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차 커플이 사랑 지키려 한 선택

김상목 2026. 4. 23.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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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사토상과 사토상>

[김상목 기자]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대학 시절부터 성이 같아 '사토 & 사토' 콤비로 단짝이던 타모츠와 사치는 자연스럽게 연인이 되어 동거생활 중이다. 사치는 직장인이 되었고 타모츠는 변호사 시험에 도전하지만, 번번이 미끄러진다. 연인이 안쓰러운 사치는 직장 생활이 고된 와중에도 홀로 공부하는 타모츠를 응원하기 위해 '페이스메이커'를 맡기로 한다. 함께 시험공부하겠단 것. 'N수생' 커플로 몇 년간 고락을 함께한 두 사람. 올해도 합격자 발표를 확인한다. 그런데 결과가 좀 당황스럽다.

커플의 15년
 <사토상과 사토상> 스틸
ⓒ 엣나인필름
로맨스 장르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 어딘가에 걸친다. 지나치게 현실적이면 곤란하지만, 너무 판타지로 빠져들어도 공감을 얻기 힘들다. 절묘한 줄타기 감각이 요구되는, 익숙하고 간편해 보여도 제대로 구사하려면 난이도가 상당한 편이다. 균형감이 중요하다. 물론 둘 중 하나로 자신의 좌표는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굳이 일상 브이로그 대신 영화를 볼 이유가 필요하니까. <사토상과 사토상>은 조금 더 현실에 착목하려는 작업이다.

영화는 22살부터 37살까지 15년이란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두 명의 '사토'가 동반자로 살아가며 겪는 일들을 화면에 담는다. 풋풋하던 대학생 시절, 그들은 커피 동호회에서 만나 달콤 쌉쌀한 연인 관계로 전환한다. 같은 꿈을 꾸며 더불어 미래를 상상한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에 만족하던 사치는 평범한 회사원, 어릴 때부터 정의감 강하고 똑 부러지던 타모츠는 변호사의 꿈을 좇는다. 젊은 그들에게 목표는 시간이 좀 걸릴지언정 언젠가 이루게 될 것에 불과하다.

연인의 연거푸 낙방이 안타까운 사치는 딱히 법조인을 동경하지도 않는데 함께 고시 준비하길 결심한다. 직장과 살림을 소화하는 가운데 힘든 일이지만, 남자친구의 꿈에 도움만 된다면 대수랴. 이제 둘은 더욱 일심동체인 양 같은 꿈에 매진한다. 고단하지만 행복한 연인이다. 노력의 결과는 몇 년 후 확인된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일까? 같은 꿈을 꾸던 둘의 신분이 갈라진다. 사치는 변호사가 되었지만, 타모츠는 여전히 '무직' 상태에 머문다. 이제 둘은 다르다.

그래도 처음엔 좀 어색하긴 해도 별로 걱정하진 않았다. 내가 먼저 합격한 것뿐, 애인도 곧 뒤따르면 될 일이다. 게다가 사랑의 결실로 아이도 생겼다. 2세를 위해서라도 함께 더욱 노력하자. 그렇게 두 사람은 각오를 다진다. 초보 변호사로 새 일에 적응하고 집안 경제를 책임지는 가장을 자처하는 사치, 전업주부 겸 고시생 타모츠의 역할이 정해진다.

시간이 좀 흘렀다. 아이는 몰라보게 컸다. 당연히 돌봄과 가사 부담도 덩달아 커진다. 반복되는 일상, 말하지 않아도 꿰뚫어 보는 두 사람 사이엔 어느새 침묵과 냉기가 드리운다. 대등한 관계이지만, 다른 이들은 둘을 그렇게 보지 않는다. 외부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쉬울 리 없다. 타모츠는 점점 주눅이 들고, 사치는 그런 남편에게 속상하다. 속에 꼭꼭 감춰뒀다고 생각한 응어리는 어느새 불쑥 튀어나오고, 서로 다른 세계를 사는 부부는 점점 더 멀어진다.

일상의 균열
 <사토상과 사토상> 스틸
ⓒ 엣나인필름
마치 '이혼숙려캠프' 극장판을 보는 것 같은 <사토상과 사토상>의 줄거리는 누구나 예상 가능한 내용이다. 그런 이야기를 두 시간 가까이 관객이 중도 이탈하지 않고 몰입하도록 이끌려면 섬세하게 감정을 밀고 당기는 기술이 필요하다. 감독과 제작진은 화면 속 커플의 감정선을 관객이 공감할 현실적 터치로 구현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 소금기 물씬, 땀 냄새 진하게 묻어나는 우리 곁 있을 것 같은 부부 이야기다.

영화는 15년 세월 중 결정적 국면을 중심으로 그들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어떻게 현실의 강고한 장벽 앞에 결국엔 희미해지는지 사실적으로 그린다. 22살 그들은 딱 그 나이 대학생이다. 사과머리를 하고 깨 방정 부리는 사치를 바라보는 진중하지만 자상한 타모츠의 표정. 함께 자전거를 타고 캠퍼스를 산책하는 젊은 연인의 모습은 누구나 추억할 젊은 날의 그것이다. 그들을 가깝게 한 '커피'란 연결고리 역시 아직은 그리 쓰지만은 않다.

사회인이 된 5년 후 두 사람. 가난해도 꿈꿀 수 있는 나이다. 함께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큰 결심을 한 사치와 감사한 타모츠. 둘은 3년간 고시에 매진한다. 하필 운명의 여신은 변덕스럽다. '인생역전' 사치와 림보에 빠진 타모츠. 그 후 몇 년 동안 이들은 조금씩 서로를 밀어낸다. 다툼이 는다. 휴지 떨어졌다는 채근이 언쟁으로 비화하고, 너무 바빠 깜빡한 집안일이 의심병으로 확대된다. 수위가 점점 세진다. 내가 왜 이러고 살아야 하지?

그들의 안타까운 변화와 함께 사치의 직장이자 가족의 생계가 달린 변호사 업무가 교차한다. 관계의 위기를 실시간 체험 중인 사치는 하필 연거푸 이혼 소송을 담당해야 한다. 까탈스러운 부부 사이를 중재하며 역성도 들어주고, 인생 상담도 나눠야 한다. 업무를 수행하며 사치는 생각이 많아진다.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과 소송 진행이 별개가 아닌 심정. 한편 지금껏 제쳐둔 장남으로서 책임 탓에 고향으로 내려간 타모츠도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지는 건 똑같다.

어쨌든 부부 사이가 전 같지 않음을 인정한 둘은 나름대로 애쓴다. 사치는 성공과 출세 대신 워킹맘의 삶을 기꺼이 감수하고, 타모츠는 '고시 낭인'에 길든 건 아닌지 돌아보며 고향에서 다른 보람된 새출발을 꿈꾼다. 둘은 결코 이기적이지도, 철이 없는 상태도 아니다. 다만 한 번 벌어진 간격이 그들의 각자 건설적인 노력을 굴절시킬 따름. 사소한 오해가 본래 의도와 다르게 갈등을 되려 증폭시킨다. 마침내 둘은 지금 상태 자체가 위기의 근원이란 걸 깨닫는다.

사랑이 뭘까
 <사토상과 사토상> 스틸
ⓒ 엣나인필름
통속 드라마 전개라면 이런 위기 국면에서 둘 중 하나, 혹은 서로가 따로 마음 맞는 상대를 찾아 일탈하거나 그로 인해 파경을 맞이하는 '매운맛' 듬뿍 끼얹게 마련이다. 그러나 자극적 소재를 손쉽게 써먹는 대신, 영화는 오로지 수술실에서 핀셋 만지듯 섬세한 톤으로 둘의 감정선을 소묘할 뿐이다. 관객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들에게 소리라도 지르고 싶어질 테다. "지금 그 방향이 아니야!"나 "한 마디 꾹 참고 기다려!" 같은 훈수가 저절로 머릿속을 맴돈다. 그만큼 둘의 헌신과 노력이 만만하지 않음을 목격한 탓이다.

50년간 해로한 의뢰인 부부의 황혼 이혼소송을 대리하고, 직장동료가 남편의 바람을 견디며 부부관계를 복원하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사치는 남의 문제는 해결해 주면서 정작 자기는 그렇지 못한 상황이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타모츠 역시 매한가지다. 서로 진심을 쏟아 배려해 준다고 믿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충직한 '나'에 대해 자기연민에 빠진 건 아닐까? 그렇다 보니 기왕 희생하기로 한 것 조금 더 하면 될 텐데 본전 생각나고 비교하게 된 것.

옛 어른들은 부부는 미운 정 들어가며 산다고, 세월이 약이라고 노래하듯 강조하곤 했다. 하지만 21세기 젊은 커플에게 그 노래는 희미하게 들릴 뿐이다. 좋은 감정을 남기고 각자의 인생을 충만하게 살기 위해 지금의 결혼 상태가 반드시 사수해야 할 가치가 있는가. 둘의 숙려는 오랜 시간 계속된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달리 부부가 같은 성을 쓰는 일본 법의 특징이 묘하게 작용한다. 여성이 결혼하면 남편 성으로 개명하는 제도는 자연히 이름을 잃게 만든다.

우리도 흔하게 부르는 표현, '00엄마'에 갇혀 원래 주체적 나를 봉인하고 가족에 희생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관습에 <사토상과 사토상>은 질문을 던진다. 일본 특유의 현모양처, 전업주부 환상을 은근히 비판하는 대목이다. 몇 년의 안쓰러운 대립을 마치고 간격을 둔 그들의 37살 모습은 오히려 평화롭다. 의도적으로 카메라는 22살 풋사랑 시절과 '돌싱'이 된 37살 중년 시절을 교차하며 그들이 보낸 굴곡 많은 세월을 관객이 꼼꼼히 복기하게 이끈다.

물론 그들의 최종 선택은 그냥 감정적인 배설과는 차원이 다르다. 청춘의 사랑이 그저 현실의 벽에 부딪혀 깨진 것 마냥, 어른들 말씀 안 듣고 철없이 굴다가 당연히 추락한 결과가 아니라는 것. 외관상 최대 위기와 갈등의 임계점에서 회피용으로 결정할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충분한 '숙려' 시간을 갖고 고심한 끝에 최적 결과로 도출한 결론이다. 그래서 보고 있자면 더욱 가슴 한구석이 아려온다. 그들은 충분히 노력했으나 고대 비극 속 영웅의 운명을 맞았으니까.

영화는 쓸데없이 기교 자랑으로 줄거리를 배배 꼬거나 극단적 사건을 억지로 심지 않아도 할 말은 다 한다. 결혼 제도에 얽매여 자신을 포기하고 사는 관습적 제도가 21세기 변화된 세상에 맞을 수 없다는 것. 개인의 행복추구권이 인내와 희생으로 억눌리는 건 진실한 삶이 아니라는 것을 조곤조곤하지만 힘 있게 낭독하는 변호사의 진술처럼, 이 영화는 바로 우리 곁, 어쩌면 당신 자신의 이야기로 전환될 수 있는 삶의 풍경을 돌아보게 해준다. 사치 역 키시이 유키노의 너른 연기폭이 화룡점정을 찍는 건 덤.

<작품정보>

사토상과 사토상
佐藤さんと佐藤さん
2025|일본|드라마
2026.04.29. 개봉|114분|12세 관람가
감독 아마노 치히로
출연 키시이 유키노(사토 사치 역), 미야자와 히오(사토 타모츠 역)
수입/배급 ㈜엣나인필름

2025 38회 도쿄국제영화제 초청
2025 49회 홍콩국제영화제 초청
2025 27회 상하이국제영화제 초청
 <사토상과 사토상> 포스터
ⓒ 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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