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과 독재 잔재의 결합... 법보다 충성이 먼저인 '괴물'의 탄생
[김수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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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호처 훈인 '하나된 명예, 영원한 충성' |
| ⓒ 화면캡처 |
대부분의 선진 국가에서는 경호조직을 대통령과 분리해 놓으면서도 국정 최고책임자의 신체적 위해에 적절하게 대응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경호처는 '대통령의 사병'으로 출발한 창설 초창기의 군사화 모델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설령 당장은 법적 제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언제든지 대통령의 품을 떠날 준비 태세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언젠가 바람 소리만 나면 다시금 군사화 모델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들 가능성이 작지 않다. 1987년에 외면한 민주화를 지금껏 유지한 채 권한의 비대화로 '대통령의 사병'을 현실화하려고 나설 것이라는 말이다.
여전히 경호처에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경호처장을 정점으로 하는 군사화 모델 특유의 비밀유지 전통이 유지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취임과 맞물려 태동한 경호처에는 처음부터 '비공개'라는 철칙을 뼈에 새겼다. 어쩌면 보안의 관점에서 이는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5·16 군사쿠데타의 유물로 창설된 경호처에 대한 외부의 따가운 눈초리가 드리운 상황에서 우리가 아니면 모두가 적이어야만 했기에 조직도, 인사도, 작전도 철저히 감춰야만 했다. 만일 사소한 경호 관련한 정보라도 새나가면 대통령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며 비밀의 유지만이 살길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경호처 내부에 드리운 깊은 그림자
그것만이 아니었다. 경호처 내부적으로는 더 깊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전체주의의 어머니 유신체제가 잉태한 불투명한 권력 구조 속에서, 비공개는 단순한 보안이 아니라 쿠데타 세력의 비밀 네트워크를 보호하는 방패막이 구실을 했다. 5·16 군사쿠데타의 동지들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속삭이듯 계획을 세웠고, 외부의 시선을 '테러 위험'으로 둔갑시켜 조직의 블랙박스화를 정당화했다. 이 비밀의 성벽은 1968년 1·21 사태로 청와대 2선까지 뚫리는 치욕을 교훈으로 삼아 더욱 높아졌다. 국민은 경호처의 실체를 알지 못한 채, 대통령을 받들어야만 했다. 그 불투명성은 권력의 신비를 증폭시켜 개인숭배를 정당화하며 권위주의 문화를 뿌리내리게 했다.
경호조직의 친위부대화를 통한 권한 집중은 비밀의 요새를 지휘하는 칼날이었다. 경호처장은 대통령을 최근접 거리에서 보좌하며 정권의 실세로 군림했다. 대통령 경호를 위해 관계 정부 부처들이 참가하는 '대통령경호안전대책위원회'를 소집해 '군기 잡기' 용도로 활용할 수도 있었다. 여기에 군과 경찰에 대한 지휘권까지 쥐면서 물 샐 틈 없는 보안망을 유지하기도 했다. 지휘 체계의 일원화는 처장 명령에 복종하고 대통령 보위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맹목적 충성의 기제로 활용되었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를 통해 경호처는 충성조직으로 면모를 일신할 수 있었다.
한국 정치문화의 맥락에서 경호조직의 실세화, 권한집중은 '상명하복'의 극단적 구현이었다. 5·16 군사쿠데타 참가자들로 포진된 군사 엘리트들은 대통령을 '국가 그 자체'로 동일시하며 권력을 한 점에 모았다. 일체의 분산 통제는 반란 재발의 위험으로 치부됐다. 유신체제의 '하나의 이념, 하나의 지도자'라는 10대 지침이 경호처 내부에서 되살아난 셈이었다. 경호조직의 수장은 소통령이 되었고, 그 권한은 안가 운영부터 정치 감시까지 망라했다. 심지어 대통령의 아침 운동 코스까지 미리 점검해 티끌조차 없도록 하는 '심기경호'가 대세를 이루기도 했다.
그렇게 경호처는 무한 권한을 통해 권력기관으로 자리매김하였다. 1974년 8·15 문세광 저격 미수사건에서 백일하에 드러난 경호 공백조차 권한 집중을 강화하는 명분으로 삼았다. 정치적으로는 권력의 인맥 네트워크를 공고하게 했다. 군사쿠데타 동지가 수장 자리를 물려주었고, 막강한 권한은 대통령 개인에 대한 충성으로 귀결되었다. 이 구조는 1987년 6월항쟁에 따른 민주화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경호조직을 대통령 국정운영 뒷받침 도구로 여겼기 때문이다. 보안을 명분으로 한 권한 강화가 반복되는 정치문화의 비극을 잉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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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지철 경호실장이 1974년 박정희 대통령의 전남 수해지구 시찰을 수행하고 있다. |
| ⓒ 대통령기록관 |
이러한 사정에 의해 '하나 된 충성, 영원한 명예'라는 처 훈은 개인숭배를 조직 DNA로 각인시켰고, 외부의 통제나 내부의 견제는 입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배신'이라는 낙인이 찍힐 게 뻔했다. 생일 축하 헌정곡은 조직 보위의 몸부림이었고, 저도 휴양지에서의 폭죽 세례는 살아남은 자들의 체념이었을 것이다. 개인은 사라지고 집단이 대통령의 그림자로 변했다. 12·3 비상계엄 이후 체포영장 집행 저지 과정에서 '사병화'의 사례로 선보인 스크럼과 차벽은 집단 책임의 연장선이었다. 그러면서도 내부 사항을 외부에 발설한 제보자 색출에 혈안이었던 것은 보안의 필요와 독재 잔재가 결합해 법보다 충성을 우선시하는 괴물을 낳은 단적인 증거이다.
이렇듯 경호처가 창설 초창기에 내세운 비공개, 권한 집중, 집단 책임이라는 조직설계 원리는 시간의 흐름을 타고 보안이라는 열려라 참깨식의 주문으로 작동했다. 비공개는 권력의 불투명성을, 집중은 개인 숭배를, 공동 책임은 개혁의 목소리를 억제하는 마법을 부렸다. 외부의 통제 시도는 언제나 '보안은 생명'이라거나 '경호 위해'라는 논리에 의해 단박에 차단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경호조직은 국가 제도 속에서 아무도 다가설 수 없는 '예외의 공간'이 되었다. 이때 충성은 단순한 미덕이 아니라, 조직의 존재 이유가 되었다. 여전히 '내란 가담' 혐의로 옥죄이면서도 충성의 시험대를 가동하고 있을 것이다.
경호처 역사 속의 총성과 내란에서도 사유의 무능은 오롯이 이어졌다. 이는 조직설계 원리의 승리였으나 '충성은 없다'의 아이러니를 낳고 말았다. 보안을 명분으로 한 충성은 대통령 개인에게 귀속됐고, 법치와 민주주의는 충성의 그림자에 짓눌렸다. 문민정부 이후의 개방 조치와 열린 경호 그리고 세계 최고의 경호안전 전문기관이라는 슬로건도 뿌리 깊은 조직설계 원리 앞에서 무기력했다. 공수처의 체포영장 앞에서 세워진 스크럼은 여전히 오래된 유산의 유력을 증명했을 뿐이다. 충성의 제단에 쌓아 올린 보안 논리가 작동한다면 사유의 무능을 부르는 전근대적 권위주의를 영속화할 수밖에 없다.
경호조직의 원리로 작동하는 비공식 규범은 세뇌화된 충성을 발판으로 삼아 권위주의 체계를 더욱 공고히 만들었다. 국가 안보 최후의 보루라는 신화를 유포하며 대통령의 절대안전을 보장한다는 숙명적 존재 이유를 부각한 것이다. 이때 충성은 어떠한 통제와 견제도 막아내는 구실을 했다. 일종의 면죄부였던 셈이다. 충실한 복종은 오히려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정당성의 근거로 작동하기도 했다. 그 결과, 판단은 위험한 행동을 유발하는 것으로 치부되고, 사유는 예외적인 일탈을 부르는 위험인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충성이 만든 내면의 비밀 요새, 그 안타까운 종착점
충성은 청와대 담장만큼 치솟은 내면의 비밀 요새를 만들었다. 이러한 과정의 종착점은 아이러니하게도 '판단의 마비'다. 판단 마비란 주저하거나 머뭇거리는 무기력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너무도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상태다. 총성이 들리면 0.725초 안에 몸이 먼저 움직이도록 훈련받은 사람들, "생각을 지운 반사신경"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의 충성은 완벽한 외형을 갖추고 있지만, 그 완벽함 속에 인간의 사유는 자취를 감춰야만 했다. 이러한 상태에서 시스템은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가장 위험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대통령 경호조직의 위기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그것은 충성의 결여가 아니라 충성의 과잉에서 온다. 충성이 조직의 존립 근거이자 경호의 윤리로 자리 잡는 순간, 헌법과 법률, 규정은 현실의 판단 기준이 아니라 상징적 구호로 남게 된다. 충성은 제도를 보호하지만, 동시에 제도를 부패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마련이다. 더 이상 누가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지 아무도 묻지 않는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아도 되는 체계가 완성된 것, 그것이 바로 아렌트가 경고한 사유의 무능이다.
'충성은 없다'는 도발적 선언은 단순한 배신이나 불충의 미덕이 아니다. 그것은 충성의 이름으로 인간의 판단이 제도에 제압당한 역사에 대한 성찰이다. 그리고 헌정 체계 속의 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한 사유의 중요성을 표현한 말이다. 대통령 경호의 문제는 도덕적 결함이 아니라, 사유를 허락하지 않는 구조의 결과였다. 그러한 깨달음을 도외시한 완벽한 경호는 불가능한 일이다. 대통령을 지키는 경호의 완벽함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역설 속에서, 우리는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충성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아마도 아렌트라면 이렇게 대답하지 않았을까. "충성이 생각을 멈춘 사람들의 언어일 때, 그것은 이미 악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앞으로 국가 경호조직의 수장을 역임한 인물을 중심으로 경호처 63년의 역사를 살펴보려고 한다. ▲충성의 설계자들 ▲충성의 집행자들 그리고 ▲충성의 파괴자들을 차례로 다룰 예정이다. 김용현의 경호처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아난 것이 아니라, 경호처 역사의 필연적 산물임을 알아채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경호처 역사에 권력-보호-상징의 일체구조가 어떻게 충성이라는 이름으로 각인되었는지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국가 경호조직에 대한 대안의 모델을 모색하고 충성의 재구성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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