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영의 친구 신명섭입니다, 조작기소 실체를 밝힙니다 [민병래의 사수만보]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 조작 기소 논란이 뜨겁습니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재직 당시 '평화협력국'을 책임진 신명섭씨도 조작 기소 사건의 한가운데에 있었고, 심한 고초를 겪었습니다. 신씨를 3월 19일, 4월 11일, 4월 17일 세 차례에 걸쳐 인터뷰했습니다. 그 내용을 신씨의 독백 형식으로 사수만보 지면을 통해 전합니다. 사수만보는 '사진과 수필로 쓰는 만인보'의 줄임말입니다. <기자말>
[글쓴이: 민병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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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도 전 평화협력국장 신명섭, 그는 4월 24일 항소심 법정에 선다. |
| ⓒ 민병래 |
저는 수원지검 형사 6부에서 조사받을 때는 물론 1심 공판 중에도 모두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수원지법 정승화 판사는 지목된 혐의 중 일부를 유죄로 인정해 2025년 2월 18일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습니다.
저는 즉시 항소했습니다. 1심 판결 이후 1년여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항소심이 열립니다. 저는 이 법정에서 저의 결백을 포함해 '조작 기소'의 실체를 밝히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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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용 법무연수원 교수(왼쪽 두 번째)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왼쪽 세 번째)가 14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법무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있다. 2025-10-16 |
| ⓒ 남소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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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을 수사하던 박상용 검사의 상관이었던 김영남 전 부장검사가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권 정치검찰 조작기소 의혹 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답변하고 있다. 왼쪽 아래는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
| ⓒ 남소연 |
검찰은 이재명을 향한 두 개의 그물을 친 겁니다. 하나는 저였고, 이화영 부지사에게는 "쌍방울이 방북 비용을 대납했다, 이를 이재명에게 보고하지 않았냐"라고 몰고 간 거죠. 저는 검찰의 압박에 맞섰고 결국 제게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습니다.
구속심사를 하는 날은 대단했습니다. 형사6부장 김영남을 포함해 여섯 명의 검사가 80쪽에 이르는 자료를 띄워놓고 열변을 토했습니다. 검사들의 결기로 수원지법 구속심리 재판정이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수원구치소에서 대기하다가 오전 1시경 영장 발부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날이 2023년 5월 17일이었죠. 저는 곧바로 구속적부심을 청구했습니다. 기각되더군요. 정말 허망했습니다. 검찰의 정치 기획에 제 삶이 이렇게 찢겨나가야 하는가, 이것이 숙명인가 하는 생각에 갇힌 첫 한 주일은 마음을 가눌 수 없었습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경기도청에서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진행하던 나날이 떠오르더군요.
저는 2019년 1월부터 경기도청의 평화협력국 국장으로 일했습니다. 개방직 직위인데, 득점 합계 540점을 얻어 8:1의 경쟁을 뚫고 1위로 채용되었습니다. 처음 출근하는 날 "정성을 다해 일하겠다"라고 다짐했습니다.
경기도는 접경지역이 많아 남북 교류가 절실했습니다. 전염병이나 수해 같은 현안이 늘 많기 때문입니다. 2018년 당선된 이재명 경기도지사 역시 남북교류협력사업에 대한 의지가 컸습니다. 이화영이 평화부지사로서 키를 쥐고, 제가 평화협력국 3개과 80여 명에 이르는 직원을 이끌었습니다.
교류 사업 중 방역 문제는 경기도 주민의 삶과 직결된 문제였습니다. 2019년 5월경, 북쪽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해 군사분계선을 넘어 내려왔습니다. 파주시와 연천군부터 피해가 발생해 20만 마리가 넘는 돼지가 살처분되었습니다. 곳곳에 비명이 넘치고, 경기도 농가의 시름이 깊었지요. 남북 공동 방역이 절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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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2월 27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가졌다. 그러나 두 국가의 정상회담은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결렬되었다. |
| ⓒ 연합뉴스 |
2018년 평양회담 이후 경기도는 북측과 많은 사업을 논의했고, 트럼프와 김정은의 하노이 회담을 앞둔 터라 서로 기대감이 높았습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송명철은 우선 (제재 물품이 아닌) 밀가루 20억 원 정도 분량과 수해 복구를 위해 주목과 금송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우리는 이를 수락하고 사업을 추진하던 터였지요. 그러나 2019년 여름이 되면서 상황은 더 나빠졌습니다. 북이 남쪽으로부터 일체의 지원을 받지 않겠다고 결정했습니다. 결국 밀가루 지원도 일시 중단됐습니다.
그러나 넋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경기도 차원에서라도 남북관계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대북제재 면제 품목을 많이 확보해 두는 게 언젠가는 쓸모 있겠다 판단하고, 램버트 미 국무부의 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에게 면담을 신청했습니다. 그는 2015년부터 미 국무부의 한국과장을 지냈고, 2018년 평양회담 이후 가동된 한미워킹그룹의 미국 측 대표였으니 한반도 정책의 실질 책임자였지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를 통해 연결된 재미교포단체가 램버트와 면담을 성사해 주었습니다. 저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도 찾아갈 계획을 세우고 2019년 10월 말 미국 땅을 밟았습니다. 작은 것 하나에도 마음이 쓰이더군요. 대한항공을 탈까, 아메리칸항공을 이용할까. 양복을 입을까, 한복차림으로 갈까. 회담 성공을 위해 고민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한 시간 넘는 면담 동안 램버트는 경청했습니다. 그는 "하노이 결렬 이후 북측에서 금융해킹을 시도하고 있다, 핵을 동결했다는 증거가 없다"와 같은 정보를 제공하면서, 경기도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했습니다.
회담이 좋은 분위기에서 끝나 마음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링컨기념관 앞 벤치에서 바라본 워싱턴의 하늘이 맑았습니다. 저의 작은 힘으로 남북교류의 불씨를 살릴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지난 세월이 떠오르더군요. 2003년, 저는 운영하던 IT업체를 정리합니다. 사업이 신통치 않았습니다. 저는 앞으로의 삶을 '한반도평화'에 이바지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때가 마흔 중반, 아이들이 한창 클 때여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친구 김현동이 이끌던 시민단체 '동북아평화연대'에 들어갔습니다. 연해주가 제 활동 터전이 되었죠. 중앙아시아에서 연해주로 돌아온 고려인이 정착할 마을을 만드는 일부터 콩농장을 세우는 일까지 많은 사업을 했습니다.
2014년 고려인 이주 150주년을 기념해 추진한 행사는 잊을 수 없습니다. 모스크바에서 평양을 거쳐 서울까지 이어지는 자동차 랠리였습니다. 고려인 3, 4세 30여 명이 지프 16대에 나눠 타고, 40여 일에 걸쳐 유라시아 대륙 1만 5000km를 횡단하는 장정이었습니다. 이해찬·정의화가 대표를 맡아 병풍이 되어줬고, 저는 공동집행위원장으로서 땀을 흘렸습니다.
2017년부터 저는 동북아연대에서 이해찬이 이사장으로 있는 '동북아평화경제협회'로 일터를 옮깁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반도에 훈풍이 불었고, 더 넓은 무대에서 더 큰 힘을 가지고 움직이고픈 욕구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활동한 15년 세월이 눈앞을 스쳐 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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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악관 앞에서 신명섭 그는 2019년 10월 말, 램버트를 만나러 미국에 갔다. |
| ⓒ 신명섭제공 |
그런데 이화영에게 외국환관리법과 제3자 뇌물죄가 씌워지면서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그때 저는 2년 임기의 평화국장직을 마치고 동북아평화경제협회로 복귀한 상태였습니다. 이화영이 구속된 뒤 어느 날 오전 7시, 일곱 명의 수사관이 압수수색영장을 내밀며 집안으로 들어오더군요. 변기 뚜껑을 들춰보고 아이들의 컴퓨터까지 열어보며 온 집안을 헤집어놓았습니다.
압수수색은 고난의 시작이었습니다. 다음 날부터 참고인으로 나가야 했죠. 집안의 초인종 소리, 수원지검 15층에 도착할 때 들리는 엘리베이터의 '띵' 소리, 출석통지서를 알리는 휴대전화 문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습니다. 아마 서른 번이 넘도록 수원지검을 드나들었을 겁니다. 이가 흔들리고 몸무게가 10킬로그램 넘게 빠졌습니다. 아침마다 세면대에는 머리카락이 수북이 쌓였습니다.
2023년 1월 김성태가 국내로 송환된 후 2차 압수수색을 당했습니다. 남자 수사관이 아내의 속옷 서랍까지 뒤지더군요. 우리 가족은 모멸감에 분을 삭이지 못했습니다. 그 무렵 저는 피의자로 전환됐습니다. 검찰은 집요하게 "밀가루와 묘목 사업이 이재명 지사의 방북을 위한 일이고 이를 보고하지 않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경기도청에는 아예 검사들이 상주하는 상황까지 벌어졌고, 평화협력국의 많은 직원이 조사를 받았습니다. 특히 묘목과 밀가루 사업을 담당한 직원들이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나중에 그들은 재판정에서 "차라리 옥상에서 떨어져 죽어버리겠다"라고 말하며 제발 그만 괴롭혀 달라고 흐느낄 정도였습니다.
검찰은 묘목 중 금송을 문제삼았다
검찰이 원하는 진술을 제가 거부하자, 그들은 금송의 성격을 문제 삼았습니다. 금송은 고급 정원수여서 수해 복구나 산림 녹화용에 적합지 않다며, 이재명 방북을 위해 김성혜 통일전선부 책략실장에게 주는 뇌물이라고 몰아갔습니다. 그러면서 직권남용과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그 외 여러 별건을 묶어 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검찰의 논리는 황당했습니다. 회담 당시 송명철은 마을 주변이 민둥산이고 홍수와 산사태가 빈번한 평안남도 온천군에 금송과 주목을 심을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금송이 다른 품종보다 가격이 높더라도 묘목 단계에서는 한 그루 8000원 수준이라 차이가 크지 않았고, 전체 물량도 약 5억 원 규모로 경기도 교류협력기금 300억 원 범위에서 충분히 감당 가능한 수준이었습니다.
또 금송이 시가지 조경으로도 많이 쓰이는 상황이어서 우리가 품종 변경을 말할 계제가 아니었습니다. 다행히 재판부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아 이 부분은 모두 무죄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밀가루였습니다. 하노이 '노딜' 이후 북이 남쪽으로부터 어떠한 지원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니, 저는 묘목과 밀가루 지원의 대행 사업자인 아시아태평양평화교류협회(아래 아태협)에 밀가루 반출 중단을 지시했습니다.
당시 밀가루는 중국에서 구매해 단둥에서 북으로 넘어가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북에서 아태협을 통해 밀가루 사업은 완료해 달라고 요청이 왔습니다. 저는 평화협력국 직원을 단둥으로 보내 송명철의 의사를 직접 확인했습니다.
저는 어쩌면 밀가루가 꽉 틀어막힌 남북관계에 숨통을 열 수 있으리라 판단하고 사업 재개를 결정해 약속한 물량을 북측에 인도했습니다.
그런데 검찰은 대행 사업자인 아태협을 고리로 공격해 왔습니다. 아태협과 안부수 아태협 이사장은 송명철이 지목한 남측 파트너였습니다. 저와 경기도청은 이를 바꿀 수 없었습니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 국정원에 안부수 이사장에 대해 문의했고, 국정원은 사업 파트너로 삼아도 된다고 답해 주었습니다. 물론 사업 시행은 통일부의 허가를 받았고요.
다만 아태협은 사업 과정에서 증빙서류 제출이 부실했고, 경기도청 보조금 일부를 다른 계좌로 빼낸 문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밀가루 지원사업은 북측의 요청으로 시작해 정세에 따라 중단되었다가 북의 요청으로 재개해 마무리한 사업입니다.
아태협의 문제는 시정 조치가 필요하나 사업 집행을 좌우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에서 '정치적 결단에 의한 국가 행위를 존중하는 판례'가 쌓인 바 있어서, 저는 어떻게든 이 사업을 완료하겠다는 의지가 강했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아태협의 문제가 있음에도 사업을 계속했고 이를 부하 직원에게 지시한 것은 직권남용과 위계공무수행 방해"라고 기소했습니다. 결국 법원이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여 2023년 5월 17일 제게 구속영장을 발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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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명섭 경기도 전 평화협력국장 그는 4월 24일 항소심 법정에 선다. |
| ⓒ 민병래 |
그는 "제3자 뇌물의 주범이 이재명이고 이화영이 종범"이라는 검찰의 구상을 받아들이려는 상황이었죠. 이화영은 검찰의 막무가내 공세를 일단 피한 뒤 재판정에서 진실을 밝히자고 했습니다. 당시 그는 아내 백정화와 아들까지 수사를 받고, 전세금은 압류된 데다 저마저 구속되면서 평정심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이화영과 저는 오랜 친구입니다. 제 아내와 이화영의 아내 모두 성균관대 동문입니다. 화영이와 정화는 '휴머니스트', 저와 아내는 '민족문제연구회'라는 동아리에서 학생운동을 했고, 1986년부터 안양에서 같이 노동운동을 했습니다.
저는 동양금속에서 밀링을 다뤘고, 화영이는 화천프레스에서 프레스공으로 일했습니다. 그때 월급이 겨우 10만 원을 넘었으니 방세를 내기도 어려웠죠. 우리 두 부부는 아이도 같이 키우면서 누구든 월급을 타는 날이면 시장에서 통닭을 튀겨와 잔칫상을 벌였습니다.
그렇게 동고동락한 화영이와 정화의 고초를 지켜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화영이가 흔들리는 것을 나무랄 수만도 없었습니다. 화영이는 나름대로 복안이 있었습니다. "자신은 반드시 되살아날 거다, 이재명에게 보고했다고 진술하더라도 보고 날짜를 이재명이 외부 행사 때문에 도청을 비운 날로 잡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든 저를 내보내기로 작정한 화영이는 수원지검 1313호실에서 저와 마지막으로 얘기할 때 박상용 검사를 불러 "검찰이 원하는 대로 (자신이) 진술하면 신명섭은 확실히 나가냐"라고 물었습니다. 박상용은 "나가셔야죠, 별일도 아닌데" 라면서 화답했습니다. 저는 난감했습니다. 흔들리는 화영이를 일으켜 세우지 못했습니다.
화영이가 검찰의 먹잇감이 될 뻔한 위기를 막은 건 백정화였습니다. 검찰이 요구한 진술을 화영이가 재판정에서 확인하는 심리 날인 2023년 7월 25일, 정화는 (변호인을 해임하고) 재판정에서 "이화영 정신 차려"라고 소리쳤습니다. "당신이 하지도 않은 일을 왜 했다고 그래"라면서 "이게 이재명 재판이야, 이화영 재판이야"하고 외쳤습니다. 그날을 기점으로 화영이는 마음을 추스르고 의지를 다시 세웠습니다. 그 위기를 딛고 일어섰기에 지금 진실의 문이 열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해주는 한반도평화의 중추가 될 수 있는 땅
저는 연해주에서 진행한 고려인 지원사업 중 콩 농장에 애착이 컸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연해주의 너른 들판에 콩 농사는 바다를 이뤘습니다. 콩을 통해 연해주와 남북이 어우러질 것을 꿈꿨습니다.
고려인이 생산하면 북의 동포에게 일자리가 생기고 남쪽의 자본이 결합하면 세계 곳곳으로 판로가 열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콩' 하나로 연해주와 남북, 동북 3성, 재일교포 사회까지 연결될 거로 생각했습니다.
저는 연해주에서 발해의 옛 성터를 즐겨 찾았습니다. 크라스키노에는 염주 성터가 있고, 훈춘에는 팔련성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항일투쟁의 격전지와 독립운동가의 발자취도 돌아보았습니다. 우스리스크를 품고 흐르는 수이푼 강가의 이상설 유허비, 홍범도 장군이 봉오동전투 이후 전열을 가다듬기 위해 머무른 달네레첸스크 그리고 안중근의 단지동맹비까지. 그때부터 제게는 한반도의 상처를 씻고 화해와 협력을 이루는데 연해주가 큰 힘이 되리라는 믿음이 싹텄습니다.
2014년 모스크바에서 서울까지 유라시아 장정을 할 때도 북녘땅을 열고 판문점을 통과하는 게 숙제였습니다. 고려인이 러시아 외무성에 청원을 넣고 러시아가 북을 설득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나진으로 넘어올 수 있었습니다. 박근혜 정부도 결국 군사분계선 통과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고요.
노무현 대통령 시절, 블라디보스토크와 가까운 나홋카에서 고려인 문화의 날이 여러 번 열렸습니다. 조선족과 재일교포를 포함해 남과 북의 영사관 직원과 주재원들이 너나없이 모였습니다. 보드카를 들이켜며 아리랑을 함께 불렀지요. 먼저 온 통일을 만났다는 감격에 눈물을 훔친 기억도 있습니다.
저는 구속되면서 많이 아팠습니다. 1985년 1월 민주화 시위로 구속되어 옛 서대문구치소 10사하 20방에 갇힐 때는 해냈다는 성취감이 있었습니다. 혁명가를 꿈꾸는 청년의 기상이 충만하던 때였죠. 수원구치소 나동 3층에 번호표 3217을 달고 들어갈 때는 허망했습니다. 내 삶이 찢기는 아픔도 컸으나, 군사독재 시절처럼 남북관계가 정권의 입맛에 따라 유린당하는 현실이 더 마음 시렸습니다.
일주일을 끙끙대다가 광활한 콩밭을 비추던 연해주의 아침 햇살을 떠올렸습니다. 언제나 나를 따뜻하게 품어주던 포시에트만의 바람을 되새기며 가슴을 활짝 폈습니다. 힘이 나더군요. 살아서 싸워나가기로 다짐했습니다.
그런 마음 덕에 쓰러지지 않고 오늘(24일) 항소심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 법정이 기필코 세상에 진실을 드러내리라 믿고 싶습니다. 또 내가 살아온 가치를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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