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올인했는데 암이라니”…‘보험 해약 5조’ 위험한 신호

45세 여성 A씨는 10년 가까이 유지해온 암보험을 지난해 9월 해지했다. 그동안 보험금을 한 번도 타간 적이 없었던 그는 해약하고 받은 돈 650만원을 모두 주식을 사는 데 썼다. 그러나 해지하고 석 달 후인 지난해 12월 건강검진에서 유방암이 발견됐다.
당장 치료에 들어가야 했던 A씨는 올해 2월 보험 해약을 취소할 수 없냐고 보험사에 문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해지와 동시에 효력이 종료돼 취소가 불가능하다”는 답만 돌아왔다. 보험사 관계자는 “보험은 해지하면 보장의 효력도 중지되기 때문에, 해지 취소는 물론 새로운 계약으로 가입하려 해도 동일 조건으로 가입이 어렵다”며 “오랫동안 보험을 유지했던 분이라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마지막 안전판’인 보험을 해지하고 해약 환급금을 주식 투자에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증시 열풍의 한 단면이다.
22일 생명보험업계에 따르면 올해 1~3월(1분기) 3대 생명보험사의 해약 환급금은 4조8985억6100만원으로, 전년 동기(4조2103억9000만원) 대비 16.3% 증가했다. 2023년 1분기 5조9116억3800만원에서 점차 하락했던 해약 규모가 지난해 말과 올해 초를 기점으로 다시 오름세로 전환했다. 코스피가 4000선을 뚫고 급격히 오르기 시작한 시점과 맞물린다.
보험업계는 최근 해약 증가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증시로의 자금 이동을 꼽고 있다. 코스피가 연달아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자금이 증권사로 유입되는 흐름이 뚜렷하다. 지난 20일 기준 개인 투자자 예탁금은 121조8172억6500만원을 기록하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반면 5대 은행의 정기 예·적금 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 983조6000억원으로 4개월 만에 34조원 넘게 쪼그라들었다. 이런 자산의 증시 쏠림 현상이 보험업계로도 옮겨붙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지난해 12월부터 해지가 늘어나는 추세”라며 “통상 연초 자금 수요, 투자 포트폴리오 재정비 등으로 인해 1월에 해지가 늘어나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증가 폭이 이례적으로 크다”고 진단했다. 다른 보험사 관계자는 “경기 침체나 불황으로 보험 해지가 늘어날 때는 보험료 미납에 따른 효력상실 환급금도 함께 급증하는데, 최근에는 해약 환급금 위주로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해약 환급금 규모가 상대적으로 큰 암보험·종신보험·연금보험 등 생명보험 상품의 해지가 두드러진다. 상품별로 보면 보장성보험은 1547억원(8.1%), 저축성보험은 5335억원(23.2%) 각각 늘었다. 실손보험·운전자보험·상해보험 등 환급금이 적은 손해보험 상품보다 저축성·보장성보험이 목돈 마련에 더 적합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빚투’(빚내서 주식 투자)를 우려한 금융당국이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은 물론 카드론, 보험계약대출(약관대출) 등의 총량을 조인 것도 보험 해약 급증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건강과 노후를 떠받치던 보험을 해지해 투자 자산으로 옮기는 흐름은 긍정적으로 보긴 어렵다. 연금보험·저축보험·변액보험 등 저축성 보험은 일정 부분 투자 대체 성격이 있지만, 암보험·종신보험·질병보험 같은 보장성보험은 다르다. 해지하는 순간부터 곧바로 보장 공백이 발생하고, 이는 개인의 의료비 부담 증가, 공적 의료체계나 가족 부양 부담으로 전가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고령이거나 병력이 생긴 이후에는 재가입 자체가 어렵고, 다시 가입하더라도 보험료가 급등할 수 있다.
성주호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는 “주식시장이 계속해서 좋다면 상관없겠지만, 주가 변동성이 크고 글로벌 투기 움직임도 우려되는 상황에서 사회적 안전망의 최후 보루인 보험을 투자 자산으로 전환하는 데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며 “보장 자산을 투자 자산으로 전환할 때 리스크는 사회적 취약계층이 더욱 큰 만큼 제도적 보완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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