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신고 말아달라"는 피해학생... 교사는 어떻게 하나요?

서부원 2026. 4. 23.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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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학폭이 발생하면, 교사는 '교육자'에서 '사무원'으로 역할이 바뀐다

[서부원 기자]

 가해 관련 학생들이 우리 학교 재학생은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도 집 밖으로 나서기 어려운 건, 그들이 문밖에서 기다릴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란다. AI생성 이미지
ⓒ 오마이뉴스
교육 관료와 전문가들이 오랜 숙의 끝에 마련한 제도이지만, 현재의 학교폭력(학폭) 대응 방식은 실패했다. 학폭의 빈도를 크게 줄이지도 못했고, 흉포화를 막지도 못했다. 굳이 효과라고 한다면, 절차의 간소화로 학폭과 관련한 교사의 잡무가 다소 줄었다는 정도다.

학폭 처분을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에 기재하는 것이 의무화 되면서 대입의 당락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게 됐다. 최근엔 교사의 교육활동을 침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생기부에 기재하자는 주장까지 대두되고 있다. 마치 생기부 기재를 '만병통치약'으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최근 학폭 가해자의 명문대 불합격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며 여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정작 학교 현장에서는 정책의 부작용에 신음하고 있다. 사안 처리 과정이 철저히 '사법화' 되면서 학폭은 교육의 영역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학폭에 연루되면, 변호사부터 찾는 세태다.

그마저도 상위권 아이들에게만 해당한다. 고교 졸업자가 대학 입학 정원보다 적어진 현실에서 중하위권 아이들에겐 '겁박의 효과'가 크지 않다. 생기부의 내용이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 대다수에겐 내신 성적은 물론, 학폭에 대한 민감도 역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애초 학벌 구조에 기대어 학폭을 줄여보려는 의도 자체가 '반교육적'이었다. 고육지책이었다 해도, 서둘러 보완책을 마련했어야 한다. 모든 교사가 학폭 사안 처리에 손을 놓게 되면서, 학교는 무시로 경찰이 드나들고 변호사의 전화가 걸려오는 아수라장이 됐다.

학교폭력 처리 절차, 완벽하고 편리해졌지만

참고로, 현재의 학폭 사안 처리 절차는 이러하다. 피해 관련 학생이나 목격자, 교사 등으로부터 신고가 들어오면, 곧장 관련 학생의 상태를 직접 확인한다. 직후 가해 관련 학생과의 분리 의사를 확인한 뒤 아이들을 따로 불러 확인서를 작성하게 한다.

신고 접수와 동시에 두 아이의 보호자에게 즉시 통지하고, 보호자 확인서를 작성해 제출하도록 요청한다. 두 아이와 보호자의 확인서와 분리 의사 확인서, 목격자 진술서 등의 서류가 갖춰지면 신고된 내용을 간략히 적어 교육청에 접수보고서를 제출한다.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사안을 조사할 수도 있지만, 대개는 교육청에 학폭 전담조사관 배정을 요청한다. 이태 전까지만 해도, 모든 학폭 사안은 배정된 전담조사관이 조사하도록 규정돼 있었다. 지금은 사안이 경미한 경우 학교에서 조사할 수 있도록 완화됐다.

배정된 전담조사관이 학교를 방문하여 가해, 피해 관련 학생들과 보호자를 면담 조사한다. 조사가 끝나면 사안 조사 보고서를 작성해 학교에 설치된 학폭 전담기구에 결과를 보고한다. 전담기구에선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인지 가부를 판단하게 된다.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한다는 건, 사실상 피해 관련 학생과 보호자가 사안을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다는 뜻이다. 가해 관련 학생과 보호자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수용하는 걸 전제로 한다. 규정에는 학교의 자체 해결이 불가능한 경우도 따로 명시되어 있다.

사안이 중대하거나 피해 관련 학생과 보호자가 자체 해결을 반대하는 경우라면 무조건 교육청의 학폭 심의위원회의 심의를 받게 된다. 그때부턴 학교의 손을 완전히 떠나게 되고, 학교는 심의위원회의 결정을 기다려야 한다. 물론, 결정된 처분의 이행은 학교의 몫이다.

사안 처리 절차는 이토록 완벽하다. 학교와 교육청의 역할 분담이 잘 되어 있고, 지난해 10월부터는 학폭 사안을 온라인상에서 접수하도록 변경되어 훨씬 편리해졌다. 전국의 여러 시도교육청에서 학폭 사안을 신속하고 공정하게 처리한다는 취지로 '올바로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학교폭력 처리 절차에서 교사는 '사무원'이 된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는 법'이다. 현행 학폭 사안 처리는 '행정'일 뿐, '교육'과는 동떨어져 있다. 학폭이 발생하면, 사안의 정도, 내용과 상관없이 교육적 해결이 애초 불가능하다. 아무리 선의라고 해도, 교사가 중간에 끼어들었다간 큰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

전담조사관 제도가 도입된 이유도 사안 조사 과정에서 교사의 편견이 작용할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아이들에 대한 교사의 호불호에 따라 사건이 무마되거나, 피해, 가해 관련 학생이 뒤바뀔 수도 있다는 우려다. 거칠게 말해서, 교사를 믿을 수 없다는 뜻이다.

자녀가 학폭에 연루됐다는 소식에 보호자들의 질문이 쏟아지지만, '노 코멘트'로 일관할 수밖에 없다. 교육청으로부터 결정 처분이 내려질 때까진 섣불리 한쪽을 편들어선 안 된다. 피해자나 가해자로 단정하는 것도 금지되어, 피해와 가해 '관련자'로 호칭해야 한다.

응대하는 교사의 말실수조차 문제가 될 때도 허다하다. 학폭의 경우엔 말할 것 없고, 일반적인 전화 상담 때도 보호자가 교사와의 대화 내용을 녹음하는 게 불문율인 세상이다. 하긴 교무실의 모든 전화기에도 자동 녹음 기능이 설정되어 있다. '교육 기관'이라는 명칭이 멋쩍다.

교사의 '중재'는 사건의 '무마'로 받아들여진다. 둘을 불러다 화해를 종용하는 건 섶을 지고 불 속에 뛰어드는 꼴이다. 되레 가해 관련 학생에게 피해 관련 학생을 찾아가 대화를 시도하거나, SNS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말을 거는 일조차 해선 안 된다고 일러준다.

어쭙잖게 화해를 유도하기보다 규정대로 처리하는 게 상수다. 양측 보호자의 온갖 질문에도 학교엔 권한이 없다고 양해를 구한 뒤 사족을 붙이지 말고 추후 절차만 안내하는 게 안전하다. 학폭 사안이 발생하면, 교사는 '교육자'에서 '사무원'으로 역할이 바뀐다.

권한이 없는 만큼 학교의 책임이 없어지냐면 그것도 아니다. 모든 법률이 그렇듯, 학폭에 관한 규정도 일상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을 다 담아낼 순 없다. 두루뭉술하게 적혀 있는 조항을 특정 상황에 부합하도록 해석하는 게 관건이다. 이는 교사가 섣불리 할 수 없는 일이다.

도움을 받을 요량으로 교육청 담당자의 '유권 해석'을 요청해 보지만, 그 역시 책자에 적힌 규정만 읊어댈 뿐이다. 그나마 위안 삼을 수 있는 건, 나중에 학교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선 어떤 절차와 서류가 필요한지 귀띔해 준다는 점이다. 그의 '동문서답'에도 감사해야 할 일이다.

모두가 경찰과 변호사부터 찾는다

최근에도 어김없이 학폭이 터졌다. 이번엔 여느 때와는 사뭇 다르다. 아이는 겁에 질렸고, 그를 괴롭히는 아이들은 특정되지 않았다. 보호자는 경찰에 신고했고, 아이의 신변 보호를 요청했다. 담임교사는 아이의 상황을 전하며 학생부장인 내게 협조를 당부했다.

가해 관련 학생들이 우리 학교 재학생은 아니다. 그런데도 집 밖으로 나서기 어려운 건, 그들이 문밖에서 기다릴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학교는 그를 보호해야 하고, 학습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무엇보다 학폭을 인지한 이상 즉시 신고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아이도 보호자도 학폭 사안으로 접수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할 때가 있다. 신고 사실이 알려지면, 더 큰 보복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경찰엔 신고해 놓고선 학교엔 모르는 척 잠자코 있으라는 요구가 당혹스럽지만, 실제로 아이와 보호자가 확인서 제출을 거부하면 사안 접수가 곤란하다. 어쩌면 이는 학교에 기대할 게 없다는 뿌리 깊은 불신 탓인지도 모른다.

학폭을 당하면 경찰과 변호사부터 찾는 현실과 학교의 교육적 해결을 불신하는 풍조는 동전의 양면이다. 이는 '사법화'한 지금의 학폭 사안 처리 규정의 결과물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보호자를 향해 학폭으로 접수하게 해달라고 통사정하는 담임교사와 나의 처지가 참 얄궂다.

사족. 누가 봐도 학폭 사안인데, 피해 관련 학생과 보호자가 완강하게 신고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교육청 담당자에게 물었다. 그의 답변인즉슨, 교사에겐 신고 의무가 있으며, 피해 관련 학생과 보호자에게 해당 규정을 안내하고 설득해야 한다는 것.

그렇게 했는데도 거부하는 상황이라고 하니, 그럼에도 학교에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황당한 대답을 들어야 했다. 경찰이 수사 중인 사안에 따로 학교에 신고 의무를 부과하는 것에 대해서도 얼버무릴 뿐이었다. 현재의 학폭 대응 방식은 감히 실패했다고 단언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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