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을 만드는 나라, 돈의 길을 설계하는 나라

임선영 2026. 4. 23.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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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AI미래지도] 디지털 위안화+스테이블코인, AI시대 중국이 다시 짠 돈의 길

[임선영 기자]

2026년 4월 10일 오전 홍콩 금융관리청(HKMA·香港金融管理局) 공식 웹사이트에 두 줄의 공지가 올라왔습니다. 36개 기관이 경쟁한 홍콩 달러 스테이블코인 발행 라이선스의 첫 수혜자로 HSBC(Hong Kong and Shanghai Banking Corporation)와 앵커포인트 파이낸셜(Anchorpoint Financial)이 선정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같은 날 CIPS(위안화 국경 간 지급 시스템의 단일 거래일 처리액은 1조 2,200억 위안(한화 약 267조 1,800억 원)을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갱신했습니다. 두 사건은 별개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전략적 퍼즐이 맞춰지는 장면입니다.

최근 통계를 보면 달러 패권에 조용한 균열이 생기고 있습니다. 2000년 전세계 외환보유액 중 달러 비중은 71%였지만 2024년에는 57.8%로 하락했습니다(IMF COFER 2024). 같은 기간 금 보유 비중은 20%를 넘어섰고, 2025년 각국 중앙은행의 금 매입량은 1,237톤으로 3년 연속 1,000톤을 초과했습니다.

하버드 대학교의 케네스 로고프 교수는 2026년 3월 30일 인터뷰에서 "위안화가 5년 내 기축 통화 반열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시작된 탈달러화는 이제 중앙은행들의 리스크 관리 전략으로 명시화되는 추세입니다.

역사적 전제 — 화폐를 지배한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1944년 브레턴우즈 체제는 금과 달러를 연동시켜 미국을 기축 통화국으로 세웠습니다. 1971년 닉슨 쇼크로 금태환이 중단된 뒤에도 달러는 원유 결제 통화, 즉 페트로달러 체제를 통해 패권을 유지했습니다. SWIFT는 달러 패권의 신경망이자 동시에 제재 무기였습니다. 2022년 미국의 러시아에 대한 SWIFT 배제 조치는 중국 지도부에게 분명한 경고였습니다. 패권의 본질은 군사력과 기술력이 아닌 돈이 흐르는 '화폐 레일'의 설계권에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켰습니다.
 중국 스마트폰 속의 디지털 위안화 전자지갑. 디지털 위안화 앱 화면을 켜면 마오쩌둥의 초상이 그려진 지폐 모양과 함께 아래 지갑 내 잔액이 표시된다.
ⓒ 연합뉴스
중국이 먼저 시작한 CBDC, 디지털 화폐개혁

2026년 1월 1일, 중국인민은행은 e‑CNY(디지털 위안화)를 전면 개편하며 2.0 단계를 공식 선언했습니다. 세 가지 핵심 변화가 있었는데 첫째, 상업은행이 e‑CNY 잔액에 이자를 지급할 수 있게 됐습니다. 세계 최초의 이자부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입니다.

둘째, 12개 신규 상업은행이 e‑CNY를 직접 발행·교환·관리하는 1차 유통 주체로 지정되어 유통망이 대폭 확장됐습니다. 여기에 위챗페이와 알리페이가 서비스 채널로 이미 통합돼 있어, 실질적으로 중국 스마트폰 사용자 10억 명 이상이 e‑CNY 접근권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셋째, 계좌 체계(신원 기반 지갑)+코인 스트링(인터넷 없이도 작동하는 디지털 화폐)+스마트 컨트랙트(조건이 충족되면 자동 실행되는 결제 프로그램)'의 삼중 구조가 도입됐습니다 이 삼중 구조가 e‑CNY 2.0의 기술적 핵심입니다. 기존 디지털 현금(1.0)이 단순히 지폐를 디지털화한 수준이었다면, 2.0은 화폐 자체에 실행 가능한 계약 논리를 내장한 '프로그래머블 머니(Programmable Money)'입니다.

계좌 체계는 신원과 잔액을 관리하고, 코인 스트링은 오프라인 환경에서도 거래를 가능하게 하며, 스마트 컨트랙트는 조건이 충족되면 사람의 개입 없이 자동으로 결제를 실행합니다. 이 세 요소가 하나의 화폐 안에 통합되는 순간, e‑CNY는 단순한 지급 수단을 넘어 경제 자동화의 인프라가 됩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자 선정과 금융 레일의 소매 레이어 완성

2026년 4월 10일 홍콩 금융관리청(HKMA)은 홍콩 역사상 최초의 스테이블코인 발행 라이선스를 두 기관에 공식 부여했습니다. HSBC와 앵커포인트 파이낸셜(스탠다드 차타드·HKT·애니모카 브랜즈가 2025년 2월 설립한 합작법인)입니다. 전체 36개 기관이 경쟁했고 단 2곳만 선정됐으니 통과율은 5.6%에 불과했습니다.

HKMA 총재 에디 유(Eddie Yue)는 라이선스 수여 발표문에서 네 가지 승인 용도를 명시했습니다. 국경 간 결제, 홍콩 내 로컬 결제, 토큰화 자산 거래, 그리고 조건부 지급·공급망 금융 등 혁신적 프로그래머블 용도입니다. 에디 유 총재는 "스테이블코인이 실물 경제의 페인 포인트(Pain Point)를 해결하는 건설적 역할을 하는 것이 목표"라고 선언했습니다.

HSBC는 2025년 12월 31일 기준 총 자산 3조 2,323억 달러(한화 약 4,733조 원)의 세계 최대 은행 중 하나로, 2026년 하반기 HKD 스테이블코인을 330만 PayMe 사용자와 HSBC HK 모바일 앱에 통합할 계획입니다. 발행 토큰은 100% 고품질 유동자산으로 분리 계좌에 담보 보관됩니다.

앵커포인트는 2026년 2분기부터 HKDAP(홍콩달러 1:1 연동 스테이블코인)를 기관 투자자를 대상으로 단계적 발행한 뒤 리테일로 확대합니다. 홍콩텔레콤이 유통 레일(Distribution Rail)을 제공하는 B2B2C 구조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스테이블코인들이 단순한 결제 도구로 설계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해시키 그룹(HashKey Group) 회장 샤오펑(肖風·Xiao Feng)은 2026년 4월 홍콩 웹3 포럼에서 "스테이블코인의 장기적 가치는 AI 에이전트 간의 소액·국경 간·프로그래머블 결제를 가능하게 하는 데 있다"고 밝혔습니다. AI 에이전트와 결합하면 기업 간 대규모 거래, 공급망 대금 지급, 조건부 보조금 집행이 완전 자동화됩니다.

이는 단순한 디지털 현금을 넘어 '프로그래머블 경제'의 인프라 선언이었습니다. 2025년 전 세계 스테이블코인 총 공급량은 2,140억 달러(한화 약 295조 원), 연간 거래액은 35조 달러(한화 약 4경 8,300조 원)에 달했습니다. 홍콩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이 거대한 생태계와 e‑CNY·CIPS 도매 레일 사이를 연결하는 소매 레이어입니다.

수치로 읽는 구조 — CIPS가 만드는 위안화 신경망

CIPS(위안화 국경 간 지급 시스템)는 현재 189개 국가·지역을 커버합니다. 2026년 3월 일평균 거래액은 9,205억 위안(한화 약 201조 6,000억 원)으로 전월 6,197억 위안 대비 48% 증가했고, 4월 9일에는 단일 거래일 사상 최초로 1조 2,200억 위안(약 42,000건)을 돌파했습니다.

2025년 상반기 누적 처리 건수는 4,029,500건, 처리액은 90조 1,900억 위안(한화 약 1경 9,751조 원)에 달합니다. 2025년 전체 위안화로 국가들이 주고 받은 총액은 70조 6,000억 위안(한화 약 1경 5,461조 원)이며, 무역금융 내 위안화 점유율은 2024년 초 2%에서 2026년 초 8%로 4배 성장했습니다(스탠다드차타드 데이터).

미‑이란 분쟁 이후 중동의 구조 변화도 눈여겨봐야 합니다. 2026년 1분기 기준 중국의 중동산 원유 수입 중 위안화 결제 비중은 41%로 달러(52%)에 이어 2위로 올라섰습니다. 이란은 100% 위안화로 전환했고, 이라크는 2026년 2월 27일 위안화 결제 제한을 해제한 뒤 한 달 만에 60% 이상을 위안화로 결제하고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25년 말 15%에서 2026년 3월 40~45%로 급등했으며, UAE는 외환보유액 중 위안화 비중이 27%를 넘어 에너지 결제 파일럿을 시작했습니다. 위안화 사용 비중은 2020년 16%에서 2025년 약 30%로 상승했습니다(증권시보 데이터).

mBridge, 포스트‑SWIFT 다자 CBDC 플랫폼

mBridge는 중국인민은행, 홍콩금융관리청, 태국 중앙은행, UAE 중앙은행, 사우디중앙은행(SAMA)이 공동 운영하는 다자 CBDC 결제 플랫폼입니다. 2022년 파일럿 이후 2026년 1월 기준 누적 거래액이 555억 달러(한화 약 81조 원)를 넘어섰으며, 이는 2022년 초 대비 2,500배 성장한 수치입니다(Reuters, Atlantic Council, 2026-01-16).

SWIFT 배제 조치가 국제 결제망의 정치 무기화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이후, mBridge는 그 대안 레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mBridge는 각국 중앙은행이 발행한 CBDC끼리 직접 교환·정산하는 '중앙은행 전용 송금망'입니다. 민간 기업과 개인은 이 망에 직접 접근할 수 없습니다.

홍콩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바로 이 지점을 채웁니다. HKMA의 규제 아래 민간 금융기관이 발행하는 HKD 스테이블코인은 mBridge의 중앙은행 정산 결과를 일반 시민과 기업의 지갑으로 연결하는 '마지막 1킬로미터(Last Mile)' 역할을 합니다. 중앙은행 간 대동맥(mBridge)과 민간 모세혈관(HKD 스테이블코인)이 HKMA를 허브로 연결되는 순간, 비로소 디지털 화폐 생태계의 위아래가 완성됩니다.
 홍콩금융관리청 홈페이지
ⓒ 화면캡처
포스트 양자 안보 - 금융 OS를 설계 단계부터 방어한다

2026년 3월 중국 정부는 3년 내 포스트 양자 암호(PQC·Post-Quantum Cryptography) 국가 표준을 수립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The Quantum Insider, 2026-03-19). 중국의 양자 컴퓨팅 시장 규모는 2025년 116억 위안(한화 약 2조 6천억 원)에 달하며 연 30% 이상 성장하고 있습니다(15차 5개년 계획 데이터).

핵심은 e‑CNY, CIPS, 홍콩 스테이블코인, mBridge 모두가 PQC를 설계 단계부터 내장한다는 점입니다. 서방 금융 시스템이 RSA·ECC 기반의 기존 암호 체계 위에 양자 방어를 사후 추가(Retrofit)하는 방식인 것과 달리, 중국은 금융 인프라 OS자체를 양자 내성 구조로 새로 짓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술 우위가 아니라 미래 금융 전쟁의 방어 기반입니다.

화폐 유통속도가 경제 규모를 결정한다

어빙 피셔(Irving Fisher)의 화폐수량방정식은 다음과 같이 표현됩니다.

MV=PQ

여기서 M은 통화량, V는 화폐 유통속도, P는 물가수준, Q는 실질 생산량입니다. 통화량을 늘리지 않아도 유통속도를 두 배로 높이면 명목 GDP(PQ)는 두 배로 확대됩니다. SWIFT 기반 달러 결제는 수취까지 3~5 영업일이 소요되며 이 기간 자금은 유통에서 이탈합니다.

e‑CNY 스마트 컨트랙트는 조건 충족 즉시 집행, CIPS는 실시간 정산, mBridge는 중앙은행 간 직결 청산으로 마찰 시간을 수 분 이내로 줄입니다. 결제 속도의 향상은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동일한 화폐량으로 더 큰 경제적 산출을 만들어내는 구조적 효과입니다. 이것이 중국이 새 금융 레일을 통해 얻고자 하는 진짜 경제적 이익입니다.

한국 기업과 정책 당국이 준비하지 않을 때 생기는 손실

2025년 한국의 대중국 수출액은 1,308억 달러(한화 약 191조 4,000억 원)로 전체 수출의 18.4%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같은 해 한국 수출 결제에서 위안화 비중은 1.3%에 불과하며, 달러 비중은 84.2%입니다(한국은행 2026-04-16 발표). 수입 결제에서는 달러 79.3%, 위안화 3.2%입니다. 중국 시장 의존도가 높음에도 결제 통화는 여전히 미국 달러 중심 구조에 갇혀 있습니다.

비용 구조를 보면 현재 달러 결제 시 건당 SWIFT 전신료·중계은행 수수료·환전 스프레드를 합산 비용이 발생합니다. 원화를 달러로, 달러를 위안화로 이중 환전하는 과정에서 추가 스프레드 손실도 발생합니다. 위안화 직결 CIPS 결제로 전환하면 이중 환전 스프레드가 사라지고 수수료 구조도 간소화됩니다.

속도 효과도 중요합니다. SWIFT 기반 달러 결제는 수취까지 3~5 영업일이 소요되지만 CIPS 기반 위안화 직결제는 수 시간 내, 홍콩 HKD 스테이블코인 레이어가 성숙하면 수 분 내에 정산됩니다. 정산 속도 향상은 운전자본(Working Capital) 회전율을 높이고 단기 차입·이자 비용을 절감시킵니다.

매일경제(2025-05-26) 보도에 따르면 중국 바이어들은 이미 위안화 결제를 직접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압박이지만 동시에 위안화 결제 인프라를 선제 구축한 기업에게는 가격 협상력 프리미엄을 부여하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한국국제금융센터(KCIF)는 2025년 10월 보고서에서 한국의 위안화 기반 무역 결제 규모가 약 550억 달러(한화 약 80조 원)로 두 배까지 성장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정책 과제는 명확합니다. 한국은 2014년 원‑위안 직거래 시장을 개설했지만 12년이 지난 지금도 결제 비중은 1.3%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카카오페이(KakaoPay)·토스(Toss)·네이버파이낸셜(Naver Financial) 등 핀테크 역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이를 통합하는 국가 차원의 결제 레일 설계가 없습니다.

위안화 결제 확대를 위한 세제 인센티브, 중소기업용 환리스크 헤지(Hedge) 수단, CIPS 접속 은행 인프라 확충,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원화‑위안화‑디지털 자산을 연결하는 국가 디지털 금융 레일 구상이 필요합니다. 중국의 15차 5개년 계획(2026~2030)이 '자주적으로 통제 가능한 위안화 국경 간 결제 체계 구축'을 명문화한 지금, 한국 기업과 정책당국의 준비 시간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중국 인민은행 직원이 위안화를 세고있다.
ⓒ 베이징 AP/차이나토픽스=연합뉴스
화폐 전쟁의 승자는 누구?

역사에서 패권은 언제나 돈의 길을 설계한 국가에게 돌아갔습니다. 영국은 파운드 스털링과 인도 무역로를, 미국은 브레턴우즈와 페트로달러·SWIFT를 설계했습니다. 중국은 지금 e‑CNY 2.0(프로그래머블 화폐), CIPS(글로벌 위안화 신경망), HKD 스테이블코인(소매 레이어), mBridge(국제 다자 CBDC 플랫폼) 네 계층을 하나의 통합 금융 OS로 구축하고 있으며, PQC로 그 방어막을 설계 단계부터 내장하고 있습니다. 이 네 계층이 맞물려 작동할 때 V(유통속도)는 구조적으로 상승하고, M(통화량)을 늘리지 않아도 경제 규모는 확대됩니다.

생태학적 관점에서 보면 지금 세계는 '부품을 만드는 나라'와 '운영체제를 설계하는 나라'로 갈라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정교한 부품을 생산해도 OS 없이는 그 부품이 어느 플랫폼에서 작동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배터리·핀테크 부품을 보유하면서도 결제 레일 하나를 설계하지 못한다면 결국 다른 누군가의 OS 위에서 동작하는 부품 공급자로 남게 됩니다.

화폐 전쟁의 승자는 더 많은 돈을 찍는 나라가 아닙니다. 돈이 더 빠르게, 더 스마트하게, 더 안전하게 흐르는 레일을 설계하는 나라입니다.

덧붙이는 글 | 임선영씨는 중국전문가로 <중국경제미래지도>의 저자입니다. 이 글은 본인의 페이스북에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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