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책임형 유보통합', 그 이름의 책임을 묻는다

박창현 2026. 4. 24.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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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새로운 설계도, 교육부·국교위가 못한다면 대통령이 답해야 한다

[박창현 기자]

▲ 바깥놀이 하는 아이들 아이들이 바깥 놀이 공간에서 자연물과 도구로 요리 놀이에 몰입하고 있다. ⓒ 생성형 AI 이미지
ⓒ 박창현
유보통합, 되고 있는가를 묻는 분들이 많다. 나는 지금 그 답을 하기가 어렵다고 본다. 정부조직법은 통과되었고, 국정과제로 '정부책임형 유보통합'이 명시되었으며, 영유아특별회계도 신설되었지만, 정작 새로운 설계도는 어디에서도 그려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유보통합을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 사업과 예산은 격차 완화 정책 수준에 머물고 있는 모습이다. 지금 현장이 가장 원하는 것은 더 많은 예산도, 더 많은 시범사업도 아닐 것이다. 이 개혁을 할 것인지 하지 않을 것인지부터 정부가 답해 주고, 누가 그 결정을 내리는 자리에 있는지 분명히 해 주는 일이라고 본다.

유보통합이란 무엇인가

낯선 용어일 수 있어 먼저 짚고 가고자 한다. 한국에서 0~5세 영유아를 돌보고 가르치는 기관은 두 종류다. 유치원과 어린이집. 같은 다섯 살 아이여도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는 교육부 소관의 '학교'에 다녔고,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는 보건복지부 소관의 '보육시설'에 다녀 왔다. 교사 자격도, 교육과정도, 시설 기준도, 학부모 부담금도 달랐다. 유보통합은 이 두 체계를 하나로 합쳐 어느 기관에 다니든 같은 수준의 교육과 돌봄을 받게 하자는 국가 과제다. 김영삼 정부 시기부터 30년 넘게 추진과 좌초를 반복해 왔고, 지금 이재명 정부가 '정부책임형 유보통합'이라는 이름으로 이 과제를 쥐고 있다.

30년의 반복, 같은 장면이 또 돌아왔다

유보통합 논의는 김영삼 정부의 5·31 교육개혁에서 출발해, 노무현 정부에서 유아교육법 제정과 육아지원정책의 체계화를 통해 지원 기반이 마련되었고, 이명박 정부의 누리과정 도입으로 교육과정의 부분 통합이 이루어졌다.본격적 추진은 박근혜 정부에서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유보통합이 국정과제로 채택되어 2014~2016년 단계적 추진이 시도되었으나 이해관계자 갈등 등으로 중단되었고, 문재인 정부는 누리과정 국가책임 강화와 보육료 지원 확대 같은 부분 정책은 이어 갔지만 구조 통합 작업까지는 진전되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가 2023년 1월 '유보통합 추진방안', 2024년 6월 '유보통합 실행계획'을 내놓고 2024년 6월 정부조직법 개정 시행을 통해 보육사무를 교육부로 이관시켰으나, 12·3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 속에 또다시 좌초되었다. 지금 이재명 정부는 '정부책임형 유보통합'을 국정과제로 내걸었지만, 윤석열 정부에서 진행되던 추진은 사실상 멈춰 있고 새로운 설계도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같은 패턴의 반복으로 보인다. 30년째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는 셈이다.

격차 완화 정책과 유보통합은 차원이 다른 작업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할 듯하다. 격차 완화는 두 체계가 나란히 존재한다는 전제 위에서 그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정책이고,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다만 유보통합은 두 체계를 새로운 하나로 재설계하는 작업이다. 전자는 현재를 유지하면서 개선하는 일이고, 후자는 현재를 해체하고 다시 짓는 일이다. 정부가 유보통합이라는 이름 아래 격차 완화 수준에만 머물면, 구조 설계 논의는 멈추고 현장은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시간만 흐르게 된다.

교육부가 추진하는 대표 사업들 — 영유아학교 시범사업, 영유아 사교육 대책으로 내놓은 이음 사업, 독서유치원, 방과후과정 강화 — 은 각각 의미가 있다. 다만 이 사업들로 교육개혁의 무게를 감당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시범사업은 통합기관의 외형만 시범 운영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고, 이음 사업은 사교육 수요에 대응하는 정책이지 통합의 구조를 새로 짜는 일과는 다르다. 독서유치원과 방과후 강화 역시 영유아의 하루를 보강하는 일이지, 통합기관 모델·교원 자격 체계·지방이관 같은 근본 설계와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지방이관 3법이 계류된 진짜 이유

이른바 '유보통합 3법' —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개정안, 영유아보육법 개정안,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안 — 이 2024년 10월 발의된 이후 지금까지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 지연을 정치적 무관심이나 입법 일정 문제로만 보기는 어려운 듯하다. 법이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법이 담아야 할 내용이 비어 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통합기관 모델, 교원 자격, 재정 이관 구조 같은 선행 합의와 설계가 정부 차원에서 제시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법이 통과되기 어렵다.

국회예산정책처가 2024년 8월 발간한 보고서도 정부의 '유보통합 실행 계획'이 "재원 확보 방안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 신뢰성이나 실현 가능성에 미흡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영유아특별회계 신설은 재정 가시성 측면의 진전이지만, 지방이관 3법이 통과되지 않아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구조 재설계도 함께 멈춰 있는 상태다.

'가능한 부분만 하겠다'는 말은 무책임에 가깝다

정부 안팎에서 "여건이 되는 부분부터 차근차근 하겠다"는 말이 흘러나오는 듯하다. 유보통합은 가능한 부분과 불가능한 부분을 골라서 할 수 있는 과제로 보기 어렵다. 교원 자격, 통합기관 모델, 지방이관, 재정 구조는 서로 맞물려 있는 하나의 설계이고, 쉬운 것만 골라 쥐는 순간 그것은 부분 사업의 집합에 가깝게 된다.

'가능한 부분만 하겠다'는 결론을 받기 위해 여러 위원회를 만든 것은 아닐 것이다. 영유아교육·보육통합추진위원회, 자문위원회와 분과위원회 등은 정부가 결단해야 할 지점을 드러내라고 만든 자리이지, 이미 정해둔 결론을 추인하는 거수기로 쓰일 자리는 아닐 것이다. 지난 정부에서 단기 사업들이 추진위 도장을 받으며 '유보통합 과제'라는 이름표를 다는 방식으로 좌초의 길을 걸어온 것은, 이번 정부가 답습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설계가 먼저 나오고, 그 설계를 조율할 자리로 추진위가 작동하는 순서가 '정부책임형 유보통합'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모습일 것이다.

지원청 공무원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보육사무 이관에 따라 전국 시·도교육청과 교육지원청에는 이미 유보통합 담당 공무원들이 배치되어 있다.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묻는 분들이 많다. 통합기관 모델이 없으니 어떤 기관을 지도해야 할지, 어떤 기준으로 인력을 관리해야 할지, 재정 이관 구조가 없으니 어떤 항목을 어떻게 집행해야 할지 답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추진단을 별도 설치한 시·도교육청에서는 추진단 유아 사업이 본과 유아 사업과 분리된 채 따로 굴러간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통합을 위해 만든 조직이 분리를 만들어내는 모습이다. 중단할 것이라면 인력을 원래 자리로 돌려보내고, 갈 것이라면 제대로 가는 길을 정하는 일이 필요해 보인다.

독서유치원이 왜 유보통합 사업인가, 누가 동의한 특별교부금인가

사업의 카테고리도 짚지 않을 수 없다. 독서유치원이 유보통합 사업일까? 교육력제고사업일까? 독서유치원 사업을 유보통합 추진위에서 논의해야 하는가? 유사한 책놀이·독서 사업이 시기에 따라 유보통합 과제, 지역혁신 사업, 누리과정 지원 등 다른 카테고리로 분류되어 온 흐름이 있다.

같은 사업이 카테고리를 갈아입을 때마다 특별교부금이 따라붙는 구조라면, 카테고리 분류 자체가 재원 배분의 권한이 되는 셈이다. 모두 국민 세금이다. 누구의 동의를 얻어 이 사업을 유보통합으로 묶고 저 사업을 빼는 것인지, 국회는 이 분류와 집행을 점검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시·도교육청이 사업의 본래 취지보다 교육부가 어느 카테고리에 어떤 재원을 붙여 두었는지를 살피게 되는 구조라면, 교육자치라는 말이 무색해질 수 있다.

키를 잡은 곳이 보이지 않는다

새로운 설계도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하는 듯하다. 그런데 그 설계도를 누가 그릴 것인가에 답할 수 있는 자리가 지금은 잘 보이지 않는다. 교육부는 부처 차원의 안을 만들 수 있지만, 다부처와 다이해관계자 조율을 단독으로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국가교육위원회는 중장기 교육정책의 방향을 제시하라고 만든 자리이지만, 영유아 교육·보육 통합이라는 거대 의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는 신호는 잘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가 직접 키를 잡았다는 흔적도 아직 확인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2026년 6월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는 모양이다. 다만 영유아 교육의 방향이 매번 정치 일정에 맞춰 움직이는 그 패턴 자체가 이 분야의 가장 깊은 문제일 수 있다.

정치가 영유아 교육을 끌고 가는 까닭

한 걸음 물러서서 묻고 싶다. 왜 한국에서 영유아 교육과 돌봄 정책은 늘 정치 일정에 끌려 다니는가. 행정의 문제로만 보기는 어렵다고 본다. 더 깊은 곳에는 국가 차원의 철학과 비전, 그리고 어린이에 대한 기본 인식이 자리 잡지 못한 문제가 있다고 본다. 영유아를 권리의 주체로, 한 시민으로, 국가가 책임지고 길러야 할 존재로 보는 합의가 충분히 형성되지 못한 자리에서는, 영유아 정책이 늘 다른 정책의 부속처럼 다뤄질 수밖에 없다.

저출생 대책의 한 조각으로, 여성 노동력 확보의 도구로, 돌봄 부담 완화 수단으로 호명되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 영유아 그 자체가 정책의 중심에 놓이는 일은 드물어 보인다. 이 철학의 자리가 먼저 서야 설계도도 그려지고, 키를 잡을 자리도 정해지지 않을까 싶다.

교육부·국교위가 어렵다면, 대통령이 답해야 한다

먼저 교육부에 묻고 싶다. 통합기관 모델, 교원 체계, 재정 이관 구조에 대한 시안을 시한 안에 내놓을 수 있는 자리는 일차적으로 교육부일 것이다. 그 다음은 국가교육위원회의 자리라고 본다. 영유아 교육·보육 통합은 한 부처를 넘는 거대 의제이고, 다부처와 다이해관계자를 조율하는 합의의 자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교육부와 국가교육위원회가 그 역할을 감당하기 어렵다면, 그때는 대통령이 답할 차례라고 본다. '정부책임형 유보통합'이라는 이름에 책임이라는 말이 들어 있다면, 그 책임의 마지막 자리는 정부 최고 의사결정 차원일 것이다.

지난 30년 동안 유보통합은 거듭 시도되었지만 매번 좌초되거나 부분 정책에 머물러 왔다. 이번에는 그 패턴을 끊어 낼 수 있기를 바란다. 할 것인지 말 것인지 먼저 정하고, 누가 키를 잡을 것인지 분명히 하고, 새로운 설계도를 내놓는 일. 교육부와 국가교육위원회에서 그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대통령이 답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그 답이 나와야 현장이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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