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급 13억'이 불러올 파장, 감당할 수 있겠나 [박영국의 디스]

박영국 2026. 4. 2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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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 고액 성과급 지급 소식에, 대기업 노조 잇달아 사측 압박
사회 양극화 심화…청년백수 확대, 중소기업 구인난 심화 우려
업황이 이끈 호실적인데…'성과에 대한 보상 맞나?' 근본적 의문
주주가치와 상충…이재명 정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정책에 암초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성과금 13억원’이 산업계를 넘어 사회적으로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 노사가 매년 영업이익의 10%를 초과이익분배금(PS)으로 지급하기로 합의한 가운데, 맥쿼리증권이 SK하이닉스의 내년 영업이익을 447조원으로 전망하면서, 그 10%를 전 직원에게 나누면 인당 지급액이 13억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 겁니다.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 전망치는 말 그대로 전망치일 뿐이고, 인당 지급액도 단순 계산한 수치에 불과하지만, 다른 회사 직장인은 로또를 맞아야 손에 쥘 수 있는 금액이 한해 성과급으로 언급되니 관심이 집중된 겁니다.

사실 성과급 13억원의 지급 여부가 가시화되는 건 2년 뒤의 일이지만, 당장 올해 실적을 반영해 내년 초 지급할 성과급만 계산해도 상당한 금액이 나옵니다. 지난 23일 발표된 SK하이닉스의 1분기 영업이익은 37조6103억원에 달했고, 메모리반도체 시황 호조는 더욱 가속이 붙어 연간 영업이익은 250조원을 찍을 것이라는 게 시장의 예상입니다. 이 금액의 10%인 25조만 성과급으로 사용해도 인당 7억원이 돌아갑니다. 13억원이든 7억원이든 범상치 않은 금액인 건 마찬가지입니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과거 SK하이닉스가 어려울 때 공적자금이 지원된 만큼 성과도 국민과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대기업 성과는 국민이 같이 이룬 것이니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게 성과급을 지역화폐나 온누리상품권으로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까지 했습니다.

민간 기업이 벌어들인 돈을 전 국민이 ‘N분의 1’ 하자는 건 실현 불가능한 발상이고, 온누리상품권 다발을 수억원어치씩 지급한다는 것도 비현실적인 얘기지만, 이게 논란거리가 되는 건 단지 ‘배가 아파서’만은 아닌 듯합니다.

수만 명의 직원을 고용한 대기업의 움직임은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칩니다. SK하이닉스의 ‘로또급 성과급’은 당장 다른 대기업 직원들의 눈높이를 끌어올립니다.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 지부(삼성전자 노조)는 과반노조 및 근로자대표 지위를 확보하자마자 파업 찬반투표부터 치렀습니다. 그러고는 영업이익의 15%를 매년 성과급 재원으로 떼놓을 것을 명문화하지 않으면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SK하이닉스보다 영업이익 대비 성과급 재원의 비중을 높게 잡은 건, 삼성전자의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와 직원 수를 감안한 것으로 보입니다. 영업이익에서 15%는 떼야 SK하이닉스 직원들만큼 받을 수 있다는 얘기죠.

SK하이닉스나 삼성전자보다 영업이익이 훨씬 적은 현대차의 경우 노조가 순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요구했습니다. 이런 식이면 더 작은 회사에서는 영업이익의 200%를, 빚을 내서라도 내놓으라고 하는 사례도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23일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가 '투명하게 바꾸고, 상한폐지 실현하자-4/23 투쟁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데일리안 정인혁 기자

중견·중소기업 직원들은 회사에 그런 요구는 못 하겠지만 상대적 박탈감은 커지겠죠. 가뜩이나 심각한 사회 양극화는 극단으로 치달을 겁니다. 청년들은 ‘성과급 1억도 못 주는’ 중소기업에 취직하느니 취업 재수를 택할 거고, 중소기업 인력난은 심화되겠죠.

누구는 성과급 수억원을 한 번에 받는데, 본인은 달랑 1억원을 손에 쥐기 위해 몇 년치 월급을 모아야 한다면 일할 맛이 나겠습니까. 중소기업 연봉 10년치 이상을 한해 성과급으로 주는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다면 취업준비 기간이 길더라도 ‘한탕’을 노리는 게 현실적이지 않을까요. 청년 백수는 넘쳐나는데 사람 구하기는 힘든, 일자리의 미스매치는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성과급 13억원이 과연 ‘성과에 대한 보상’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도 제기됩니다. 물론 SK하이닉스의 근로자도, 삼성전자의 근로자도 열심히 일을 했을 겁니다. 하지만 두 회사가 연간 수백조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게 오직 그들의 노력의 결과물일까요.

메모리반도체 기업의 실적은 업황에 연동됩니다. 업황은 수요와 공급이 좌우합니다. 지금은 인공지능(AI) 붐으로 수요가 폭증한 가운데 공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서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크게 오른 상태입니다. 다시 말해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실적 호조는 시장 상황과 경영진의 경영적 판단이 만들어낸 ‘변수’에 의한 것이고,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는 것은 ‘상수’입니다.

반대로 생각해 봅시다. 어떤 기업이 실적 악화로 적자를 내다 못해 생존 위기에 내몰려 근로자들의 임금을 삭감하겠다고 하면 노조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근로자들은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경영진의 잘못으로 비롯된 실적 악화로 왜 손해를 감수해야 하나”라고 반발할 겁니다. 실제로 그런 사례가 종종 있기도 했습니다.

외부 변수, 혹은 경영적 판단미스로 회사 실적이 악화됐을 때 그 책임을 근로자에게 지우는 건 부당한 일입니다. 같은 이유로 역대 최대 호황을 맞은 반도체 기업들이 역대 최대 실적을 낸 걸 ‘오롯이 근로자들의 공’이라며 상식을 벗어난 수준의 성과급을 받아가는 데 근본적인 의문이 드는 것도 인지상정입니다.

23일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 투쟁 결의대회가 열리는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인근에서 노조의 집회에 반대하는 대한민국 주주운동본부 관계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이익의 상당 부분을 성과급으로 나눠주는 게 주주가치와 상충된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주주들은 기업이 어느 정도 이익을 내고 얼마나 성장할지를 예상하고 일정한 위험부담을 감수한 채 자신의 자산을 베팅합니다. 영업이익은 근로자 임금과 같은 고정비를 제한 상태에서의 이익이니, 영업이익의 상당 부분이 근로자에게 분배된다는 점은 투자를 결정하는 데 고려 사항이 아닙니다.

10%가 됐든 30%가 됐든 영업이익의 일정 부분을 성과급으로 지급하는 게 정례화된다면 투자 결정에 있어 그만큼의 디스카운트 요인이 발생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투자한 주주들이라면 뒤통수를 맞은 꼴입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경제 분야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이재명 정부에게, ‘영업이익의 X% 성과급 지급 정례화’가 국내 기업들의 새로운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등장하는 게 바람직한 일일까요.

삼성전자 노조가 5월 총파업을 앞두고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에서 결의대회를 연 23일. 삼성전자 소액주주들을 주축으로 하는 대한민국 주주운동본부는 같은 시간 바로 맞은편에서 ‘삼성전자 주주권리 찾기’ 총궐기대회로 맞섰습니다.

이익 배분 과정에서 주주들은 철저히 소외되고, 직원들 배만 불리도록 노조가 무도한 요구를 하고 있다며 들고 일어선 겁니다.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회사측에 수십조원의 피해를 입힐 파업에 나서겠다는 노조의 협박에 대해서도 ‘자해행위’라며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SK하이닉스가 ‘성과급 13억원’을 현실화시킨다면 그건 수만 명이 로또를 맞고 나머지는 축하의 박수를 쳐주는 해피엔딩으로 끝날 일이 아닙니다. 심각한 사회적 파장이 연쇄적으로 발생할 것이고, 개별 기업은 물론, 정부 차원에서도 감당하기 힘든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각오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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