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멈추면 끝장"…삼성 노조의 '3개월 마비' 시나리오

백서원 2026. 4. 2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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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집결한 4만명 물결…18일 멈추면 18조 증발
재가동 리드타임 고려 시 한 분기 출하량 영향
45조 성과급 요구 vs 사측 110조 투자 계획 충돌
지난 23일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의 '투명하게 바꾸고, 상한폐지 실현하자-4/23 투쟁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데일리안 정인혁 기자

반도체 초호황이라는 천재일우 앞에서 삼성전자가 사상 초유의 ‘반도체 팹 셧다운(가동 중단) 위기’에 휩싸였다. 경쟁사 SK하이닉스가 역대급 수익성으로 격차를 벌리며 축배를 드는 사이, 삼성은 내부 갈등으로 인해 한 분기 농사를 통째로 날릴 위기에 처했다. 파업 예고가 실제 가동 중단으로 이어질 경우 삼성 반도체의 하반기 명운은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갈 전망이다.

지난 23일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인근 왕복 8차선 도로. 주최 측 예상을 뛰어넘는 4만명의 노조원이 집결하며 거대한 ‘투쟁의 물결’을 이뤘다. 현장에서 만난 2030 엔지니어들은 경쟁사와의 성과급 격차를 언급하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했다. 노조는 경영진 3인의 현수막을 밟는 퍼포먼스를 벌이며 성과급 상한 폐지와 영업이익 15% 지급을 강력히 요구했다.

최승호 초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다음 달 파업으로 18일을 멈추면 18조원의 공백이 생긴다. 이것이 수치로 보일 수 있는 우리의 가치”라고 밝혔다.

삼성전자 첫 과반 노동조합인 초기업노조는 가동 중단된 설비를 복구하는 비용을 더하면 총피해액이 30조원 이상으로 치솟을 것으로 경고했다. 노조는 향후 사측과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다음 달 21일부터 6월 7일까지 18일간 파업에 돌입한다는 방침이다.

노조가 전날 평택 캠퍼스에서 진행한 총결의대회 여파에 따른 반도체 라인의 생산 차질은 수치로도 확인됐다. 노조 측 집계에 따르면 투쟁 당일 야간 교대 근무 시간(23일 22시~24일 06시) 동안 인력 의존도가 높은 파운드리 부문의 전체 생산 실적은 58.1% 급락했다. 라인별로는 기흥 S1(-74.3%)과 화성 S3(-67.8%)의 타격이 가장 컸으며 평택 S5(-42.7%) 역시 생산량이 대폭 감소했다. 메모리 라인 역시 화성 15라인(-33.1%)과 평택 P2D(-24.6%) 등을 중심으로 전체 생산 실적이 18.4% 하락하며 가동률 저하가 뚜렷했다.

이 같은 지표를 근거로 삼은 노조는 총파업의 파급력을 더욱 높이기 위해 파업 첫날인 다음 달 21일 오후, 서울 한남동 이재용 회장 자택 앞에서 집회를 열겠다고 용산경찰서에 신고했다. 신고 인원은 약 50명이다. 구체적 인원은 유동적이나 총파업 계획을 알리는 기자회견 형식이 될 전망이다. 평택 사업장 집회에 이어 총수 자택 앞까지 전선을 넓혀 사측의 결단을 압박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최승호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 지부 위원장이 지난 23일 오후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사업장 앞에서 열린 투쟁결의대회에서 투쟁사를 하고 있다.ⓒ데일리안 정인혁 기자

업계와 전문가들은 파업 기간인 18일보다 그 이후의 ‘리드타임(납품기간)’에 주목한다. KB증권은 이번 파업 참여 예상 인원이 전체 노조원의 30~40%에 달해 생산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파업 종료 후 라인을 재세팅하고 정상 수율을 회복하는 데 추가로 2~3주가 소요되는 점을 고려하면 파업 전후 영향권은 사실상 한 분기(3개월) 출하량에 영향을 미치는 시나리오다.

반도체 원료인 웨이퍼는 공정 대기 시간을 놓치면 산패돼 대량 폐기해야 한다. 앞서 사측이 수원지방법원에 노조의 위법 쟁의행위를 금지해 달라는 내용의 가처분 신청을 낸 배경이다. 글로벌 공급망 측면에서도 디램(DRAM) 3~4%, 낸드(NAND) 2~3% 수준의 차질이 발생해 전 산업 분야의 공급 병목현상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노조의 핵심 요구안은 성과급 산정 방식의 근본적 변화다. 현재 연봉의 50%인 초과이익성과급(OPI) 상한선을 폐지하고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명문화하자는 것이다. 올해 삼성전자의 예상 영업익(300조원) 기준 노조가 요구하는 재원은 약 45조원에 달한다. 이는 삼성전자의 지난해 연구개발(R&D) 투자액(37조7000억원)을 훌쩍 넘는 규모다.

삼성전자는 올해 AI 반도체 주도권 확보를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인 110조원 이상의 시설 및 R&D 투자를 예고한 상황이다. 사측은 국내 업계 1위 달성 시 특별 포상을 제안하며 타협점을 찾으려 했으나 노조는 제도적 폐지를 고수하며 협상은 결렬됐다. 여기에 노조는 조합비 급여 공제(체크오프) 체제 전환을 선포하며 조직력 강화에 나섰다.

공교롭게도 노조가 목소리를 높인 날, 경쟁사 SK하이닉스는 ‘천상계’ 성적표를 내놨다. 걑은 날 공시된 SK하이닉스의 매출은 52조5000억원, 영업이익은 37조6000억원이다. 영업이익률은 무려 71.5%. 제조 업체로서 전무후무한 수치로 엔비디아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률(65%)을 뛰어넘었다. SK가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을 주도하며 축배를 드는 동안, 삼성은 내부 갈등으로 인해 미래 신사업 투자 기회를 날릴 위기에 처했다.

사측은 143개 파트 2031명을 필수 인력으로 지정해 라인 사수에 나섰으나 노조는 유독가스 등을 다루는 안전보호시설 관리를 ‘협상용 지렛대’로 삼으며 비노조원 명단 공유 등을 조건으로 내걸고 있는 상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엔비디아를 추월한 SK의 실적이 증명하듯 지금은 1분 1초가 아까운 AI 골든타임”이라며 “전 세계 메모리 시장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삼성전자가 내부 갈등으로 인해 글로벌 공급망의 블랙스완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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