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까지 잔인해야 했나… 영화 속 731부대 생체실험

김성호 2026. 4. 24.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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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1329] <마루타 디 오리지널: 살인공창>

김성호 평론가

마루타(丸太), 벌목해 목재로 다듬은 통나무를 뜻하는 일본어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 마루타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십중팔구 생체실험에 쓰이는 인간, 실험체로 이용되고 버려지는 피해자를 통나무보다 먼저 떠올릴 것이다.

1940년대 만주에 주둔하던 일본제국 관동군에는 '방역 급수부'라 이름 붙은 세균전 부대가 있었다. 훗날 731부대라 불리게 된 이 부대는 부대명으로 드러나는 급수나 방역, 생화학전 대응을 위해 창설된 게 아니었다. 물리적 타격을 목적하는 재래식 무기와는 다른 기전을 가진 비대칭무기, 그중에서도 생화학무기를 개발하는 게 일차적 목표였다. 2차대전에서 극동 대소련 전선을 유지하며 한반도와 점령한 중국 도시, 또 일본 본토를 방위하기 위한 방패로써 만주는 버릴 수 없는 요충지였다. 그러나 갈수록 좋지 않아지는 전황은 더 효과적인 비대칭무기의 필요를 요구했다. 생화학무기는 많은 실험을, 가능하면 인간과 가까운 생명의 희생을 필요로 했다. 731부대가 넘지 않아야 할 선을 넘은 건 이 때문이었다.

일본을 넘어 전 세계 전사에서 최악의 군의라고까지 불린 이시이 시로가 731부대 지휘관이었다. 당시 일본군 군의로 오를 수 있는 최고계급인 중장으로, 731부대의 생체실험을 총괄했다. 흑사병, 천연두, 매독, 임질, 콜레라 등의 원인균을 그대로, 혹은 개량해 주입하는 식으로 이뤄졌는데, 직접 균 주입부터 음식을 통해 섭취하게 하거나 벼룩이며 쥐를 이용하는 등의 다양한 방식을 비교 실험했다.

내전으로 사실상 무정부상태였던 중국 민중을 비롯해, 만주에서 잡아들인 독립운동가를 포함한 조선인들, 또 소련인까지가 주된 희생자가 됐다. 확인된 것만 독립운동가 40여명이 피해를 입고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약 5년 간 731부대 내에서 실험으로 죽어나간 이들이 최소 3000여 명에서 1만 명까지로 추산되며, 부대 밖 생물무기 사용으로 죽은 이는 그 수십 배에 이른다고 전한다.
▲ 마루타 디 오리지널: 살인공창 스틸컷
ⓒ 다자인소프트
2차대전 일본군 731부대가 벌인 만행

<마루타 디 오리지널: 살인공창>은 홍콩 자본으로 제작한 1991년 작 장편영화다. 731부대와 관련한 작품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흑태양 731>의 속편격으로, 고어적 성격이 다분한 전작의 작풍을 이어받아 생체실험 장면을 재현하고 잔인한 액션 연출을 가미한 것이 특징적이다. 731부대와 관련해 가장 큰 피해를 본 범 중국 자본이 지난 30여 년 간 꾸준히 제작하고 있는 관련 작품 가운데 <흑태양> 시리즈만큼 유명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 <마루타 디 오리지널: 살인공창>은 '마루타'란 말이 널리 알려진 한국의 특성상 원제 '살인공창 Laboratory Of The Devil' 앞에 '마루타 디 오리지널'을 붙여 만든 제목이다.

1991년 겨울 한국서 개봉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오긴 하지만 당시엔 영화진흥위원회가 통합전산망을 통한 정보 집계를 하기 전으로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긴 어렵다. 분명한 건 <마루타 디 오리지널: 살인공창>이 비디오로 출시돼 고어, 공포 장르 마니아를 중심으로 대단히 화제가 됐다는 점이겠다. 잔인한 묘사로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임에도 역사의식 고취며 반일감정 등에 기대 비디오가게에서 고등학생 정도만 돼도 대여를 해주었다는 이야기를 당시 영화팬 여럿이 뚜렷하게 기억할 정도다. 서로 다른 지역에 살았던 영화마니아들이 제각기 이 영화가 대단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못잖게 인기 대여목록에 올라 있었다고 증언하는 바, 2차시장이라 할 수 있는 비디오가게들에서 고어물로선 보기 힘든 인기를 누렸다 해도 좋겠다.

이시이 시로 이하 731 부대가 자행한 잔혹한 생체실험이 이번에도 영화의 중심 줄기를 이룬다. 영화는 그를 검증된 액자식 구성으로 다루는데, 전쟁이 끝난 뒤 흩어져 살던 731부대 간부들의 모임자리에서다. 이들을 소집한 건 미국 비밀정보기관이다. 전쟁이 끝나고 뿔뿔이 흩어졌던 부대원들에게 금과 달러를 제시하며 세균무기 개발과 관련한 정보를 구하려 드는 것이다. 솔깃해하는 다른 이들과 달리 '또다시 살인에 동참할 수 없다'며 반감을 드러내는 사가와가 이 부대에 있었던 알려지지 않은 비극 하나를 전한다. 영화 <마루타 디 오리지널: 살인공창>의 시작이다.
▲ 마루타 디 오리지널: 살인공창 스틸컷
ⓒ 다자인소프트
픽션이 아니다, 철저한 고증에 따랐다

이 영화를 어떻게 평해야 할까. 731부대의 생체실험 비극을 가로지르는 한 쌍 커플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라 하면 좋을까. 주인공은 유망한 젊은 의사 이이다. 그가 약혼녀 아이코를 남겨둔 채 일제 관동군 산하 군의관으로 입대하게 된다. 의사는 입대를 피할 수도 있었으련만 아이코를 짝사랑한 연적 사카모토 원장의 음흉한 계략으로 꼼짝없이 징집되게 된 것이다. 아이코는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지만 갈수록 군세가 기우는 일본 관동군에 입대한 이이다가 무사귀환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일이다.

영화는 그가 731부대에 배치된 뒤 겪는 일련의 이야기를 보인다. 그의 기대와는 달리 731부대는 정상적인 부대가 아니다.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온갖 만행을 자행한다. 그저 인체의 한계를 알기 위하여 멀쩡한 사람을 끌어다 급랭해 얼어 죽게 하고, 불에 태워 죽이기도 한다.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세균을 주입해 얼마나 빨리, 혹은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는지를 비교분석한다. 초기 세균탄이 되는 도자기 폭탄을 제작해 실험하는 과정이며 실험 대상들의 고통과 부대원들에 대한 비인간적 통제 등도 재현에 가깝게 다루었다.

기밀이 샐까 철저히 외부와의 소통을 막는 731부대다. 하루하루 비인도적 범죄행위에 투입되는 이이다의 고통이며 이이다가 죽었다는 사카모토발 헛소문에 고통받는 아이코의 이야기, 심지어 만주에서 무료진료를 하던 아이코의 아버지가 겪는 고초까지 더해지며 영화는 관련된 인물들이 731부대에서 조우하는 당혹스러운 상황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731부대의 생화학무기 개발로 죽은 이들이 그저 중국인과 조선인, 소련인 뿐이 아니다.
▲ 마루타 디 오리지널: 살인공창 스틸컷
ⓒ 다자인소프트
짓밟힌 인간성, 조선 독립운동가들도 피해자

대강당엔 일본군 위패 또한 357개가 모셔져 있는데, 이들 또한 이이다와 같이 강제징집돼 모진 폭력과 강압 아래 강제로 개발에 투입된 이들이다. 이시이 시로가 모든 부대원이 비인도적 실험에 반항하지 못하고 동참하게끔 하는 데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던 결과로써 가장 우선하여 제압되고 통제되는 이들이 또한 가해자들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전쟁이 없었다면 좋은 사람이었을 이이다나 사가와 같은 이들이 공범이자 전범으로 전락한다.

생명은 물론, 인간 본래의 본성이며 도덕까지 짓밟는 전쟁이다. 그 가운데서도 전쟁범죄라 여겨지는 비윤리적 행위를 이 영화 속 731부대가 자행한다. 주지하다시피 영화 속 이야기는 그대로 사실이다. 표현 또한 고어적으로 잔인하게 표현됐으나 실제보다 도리어 순화한 것이란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1945~46년, 미국 정부 대표들은 독일과 일본 양국에서 전쟁 범죄로 간주될 수 있는 비윤리적 인체 실험의 증거들을 유사하게 발견했다. 그러나 두 패전국에서 나타난 결과는 판이했다. 독일의 경우, 캐나다 의사 존 톰슨(John Thompson)의 영향을 받은 미국은 나치 의사들을 재판에 회부하고 그들의 악행을 공표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반면 일본에서 미국은 생물전 실험에 관한 정보를 은폐하고 가해자들에게 기소 면제권을 보장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Howard Brody, Sarah E Leonard, Jing-Bao Nie, Paul Weindling, <United States Responses to Japanese Wartime Inhuman Experimentation after World War II: National Security and Wartime Exigency> 중에서
▲ 마루타 디 오리지널: 살인공창 포스터
ⓒ 다자인소프트
반인도적 전범들을 용서한 미국의 죄

1980년대 후반부터 기한 만료로 풀린 미국 정보기관 기밀문서는 731부대의 생체실험과 관련한 구체적인 정보를 미국이 사들여 활용했음을 확인한다. 전후 미군정은 이시이 시로를 비롯해 당시 부대원 전원의 기소를 면제해줬고 현재 시가로 수억 원에 달하는 돈을 당시 협조한 부대원들에게 지급했다. 기밀문서를 확인해 연구한 스나이시 게이치 교수는 이와 같은 거래가 소련을 대상으로 냉전을 벌이던 미국의 필요에 따른 것이었다고 분석한다.

영화 속 전범이어야 마땅한 731부대원들을 만찬에 초대해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우리는 세균무기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미군 장교의 대사가 결코 실제 역사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 이들 중 유일하게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사가와에게 '황금과 달러'를 제시하는 그의 말은 실제로도 효과를 발휘했다. 승전국인 미국과 패전국인 일본의 결코 동등하지 않은 거래는 수많은 피해자들의 고통과 인권, 윤리를 무시한 것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에 책임을 묻지 않았고 문제제기조차 하지 못하였다.

731부대의 만행을 세상에 알린 것이 일본, 그중에서도 언론과 예술이었음을 기억해 마땅하다. 스나이시 게이치 교수와 같은 일본 학자의 연구에 수십 년 앞서 일본공산당 기관지 기자 시모사토 마사키가 소련 하바롭스크 전범 재판을 쫓아다니며 731부대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그마저 묻힐 위기였던 것을 사회파 추리소설의 거두인 모리무라 세이이치가 논픽션 <악마의 포식>으로 작품화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흑태양> 시리즈가 바탕을 둔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이에 앞서서도 엔도 슈샤쿠 같은 유명한 문학가가 <바다와 독약> 같은 작품으로 일본의 생체실험 전범행위를 고발한 바 있다.

가장 큰 피해를 본 중국은 731부대 만행을 꾸준히 작품화해 잊지 않으려 한다. 성공한 <흑태양> 시리즈 뿐 아니라 자체 영화와 드라마를 꾸준히 제작하고 역사의식 고취의 도구로써 활용한다. 많은 희생자 및 희생의심 사건이 있는 한국에서 관련한 작품이 나오지 않았단 사실은 과연 마땅한 일일까. 이제와 정식 개봉에 이른 <흑태양> 시리즈 두 번째 편, <마루타 디 오리지널: 살인공창>을 보며 그에 대한 생각을 해보아도 좋을 테다. 이토록 잔혹한 이야기 가운데 가장 잔혹한 부분이 철저한 고증에 기반한 장면이란 건 운 좋게 전란의 시대를 넘어온 한 사람으로 필히 목격해야 할 대목이라 여긴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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