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공순의 두근두근 제주 엿보기] (26)시련을 예술로 피워올린 삶, 추사관의 울림

붉은 동백과 노란 유채에 이어 온갖 꽃이 흐드러지는 제주. 온 섬에 펼쳐지는 향그러운 꽃바람이 봄의 한가운데 있음을 느끼게 한다. 제주, 하면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이국적인 매력에 하염없이 끌리지만, 유배지로서의 제주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유배온 이의 그 시련과 지난한 삶을 돌아보는 것은 그 분들이 남긴 유산을 통해 배움과 자긍심을 선물 받은 우리의 겸손한 의무가 아닌가 해서다.

대정현(大靜縣). 이름은 '크게 고요하다'라는 의미지만, 제주에서도 가장 차가운 칼바람이 거칠게 드나드는 곳이 아닌가. 신혼여행 때 모슬포 바닷가에 선 내 치맛자락을 찢을 듯 날리던, 미친 바람으로 한양 양반이 살기에 얼마나 척박했는지를 짐작해 볼 뿐이다. 유배지 앞 길을 걷자니 추사의 체취라도 남은 양, 바람 냄새가 다르다. 명문가 자제, 출중한 재사로서 오만하기도 했던 그를 겸손한 지식인으로 담금질했던 유배지의 고통과 시련, 그것을 견디며 예술혼을 꽃피운 강인한 삶에 두 손을 모은다.
추사는 모든 것을 빼앗긴 자리, 혹독한 결핍의 공간에서 역사상 가장 독창적인 '추사체'라는 독보적 서체를 완성해 냈다. 벼루 열 개에 구멍이 나도록 먹을 갈고 붓 천자루가 닳도록 썼다하니, 유배 기간은 고통인 동시에 예술적 완성의 시간이었던 것. 그 외에도 추사가 갈구했던 것은 책이었다. 서책이 귀했던 시절, 그의 학문적 갈증을 채워 준 이는 역관이었던 제자 이상적이었다. 이상적은 중국을 오가며 어렵사리 구한 최신 서적들을 바다 너머 스승에게 보내곤 했다. 고난 속의 노학자에게 여전히 변치 않는 존경과 예를 다하던 제자였다.

세한도가 국립중앙벅물관에 소장되기까지 손재형이라는 분의 집념이 있었다. 그는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반출된 세한도를 되찾아온 인물이다. 진도 출신으로 '소전체'를 만들어낸 서예가이자 교육자요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손재형은 일본인 동양철학자 후지츠카 치카시를 100일 동안 찾아다니며 소장하고 있던 세한도를 팔기를 요청했고 손재형의 끈기에 손을 든 후지스카는 결국 세한도를 돌려주었다. 그리고 얼마 후 도쿄 대공습으로 후지스카의 집은 폭격을 당했고, 보관 중이던 추사의 서화와 유품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손재형이 아니었다면 국보 세한도 또한, 한 줌 재가 되었을 것만 같아 아찔하다.
유배지 입구에는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한 추사관이 서 있다. 세한도 속 집을 모티브로 지은 건물은 단출한 지붕에 동그란 창문 하나가 전부다. 건물을 본 마을 사람들이 "감자창고가 들어섰다"고 했을 만큼 소박하지만, 그 수수한 간결미야말로 추사의 미학과 가장 닮아 있는 건 아닐까. 전시실로 내려가는 계단은 지그재그 형태로 설계해 시선을 잡아끈다. 추사의 삶과 유배길을 공간으로 보여주는 색다른 디자인이다.

시련을 예술로 승화시킨 위대한 삶을 살았던 추사련만, 긴긴 세월 적막한 유배지에서 견디기 힘든 것은 기약없는 그리움과 기다림이 었으리라. 소식을 주고 받기 어려운 머나먼 섬에서 아내를 그리워하며 쓴 편지 구절에 콧등이 시큰하다. "당신이 봄날 내내 바느질했을 여름옷은 겨울에야 도착했고, 나는 당신의 정성을 머리맡에 병풍처럼 둘러 놓았소." 무슨 운명인지, 그 편지가 도착하기 하루 전 아내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말로 다 못할 애통함이 그의 가슴에 고여 있었을 테다.
추사는 수선화를 좋아했다. 무채색의 유배지에서 해맑은 노란꽃은 희망과 위무로 어루만지는 정인의 손길같지 않았을까. 한양에선 귀한 꽃이 제주에서는 지천으로 자라 농부들이 뽑아 내버렸다, 추사는 이 뿌리를 거두어 돌담 아래 심고 바라보기를 즐겼다. "대정고을에는 수선화가 천 떨기 만 떨기, 때마침 수선화를 대하니 아름다운 선비가 몹시 생각났다"라고 할 정도로 추사에게 있어 수선화는 아취어린 인간 품성의 상징이기도 했다.
추사관 길섶과 지난 겨울 들렀던 예산 추사고택에는 수선화 무리가 수두룩이 피었으리라. 담박한 노랑이 주는 평화로움을 품고, 다가와 눈 맞추는 이들과 방글방글 웃고 있으려나…. 문득, 함초롬히 피어난 수선화를 보며 시름을 달래던 추사의 고적함이 애달프다.

나만의 소박한 정원을 가꾸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따뜻하고 깊은 사유로 주변을 바라보고,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보태려 했던 것은, 문화재와 어우러지는 봉사활동이었다. 창경궁을 둥지 삼아 '우리 궁궐 지킴이'로 간간이 활동 중이다.
이곳저곳을 둘레둘레, 자박자박 쏘다닌다. 제주도 예외는 아니어서 올레를 걷고 오름에 오르기를 좋아한다. 사색의 오솔길을 오가며 사람 내 나는 이야기, 문화재나 자연 풍광, 처처 다른 그 매력을 소소하게 나누고 싶어 글을 쓴다.
<약력>
2016년《수필과비평》등단, 한국수필문학진흥회원, 제주《수필오디세이》회원
수필집 《우리, 수작할까요》 발간
추사관 전경 사진=배공순
추사관 계단 사진=배공순
추사 유배지 사진=추사관 홈페이지
세한도 사진=제주관광공사
충남 예산 추사고택 사진=충청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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