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체질 못 바꾸면 삼성 또 밀린다"[이익 500조 ‘반도체 구루’의 고언②]

박영우 2026. 4. 24.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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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용 서울대 경영대 석좌교수가 22일 연구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삼성전자의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관리 중심적 경영 구조다. 지금 돈을 벌 때 체질을 바꾸지 못하면 다시 뒤처질 수 있다.”

지난 22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경영대학에서 만난 송재용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석좌교수(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는 이렇게 말했다. 반도체 산업을 40년 가까이 연구해 온 그는 삼성전자 내부 경쟁력 분석과 자문을 수행한 ‘삼성 전략통’으로 꼽힌다. 학계와 산업 현장을 모두 경험한 전문가라는 점에서 그의 진단은 무게가 실린다.

인공지능(AI) 확산으로 반도체 시장이 빠르게 재편되는 가운데, 송 교수는 삼성이 반도체에서 초일류 경쟁력을 회복하고 초격차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경영 시스템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 사상 최대 실적은 AI 혁명에 따른 반도체 울트라 슈퍼 사이클의 영향이 크다”며 “삼성은 이미 한 차례 경쟁력 균열을 겪었고, 현재는 그 후유증을 복구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송 교수는 이번 변화가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구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봤다. 그는 “가격 사이클 변동성이 컸던 천수답 구조의 메모리가 파운드리와 비슷하게 고객 맞춤형 설계와 중장기 계약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는 수요 변동성이 커 설비 투자 타이밍을 맞추기 어려웠지만, 앞으로는 중장기 계약을 통해 수요 예측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산업의 성격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에 대해서는 보다 직설적인 평가를 내놨다. 송 교수는 “회복은 하고 있지만 톱다운의 관리 지향적 경영 시스템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며 “메모리에서의 초격차는 이미 무너졌고, 파운드리 사업에서는 TSMC와의 격차가 벌어졌다”고 말했다.

특히 메모리 선단 공정과 패키징 등 핵심 영역에서 본원적 기술 경쟁력이 흔들렸던 경험이 누적되며 전략 방향에도 혼선이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그는 “전영현 부회장 취임 이후 기술 경쟁력이 회복되고 있지만, 지금의 실적은 업황 영향이 큰 만큼 본원적 경쟁력이 완전히 회복됐다고 보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송 교수는 또 기술보다 관료주의적 경영 구조와 이에 따른 조직 문화 약화, 인재 유출 문제를 더 큰 리스크로 꼽았다. 그는 “기술은 투자하면 따라잡을 수 있지만 조직은 다르다. 조직 문화와 사기가 무너지면 실행력이 떨어지고, 이는 곧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최근 성과급 갈등과 인재 유출 흐름을 언급하며 “과거 삼성에서는 보기 어려운 변화”라고 지적했다. 이어 “핵심 인재가 빠져나가면 기술 회복 속도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송재용 서울대 경영대 석좌교수가 22일 교수연구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2026.04.22.

Q : AI 확산으로 메모리 반도체 산업 구조가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존 사이클 구조와 무엇이 달라졌나.
A : AI가 학습에서 추론으로 중심축이 옮겨가면서 메모리 수요가 폭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변화는 계약 구조다. 과거에는 단기 계약 중심이라 수요 예측이 어려웠고, 그 결과 공급과잉과 가격 급락이 반복됐다. 하지만 중장기 계약이 확대되면 설비 투자 예측이 가능해지고 산업 안정성이 높아진다. 동시에 HBM을 계기로 메모리가 다시 맞춤형 제품으로 바뀌고 있다. 고객별 요구에 맞춰 설계가 달라지고, 한 번 공급망에 들어가면 쉽게 교체하기 어려운 구조가 된다. 앞으로는 물량 경쟁보다 고객 락인과 설계 역량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Q : 이런 변화 속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경쟁 구도는 어떻게 달라졌다고 보나.
A : 과거에는 삼성전자가 확실한 초격차였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격차가 크게 줄었다. HBM과 선단 공정에서는 하이닉스가 앞섰던 시기가 있었고 지금은 삼성전자가 기술 경쟁력을 상당 부분 회복한 상황이다. 다만 기술력뿐 아니라 수율, 생산능력, 패키징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이제는 공정 기술만으로 승부가 나는 구조가 아니다. 패키징과 시스템 통합까지 포함된 종합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

Q : 삼성전자 사업 구조가 경쟁력에 부담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일각에서는 반도체 사업 분사 필요성까지 거론되는데 어떻게 보나.
A : 과거에는 강점이었지만 지금은 부담도 커졌다. 자원 분산과 이해관계 충돌 문제가 동시에 나타난다. 반도체와 세트 사업은 본질적으로 다른 산업이다. 의사결정 방식과 투자 기준이 다르다. 특히 고객 관점에서도 충돌 문제가 있다. 반도체 고객이 동시에 세트 사업의 경쟁사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중립성이 중요한데 현재 구조에서는 제약이 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세트 사업과 반도체 사업의 분할 검토도 필요하다.

Q : 지금처럼 반도체 업황이 좋은 상황에서 투자 방향은 무엇이 돼야 하나.
A : 본업 경쟁력 강화가 가장 중요하다. 특히 중국과의 격차를 유지하기 위해 초격차 투자가 필요하다. 다만 단순 설비 투자 확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비즈니스 모델을 고도화해야 한다. 엔비디아가 보여줬듯이 메모리도 맞춤형 설계와 소프트웨어를 결합한 ‘솔루션 사업’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고객과 함께 설계하고 시스템 단위로 제공하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Q : 반도체 이후를 대비한 중장기 성장동력은 무엇이라고 보나.
A : 파운드리 경쟁력 강화는 필수다. 동시에 로봇과 전장 분야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앞으로는 피지컬 AI 시대가 온다. 자율주행과 로봇이 핵심 산업이 될 것이다. 반도체 기업도 이 생태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단순 부품 공급자가 아니라 시스템을 함께 만드는 기업으로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

Q : 보상 체계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A : 보상은 강화해야 하지만 방식이 중요하다. 현금 중심 성과 보상에는 한계가 있다. 단기 성과에 집중하게 만들고 조직 갈등을 키울 수 있다. RSU(양도제한조건부 주식·일정 기간 근속 또는 성과 달성 시 지급되는 주식 보상) 같은 주식 기반 보상으로 가야 한다. 동시에 핵심 인재는 확실하게 차별 보상해야 한다. 핵심 인재가 떠나는 것이 가장 큰 리스크다.

Q : 정부 역할은 무엇인가.
A : 반도체는 산업이 아니라 경제 안보다. 공급망과 직결된 문제다. 국가 차원의 전략이 필요하다. 기업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특히 인력 양성과 52시간 규제 완화를 통한 연구개발 환경 개선 등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삼성 전략통’ 송재용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석좌교수는=서울대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경영학 박사를 받았다. 전자·반도체 산업 전략을 연구했으며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로 재직하다 귀국했다. 1980년대 말부터 반도체 산업을 연구해 온 전략 분야 권위자로, 하버드대 마이클 포터 교수의 국가 경쟁력 연구에 참여했다. 2004년 삼성전자 의뢰로 경쟁력 분석을 수행하고 주요 경영진을 인터뷰했으며, 이재용 당시 상무에게 보고했다. 이후 삼성전자 자문과 임원 교육을 맡았고 ‘삼성웨이’ 관련 연구서를 집필했다. 현재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이다.

박영우 기자 novemb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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