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있고 전기 있다, AI데이터센터 탐내는 철강·조선

“유통이든 서비스업이든 누구와 경쟁해도 자신있어요. 우리가 뛰어들면 판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국내 중공업 업계 관계자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건설에 대해 이렇게 말하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철강·조선 등 굵직한 전통 기반산업 기업들이 최근 AI 데이터센터에서 미래 먹거리를 찾고 있다. 전기를 많이 쓰는 산업이라 이미 ‘전력망을 확보한 부지’를 갖고 있는가 하면, 선박에 들어가던 엔진을 데이터센터용 발전기로 전환해가면서다.
22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최근 데이터센터 건설에서 가장 큰 난제 중 하나는 ‘전력계통 영향평가’다. 분산에너지활성화 특별법에 따라 10메가와트(㎿)이상의 전기를 사용하려면 받아야 하는데, 전력 공급 여유는 물론 해당 사업이 미치는 사회적·경제적 영향, 정책적 평가까지 따지기 때문에 서울 인근에선 통과가 쉽지 않은 현실이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분산법 시행 이후 데이터센터 설립 목적의 신청이 총 53건 있었는데, 서울에서 통과된 건은 단 1건이었다. 그마저도 기존에 있던 데이터센터의 예비 전력 신청이 허가된 경우다.
이에 10㎿ 이상 데이터센터를 개발하려는 기업들은 이미 전력망이 깔린 유휴부지를 발굴하고 있다. 낡아도 넉넉한 전력망을 보유한 공장 부지가 재평가받는 셈이다. 전기를 다량 써온 철강 기업들도 이런 분위기를 파악했다. 동국제강그룹 동국홀딩스는 지난 2월 “AI데이터센터 투자를 검토 중이며 연내에 구체적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 밝혔다. 인천·경북 포항 등의 공장 부지나 전력 등 그룹이 가진 자산으로 데이터센터라는 미래 사업을 해보겠단 취지다.

올해 1월 인천의 철근 제강공장과 소형 압연공장 폐쇄를 결정한 현대제철도 앞으로 유휴부지를 어떻게 활용할지 논의 중이다. 경북 포항에서는 전기료를 못 견뎌 폐업한 중견기업의 합금철 공장 부지가 데이터센터 건축 허가를 받아 오는 6월 착공한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전력권을 가진 땅이 핵심 자산이 된다는 회사 차원의 공감대가 있다”고 말했다.

사업 포트폴리오 자체를 데이터센터에 들어갈 제품 생산으로 확장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22일 미국 에너지 인프라 개발 기업인 에이페리온에너지그룹(AEG)에 20㎿급 ‘힘센엔진(HiMSEN)’ 기반의 발전설비 공급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바다 위 선박에서 쓰려고 만들던 엔진을 데이터센터 전력 발전용으로 ‘스핀오프’하겠다는 얘기다. 계약 규모는 총 684㎿, 6270억원 규모로 이 회사 역대 발전용 엔진 사업계약 중 가장 크다.

특히 수출 전망이 밝다. 전력망이 비교적 고루 깔린 한국과 달리 미국처럼 땅이 넓은 국가의 데이터센터는 자체 발전 설비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0년까지 늘어나는 미국 전력 수요 중 절반이 데이터센터 확장에 따른 수요로 전망했다. 업계 관계자는 “데이터센터 급증으로 가스터빈 발전 수요가 늘고 있지만, 가스터빈은 주문이 밀리고 가격도 높아 선박엔진 업체들이 틈새시장을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철강업계가 바라보는 데이터센터는 ‘열을 잘 버티는 거대한 철 구조물’이다. 이에 신소재·공법 적용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동국제강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최대 3m 폭의 H형강을 제작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운다. 현대제철은 데이터센터 뿐 아니라 전력을 수송하는 송전철탑, 전력 출력·저장을 맡는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데이터센터 외관 뿐 아니라 내부까지 새로운 먹거리로 공략하고 있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올해 봉형강 전체 매출의 약 3%는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하는데 향후 6%까지 비중이 커질 것”이라며 “건설사와 구체적 협력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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