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의 시선] 반도체 기업 직원들에게 필요한 절제

김동호 2026. 4. 24.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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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논설위원

최근 직장인과 수험생 커뮤니티를 달구는 단연 최고의 키워드는 ‘하의치한’이다. SK하이닉스가 의대·치대·한의대 앞에 선다는 뜻의 이 신조어는 요동치는 우리 노동시장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신입사원이 억대 성과급을 받는 상황이 되면서, 인재들이 반도체 기업으로 몰리는 현상은 중국처럼 ‘엔지니어의 나라’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키운다. 하지만 이 화려한 성과급 잔치를 지켜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복잡하다. 도미노처럼 퍼져나가게 될 일부 대기업의 과도한 성과급 요구가 불러올 사회적 부작용과 기업의 투자역량 약화 가능성이 눈앞에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 성과는 수십 년 투자의 현재 결과
주주·협력사 ‘이해관계자’도 봐야
보상 합리적일 때 기업 지속 가능

SK하이닉스가 올해 1분기 영업이익 37조원을 돌파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사진 경기도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 모습. 연합뉴스


지금의 혼란은 너무나 갑작스러운 천문학적 실적에서 비롯됐다. 우리 기업들은 그간 호봉제를 연봉제로 전환하는 데는 열을 올렸지만, 정작 핵심인재 우대를 위한 합리적 성과 배분 모델을 정립할 기회가 없었다. SK하이닉스가 영업이익의 10%를 상한 없이 10년간 보장하기로 한 것은 노동조합의 집요한 요구를 피하지 못한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다. 그러자 삼성전자 노조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들은 영업이익의 15%를 초과이익성과급(OPI)으로 요구하며 파업의 깃발을 들었다. 요구를 안 들어주면 생산 차질로 회사에 30조원의 손실을 입힐 수 있다면서다.

성과가 좋으면 배분도 해야 한다. 하지만 반도체 기업 직원들은 냉정해져야 한다. 급격한 성과급 요구가 반도체 산업은 물론 우리 사회에 가져올 치명적인 부작용들 때문이다. 가장 먼저 따져봐야 할 것은 ‘보상의 정당성’이다. 지금 반도체 기업이 거두는 열매는 결코 현재 재직 중인 직원들만의 공이 아니다. 창업자의 모험 정신, 수십 년간 뼈를 깎는 연구개발에 매진했던 선배들의 땀, 배당을 포기하면서까지 대규모 설비 투자를 지지해준 주주들의 인내가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다.

전력과 용수 공급을 위해 불편을 감수한 지역사회의 희생도 있다. 투자세액공제는 모든 국민의 십시일반이 있었기에 가능한 혜택이었다. 이런 기여를 했던 소비자들은 지금 반도체 가격이 올라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더 비싼 값에 사고 있다. 그런데도 단지 ‘지금 그 자리에 있다는 이유’로 과도한 성과급을 요구하는 것은 나밖에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보상 방식 또한 전근대적이다. 수억 원의 현금을 일시에 챙기는 ‘현금 잔치’는 글로벌 스탠더드와 거리가 멀다. 구글·엔비디아 같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현금 대신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을 주로 활용한다. 단기적인 현금 챙기기가 아니라, 직원들이 기업의 미래 가치를 함께 키워나가도록 유도하는 장치다.

더 큰 문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심화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가 2배 이상인 현실에서, 반도체 수퍼 사이클을 만난 대기업 종업원들이 수억원의 성과급을 독점한다면 협력업체와의 괴리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협력사들이 없었다면 반도체 생산 자체가 불가능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계약된 납품 대금을 줬으니 끝”이라는 논리는, 회사와 임금 계약을 맺었으니 직원들에게 성과급을 줄 이유가 없다는 말과 같아진다. 상생을 도모하지 않는 독식은 결국 산업 생태계 전체를 무너뜨릴 것이다.

이미 우리는 SK바이오팜의 사례에서 뼈아픈 교훈을 얻었다. 30년 투자 끝에 2020년 상장으로 주가가 폭등하자 스톡옵션을 받은 직원들이 차익 실현을 위해 줄줄이 회사를 떠났다. 인력이 부족해진 회사는 재입사를 독려하는 촌극을 빚었고, 묵묵히 자리를 지킨 직원들과 주주들만 피해를 봤다.

반도체 산업은 사이클의 진폭이 크다. AI 혁명이 훈풍을 불어넣고 있지만, 미국·중국·일본·대만이 국가적 사활을 걸고 반도체 자체 생산 경쟁에 뛰어든 상황에서 한국 반도체의 경쟁력이 지속할 것이란 보장이 없다. 노조 요구대로라면 성과급(45조원)은 주주 배당(11조원)을 압도한다. 주주들도 경영진을 대상으로 배임 소송을 제기하든지 하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23일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의 '투명하게 바꾸고, 상한폐지 실현하자-4/23 투쟁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직원들에 대한 당장의 현금 보상에 급급해 반도체 산업의 기초 체력을 갉아먹어서는 안 된다.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이나 정부 보조금 지원 같은 국가적 대책이 국회에서 제동이 걸리는 이유도 ‘돈 잔치를 벌이는 대기업’이라는 대중적 반감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지금 반도체 기업 구성원들에게 필요한 것은 안심할 수 없는 ‘초격차’의 유지와, 이를 뒷받침할 ‘절제의 미덕’이다. 이 이익이 어디서 왔는지, 누구와 나누어야 하는지, 그리고 내일을 위해 얼마를 남겨야 하는지 고민하는 성숙함만이 한국 반도체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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