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 위에 ‘소프트’를 입힌다…민·관이 함께하는 생태계 실험 [월간중앙]
연중기획 - 지방정부와 기업의 ‘위대한 동행’(2)
‘철강도시’ 재구성에 나선 포항시와 민간 파트너들
일자리만으로는 미흡, 청년과 생활 인프라가 도시 경쟁력 끌어올린다
포항의 성과가 창원·구미·광양 등 여타 거점 도시에 ‘전환 경로’ 제시
![2025년 포항시가 주최한 복합해양레저관광 정책 팸투어에 기업, 투자사, 호텔 등 유관 기관 관계자들이 다수 참여했다. 멀리 포스코 야경이 펼쳐진다. [사진 포항시]](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23/joongang/20260423093219858jywt.jpg)
포항시청에는 6년째 ‘민간 자본 유치’라는 한 우물을 파온 공무원이 있다. 김재우(47) 민자사업추진팀장이 그 주인공이다.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 그는 2021년 이래 같은 부서에서 줄곧 근무해 왔다. 20대 중반에 공직에 입문한 이후, 40대의 대부분을 포항시의 국책사업과 민간 투자사업 홍보에 열정을 쏟아왔다. 기업인과 투자자, 개발사, 기획자, 금융기관을 찾아 전국을 누비는 탓에 그의 자리는 비어 있을 때가 더 많다. 4월 들어서도 한 주에 이틀은 외근을 이어가고 있다. 김 팀장은 “투자 유치에는 관계의 지속성이 중요하다”며 자기 일을 이렇게 설명했다.
“수도권 투자자 상당수는 포항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편이다. 그래서 먼저 만나 뵙자고 요청해 1대1로 설명할 기회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했다. 이후에는 ‘지나는 길에 차 한 잔 하자’며 다시 찾아가서 얼굴을 익힌다. 이런 과정이 축적되면서 민자 유치 네트워크가 형성됐고, 포항시가 투자 유치 설명회를 서울 여의도에서 개최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글로벌 경기 둔화와 중국의 저가 공세 속에서 포항 경제의 70%를 차지하는 철강산업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국내 주요 철강 기업들은 공정을 단축하는 등 위기 대응에 부심하고 있다. 산업화 시기 ‘영일만의 기적’ 신화를 써내려온 포항시에 감도는 긴장감의 강도에 비례해 김 팀장의 발걸음도 더욱 빨라지고 있다. 이 도시는 철강 산업의 고도화와 미래 신성장산업의 발굴·육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포항시가 2021년 7월 과(課) 단위의 ‘민자사업추진단’을 신설한 것도 이러한 허들을 넘어보려는 구상에서 비롯됐다. 이강덕 당시 포항시장은 “여러 부서에 분산된 민자 유치 관련 업무를 한곳에 모아 투자자에게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민자사업유치단을 만들었다”고 돌이켰다. 한시 조직으로 출발한 민자사업추진단은 산하에 민자기획팀, 민자개발팀, 산업단지팀 등 3개 팀을 두었고, 민자사업팀(현 민자사업추진팀)에 배치된 김 팀장은 지금까지 같은 업무를 이어오고 있다. 경북지사 선거 출마를 위해 최근 시장직에서 물러난 이강덕 전 시장은 “민자 유치는 업무의 특성상 히스토리와 스킬에 정통한 실무자를 필요로 한다. 공직 마인드가 아닌 기업 마인드를 필요로 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업무의 몰입도를 높일 수 있는 공무원에게 관련 업무를 전담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 결실의 하나가 포항 영일대 해수욕장 특급호텔 건립 사업이다. 지난 1월 포항시는 하나증권, 대우산업개발 등 민간 사업자들과 함께 영일대를 중심으로 한 특급호텔 건립을 비롯한 복합 해양레저관광 거점 조성에 관한 실시협약(MOA)을 체결했다. 포항 도심과 인접한 해안에 대규모 민간 투자를 유치해 부산 해운대 센텀시티를 방불케 하는 포항형 해양복합도시를 조성하겠다는 구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글로벌 철강 도시이자 인구 50만의 포항은 오랫동안 4~5성급 호텔(특급호텔)이 없는 도시로 분류됐다. 인구 27만의 여수에 3개의 4성급 호텔이 들어선 것과는 대조적이다. 영일대 해수욕장에는 프랑스 아코르 그룹의 ‘노보텔’ 입점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업이 투자를 주저하는 이유를 찾다
민간이 주도하는 ‘창업 허브’ 역시 포항시 미래 청사진의 한 축이다. 포항을 비롯한 전국의 스타트업이 한자리에 모이는 ‘영일만 스타트업 데이’ 행사를 2022년부터 매년 개최해왔다.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 대표와 투자사 관계자, 빅테크 개발자,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이 사업 경험을 공유하고 협업 가능성을 모색하는 자리다. ‘영일만 스타트업 데이’는 포항에서도 스타트업 창업과 네트워크 형성이 가능함을 확인하는 커뮤니티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 현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 같은 포항시의 민간 자본과 기업인 유치 과정은 한 문구를 떠올리게 한다. “변화를 설득하기보다 변화를 거부하는 이유를 찾아 그걸 해결하라.” 마이클 루이스의 〈생각에 관한 생각 프로젝트〉에 등장하는, 상대의 마음을 얻는 방식에 관한 언급이다. 포항시 역시 기업인들이 포항 투자와 이전을 주저하는 이유를 찾아 이를 해소하는 데 공을 들인다. 투자자나 기업인을 만나자마자 포항에 호텔이나 컨벤션센터를 지어달라고 요구하는 식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대신 기업인들이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도록 근거를 제공하는 데 주력한다. 김재우 팀장은 “투자는 비즈니스이므로 그에 걸맞은 논리가 뒷받침돼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기업하는 사람들이 포항에 올 때는 이유가 있다. 어떤 이익과 매력이 있으니 포항에 투자하고 확장하는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아쉽고 부족한 부분을 사전에 채워주는 것이 포항시의 역할이자 도전 과제다. 투자자에게 행동을 강요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투자를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누구에게든 원하지 않는 일을 하게 할 수는 없다. 포항시는 투자자의 요구에 맞춰 자신을 조정할 태세도 늘 가다듬는다. 형식적으로는 민자사업추진팀에 관련 업무를 전담시키고, 내용적으로는 기업 유치에 필요한 요소를 갖추는 정책을 과감하게 구사해 왔다.
![2022년부터 시작된 ‘영일만 스타트업 데이’ 행사는 수도권으로 무대를 확장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서울 성수동 행사에는 글로벌 전문가, 창업가, 포항지역 대학생 등 60여 명이 함께했다. [사진 포항시]](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23/joongang/20260423093221139ytxm.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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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유출과 구조적 위기
공장 부지만 보더라도 그렇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시점에 최대한 맞춰 공급하는 태세를 갖추자는 데 포항시청의 공감대가 모였다. 이차전지 부지 제공이 그 사례다. 포항시는 이차전지처럼 신산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해 대규모 확장을 도모하는 시점에 산업단지 조성에 나서는 것은 ‘뒷북 행정’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국내 규제는 여전히 경직돼 있고, 용지 공급 역시 신축성이 떨어진다. 산업단지 하나를 개발하는 데 입지 조사부터 부지 선정, 인허가, 건설까지 통상 10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된다. 결국 기업이 필요로 할 때 즉시 용지를 공급할 수 있어야 민자 유치가 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산업단지를 선제적으로 확보해 두고 투자 기업을 찾아 나섰다는 것이 김 팀장의 설명이다.
“포항시는 에코프로, 포스코퓨처엠처럼 급성장하는 이차전지 기업이 생산라인 증설에 활용할 부지를 단기간에 제공하고, 규제를 신속히 해소하는 규제자유특구를 지정했다. 특히 포스코퓨처엠이 들어설 부지는 민간 소유의 산지였는데, 이를 정비해 부지를 공급하는 데 6개월이면 충분했다. 이런 일들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체계적이고 신속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와는 별개로, 포항시는 나름대로 도시의 존재감을 환기할 수 있는 성과를 꾸준히 축적해 왔다. 바이오오픈이노베이션센터, 그린백신실증지원센터, 애플 제조업 R&D 지원센터 등 연구 인프라를 확충했고, 2023년에는 포스텍 대학원에 의과학 전공을 신설했다. 또한 연구기반 스타트업의 요람인 체인지업그라운드를 비롯해 청춘센터, 청년창업플랫폼, ESG 창업 클러스터 등 MZ 세대를 겨냥한 창업 생태계를 단계적으로 구축해 왔다. ESG 분야의 스타트업·교육·주거·상업 기능을 결합한 ESG 글로벌 기업혁신파크 국토부 선도사업 선정(2기 기업도시) 역시 대표적인 성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역의 주력 산업인 철강산업 역시 민자 유치의 든든한 지렛대로 활용된다. 포스텍을 중심으로 한 R&D 인프라와 포스코그룹 미래기술연구원은 이러한 작업을 이끄는 핵심 동력이다. AI, 이차전지 소재, 수소 및 저탄소 에너지 분야에서 산학연이 공동으로 연구개발을 수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제조 공정 혁신과 기술 이전을 통해 신산업 창출을 견인하는 ‘심장부’ 역할을 한다는 점을 투자자들에게 강조한다. 포항은 가속기연구소, 포스텍, 한동대 등과의 연계도 가능해 보다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 기업(포스코 등)과 대학(포스텍·한동대 등), 그리고 R&D 기반이 맞물려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는 도시가 바로 포항이다.
포항의 과제가 기업 유치와 산업 전환 영역에만 국한된다면 그나마 사정이 나을지 모른다. 현실은 더 엄중하다. 대한민국 비수도권 지자체들이 겪는 구조적 위기를 포항 역시 마주하고 있다. 인구 감소가 발등의 불이다. 2022년 6월 붕괴된 50만 인구 선을 아직 회복하지 못하고 있으며, 포항시가 목표로 제시한 미래 인구 70만 명 역시 요원한 상황이다. 인구 감소 요인 가운데서도 청년층 유출은 특히 뼈아픈 대목이다. 2025년 6월 기준 포항시 청년 인구(19~34세)는 7만7582명으로 전체의 15.9%에 그쳤다. 이는 2020년 6월의 17.6%와 비교해 1.7%포인트 감소한 수치다.
국회미래연구원이 지난해 7월 펴낸 ‘인구 감소 시대 지역 간 인구 이동 패턴과 대응전략’ 보고서는 최근 인구 이동 배경을 분석했다. 2014년만 해도 가족(33.4%)을 이유로 한 이동이 가장 많았으나, 2024년에는 직업(29.4%)을 사유로 한 이동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국회미래연구원은 “10년 전보다 가족·주택을 이유로 한 이동 비율은 감소했지만, 직업·교육·주거환경 등을 사유로 한 이동 비율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포항시 남구 포스텍 안에 건설된 벤처 인큐베이터센터 체인지업그라운드(왼쪽 앞)와 내부 전경. [중앙포토]](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23/joongang/20260423093222395dwcq.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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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요소뿐 아니라 정서적·문화 요인도 중요”
특히 20대 청년층에서는 원거리 시·도 간 이동이 두드러졌다. 20~24세의 경우 시·도 간 이동률이 10년 전보다 많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흐름에 가장 직접 노출되는 지자체 가운데 하나가 포항이다. 포항에는 포스텍과 한동대라는 글로벌 대학이 있고, 포항대·선린대·한국폴리텍대 6대학 등에서 꾸준히 인재를 배출한다. 포스텍과 한동대라는 학문 허브로 외부 학생들이 유입되지만, 졸업과 동시에 지역에 정착하지 않고 일자리를 찾아 외지로 떠나는 모습이 일상화돼 있다.
여성의 취업 기회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포항은 제조업 중심 도시이며, 그 상당 부분이 포스코를 축으로 형성돼 있다. 철강 공단 인력의 주력 역시 남성이다. 이로 인해 여성들이 일자리를 찾아 외지로 이동하면 성별 불균형이 심화하고, 이는 결혼 적령기 남성의 이탈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기 쉬운 구조를 형성한다. 여성 고용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바이오·IT 등 신산업과 지식·서비스 산업 육성이 포항시의 절박한 과제로 부상한 배경에는 이러한 인구 구조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는 평가다.
저출생으로 유년 인구 비중이 줄어드는 가운데 청년층 유출까지 겹치자 포항시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기업 유치는 민간 투자의 출발점에 불과하다. 공장이 들어서더라도 실제로 일할 사람이 유입돼야 기업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도시와 지역 정책을 연구하는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공간을 계획하는 이는 산업에 어둡고, 산업 정책에 능한 이는 공간에 낯선 것이 한국 정책의 풍토”라고 지적한다. 일자리는 산업 생태계에서 나오고, 그 산업 생태계는 인재를 끌어들이는 기반, 곧 생활 인프라 위에서만 뿌리를 내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기존 지역의 생활 인프라를 기반으로 산업을 유치하는 것이 바람직한 순서”라고 조언했다.
포항시가 청년의 자립과 지역 정착을 뒷받침할 중장기 로드맵을 수립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2030년까지 ‘청년 친화 도시’ 조성을 선언하고, 향후 5년간 취·창업과 교육, 주거, 복지·문화, 참여·권리 등 다양한 분야에 5588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장상길 포항시장 권한대행은 “청년들이 포항에서 마음껏 도전하고 안정적으로 정착하며 행복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모든 행정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포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액션플랜은 단순한 외부 자본 유치에 그치지 않는다. 인구 유지와 확대라는 도시의 생존 기반까지 포괄한다. 포항시는 시정의 핵심 과제로 △산업단지 완성 △구도심 활성화 △인재 육성 △관광 활성화 등 네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외부에서 보면 어디서나 볼 법한 병렬적 사업으로 보일 수 있지만, 포항 내부에서는 긴밀히 맞물려 작동하는 통합적 과제로 인식된다. 포항시는 이러한 전략이 각종 개발 관련 자료 분석을 통해 도출된 맞춤형 접근이라고 강조한다.
“직원들에게는 급여 등 경제적 요소뿐 아니라 정서적·문화적 요인도 중요하다.” 포항 첨단 소재 산업의 대표 주자로 주목받는 그래핀스퀘어(주)의 홍병희 대표는 포항에서의 삶을 즐기고 행복을 느끼는 직원들이 많아질수록 기업 역시 포항을 선택하게 된다고 강조한다. 노동 외에도 가정, 여가, 건강, 자기계발, 관광 등 다양한 삶의 요소에서 차별화된 생활 인프라를 갖춘 곳일수록 기업에도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홍 대표는 “포항 전부를 단번에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일정 권역 안에서라도 주거·교육·의료·레저 전반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라고 제안한다.
![포항시는 철강 중심의 산업 구조를 다변화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진 최재승]](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23/joongang/20260423093223672qzwp.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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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을 넘어 ‘삶의 조건’ 설계
기업에 우수 인력 확보는 성공으로 가는 첫 관문이다. 포항시 역시 일과 삶의 균형, 이른바 워라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김재우 포항시 민자사업추진팀장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기업인, 개발자, 투자자 등과 이런 문제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는 데 익숙하다(176쪽 관련 기사 참조).
이 같은 과정을 거쳐, 일자리·주거·교육·여가가 유기적으로 맞물리는 선순환 구조를 토대로 한 ‘포항의 재구성’ 정책이 점차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포항시는 이 네 가지 요소를 균형 있게 강화하는 방향으로 세부 전략을 마련하고, 민간 투자 유치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 출발점은 도심 재생이라 할 수 있다. 포항역이 시 외곽으로 이전하면서 구(舊)도심은 공동화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그 여파로 ‘회색 도시’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졌고, 생활체육시설과 문화체험시설 역시 낙후되거나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포항시는 10여 년 전부터 구도심 재생에 나섰다. 중앙동과 송도동, 신흥동 일대의 생태하천을 복원하고 철길숲을 조성하는 등 이른바 ‘그린웨이 프로젝트’를 통해 사람과 문화가 다시 유입되는 도시를 지향하고 있다.
특히 구도심의 생태하천은 도심 속 수변공간으로의 재탄생을 앞두고 있다. 포항시는 복개천이었던 두호천·칠성천·양학천 일대를 생태하천으로 복원해 시민의 휴식과 주거가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청년 친화 도시’를 표방하는 포항시는 자연성을 회복한 도심 하천이 청년들의 취향과 선택을 끌어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일대를 청년과 신혼부부를 위한 새로운 형태의 주거공간으로 개발하는 방안도 그 연장선에 있다. 나아가 구도심에는 도시 숲이 새롭게 조성된다. 도시 숲과 생태하천을 촘촘히 연결해 걷기와 자전거 이동이 가능한 보행자 중심의 도심으로 가꿔간다는 구상이다.
손성찬 포항글로벌기업혁신파크 이사는 이러한 시도가 포항의 대외 이미지 개선에 중요한 전환점을 가져올 것이라며 기대를 나타냈다. 그는 “일자리·주거·교육·여가·환경 등 다양한 인프라 가운데 가장 취약한 요소가 도시의 품격을 좌우한다”며 “리비히의 ‘최소량의 법칙’은 도시 행정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말했다. 비료의 아버지로 불리는 독일의 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1803~1873)는 ‘여러 필수 영양소 가운데 생장을 결정짓는 것은 가장 부족한 요소’라는 점을 밝혀낸 바 있다. 즉, 생물은 가장 적게 공급되는 요소에 의해 좌우되듯, 도시의 품격 역시 가장 미흡한 구성 요소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이다. 손 이사는 “포항시 또한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도시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취약한 요소를 보완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항시 북구와 남구를 잇는 철길숲은 관광 명소로 떠올랐다. [사진 포항시]](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23/joongang/20260423093224928hnwu.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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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심과 해양 축, 공간 재편의 두 축
도시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공간 전략은 내륙에만 머물지 않는다. 포항시는 도심 재생 못지않은 전략으로 해양 축 개발도 준비하고 있다. 2025년 해양수산부 복합해양레저관광도시 공모에 선정돼 도심과 인접한 영일대, 여남, 송도 일대를 중심으로 해양레저 관광 플랫폼을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관광·레저·주거·상업·문화 기능이 어우러진 일종의 복합 주거·상업 공간을 비롯해 국제해양관광도시에 걸맞은 인프라가 단계적으로 들어설 예정이다.
포항은 호미곶, 구룡포, 칠포 등 향토의 정서를 듬뿍 머금은 관광 명소를 품고서도 ‘머무는 곳’이 아닌 ‘스쳐 지나가는 곳’으로 인식됐다. 대형 숙박시설 등 관광 인프라를 제때 갖추지 못한 탓이 크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포항시는 오랜 기간 개발되지 않았던 동해안 일대의 자연경관을 활용해 휴양과 관광의 중심지로 도약시키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특히 영일대 특급호텔을 비롯해 환호공원과 송도 일대 숙박시설 건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아울러 호미반도국가해양정원, 산림복지단지, 연오랑세오녀 테마파크, 호미반도해안둘레길 등 자연경관을 활용한 관광벨트를 호미반도 일대에 조성했다. 스페이스워크, 스카이워크, 서퍼 비치, 곤륜장패러글라이딩장 등 지역 특성과 결합한 체험형 프로그램도 갖추며 관광 콘텐트를 다변화하고 있다. 구도심 복원과 해양 개발을 병행함으로써 시민과 관광객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생활과 레저의 일체화를 이루고, 나아가 워라밸 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것이 포항시의 구상이다.
이처럼 포항시는 산업구조 다변화를 위한 도시 공간 재구성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포항의 변화는 단순한 산업 유치가 아니라 도시의 구조 자체를 다시 짜는 시도다. 철강 중심의 단일 산업 체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민간 자본, 신산업, 연구개발, 주거와 문화 인프라를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는 ‘공장을 짓는 도시’에서 ‘사람과 산업이 함께 머무는 도시’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민간 자본 유치를 담당하는 김 팀장은 다소 추상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러한 계획들을 투자자의 눈앞에 구체적으로 그려내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는 “투자자들에게 단순히 수익 모델만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가능한 워라밸의 모습까지 시각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사업의 현실감을 최대한 높인다”고 설명했다.
![포항시 북구 환호공원에 설치된 스페이스워크 전경. [사진 포스코]](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23/joongang/20260423093226210vggu.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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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모델, 지역 도시의 미래를 묻다
지역과 기업, 세대 간 공생 모델을 연구해 온 마강래 중앙대 교수는 포항의 이러한 변화의 이면에 주목하고 있다. 마 교수와 중앙대 석·박사 과정 연구진은 지난 1월 한 달간 포항에 머물며 현지 산업 생태계의 변화를 면밀히 관찰했다. 포항시청 공무원을 비롯해 지역 기업인과 투자자, 기획자, R&D 기관 관계자, 금융권과 대학 관계자 등 도시산업을 구성하는 주요 주체들을 폭넓게 인터뷰했다. 그는 기업이 만들어내는 일자리, 그 기업들이 모여 형성되는 산업 생태계, 그리고 이를 지탱하는 생활 인프라 간의 상호작용을 입체적으로 파악할 단서를 포항에서 찾고자 한다. 이런 맥락에서 포항의 대기업·스타트업·연구소 간 협업 체계는 중요한 자산으로 평가된다. 마 교수는 “이 같은 네트워크의 집합이 하나의 유기적 도시처럼 작동한다면, 매우 바람직한 혁신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포항은 포스코라는 주력 산업 기반과 포스텍·한동대 등 고등교육기관, 그리고 다양한 R&D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그나마 여건이 나은 편이다. 이러한 기반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창원·광양·거제·군산·구미 등의 거점 도시들은 산업 전환 지연과 인구 유출이라는 이중의 압력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이들 도시의 성장 경로는 서로 다르지만, 공통으로 겪는 구조적 어려움의 일부가 포항에서 해소된다면 지역균형발전의 실마리를 포착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마 교수는 “포항의 시도가 구체적 성과로 이어진다면, 다른 거점 도시들 역시 ‘생태계’라는 틀 안에서 신산업을 수용할 동력을 찾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현 월간중앙 선임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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