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딩 주권②] "한국엔 왜 커서 없나"… 모델 성능·인프라·수익성 벽 존재

[디지털데일리 구아현기자]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인공지능(AI) 코딩 스타트업은 가장 뜨거운 투자 영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AI 코딩 에이전트는 개발자가 자연어로 기능을 설명하면 AI가 코드베이스를 읽고 파일을 수정하고 테스트를 돌리고 오류를 고친다. 커서, 클로드 코드, 깃허브 코파일럿 같은 서비스가 개발자의 화면, 저장소, 터미널, 테스트 환경에 깊숙이 들어가 소프트웨어 개발 공정을 재구성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이와 유사한 독립 AI 코딩 에이전트 스타트업을 찾기 어렵다.
◆ 모델 성능·인프라·수익성 장벽 존재
이 시장이 국내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데는 성능·인프라·수익성 등 구조적 이유가 있다. AI 코딩 도구의 품질은 결국 기반 모델 성능에 달려 있어 자체 프런티어 모델이 없으면 차별화가 불가능한 구조다. 앤트로픽, 오픈AI, 구글 같은 곳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이유다. 이들이 먼저 시장을 선점하고 고객을 확보한 상황에서 후발주자가 비집고 들어갈 여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기존 코딩 에이전트들이 다른 서비스와 연동이 쉬워 자체 개발 필요성에 의문도 있다. 클로드 코드, 코덱스 등 기존 도구에 자사 모델을 API로 연결하면 별도 서비스 없이도 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 AI 업계 관계자는 "AI 코딩에 대한 수요가 있다면 기존 서비스에 API로 연결해 쉽게 쓸 수 있다"고 말했다.
벤처투자 관점에서도 진입 부담이 크다. AI 코딩 에이전트는 모델 호출 비용이 높고, 사용자가 많아질수록 컴퓨팅 비용이 급증한다. 국내 스타트업이 글로벌 모델 API를 빌려 코딩 에이전트를 만들 경우 사용량이 늘수록 원가 부담이 커진다. 자체 모델을 만들려면 그래픽처리장치(GPU), 데이터, 연구 인력, 모델 고도화 비용이 필요하다.
깃허브가 코파일럿 개인 요금제 신규 가입을 중단하고 사용량 제한을 강화한 것도 에이전틱 워크플로가 기존 요금제 구조보다 훨씬 많은 자원을 소비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사업자도 수익성에 고전하는 시장에 국내 스타트업이 뛰어들기란 쉽지 않다.
시장 수요 구조도 다르다. 미국의 개발자 도구 시장은 개인 개발자, 스타트업, 오픈소스 커뮤니티, 대기업 개발조직이 하나의 거대한 제품 시장을 형성한다. 좋은 개발자 도구는 저가 개인 요금제로 빠르게 퍼지고, 이후 팀·엔터프라이즈 요금제로 확장된다.
반면 한국의 소프트웨어 시장은 기업간거래(B2B) 시스템통합(SI)과 대기업 내부 시스템 비중이 크다. 개발자 개인이 결제하는 도구보다 기업 보안 심사를 통과한 솔루션, 내부망 구축, 기존 업무시스템 연동, 고객사별 커스터마이징이 중요하다. 커서 같은 수평적 개발자 플랫폼보다 기업 맞춤형 개발 자동화 솔루션이 먼저 성장하기 쉬운 구조다.
국내 대형언어모델(LLM) 기업들도 이 시장에 뛰어들지 않고 있다. B2B 사업을 중심으로 코딩 능력까지 보유한 모델을 제공하고 있지만 코딩 어시스턴트 서비스를 주력하지는 않는다. 계열사에 AI 모델을 제공하고 있는 한 AI 업계 관계자는 "코딩 어시스턴트 요청이 있어 최근 코드를 입력하면 실시간으로 수정·보완해 주는 모드를 추가했다"며 "기업들은 코드 하나하나가 자산이고 특허가 걸려 있거나 내부·연구개발 관련 코드를 외부 AI 도구에 넣는 것은 기업 비밀 유출 우려가 있어 외부 AI 코딩 도구를 쓰지 않는 편"이라고 밝혔다.
엘리스, 뤼튼테크놀로지스, 코난테크놀로지 등도 상황은 비슷하다. 엘리스는 AI 코딩 특화 LLM을 선보인 적이 없고, 현재로서는 별도 출시 계획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뤼튼테크놀로지스는 자체 도구 목록에 '코딩 과제' 기능을 두고 있지만, 사용자가 문제를 입력하면 풀이성 답변을 제공하는 수준에 가깝다. 프로젝트 파일을 만들고, 오류를 고치고, 실행 가능한 결과물을 완성하는 클로드 코드 방식의 코딩 에이전트와는 차이가 있다. 코난테크놀로지는 AI 검색엔진과 기업용 AI 검색 서비스에 강점을 두고 있으며 코딩 어시스턴트 사업 계획이 현재 없다고 밝혔다.
◆ "AI 코딩 스타트업 시도는 있었지만 시장 너무 빨라"
한 AI 전문가는 "AI 코딩 에이전트 스타트업들의 시도는 있었지만 시장이 너무 빨리 바뀌었다"고 진단했다. 국내에서도 커서처럼 편집기 화면 안에서 AI가 코드를 제안하는 방식의 도구를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AI 모델 성능이 빠르게 높아지면서 판도가 바뀌었다. 개발자가 명령만 내리면 AI가 파일을 직접 열고, 코드를 고치고, 테스트까지 스스로 돌리는 터미널 기반 에이전트가 주류가 됐다. 클로드 코드가 대표적이다. 화면을 보조하던 도구에서 스스로 작업을 완수하는 에이전트로 시장이 재편되면서 초기 시도들은 방향을 잡기도 전에 묻혔다.
국내에서 AI 코딩 에이전트를 표방한 시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캐럿티브의 '캐러티'가 대표적이다. 캐러티는 스스로를 'AI 코딩 파트너'로 소개하며 국내 개발 환경에 맞게 구성한 서비스다. 다만 자체 모델 개발보다는 오픈소스 클라인을 기반으로 현지화에 집중한 접근이다. 시장 자체가 클로드 코드 방식의 터미널 기반으로 빠르게 재편되는 상황에서 이 같은 현지화 전략이 어떤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커서조차 클로드 코드 등장으로 위기를 맞았다. 자체 모델이 없어 중국 모델을 파인튜닝해 사용한 점이 드러나기도 했다. 오픈AI는 커서 인수를 시도했지만 협상이 결렬됐고 결국 스페이스X와의 인수 계약이 커서의 구원투수가 됐다.
업계에서는 커서의 지위가 기술력보다 자본과 타이밍의 산물에 가깝다는 분석을 내놨다. 한 업계 관계자는 "AI 코딩 에이전트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과 이미 확보된 고객을 산 것에 가깝다"며 "그만큼 이 시장은 기술 자체보다 속도와 고객 선점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신정규 래블업 대표는 "지난해 커서가 인기 있을 때 국내에도 스타트업이 몇 곳 등장했지만 클로드 코드 방식의 터미널 도구에 묻혀 사라졌다"며 "모델 성능이 곧 코딩 성능이라 모델 개발사가 아니면 어렵고, 고객 유인의 핵심은 모델 성능과 가격으로 단순화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커서가 중국 모델을 파인튜닝한 것만으로도 경쟁력을 내세울 수 있었다는 것이 이번 인수로 증명됐다"며 "1년 안에 전 세계적으로 유사 서비스가 우후죽순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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