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카시, 타카시” 헵번 닮은 여학생이 다가왔다… 中미인계에 흔들리는 日[이세계도쿄]

강창욱 2026. 4. 24.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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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日자위대 장성 “中 포섭 작전 의심”
20년 전 하버드 객원연구원 시절 일화
귀국 직전 집중 접촉… 부친은 中장성
상하이 외교관, 정보 요구·협박에 자살
中정보기관, 노래방 여성 이용해 약점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제작한 이미지입니다.


전 일본 육상자위대 최고위급 장성이 미국에서 연수하던 중 중국 측 공작으로 추정되는 미인계의 표적이 됐다고 회고했다.

중국이 일본 외교가와 자위대 주변에 여성 간첩을 배치해 군사 정보를 빼내고 있다는 경고는 전부터 제기돼 왔다. ‘작업’에 걸린 일본 외교관이 협박을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도 있었다.

말없던 여학생의 돌변
후쿠야마 다카시 전 육상자위대 육장(한국군 대장)은 이달 출간한 안보 제안서 ‘육군 나카노학교의 DNA, 국가정보국 창설 전에 알아둬야 할 것’에서 자신에게 접근했던 중국인 여학생 사례를 소개했다.

이를 국제 정보전의 현실을 보여주는 일화로 들며 일본이 현대 첩보전에 매우 취약하다고 경고했다.

후쿠야마 전 육장은 2005년 3월 정년 퇴역 후 그해 6월부터 2년간 미국 보스턴 소재 하버드대학교 아시아센터에서 상급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했다. 하버드대와 매사추세츠공대 강의를 자유롭게 청강할 수 있는 자격이었다.

체류가 끝나갈 무렵 한 영어 수업에서 20대 후반 중국인 여성 유학생이 자신에게 부자연스러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해당 수업은 다국적 공개 강의로 692명의 학생이 참가했다고 한다.

후쿠야마 전 육장은 “우리 클래스에는 중국인 여성이 1명 있었다”며 “20대 후반으로 오드리 헵번을 떠올리게 할 만큼 아름다웠다”고 설명했다.

그 여성은 중국 이름 대신 ‘케이 티(Kay Tee)’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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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중에는 조용했고 쉬는 시간에도 다른 사람과 대화하지 않았다. 후쿠야마 전 육장이 말을 걸어도 짧은 대답만 돌아왔다고 한다.

그러다 6개월 뒤 마지막 수업에서 태도가 돌변했다. 케이 티는 “여러분과 추억을 만들고 싶으니 사진을 찍게 해달라”며 카메라를 들고 교실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는 일본 제품이었다.

후쿠야마 전 육장은 “분명히 나를 집중적으로 촬영하고 있었다”며 “그때까지 제대로 대화를 나눈 적도 없었는데 갑자기 친근한 어조로 ‘타카시, 타카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술회했다.

그는 “정보 분야에서 일해온 경험상 이 행동이 이상하다고 느꼈다”고 했다.

연구실까지 찾아온 케이 티
2007년 1월 케이 티는 아시아센터에 있는 후쿠야마 전 육장의 개인 연구실을 갑자기 찾아왔다. 수업을 마친 지 약 10개월 뒤였다.

명목은 ‘취업 상담’이었다.

케이 티는 방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고 후쿠야마 전 육장은 말했다. 일본 귀국을 앞둔 시점에 여러 차례 적극적으로 접촉을 시도했다고 한다.

후쿠야마 전 육장은 “그는 한 시간 넘게 쉬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며 “공개 강의 때의 조용한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고 매우 친근하고 아첨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떠올렸다.

케이 티는 이야기 도중 자신의 아버지가 중국 전략미사일부대(옛 제2포병부대) 장성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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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을 느낀 그는 곧바로 방어 태세에 돌입했다. 연구실 문을 열어둔 채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후쿠야마 전 육장은 “이성과 직감 모두 경고음을 울리고 있었다”며 “정황을 종합해 보면 분명 중국식 포섭 작전의 초기 접촉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만약 케이 티의 접근을 받아들였다면 협박을 통해 중국 측 협력자로 조종당했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후쿠야마 전 육장은 “일본 정보 수집 체계에 ‘구조적 결함’이 있다”며 “정부의 능력이 국제 기준에 비해 위험할 정도로 뒤처져 있다”고 지적했다.

“정보 안 주면 관계 폭로”
2004년 5월 6일 새벽 중국 상하이 일본 총영사관에서는 46세 남성 영사가 자살했다. 그가 아내 앞으로 남긴 유서에는 중국 측으로부터 외교기밀 정보 제공을 강요받았다고 적혀 있었다. 거부하면 중국인 여성과의 불륜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협박을 받은 것으로 알렸다.

이 영사는 상하이 총영사관에서 도쿄 소재 외무성으로 암호화한 공식 메시지를 송신하는 통신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는 외교관들의 이름과 암호화된 기밀 문서를 일본으로 운송하는 항공편 정보 등을 제공하라는 압박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사건 발생 1년 7개월여 뒤인 2005년 12월 말 주간분춘 보도로 세간에 드러났다. 일본 정부는 유가족이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함구하고 있었다.

언론 보도 후 일본 정부는 사실로 인정하며 중국 정부에 공식 항의했다. 사건 직후 두 차례, 보도 후인 이달 두 차례 항의했다고 당시 교도통신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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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방장관이던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영사를 협박하거나 강요하려 시도하는 것은 국제조약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외무성은 왕이 중국대사에게도 추가 항의를 전달했다.

숨진 영사는 당시 상하이 시내 가라오케 주점에서 만난 중국인 여성과 교제 중이었다. ‘가구야히메’(가구야 공주)라는 일본식 이름의 이 가게는 일본 총영사관을 비롯해 일본계 기업 사무소가 밀집한 지역에 있었다. 고객 대부분도 일본인이었다고 한다.

중국 국가안전부 관계자들은 영사와 교제하는 여성을 통해 접촉해온 뒤 총영사관 내부 정보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사는 유서에 ‘평생 중국인들에게 나라를 팔고 괴로움을 겪게 될 것을 생각하면 이런 선택밖에 없었다’고 적었다고 한다.

아사히신문 국제보도부 미네무라 겐지 기자는 2019년 9월 출간한 ‘잠입 중국: 엄중 경계 현장에 접근한 특파원의 2000일’에서 일본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상하이에는 정보기관과 연계된 일본인 대상 가라오케 클럽이 다수 존재한다”며 “‘가구야히메’도 그중 하나였다”고 설명했다. 가구야히메는 일본 고전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가구야히메 만나러 무단 출국
‘가구야히메’에 드나들던 일본 정부 관계자는 영사만이 아니었다. 2006년 8월에는 나가사키현 가미쓰시마 경비소에 근무하던 해상자위대 40대 남성 부사관이 무단으로 해외여행을 반복하다 정직 10일의 징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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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일본 부사관 최상위 계급인 일등해조였다. 한국군으로 치면 상사와 원사 사이 계급이다.

이 해조는 1년 2개월간 8차례에 걸쳐 모두 71일간 상하이를 방문했다. ‘가구야히메’에서 친해진 여성과 만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는 같은 해 2월 반출이 금지된 내부 자료를 부대 내 숙소에 보관하고 있던 사실이 적발돼 구두 주의를 받기도 했다. 해상자위대는 “조사 결과 내부 자료를 해외로 반출하거나 정보를 유출한 사실은 없다”고 발표했다.

아사히신문은 2006년 8월 ‘상하이 가라오케점의 수수께끼… 스파이 거점?’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경찰 당국에 따르면 이 해조는 약 350만엔의 현금을 여성에게 송금하는 등 ‘금전 지원’을 하고 있었다”며 두 사람이 밀접한 관계였다고 전했다.

앞선 영사의 사례를 고려하면 중국 정보기관이 이 여성을 통해 해조에게 접근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일본 측 판단이다.

중국은 첩보 활동에 전문 요원뿐 아니라 유학생, 연구자, 호스티스까지 활용해 매우 폭넓게 정보를 수집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미네무라 기자는 “사전에 특정 목표를 정해 그 인물에게서만 정보를 빼내는 것이 아니라 넓게 그물을 던져 건져 올리는 방식”이라며 “이렇게 수집된 방대한 정보 중에서 유용한 정보만을 골라낸다”고 해설했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중국의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한 첩보 활동은 질과 양 모두 세계 최대 규모라고 할 수 있다”며 “너무 방대해서 전체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고 미네무라 기자는 전했다.

성매매업소 잠입 지시도
미네무라 기자는 첩보 활동에 관여했다는 중국인 여성 사례를 저서에서 설명했다.

그가 만난 여성은 키 170㎝에 모델 같은 체형이었다고 한다. 베이징 시내 민간 기업에서 접수원으로 일하는 23세 회사원이었다. 피부가 희고 입꼬리에 보조개가 생기는 미소가 인상적이었다고 미네무라는 묘사했다.

중국 내륙 농촌 출신인 이 여성은 17세 때 군에서 일하는 사촌으로부터 “베이징에 군 관련 좋은 일이 있으니 오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아파트를 마련해주고 보수도 또래보다 2배 이상 받을 수 있다는 말에 망설임 없이 수락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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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베이징에 도착하자마자 사촌과 함께 ‘국장’이라 불리는 군 간부를 만났다. ‘국장’은 한 서양인 남성의 사진을 보여주며 “당신에게는 특무를 맡기겠다. 이 남성과 접촉해 주변 정보를 수집해 오라”고 말했다. 임무에 대해서는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대상 남성의 직업이나 이름은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베이징 중심 번화가 산리툰에 있는 바의 이름과 주소만 전달받았다. 캐나다, 호주, 독일 대사관 근처에 있는 곳이었다. 대상 남성이 자주 찾는 곳이라고 했다.

여성은 다음 날 밤 그 바를 찾아갔다. 댄스홀에서는 외국인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농촌에서 자란 그는 외국인을 본 적이 없어 위축됐지만 흉내를 내며 몸을 움직였다고 한다. 그러자 여러 남성이 차례로 말을 걸어왔다. 그중 한 명이 대상 남성이었다.

남성은 유창한 중국어로 “함께 한잔하자”고 말을 걸었다.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그가 대사관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권유를 받아 바 근처에 있는 그의 아파트로 갔다.

다음 날 ‘국장’에게 성과를 보고하자 칭찬을 받았다. 보수로 수천 위안과 함께 관계를 계속 이어가라는 지시를 받았다. 남성의 출장 일정뿐 아니라 동료의 이름과 행동까지 알아내 매달 한 번씩 보고하라는 지시도 받았다.

이 여성은 사우나 업소에 잠입하라는 지시를 받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중국 사우나 업소는 마사지 서비스를 함께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에서는 매춘이 불법이지만 암암리에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있다.

‘국장’이 잡입을 지시한 곳은 베이징 시내 대사관과 외국 기업이 밀집한 지역의 고급 사우나였다. 여성은 그곳에서 약 한 달간 ‘마사지사’로 일했다. 탱크톱과 미니스커트를 입고 대상 남성 등을 상대하는 일이었다.

마사지 도중 성매매를 유도하기도 했지만 여성은 거부했다고 한다. 이후 대상 남성이 어떻게 됐는지는 알 수 없다고 미네무라 기자에게 말했다.

여성은 이 일을 약 2년간 하다가 그만뒀다. 그는 “사촌이 ‘애국을 위해 협력해 달라’고 해서 시작했지만 미래가 없고 고생에 비해 수입도 좋지 않아 그만뒀다”며 “무엇보다 사람을 속이는 일에는 죄책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은 익숙해 보이면서도 때로는 이세계(異世界)처럼 생소하게 다가옵니다. ‘이세계도쿄’는 그 심장부 도쿄를 중심으로 사회 곳곳에서 포착되는 특이 현상과 이면을 들여다보는 코너입니다. 익숙한 풍경 뒤에 숨은 낯선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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