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의 마약왕’은 허세, 동포들 약점 잡아 갈취 일삼던 하이에나였다 [월간중앙]

2026. 4. 25.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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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블러드] 실패한 사업가에서 마약상 되기까지, 박왕열 풀스토리

투자금 빼돌리던 사기범, 필리핀으로 도주해 살인자로 변모
교도소서 만난 마약사범 통해 공급 루트 뚫어… 마약왕 행세

왕열은 2016년 8월경, 한국에서 130억원대 투자 사기 혐의로 수사를 받다가 필리핀으로 도피해온 3명에게 은신처를 제공했으나, 그들로부터 투자받은 7억2000만원을 정산해야 할 상황이 되자 살인을 결심한다. 이를 실행에 옮긴 박왕열은 그 후부터 교도소 수감과 탈주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필로폰 공급 루트를 찾았고 이후 국내에 엄청난 양의 필로폰을 유통하는 마약왕으로 거듭나게 된다. [사진 공동취재]

지난 4월 초, 필리핀 앙헬레스 거주의 사업가는 박왕열에 대해 뜻밖의 얘기를 전했다. 2015~2016년경 그가 기억하는 박왕열은 한인사회에서 돈 많은 전주(錢主)들에게 처세하고 잡무를 봐주던 심부름꾼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왕열이 필리핀으로 이주한 2015년 이전의 행적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밝혀진 바 없다. 2011년 3월 그가 참치를 비롯한 수산물 수입유통회사 ‘유벤타스’를 운영하며 언론 앞에서 참치 해체 쇼를 벌인 게 일종의 우스갯거리로 소비될 뿐이다. 실상을 알고 나면 더 어이없는데, 이 사업은 초기부터 적자에 허덕였고 박왕열은 투자금 약 1억원을 빼돌린 채 4개월 만에 폐업한 것이다. 이 일로 그는 사기 혐의로 피소됐으며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일각에선 그가 조폭 계보에 올랐다는 소문도 돌지만 그와 비슷한 연령대인 1978~1982년생 사이의 조폭계에서 박왕열을 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그보다는 2008년경 그가 유흥업소에 호스티스들을 수급하는 보도실장이었다는 제보가 더 신빙성이 있다.


사탕수수밭 피살 사건의 전모


어쨌든 이런 배경을 고려하면, 2016년 9월경 국내에서 미인가 유사수신 행위를 벌이다 130억원 상당의 범죄수익금을 챙겨 필리핀으로 도주한 박모(남·48), 맹모(여·49) 심모(남·52)씨 등 3명을 만났을 때 박왕열은 속으로는 제대로 걸렸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박왕열은 한국에서 피의자 신분인 그들에게 한인타운 인근 빌리지인 ‘고○빌’ 한 동 전체를 빌려 은신처로 제공해줬다. 방이 5개인 100평 규모의 거주지로 중앙에는 잔디가 깔린 넓은 마당과 오두막이 있는 곳이다.

“3명은 필리핀 한인사회에 빠르게 적응했다. 여러 사업가와도 교류했는데 씀씀이도 컸다. 그들에 대한 소문을 듣고 투자금을 받으려는 날파리들도 많았다. 실제로 일부에게는 마사지 업소 등을 차리라며 수억원씩 투자해준 거로 안다.”(제보자) 돈 냄새를 맡은 게 박왕열 혼자만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취재원들에 따르면 필리핀 한인사회는 국내에서 사업 실패, 사기 전과 등으로 도피해 온 부류가 많다. 그래서 재력을 과시하는 쪽에는 항상 소문과 사람이 몰린다. 하지만 그런 이들과 달리 박왕열은 국내에서부터 3명과 알던 사이였다. 거기다 이제는 함께 거주하며 오두막에서 닭백숙을 함께 먹으며 친목을 다졌고, 그 결과 클락스톤센버그 호텔 내 카사블랑카 카지노에서 그가 운영하는 ‘정킷방’에 대한 투자금 7억2000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정킷방은 카지노 안에 따로 마련된 별실로 베팅액이 큰 VIP 고객용이다).

다만 관계는 오래가지 않았다. 앞선 3명은 정킷방 투자에 권리를 행사하려 들다가 종국엔 정산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에 박왕열은 애초에 투자금을 돌려줄 생각이 일절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들의 신변을 보호해주는 수고비 정도로 여겼던 터인데, 감사해하지는 못할망정 돈을 돌려달라고 하니 어느 순간부터 죽여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이를 잘 설명해주는 증거가 하나 있다. 그들과 작성한 카지노 투자 예치금 관련 서류다. 박왕열과 박씨의 공동명의로 7억2000만원을 예치한다는 내용인데, 그중 특약 문구가 눈에 띈다.

‘해당 계좌에서 현금 인출은 오직 박왕열만이 가능하다.’

수배자 3명이 모두 사망하면 예치금의 존재를 알면서도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박왕열뿐이라는 뜻이다. 거기다 그들은 필리핀에 연고도 없고 어디 가서 신분을 드러내거나 법적인 보호를 요청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박왕열은 운전기사를 통해 45구경 권총과 소음기(消音器)를 구했다. 그리고 10월 2일, 경남 창원 일대에서 일용직으로 비닐하우스 설치 일을 하던 김춘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사람 하나를 처리할 건데, 일이 잘 풀리면 1억원을 챙겨주겠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고 여기로 와라.”

그와 김춘수는 2년 전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사이로, 당시 그가 벌인 온라인 카지노 사업에 5000만원을 투자하고 본전도 못 챙긴 동생이었다. 말하자면 청부업자 노릇으로 투자금에 밀린 이자까지 쳐서 갚아주겠다는 얘기인데, 여기에 뛰어들 만큼 김춘수는 카드빚에 허덕이는 등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다.

2016년 10월 11일, 필리핀 북부 한 사탕수수밭에서 박왕열에게 살해된 피해자 3명의 시신이 발견됐다. 필리핀 코리안데스크 이지훈 경감(왼쪽 둘째)이 현장 감식에 참여해 사건 현장을 살피고 있다. [사진 이지훈 경감·중앙포토]


37일간의 끈질긴 추적


2016년 11월 11일 오전 8시. 박·맹·심씨 3명은 고○빌에서 차로 30분 거리인 팜팡가주 바콜로시 사탕수수밭에서 주검으로 발견된다. 한글로 프린팅된 티셔츠를 걸치고 있었는데 속옷은 입지 않은 채였다. 각 시신의 입에는 은색 테이프가 둘러져 있고 손발도 테이프로 결박된 상태였다. 타박상과 목이 졸린 흔적이 발견됐지만 사인은 총상. 시신의 관자놀이마다 탄알이 관통된 사입구(射入口)가 두드러졌다.

한국 경찰은 사건 초기 피해자들의 범죄 전력을 고려해 보복 살인을 추정했다. 아주 개연성이 없지도 않았던 게, 필리핀에는 살인 청부업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타깃에게 접근해 총을 쏜 뒤 도주하는 식이다. 이 외에도 집단 구타, 아킬레스건 절단 등 부위별로 단가를 매겨 일을 처리하기도 한다. 이 사건이 발생하기 전 필리핀에선 그해에만 한국인 3명이 연달아 흉기에 찔려 살해되기도 했다.

하지만 앙헬레스 코리안데스크 이지훈 경감은 사안을 좀 다르게 봤다. 청부업자라면 굳이 인적 드문 사탕수수밭에다 시신을 유기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피해자 심씨는 30㎝가량 파인 구덩이에 묻혀 있었고, 나머지는 귀찮아서 비탈면에 굴려 보내진 듯 수풀에 버려져 있었다. 아무래도 시신을 모두 묻으려다 사탕수수 뿌리가 워낙 단단하게 박혀서 포기한 인상인데, 프로의 솜씨라고 보기엔 어설펐다.

한편 그 시각, 그들을 살해한 박왕열과 김춘수는 당분간 들킬 일은 없을 거라 자신하고 있었다. 그들은 범행 직후 카지노나 나이트클럽에서 완전범죄를 자축하며 유흥을 즐겼다. 하지만 그날 바로 앙헬레스 한인회로부터 연락을 받는데, 코리안데스크가 피살사건을 이유로 그를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서 잠적하면 곧바로 유력 용의자로 몰릴 공산이 크다. 그래서 박왕열은 대담하게 이지훈 경감의 면담에 응했다. 이 경감이 박왕열을 보고 느낀 첫인상은 이렇다. ‘무표정한 얼굴엔 수염이 덥수룩했고 팔에 문신이 있었다. 흔히들 쉽게 떠올리는 반건달이었다.’

당시 면담에서 박왕열은 “전날 피해자들이 마닐라로 떠난다고 해서 인근의 졸리비(음식점)까지 태워줬다. 그게 그들과의 마지막이었다”고 진술한 뒤 수사에 협조할 것을 약속하며 자리를 떴다. 그 직후부터 그는 동분서주하기 시작한다. 우선 카지노에 예치된 7억2000만원을 빼서 여행용 캐리어에 담고, 범행에 쓴 총기는 오랜 지인인 콘도 주인에게 보관해달라고 부탁도 했다. 피해자들의 옷가지 등을 담아 군용 더플백에 쑤셔 박은 뒤 역시 지인에게 맡겼다. 범행 이튿날인 12일 김춘수는 한국으로 돌아갔는데, 그가 살인을 도우면서 박왕열로부터 받은 대가는 없었다.

박왕열은 필리핀인 애인을 데리고 필리핀의 여러 호텔과 리조트를 전전했다. 특히 그는 필리핀 최북단인 볼리나오와 바기오를 오가곤 했다. 그가 최북단 지역을 선호한 이유에 대해 해외 파견 경험이 있는 한 형사는 이렇게 분석했다. “거기 바다 인근에 라오아그 공항이 있다. 굉장히 생소한 곳이며 감시도 허술하다. 그리고 바다 건너로는 대만이 있다. 박왕열은 수사에 혼선을 주려고 그랬던 듯하다. 그가 밀입국했을 가능성에 주목하기 시작하면 수사 범위가 광범위해져서 한동안 추적에 소홀해질 수 있으니까.”

2016년 11월경 필리핀 마닐라의 한 콘도에서 박왕열이 검거되는 모습. [연합뉴스]

하지만 사건 발생 37일 차, 그는 애인과 함께 마닐라의 한 콘도에서 거주하다가 이 경감과 필리핀 CIDG(범죄수사국)에 검거된다. 박왕열에 대한 공개수사로 전환돼서 첩보를 입수한 경찰이 1000세대가 넘는 콘도 객실을 수색하며 그의 은신처를 파악한 것이다.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 속에서 김춘수는 혐의를 자백, 한국에서 징역 30년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박왕열은 필리핀 이민청 외국인수용소에 수감돼 있다가 천장을 뚫고 지붕을 통해 탈출했다.

박왕열은 3개월간의 도주 끝에 필리핀 북부 타를라크의 한 아파트에 숨어 있다가 필리핀 이민청에 의해 재검거됐다. 당시 다량의 마약을 소지하고 있었지만 이때까진 그가 마약 유통에 뛰어든 시기는 아니라고 경찰은 판단하고 있다. 한국 경찰청은 보안이 허술한 외국인수용소보다 정식 교도소로의 이송을 요청했는데, 공교롭게도 팜팡가주 교도소에 구속된 박왕열이 마약사범 재소자들과 어울리며 마약 루트를 뚫었을 걸로 추측된다. 인터폴 계장 출신의 전재홍 전 경정은 “교도소 가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아닌 놈이 맞다. 근데 그 후부터 변모했으니 교도소에서 배웠다고 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2019년 10월 박왕열은 인근 타를라크 지방법원 법정에 다녀오던 중 또 한 번 탈주에 성공한다. 그가 재판 참석 후 교도관과 식사하던 중 화장실에 간다고 하고서 창문을 통해 달아났다는 게 필리핀 현지의 해명이다.

두 차례의 탈주를 감행한 박왕열은 2020년 10월 필리핀 현지 경찰에 의해 라구나의 모처에서 재검거된다. 현장에는 다량의 마약이 발견됐으며, 오랜 도피 생활에 굉장히 수척해져 있었다고 한다. 이후 뉴빌리비드 교도소에 수감된 그는 단기 징역 52년, 장기 징역 60년 확정판결을 받지만 비교적 운신이 자유로운 교도소 내에서 그는 필로폰 유통과 관련해 옥중 경영을 이어가게 된다. [사진 경남경찰청]


마약왕으로 등극한 박왕열


복수의 취재원들에 따르면, 마약이 유통되는 텔레그램 채널에서 아이디 ‘전세계’가 수시로 언급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부터다. 전세계는 텔레그램에서 국내 최대 마약 공급 채널인 ‘바티칸 킹덤’에 필로폰을 끊임없이 제공할 만큼 엄청난 물량 공세를 자랑했다. 전세계는 돈이 안 되는 소매상들은 상대도 안 했는데, 최소 킬로그램(㎏) 단위는 제시해야 전세계의 주의를 끌 수 있다는 평판이 마약사범 사이에 전파되며 단기간에 ‘마약왕’으로 등극하게 된다. 거기다 바티칸 킹덤 이모씨가 후일 검거됐을 때 그와 관련된 황하나, 엄상미 등 유명 인사들의 마약 연루 사실까지 잇달아 터지며 배후에 있던 박왕열의 존재감은 더욱 커졌다.

국내 인터폴은 전세계가 박왕열임을 빠르게 인지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수도권 일선서의 마약수사팀에서 중간책으로 분류되는 마약사범들을 검거할 때마다 전세계를 통해 필로폰을 공급받았다는 공통된 진술이 나오던 시점에 전세계와 대면했다는 유의미한 첩보가 나왔기 때문이다. 피의자 A씨는 2017년경 사기 혐의로 수사받던 와중 필리핀으로 도피했다가 현지 경찰에 검거돼 외국인수용소에 수감된 적이 있다. 그때 박왕열과 안면을 텄으며 이후 2019년경 박왕열이 탈옥한 뒤 텔레그램으로 연락을 해와 ‘마약 사업을 하자’고 제안했다고 진술한 것이다. 당시 박왕열의 아이디는 ‘전세계’였다.

박왕열은 10여 명의 중간책을 수하에 둔 마약조직 ‘전세계 그룹’의 총책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사업은 오직 텔레그램으로 소통했으며, 국제화물특송으로 필로폰을 밀수하거나 한국의 지게꾼(인편)을 필리핀으로 불러내 현지인 부하를 통해 전달, 인천국제공항을 거쳐 국내에서 던지기 수법으로 유통시켰다. 이후 마약 대금은 미국의 머니그램이라는 자금 이체 서비스를 이용해 중간책이 박왕열에게 납부한 것으로 확인된다. “박왕열은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 텔레그램으로 마약을 팔았다. 그러고는 오후 6시까지 잤다. 평소에는 항상 권총을 소지했고 주변 소음에 민감했는데, 특히 도로에 지나다니는 차를 유심히 지켜봤다. 언제 경찰이 급습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었다.”(경찰의 첩보 내용)

텔레그램 아이디 ‘전세계’ 박왕열과 국내 마약 유통책이 나눈 탤레그램 대화 내용. [사진 경남경찰청]


허세는 말뿐인 범죄자


그렇다면 박왕열은 어디서 그토록 많은 필로폰을 구할 수 있었을까. 일각에선 교도소에서 골든 트라이앵글(세계 최대 마약 생산지)의 마약조직과 연결됐을 거라고 추측하지만, 일단 드러난 사실관계로는 그가 ‘베트남의 마약왕’으로 지목된 김형렬(텔레그램 ‘사라 김’)을 최상선으로 모셨다는 게 정설이다. 박왕열은 교도소에서 김형렬을 처음 만난 것으로 전해지며, 이후 도피 과정에서도 김형렬의 원조를 받았다고 경찰은 보고 있다. 실제 김형렬이 지난해 12월 한국 법원에서 징역 25년형을 선고받았을 때 재판부는 그가 박왕열에게 필로폰을 공급해줬다고 판시했다.

한편 박왕열은 2020년 10월경, 필리핀 라구나의 한 은신처에서 현지 경찰에 의해 재검거된다. 마약상임을 증명하듯 현장에선 다량의 마약이 발견됐으며, 오랜 도피 생활에 굉장히 수척해져 있었다고 한다. 이후 뉴빌리비드 교도소에 수감된 그는 단기 징역 52년, 장기 징역 60년 확정판결을 받았으나, 이때도 소지한 휴대폰으로 옥중에서 ‘전세계 그룹’ 경영을 이어왔다. 뉴빌리비드 교도소는 사실상 무정부 상태로 방치됐으며, 돈과 인맥이 있다면 전자기기 사용은 물론 술, 마약을 즐기며 공무원과의 유착으로 애인과 밀실 접견도 가능하다. “내가 입 열면 옷 벗을 검사가 한둘이 아니다”라는 근거 없는 떠벌림도 그때 나왔다.

한국 정부의 거듭된 요청으로 그는 현재 국내로 임시 송환돼 조사를 받고 있다. 인천국제공항 취재진 앞에서 호기로운 모습을 보였던 것도 잠시, 연이은 경찰의 취조와 압박에 고개를 푹 숙이거나 풀린 눈으로 허공을 보는 등 한풀 꺾인 태도다. 그를 검찰로 송치한 경기북부청 수사관은 사석에서 “피살사건으로 인한 본인의 유명세를 이용했을 뿐 허세도 말뿐이다. 거창할 것도, 근본이 있는 놈도 아니다”라고 전했다.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ahn.deokk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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