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성능이 뛰어난 기계"

박홍순 2026. 4. 25.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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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로 만나는 인문학] 인간과 기계 ② 기계로서의 인간

[박홍순 기자]

 움베르토 보초니 <공간 연속성의 독특한 형태> 1913년
ⓒ 퍼블릭 도메인
20세기 초반은 기계 문명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이 봇물 터지듯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산업혁명 이후 공장에서 생산 시설을 중심으로 발달하던 기계가 20세기로 들어오면서 여러 교통수단으로 진화하며 사람들의 일상에 파고들었다.

쇠로 만들어진 거대한 기계인 기차가 유럽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또한 헨리 포드가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도입하여 대량 생산하면서 자동차가 미국과 유럽에서 필수적인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아직 본격화하지는 않았지만, 라이트 형제가 최초로 동력을 이용한 유인 비행에 성공하면서 인간이 하늘을 나는 꿈이 눈앞에 다가왔다.

과학기술이 기계 문명을 급격히 발전시켜 앞으로의 세계는 물질적 풍요가 가득하리라는 장밋빛 환상을 퍼뜨렸다. 이러한 환상은 학문과 예술 분야에도 스며들었다. 특히 미술에서 기계 문명에 대한 찬사를 넘어서 아예 기계와 인간의 일치를 묘사하는 경향까지 생겨났다.

기계와 인간의 일치를 옹호

대표적인 경향이 이탈리아 화가 움베르토 보초니(1882~1916)가 선두에 선 미래주의 미술이다. 대표작이라 할 <공간 연속성의 독특한 형태>는 그가 추구하는 바를 잘 보여준다. 언뜻 공상과학(SF) 영화에 나오는 전투 로봇이 출동하는 모습처럼 다가온다. 청동으로 제작된 조각상이니 더 기계 인간 느낌을 준다. 발 뒷부분은 로켓 추진 장치의 불꽃을 떠올리게 한다.

일단 제목에서 의도를 확인할 수 있다. '연속성'이란 시간 흐름을 전제한 말이다. 짧은 시간에 빠른 속도로 움직일 때 공간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모습을 그렸다. 빠르게 질주하는 물체는 달리는 반대 방향으로 잔상을 남긴다. 다리 뒤로 불꽃처럼 보이는 형상은 바로 이 잔상의 표현이다. 전통적인 미술이 묘사하던 사물이 아니라, 움직임 자체로서의 속도를 묘사했다.

그런데 보초니가 주도한 미래주의 미술은 인간 신체로 나타나는 속도에 매료된 게 아니었다. 1909년에 이탈리아 시인 마리네티가 중심이 되어 발표된 '미래주의 선언'에서 "기계의 위력으로 출현한 새로운 세계를 환영하고, 과거에 대한 모든 집착을 거부"할 것을 주장했다.

그리고 "터질 듯이 헐떡이는 뱀 같은 파이프로 장식된 멋진 경주용 자동차, 폭발하는 화약처럼 미친 듯이 달리는 자동차는 '사모트라케의 여신상'보다 더 아름답다"라면서 미래주의를 예술형식에 담아낼 것을 주장했다. 빠르게 질주하는 자동차와 비행기가 그동안 미술 소재로 흔히 사용되는 그리스 여신상이나 탁자 위의 정물보다 더 아름답다고 한다.

이에 화답하여 다음 해에 보초니가 '미래주의 화가 선언문'을 발표했다. 그는 살아있는 예술은 "지구를 뒤덮은 초고속 통신망, 대서양 횡단 여객선, 드레드노트급 전함, 하늘을 가르는 경이로운 비행기"의 경이로움을 담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학의 승리로 찬란하게 변화될 일상이 인간에게 영광을 가져다줄 것임을 확신했다.

무엇보다도 기계의 속도에 매료되었다. 어찌 보면 '속도'는 기계 문명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어 본 것이기도 했다. 기계 문명은 속도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했다. 속도의 상징인 철도·자동차·비행기 등 운송 수단의 발전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할 수 있을까에 몰입했다. 속도를 통한 효율성 극대화를 추구하여, 생산에 컨베이어 벨트를 도입한 포드주의는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원리가 되었다.

나아가 기계가 만들어내는 속도를 향한 경이로움만이 아니라 기계 자체에 대한 찬미의 태도도 지녔다. 달리는 인간을 기계와 같은 이미지로 묘사한 보초니의 시도도 이러한 태도의 반영이다. 머리와 목 부분에는 아예 기계 파이프와 비슷한 모양의 장치를 달아놓기도 했다. 인간의 외적인 모습과 움직임을 기계로 표현했다.

기계로서의 인간

이즈음 보초니보다 더 극단적으로 밀고 나아가 인간을 기계 자체로 여기는 시각도 생겨났다. 독일의 의사이자 저술가인 프리츠 칸은 '기계로서의 인간'을 드러낸다. 인간 신체 각 기관의 작용과 감각만이 아니라, 심지어 정신활동조차도 순수한 기계 작용으로 바라본다. 각 신체 기관의 기능과 작용을 기계적인 과정으로 묘사한다.

칸은 1920년대에 인간 신체의 생리학적 구조와 기능을 기계 작용으로 묘사한 시각 자료로 큰 명성을 얻었다. 단면도를 보여주듯이 신체 내부의 구조와 움직이는 원리를 기계 장치를 통해 그려놓은 인체 해부도가 인기를 끌었다. 이를 표현한 도판과 설명이 담긴 책 <인간-기계>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는 여기에서 인간을 "세상에서 가장 성능이 뛰어난 기계"라고 규정한다.
 프리츠 칸 <인간-기계> 책 표지(2009)
ⓒ 퍼블릭 도메인
프리츠 칸의 <인간-기계> 표지 그림에 그가 묘사한 기계로서의 인간 해부도가 실려 있다. 원래는 몸 전체 해부도인데, 표지에는 머리 부분이 실려 있다. 눈의 기능은 카메라 원리로 설명한다. 청각은 안테나를 통해 다양한 소리를 수집하는 모습으로 나온다. 뇌의 위쪽은 서가에 다양한 분야의 책이 촘촘하게 꽂혀 있다. 시각과 청각 등 다양한 감각을 통해 얻은 정보를 기억 장치에 저장하는 과정을 상징한다.

단순 저장만이 아니라 기계 장치를 통해 언제든지 필요한 정보를 꺼내 쓴다. 뇌의 앞쪽에서는 몇 사람이 토론하고 있어서 정보의 사용을 넘어 다양한 상황에 맞게 응용하여 처리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코로 들어온 냄새는 입자 상태로 분류하여 각각의 특성에 맞게 뇌로 전달한다. 입으로 들어온 음식은 컨베이어 벨트에 연결된 분쇄기를 통해 잘게 부수어져 옮겨진다.

위 그림에서는 가려져 있지만, 몸으로 들어가서 보면 제일 먼저 심장과 만난다. 심장에서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나누어진 혈액 입자가 펌프 기계를 통해 동맥과 정맥으로 드나든다. 바로 옆의 폐로는 코를 통해 들어온 공기가 입자 형태로 분해되는데, 산소와 다른 물질로 구분되어 필요한 기관에 보내진다. 섭취된 음식물은 컨베이어 벨트의 도움을 받아 위장으로 전달된다. 이 모든 과정을 이어주는 각종 기계가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모터를 비롯한 동력 체계가 작동하고 있다. 인간은 거미줄처럼 연결된 다양한 기계 장치의 종합이다.

칸의 그림은 인간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거나 슬픈 자화상이기는커녕 축복의 메시지처럼 보인다. 산업현장에 울려 퍼지는 기계와 망치의 힘찬 소리를 통해 경제발전을 예찬하듯이, 모터에 의해 몸의 각 기관이 돌아가고, 입자화된 요소들이 관을 타고 이동하는 인체 기계는 역동적인 이미지를 전달한다. 1920년대 산업혁명과 과학기술의 비약적 발전에 품은 희망을 인체 기계를 통해 다시 확인하는 듯하다.

현대의 기계주의 경향과 실용주의 철학

보초니와 칸의 기계주의 경향은 20세기 초반에 미국을 출발점으로 하여 점차 영향력을 확대하던 실용주의 문제의식과 일부 닿아 있다. 19세기 후반에 미국에서 시작되어 현재까지 현대철학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자리 잡은 경향이다. 실용주의 철학을 확립한 윌리엄 제임스는 <실용주의>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왜 어떤 현상이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유일하게 가능한 이유는 그런 현상이 실제로 욕망된다는 것이다. 모든 욕망은 그 정도로 명령적이다. (…) 진리에 대해 '그것이 참이기 때문에 유용하다' 아니면 '그것이 유용하기 때문에 참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구절은 정확히 같은 것이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선택과 행동 동기는 욕망이다. 내부에서 비롯되는 욕망은 명령이라고 할 만큼 거스르기 어렵다. 과거에 수많은 철학이 강조한 사고방식, 즉 미리 정해진 고상한 의무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윤리 철학 권고는 실현을 기대할 수 없다. 인간은 유기체로서 자신을 실현하려는 본능적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욕망은 존재한다는 사실에 의해서 스스로 정당성을 지닌다. 욕구 충족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어떤 철학도 인간에게 적용되기 어렵다. 욕구를 수용하고, 욕구와 관련된 행위 결과를 추적해야 한다. 욕구 충족을 이끌어주지 않는 진리나 가치는 폐기되거나 무시될 필요가 있다. 현실적 욕구에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하는 현대 과학기술문명을 뒷받침하는 철학으로 작용한다.

진리를 유용성에서 찾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떠한 철학적인 결론이 삶에 유용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실질적인 생활 개선에의 기여 여부가 진리와 직결된다. 기존의 사변적인 철학은 현실 유용성과 무관하다는 점에서 진리와 거리가 멀다. 철학의 핵심은 앎 자체가 아니라, 실질적 생활 개선을 가져오는 현실의 힘이다.

다분히 과학기술 발전을 매개로 급격한 자본주의 산업화로 치닫던 미국의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다. 기계 문명을 매개로 자본주의의 중심지로 맹렬하게 발돋움하고 있던 미국인의 정서에서는 공허한 사변적 이론보다는 유용성을 강조하는 실천적 사고가 필요했다. 일을 간소화시켜 인간의 노력을 덜어줌으로써 당장 만족할 만한 결과를 이끌면 올바른 철학이 된다. 실용주의는 미국에서 급속하게 권위를 획득했고, 점차 유럽으로 영향력을 확대했다.

실용주의 철학은 한편으로 특유의 과학주의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맹렬하게 확대되던 자본주의 산업화와 기계 문명에 대한 친근한 정서를 가졌다는 점에서, 다른 한편으로 인식에 있어서 윤리적 가치판단을 배제하는 경향이 다분하다는 점에서 미래주의 미술의 등장을 자극하는 역할을 했다.

보초니와 칸의 그림은 기계 문명이 생산과 생활 등 각 분야에 걸쳐 폭발적으로 발전·확장되고 있던 사회 분위기의 연장선에 있다. 다른 한편으로 여전히 절대적 진리 규명에 몰두하던 근대 형이상학을 넘어 영향력을 확대하던 실용주의 철학에 대한 적극적인 수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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