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와 가짜 어떻게 구별할까? 예지원·박하선이 찾은 답
[안지훈 기자]
임선규의 1936년 희곡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를 각색한 연극 <홍도>가 막을 올렸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는 20세기를 대표하는 한국 신파극이다. 오빠의 학업을 위해 기생이 된 홍도가 광호와 사랑에 빠졌으나, 신분 차이를 달갑지 않게 여긴 광호의 모친과 전 약혼녀가 음모를 꾸며 홍도를 몰아내는 이야기다.
중견 연출가 고선웅이 원작을 각색해 2026년 다시 무대에 올리는 작업을 주도했다. 고선웅 연출이 이끄는 극공작소 마방진은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하여 대표 레퍼토리 연극 세 편을 연달아 선보였는데, <홍도>가 그 마지막이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각색해 '무협액션극'이라 이름 붙인 <칼로막베스>, <리어왕>을 재해석해 '오락적 막장비극'이라 명명한 <리어왕외전>에 이어, <홍도>는 '화류비련극'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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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홍도> 공연 사진 |
| ⓒ 극공작소 마방진 |
원작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는 오빠를 향한 여동생의 희생, 신분 격차를 극복한 사랑, 방해꾼에 의한 사랑의 좌절 등 신파적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신파극인 동시에 간단명료하게 서사를 구성하고 선과 악의 대비를 명확하게 그려낸 대중극이다. 따라서 21세기 관객에게는 자칫 잘못하면 진부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을 터.
지난 17일 관람한 <홍도>는 많은 것을 덜어냈다. 1930년대 한국 신파극이 21세기에 다시 공연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오늘날 관객에게 익숙하지 않은 한자어 등 옛 표현을 덜어내고 현대적으로 풀어 썼고, 이야기의 진행 속도를 높였다. 무대 장치도 최소화했고, 지붕을 연상케 하는 '사람 인(人)' 자 조형물 등 상징적인 표현으로 대체했다.
뺀 만큼 더한 것도 있다. 홍도의 한복은 무대 조명에도 강렬한 색채를 뽐낸다. 홍도뿐 아니라 홍도를 모함하는 인물들이 입는 한복 의상의 색채도 강렬하다. 덕분에 의상은 선과 악의 대비를 부각하는 효과를 낸다. 이번 <홍도>에 사용된 한복 의상은 유명 디자이너 차이킴(김영진)이 책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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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홍도> 공연 사진 |
| ⓒ 극공작소 마방진 |
옛날 신파극이 감정을 중시했다면, 오늘날에 맞게 각색된 <홍도>는 상황을 중시한다. 기쁘거나 슬픈 장면에서도 배우가 감정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기보다 절제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렇게 드러낸 상황들을 토대로 이 연극이 지적하는 건, 진짜와 가짜를 분별할 능력을 잃어버린 인간 군상이다.
"왜 나이를 먹어도 진짜와 가짜는 구별이 어려울까?"
홍도를 둘러싼 음모가 밝혀진 뒤에야 사람들이 한탄하며 이 대사를 내뱉는다. 홍도의 사랑이 좌절되는 비극은 진짜 편지가 전달되지 않고, 조작된 편지가 진짜로 여겨졌기에 발생한 것이다. 홍도는 광호에게 진심 어린 눈빛을 보내며 잘못된 사랑을 교정할 기회를 주지만, 광호는 이 기회를 잡지 못한다.
이런 광호에게 친구이자 홍도의 오빠인 철수는 이전에 '감자 후라이'를 건네며 말한 바 있다. 신문지에 싸여 볼품없고 푸석한 '감자 후라이'일지라도 "겉만 보고 버리지 말고 백 번 천 번 씹어 속 맛을 보라"고 조언했다. 이 조언은 홍도의 비극 이후 다시 광호에게 가닿는다. 겉을 지나치게 중시한 탓에 속을 보지 못한 광호는 홍도를 사랑할 자격, 홍도에게 사랑받을 자격을 상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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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홍도> 공연 사진 |
| ⓒ 극공작소 마방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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