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관 끝내줘” “새벽1시, 귀문 열린다”…‘살목지’의 낮과 밤

김방현 2026. 4. 25.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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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군 광시면 대리에 있는 ‘살목지’. 농업용수 공급 목적으로 1982년 준공됐다. 저수량 73만100㎥로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저수지다.

충남 예산군 광시면 살목지 입구에 야간 방문 통제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그런데 요즘 살목지가 핫 플레이스로 뜨고 있다. 공포영화 ‘살목지’ 때문이다. '살목지'는 살목지 로드뷰에 정체불명의 형체가 찍히고, 재촬영을 위해 저수지로 향한 촬영팀이 검고 깊은 물 속의 무언가를 마주하게 되면서 발생하는 일을 그린 공포 영화다. 영화는 이곳에서 찍었다. 배급사 쇼박스에 따르면 '살목지'가 지난 8일 개봉한 지 16일째인 23일 160만 관객을 돌파했다.


살목지에 밤낮으로 몰려드는 차량


취재진은 지난 21일 오전 살목지를 찾았다. 낮인데도 방문객이 제법 있었다. 주차장으로 활용되고 있는 살목지 인근 예산황새공원에는 자동차 10여대가 주차해 있었다. 방문객은 사진을 찍으며 저수지를 둘러봤다. 경기도 성남서 온 이모(36)씨는 “영화 보고 담력도 쌓을 겸 밤에 오려했는데 안전 문제로 출입이 통제돼 낮에 왔다”고 말했다. 이씨는 “살목지가 무섭기는커녕 주변 경관이 끝내준다”고 덧붙였다.
살목지 포스터. 사진 쇼박스
살목지 포스터.

예산군과 이 곳 주민들에 따르면 ‘살목지’ 영화가 상영된 이후 하루 200명 가까이 찾는다고 한다. 이 가운데 절반 정도는 밤에 찾아온다. 공포감을 체험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주민들에 따르면 살목지가 생기기 전에 이곳에 공동묘지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영화 ‘살목지’를 보면 저수지 바닥에서 다수의 귀신이 일어나 사람을 위협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등장해 관객을 긴장시킨다.


"귀신 보러 새벽에 몰려"


최재구 예산군수는 “영화 속에 야간 장면이 많이 등장하자, 이를 직접 느껴보기 위해 야간에 방문하는 사람이 꽤 있는 것 같다”라며 “귀신이 새벽 1~3시에 많이 출몰한다는 말도 있다”고 전했다. 무속신앙에서는 새벽 1~3시대에 귀신의 문(門)이 열리는 것으로 믿고 있다. 이곳은 2022년 방송사 프로그램인 ‘심야괴담회’에서 귀신이 출몰하는 장소로 등장하면서 알려졌다.
충남 예산군 살목지에서 방문객이 인증샷을 찍고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살목'이라는 지명이 죽일 살(殺)이 연상돼 다소 섬뜩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어원상 죽일 살과 연관성은 없다. ‘살목’은 일대 지명인 '시목(矢木·화살나무)과 관련이 있다. 예산군에서 소개하는 지역 지명 유래에 따르면 이곳은 화살나무가 많아 살목(시목)지역으로 불렸다. 현재 '살목지'라는 지명에 대해 공식적인 한자 표기는 없다. 한자 표기가 '나무를 죽이는 저수지'라는 뜻의 살목지(殺木池)라는 주장은 영화 개봉 이후 퍼져나간 잘못된 민간어원설이다.
예산군 살목지 인근에 몰려온 차량. 예산군은 야간에도 몰리자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SNS캡쳐
주민 반응은 엇갈린다. 예산군 주민 김범식(56)씨는 "국내 유일 황새공원과 예당호 출렁다리에 이어 영화 살목지 촬영 장소가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아 예산 시민으로서 큰 자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주민들, 사람 몰리자 불편 호소


반면 갑자기 사람이 몰리자 살목지 주민들은 불편을 호소하기도 한다. 야간에 자동차 소음 등으로 잠을 설치기 일쑤라고 한다. 가로등이 많지 않아 야간 시야 확보가 어렵고 고성·경적 등 소란까지 더해지며 불편이 커지고 있다. 이에 마을 곳곳에 ‘야간 방문 통제’와 ‘차량 진입 금지’ 안내문이 설치됐다.
지자체와 경찰도 방문객 안전과 주민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대응에 나섰다. 예산군은 차량 24시간 통제와 오후 6시 이후 보행자 통행금지 조치를 시행하는 등 현장 안전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예산경찰서는 야간 시간대 교대 순찰 체계를 운영하며 상시 관리에 나서고 있다. 시간대별로 순찰 인력을 나눠 투입해 공백을 최소화하고 취약 구간을 중심으로 점검을 강화해 위험 요소를 사전에 차단하고 있다. 긴급 상황 발생 시 신속 대응 체계도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예산군 광시면 살목지 입구에 출입금지 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예산 군수 "퇴마 성지가 돼 씁쓸하기도"


예산군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접수된 관련 피해 민원은 없지만, 급증한 방문객에 따른 주민 불편이 큰 것으로 알고 있다”며 “방문객 증가에 따른 잠재적 위험요소를 점검하고 실효성 있는 대응 방안을 계속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최재구 예산군수는 “평화롭던 시골 저수지 주변이 퇴마의 성지가 된 것 같아 다소 씁쓸하기도 하다”라며 “황새공원 등 살목지 주변 관광지도 둘러보길 권한다”라고 말했다.

예산=김방현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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