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 크레디트에 이름 올라간 9778명 중 한 명입니다

김소영 2026. 4. 24.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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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 후원 후 동료들과 함께 본 <내 이름은>... 흥행 성공으로 "새로운 길 하나" 꼭 내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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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기자]

영화는 끝이 났지만 아무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검은 스크린 위로 이름이 끝없이 올라가고 있었다. 저 이름들 사이 내가 적었던 두 아이의 이름도 있을 터인데 찾을 수가 없었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멈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쌍둥이 딸 이름으로 후원

작년 1월 즐겨 듣는 팟캐스트 방송에서 정지영 감독이 연출하는 영화 <내 이름은>의 크라우드 펀딩 소식을 접했다. 방송을 들으며 텀블벅 사이트에 들어가서 <기억에 갇혀 버린 '4.3의 이름 찾기'에 함께 해주십시오>로 시작되는 프로젝트 소개를 보고 망설임 없이 소액을 후원했다.

정지영 감독, 염혜란 배우, 제주4.3 이 세 가지 키워드를 이미 봤으니 안 할 재간이 없었다. 엔딩 크레디트에 후원자의 이름을 올려준다는 말에 내 이름 대신 쌍둥이 딸의 이름을 적었다. 훗날 아이들과 함께 이 영화를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올해 1월 <내 이름은>이 제7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섹션에 공식 초청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들었다. 포럼 섹션에 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를 후원자 한 분 한 분의 선택과 마음 덕분이었다고, 올해 4월 전국 극장에서 찾아 뵐 그날까지 최선을 다해 준비하겠다는 제작위원회의 소식은 내 마음을 기쁨과 뿌듯함으로 차고 넘치게 만들었다.
 제주4.3평화기념공원 내에 위치한 어린이체험관에서 영상을 보고 있는 나와 쌍둥이
ⓒ 김소영
그 무렵, 나는 가족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일곱 살 쌍둥이와 가장 멀리 가는 여행이었기에 일정을 짜는 데 무척 고심하며, 제주4·3평화기념관도 방문지 명단에 넣었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어린이 체험관을 둘러보며, 이 아름다운 섬에서 오래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 주었다. 엄마의 욕심이었을 수도 있지만, 별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꼭 들려주고 싶었다.

꽃이 피어나기 시작한 3월 시사회에 초대받았지만, 멀어서 갈 수 없었다. 배급 문제로 4월 3일에 개봉하지 못하고 4월 15일에 개봉한다고 하여 그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개봉 전 주말,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모임의 선생님들께 <내 이름은>을 같이 보러 가자고 제안했고, 선생님들도 흔쾌히 응하였다. 기쁜 마음으로 영화를 예매하고 토요일 저녁 여덟 명이 함께 영화를 보러 갔다.

후원 못해 아쉬운 분들, 영화 꼭 보세요
 영화 <내 이름은>의 한 장면.
ⓒ 아우라픽쳐스
주인공이 기억을 거의 찾아갈 무렵부터 눈물이 흐르더니 보리밭에서 넋을 위로하는 춤사위부턴 어깨가 들썩거리고, 마지막 장면과 자막이 나오면서부터는 본격적으로 눈물을 훔치느라 엔딩 크레디트에서 딸들의 이름을 찾을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함께 간 동료들도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갈 때까지 미동도 없었다.

대학생 시절 광주 5·18민주화운동 사적지를 돌아보고, 묘지를 방문하며 희생자를 애도했다. 그에 반해 삼십여 년 전이나 더 일찍 벌어진 제주4.3사건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바가 없었다. 뒤늦게 알게 됐을 때 국가폭력의 잔인함에 혀를 내둘렀고, 너무 늦게 알아서 제주 앞바다의 별이 된 사람들에게 너무나 죄송하고 또 죄송했다.

이렇게 역사에 무지했던 내 스스로의 부채 의식 때문이었는지, 내 이름을 찾게 된 주인공에 깊이 감정 이입이 되었는지, 어린 아이고 노인이고 할 것 없이 휘둘렀던 잔인한 폭력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당하면 어떨는지 등 여러 생각과 감정이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속에서 파도쳤다.

영화를 함께 본 선생님이 엔딩 크레디트에 올라가는 후원자의 명단까지도 영화의 일부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염혜란 배우 역시 한 인터뷰에서 '한 평론가분이 이 영화의 완성은 엔딩 크레디트라고 하셨는데 정말 공감했어요. 수많은 이름이 올라가는데 제가 그분들과 함께 베를린에 와 있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라고 말했다.

얼마 안 되는 금액이었지만, 이런 의미 있는 영화의 제작 과정에 동행할 수 있었던 내가 정말 운이 좋았고 영광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개봉 후에 이 사실을 알고 진작 알았더라면 후원했을 텐데 하며 아쉬워했던 사람들을 주변에서 여러 명 만났다.

겨울에 방문했던 제주4.3평화기념관에는 백비가 누워 있었다. 백비는 어떤 까닭으로 아직 글을 새기지 못한 비석이다. 봉기 항쟁, 사태, 사건 등 다양하게 불려 온 제주4.3사건은 아직까지도 올바른 역사적 이름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주인공이 결국 자신의 이름을 찾은 것처럼 제주4.3사건 또한 그 역사적 의미와 가치가 온전히 담긴 이름을 찾아 백비에 당당히 새겨지기를 바란다. 아울러 희생되신 분들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 분들께도 깊은 위로를 전하고 싶다.
 제주4.3평화기념관에 누워 있는 백비
ⓒ 김소영
마지막으로 <내 이름은>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의 소개 글 중 일부를 전하고 싶다. '이 영화가 4.3의 이름을 당장 찾아내지는 못하겠지만, 그 이름을 찾는 새로운 길 하나를 꼭 낼 수 있기를 희망한다.'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꼭 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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