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살 아들의 기도...한국 최초 시각장애인 박사의 감동적인 답변 [커피로 맛보는 역사, 역사로 배우는 커피]

이길상 2026. 4. 26.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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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로 맛보는 역사, 역사로 배우는 커피] "내 눈에는 희망만 보였다" 강영우 박사님을 떠올리며

[이길상 기자]

우리 국민의 5퍼센트는 장애인이고, 매년 4월 20일은 이들의 고통에 공감하기 위해 1981년부터 기념해 온 '장애인의 날'이다.

대학에 다닐 때였다. 졸업 전 거의 마지막 수업 시간이었는데 담당 교수님과 함께 시각 장애인 한 분이 강의실에 들어왔다. 그분은 시종일관 웃으셨고, 교수님은 그분을 소개했다. 우리 학과 선배인데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하셨다는 얘기였지만, 사실 나는 귀담아듣지 않았다. 당시 나는 행정고시 2차 시험을 몇 주 앞두고 마음이 분주했기 때문이다. 그날도 아마 출석 일수를 채우러 수업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나는 미국 일리노이대학에 유학 중이었다. 다니던 한인 교회에 출석한 어느 날 신앙 간증이 있었다. 강사는 노스이스턴일리노이대학교 특수교육학과 교수였다. 간증이 시작되었다. 자신의 성장 과정을 소개했다. 이분은 정상적인 시력을 갖고 양평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어린 시절 축구공에 눈을 맞아 서서히 실명이 되어갔다. 태어나 10여 년 동안 보이던 주변 풍경이 차츰차츰 희미해지더니 어느 순간 깜깜해졌다. 설상가상 부모가 돌아가셔서 고아 신세가 된 그는 서울맹아학교에 입학했다.

마침 봉사활동을 하러 온 대학생 누나를 만나 도움을 받았고, 그녀의 도움으로 연세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봉사활동 왔던 그 여대생과 결혼한 후, 선교단체의 후원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부인의 도움과 각고의 노력으로 피츠버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시각 장애인 박사가 되었다. 꿈을 안고 귀국하였고, 모교인 연세대학교 교육학과 강의실에서 후배들도 만났다.

여기까지 설명을 듣자 몇 해 전 강의실에서 내가 보았던 시각 장애인이 바로 이분, 강영우 박사란 걸 깨달았다. 미국 박사의 취업이 어렵지 않던 시절이었으나 시각 장애인에게는 미국 박사학위도 통하지 않았던 1970년대 후반 대한민국이었다. 그를 받아주는 대학은 없었다. 기독교 대학인 모교에서조차 외면받은 강영우 박사는 결국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리고 시카고에 있는 노스이스턴일리노이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고난은 나에게 고통이 아니라 축복"
 2011년 4월 27일 한국 시각장애인 최초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를 지낸 강영우 박사가 한국과학영재학교 중강당에서 "끊임없는 도전"라는 주제로 초청강연을 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이날 강 박사님은 대학 시절에 있었던 일화 하나를 들려주셨는데 나와 관련된 얘기였다. 입학하자마자 친구를 사귀기 위해 여러 동아리에 지원서를 냈지만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장애인이란 게 이유였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연세대학교, 서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교육학과 학생들의 모임인 '녹우회'라는 동아리 문을 두드렸다.

이번에는 꾀를 냈다. 장애가 없는 친구와 함께 지원했다. 그러면 뽑아주리라 생각한 것이었다. 게다가 이 동아리는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정기 모임을 하는 봉사동아리였다. 결과는 입회 거부였다. 장애인과 함께 다닌다는 이유로 친구까지 불합격이었다. 강영우를 거부한 동아리 '녹우회', 나는 대학 2학년 때 그 동아리의 회장을 지냈었다.

신앙 간증이 끝나고 나는 강영우 박사에게 인사를 했다. 대학 후배이고, 강의실에서 만났었고, 녹우회의 회장이었다는 얘기를 하니 너무나 반갑게 내 손을 잡아주셨다. 그리고는 집 주소를 적어 주며 놀러 오라고 하셨다. 진심이 느껴지는 초대였다.

얼마 후 미리 연락을 드리고 댁으로 찾아갔다. 그분이 사시는 곳은 인디애나주 북쪽의 작은 도시 개리(Gary)에 있었다. 일리노이대학에서 자동차로 불과 두 시간 거리였다. 피츠버그대학 유학 시절에 낳은 두 아들 폴과 크리스, 그리고 부인 석은옥 여사가 맞아주었다. 사실 시각 장애인과 제대로 이야기해본 적이 없던 터라 긴장을 많이 했다. 그런데 강 박사님은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아이고, 그새 얼굴이 좋아졌네"라는 농담으로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긴장감은 금세 사라졌다. 연세대학교 이야기, 녹우회 이야기, 피츠버그 유학 이야기 등이 이어졌다. 아무렇지 않은 듯 이야기하셨지만 나는 이분 가족들이 미국에서 겪었을 마음과 몸의 고통이 느껴져서 순간순간 숙연해졌다. 식사 시간이 되자 둥그런 식탁에 둘러앉았다. 앞을 못 보시는 분이 어떻게 식사를 하시는지, 걱정 반 궁금증 반의 심정으로 지켜보았다.

부인께서 큰 접시에 음식을 가지런히 담은 후 음식 이름을 순서대로 얘기하셨다. "밥, 시금치나물, 계란후라이, 오징어볶음입니다. 여기 두부 된장국 있어요. 맛있게 드세요." 강 박사님 오른손 옆에 국그릇을 놓으며 말씀하셨다. 기도를 마친 강 박사님은 음식 순서를 기억해서 포크를 들어 밥 한번, 반찬 한번 번갈아 가며 음식을 맛있게 드셨다. 접시가 깨끗하게 비워지지는 않았다.

식사를 마치자 커피가 나왔다. 커피 메이커로 내린 블랙커피 냄새가 향긋했다. 보는 사람을 염려스럽게 하는 것이 시각 장애인 앞에 놓인 뜨거운 커피인 것은 당연했다. 걱정 어린 마음으로 쳐다보았다. "커피예요"라는 사모님 말씀이 끝나자 강 박사님은 식탁을 더듬어 커피잔에 손을 가져갔다. 커피잔이 움직이며 달그락 소리가 났다. 강 박사님은 손잡이를 잡고 조용히 커피를 입에 가져가 마셨다. 컵 받침에 잔을 내려놓을 때도 달그락 소리가 났다. 그러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며 커피 마시기가 끝났다.

그날 폴과 크리스는 나에게 너무나 친절했고, 부모님께 너무나 밝았다. 나는 이렇게 인사를 잘하고 명랑한 어린이를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본 적이 없었다. 나와 이야기하다가도 시간이 되면 어른들께 인사를 하고 스스로 방에 들어가 책상에 앉았다. 한국 기준으로도, 미국 기준으로도 흠잡을 데 없는 어린이들이었다.

내가 유학을 마칠 무렵 폴은 미국의 유명한 사립학교 필립스아카데미에 입학했다. 부시 대통령을 비롯해 많은 대통령을 배출한 학교다. 그가 입학 원서와 함께 제출한 자기소개서는 아버지 이야기로 가득했고, 면접하는 동안 면접관들은 폴의 아버지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하버드대학을 졸업한 폴은 아버지와 같은 장애인을 치료하기 위해 안과 의사가 되었고, 현재 워싱턴 D.C. 안과의사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동생 크리스 역시 필립스아카데미를 거쳐 시카고대학교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시절 미셸 오바마와 맺은 인연으로 2011년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 선임법률고문에 임명되었다. 부시 행정부에서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를 지낸 아버지 강영우 박사에 이어 백악관에서 입성했다. 누구나 인정하는 성공한 아버지와 아들이었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에도 나는 몇 번 강영우 박사 내외를 만난 적이 있다. 특히 대구대학교 특수교육학과 교수를 겸직하시던 시절, 강 박사님 내외는 자주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바쁜 시간을 보내셨다.

1990년대 중반 강영우 박사는 우리나라에서 이미 유명인이었다. 1994년에 방영된 MBC 기획 드라마 <눈먼 새의 노래> 덕분이었다. 부인과 함께 쓴 책 <어둠을 비추는 한 쌍의 촛불>을 토대로 만든 드라마였고 안재욱과 김혜수가 주연으로 등장하였다. 강영우와 석은옥이 사랑의 힘으로 온갖 고난을 넘어 세상의 빛이 되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렸다. 드라마의 인기로 이듬해에 같은 이야기가 <빛은 내 가슴에>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하시던 강영우 박사님은 안타깝게도 2012년에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강 박사님은 늘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나에게 앞 못 보는 장애를 주셨지만, 대신 다른 능력을 많이 주셨다. 늘 감사하며 산다. 고난은 나에게 고통이 아니라 축복이었다."

아들의 기도, 강 박사의 응답
 살아생전 강영우 박사가 강씨의 장남 진석(왼쪽, 폴 강)씨와 차남 진영(크리스토퍼 강)씨와 함께한 사진.
ⓒ 연합뉴스
내가 강영우 박사로부터 들은 이야기 중에 가장 잊지 못하는 것 하나를 꼽자면 큰아들 폴이 세 살 무렵에 했다는 기도 이야기다. 어린 폴은 어느 날 식사 자리에서 두 손을 모은 채 "주여, 우리 아버지에게 시력을 돌려주세요. 그래서 나하고 야구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운전도 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이 기도를 들은 아빠 강영우는 "너의 아빠는 어둠 속에서도 책을 읽어줄 수 있어. 눈 뜬 사람은 못 하는 것인데 아빠는 하잖아. 그리고 아빠는 앞을 못 보기 때문에 너의 엄마와 같은 천사를 만났고, 너도 만날 수 있게 되었어"라고 설명했다.

강영우 박사님이 떠난 후 그분을 떠올리는 순간이 적지 않았다. 지금은 카페촌으로 변한 그분의 고향 양평 문호리를 지날 때, 그분을 처음 만났던 연세대학교 본관 앞을 거닐 때, 특수교육학 전공자를 만날 때, 길 가다 시각 장애인을 마주칠 때 여지없이 그분을 떠올린다.

강영우 박사님은 췌장암을 선고받고, 남은 몇 개월의 시간을 보내며 지인들에게 감사하는 편지를 썼고, 남기고 싶은 마음을 담아 글을 썼다. 글은 유고집으로 출판되었다. 책 제목은 <내 눈에는 희망만 보였다>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그분이 볼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은 ''희망'이라는 두 글자였다. 그분이 희망하는 세상은 "평등하게 보호받을 권리, 무차별, 독립적인 삶,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는 세상"이었다. 다시 말하면 "교육, 고용, 주거, 교통의 이용, 보험과 관리 등에서 이러한 4대 원칙이 존중되고 실천되는 세상"이었다.

내가 커피와 친해진 이후 커피를 마실 기회가 많아졌고, 커피잔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도 많아졌다. 그럴 때마다 문득문득 나는 강영우 박사님이 커피 마시는 모습을 처음 보았던 오래전 그날 저녁이 떠올려진다. 그날의 달그락거림은 사라졌지만, 나는 여전히 그 소리 속에서 그분을 만난다. 그분은 일 년 365일 중 단 하루 장애인을 기념하는 대한민국을 어떤 표정으로 바라보고 계실까?

(<커피 한잔에 담긴 문화사>의 저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이길상(2025). 커피 한잔에 담긴 문화사. 싱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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