. 조사연구에 따르면 75만5천 볼트 송전선 80m 지점에서 전자파는 평균 3.6밀리가우스가 측정됐고, 35만5천 볼트 송전선 40미터 지점에서는 평균 4밀리가우스가 측정됐다. 이 자료는 2013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장하나 국회의원을 통해 공개됐는데, 이 자료를 두고 장 의원은 전문 연구기관에서 백혈병 발병률 위험치를 넘어서는 전자계 수치가 우리나라 초고압 송전선 주변에서 배출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장하나 국회의원은 당시 국립환경과학원이 제출한 '국제암연구소 장기노출에 의한 건강영향 기준'을 분석해 세계보건기구 역학조사 결과를 달리 해석하기도 했다.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송전탑 전자파 발암 위험 등급을 발암 가능성이 있는 물질인 2A등급으로 분류했는데 동물실험 결과 발암을 고려하기에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다는 결과가 나와 최종 2B 등급이 됐다는 설명이다.
영동군 주민들은 초고압 송전선이 지나는 마을에서는 이상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호소했다. 34만5천 볼트 송전선이 마을을 관통하는 영동군 양강면 괴목리 이장은 송전탑 인근 거주민 중 23명이 심혈관질환, 뇌질환, 암 등을 앓고 있고, 이 중 12명이 사망했다고 증언했다. 괴목리는 민가 위를 송전선이 지나는가 하면 면사무소 등 주민 다수가 모여 활동하는 공간과 송전선로 거리가 300m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충남발전연구소는 이 같은 상황을 두고 전자파 리스크는 '사전예방적'으로 다뤄질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송전선로의 사회경제적 피해와 충남의 대응방안' 리포트에서 '전자파 리스크가 과학적으로 완전히 규명되는 것은 그 피해가 현실화된 이후에나 가능하며, 인체나 환경에 대한 치명적인 위해가 이미 발생된 이후에는 이전 상태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배경으로 네덜란드(4밀리가우스), 스위스(10밀리가우스), 이탈리아(30밀리가우스) 등 국가에서는 전자파 노출 허용 기준을 한국(833밀리가우스) 보다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
|
| ▲ 송전선로 신설을 앞둔 한전이 옥천 9개 읍면을 돌며 주민설명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이원면 주민설명회 자리. |
| ⓒ 월간 옥이네 |
주민설명회 자리에서는 가공송전선로 건설 절차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는데, '주민주도형 입지선정위원회'에 대한 모순이 그대로 드러났다. 한전은 송전탑·송전선로 입지를 주민대표가 포함된 입지선정위원회가 결정하도록 제도가 개선돼 주민 수용성이 높아졌다고 설명했지만 그 자리에서 주민들은 "송전선로 계획 자체를 이미 결정해 놓은 상황에서 무슨 소용이냐"며 따지기도 했다.
가공송전선로 건설절차는 기본계획(기후에너지 환경부 수립)-설비계획(한전)-입지선정-사업시행계획-실시계획승인-시공 순으로 진행된다. 입지선정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은 이미 정부와 한전이 기본계획과 설비계획을 사실상 확정했다는 의미다. 입지선정을 두고 아무리 많은 주민의 의견을 수렴한다고 해도 기본계획과 설비계획을 뒤집을 수는 없는 것이다. 송전설비 관련 분쟁의 본질에는 이처럼 기본계획 설립 단계에서 주민수용성이 인정되지 않는 비민주적 절차에 있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다. 전자파 위험성 등 건강 침해에 대한 주민의 염려가 사전에 다뤄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구조인 셈이다.
전원개발촉진법,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 등 관련 법률안에서도 송전선로 건설 비민주성을 확인할 수 있다. 송·변전시설을 설치할 때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승인을 받으면 도로법, 하천법, 자연공원법 등 수십 개 인허가 관련 규정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다. 여기에는 지자체가 가진 인허가 권한도 포함돼 있다. 기본계획 및 실시설계 단계에 지자체 의견이 반영되는 의사결정 구조가 아닌데, 이후에는 인허가 권한마저 실질적으로 행사하기 어려운 구조가 된다.
주민설명회 자리에서는 재산상 피해 문제 역시 지적됐다. 한전은 고압송전선이 지나는 땅 주인에게 보상할 때 필지 규모와 상관없이 '수평 3m'를 기준으로 보상하고 있다. 가장 바깥 선을 기준으로 3m만 보상해 주는 개념이다. 송전선이 지나면서 지가가 하락하거나 토지 활용도가 떨어져도 이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받기 어려운 구조다. 주민설명회에서 "송전탑이 있는 농지는 은행에서 담보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하소연이 이어진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전 관계자는 "철탑 부지는 추가로 가산해서 보상하는 등 토지주 보상이 강화됐다"며 보상 제도가 개선됐다고 해명했지만, 송전선로 신설을 두고 얼마나 동의를 얻을 수 있을지는 역시 미지수다.
한국토지공법학회가 2011년 선하지와 잔여지 지가 하락을 분석한 결과는 이 같은 주 민의 말을 뒷받침한다. 76만5천 볼트 초고압 선 주변지역 지가감가율은 선하지 기준 평균 37.15%로 가장 높았고 34만5천 볼트는 29.76%, 15만4천 볼트는 26.3% 순으로 나타났다. 76만5천 볼트 선하지 주변 '택지'의 경 우 47.1%까지, '농지'는 39% 지가감가율을 보였다.
이를 기준으로 충남발전연구원은 충남지역 피해액을 산출했는데 ▲ 76만5천 볼트-약 43억2100만 원 ▲ 34만5천 볼트-약 132억1200만 원 ▲ 15만4천 볼트-약 214억 5400만 원 등으로 나타났다. 합산 금액은 389억 원을 넘어선다.
이처럼 재산권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입지선정위원회가 운영될 경우, 주민 간 갈등이 심화될 가능성도 크다. 송전선로는 불가피하게 특정 토지를 통과할 수밖에 없고, 그 결정 과정에 주민이 참여하는 구조는 오히려 책임을 지역 내부로 전가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더구나 현행법은 필요할 경우 토지의 강제수용까지 가능하게 하고 있어, 사업이 강행될 경우 지역 공동체에 깊은 균열을 남길 우려도 크다.
|
|
| ▲ 송전선로 건설에 반대하는 영동 주민들이 한전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
| ⓒ 월간 옥이네 |
'초고압' 송전선로는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먼 거리'까지 보내기 위해 사용하는 전력망이다. ▲ 15만4천 볼트 ▲ 34만5천 볼트 ▲ 76만5천 볼트 등 높은 전압으로 전력을 이동시킨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전압이 220볼트인 점을 감안하면, 초고압 송전선은 약 700배에서 3400배 이상의 전압 차이가 나는 셈이다.
이처럼 전압이 높기 때문에 초고압 송전탑이나 송전선로 근처에서 작업할 때는 최소 3~7m 이상의 안전거리를 확보해야 한다. 전선에 직접 닿지 않더라도, 높은 전압으로 인해 전기가 공기를 통해 방전(아크)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전력 구조는 전기를 생산하는 곳과 사용하는 곳이 뚜렷하게 분리돼 있다. 원자력과 화력발전소 등 대규모 발전시설은 냉각수 확보가 용이한 해안 지역에 집중돼 있는 반면, 전체 전력 소비의 약 40%는 수도권에 몰려 있다. 이처럼 생산지와 소비지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면서 초고압 송전망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고, 그 과정에서 지역 간 갈등도 함께 커지고 있다.
변전소란?
변전소는 전압을 조절하는 전력 설비다. 발전소에서 나온 전기는 먼 거리를 보내기 위해 변전소를 통해 전압을 높여 이동한다. 변전소에 도착한 전기는 용도에 맞게 전압을 낮춘 뒤 가정 등으로 공급된다.
배전망이란?
송전망이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먼 거리로 대량 수송하는 역할을 한다면, 배전망은 그렇게 전달된 전기를 지역 내 실 사용자에게 공급하는 전력망을 의미한다. 변전소에서 전압이 낮아진 전기는 배전선을 따라 주택, 상가 등으로 전달된다. 초고압 송전망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는 지산지소(지역에서 생산하고, 지역에서 소비)의 배전망 중심 전력 체계로 재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월간옥이네 통권 106호
글·사진 이현경
▶이 기사가 실린 월간 옥이네 구입하기 (https://smartstore.naver.com/monthlyoki)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현재 후보들로는 택도 없다"... 국힘 경기지사 후보, 끝까지 모른다
- 정원오가 "자동차 공급 축소" 주장? 또 잘못 짚은 김재섭
- "보수 퇴행 마지막 단계 온 듯"... 역사학자가 본 전한길 '5.18 북한군 개입설'
- "세상에서 가장 성능이 뛰어난 기계"
- "이거 혹시 AI가 썼나요?" 직접 물어봤더니
- 나무를 쓰고, 그리다가... 끝내 나무가 된 작가들
- 버스 타고 오신 87세 시어머니 장바구니에서 나온 것
- 국힘 대구 공관위, 중구청장 후보 공천 번복에 내홍
- 방미 논란, 당은 사과했는데... 장동혁은 "언론에 유감"
- 안민석, 경기도교육감 진보 단일 후보 유지... 후폭풍은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