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간호사 53% 재퇴사, ‘일할 수 있는 환경’ 절실

의료 현장의 인력 부족은 더 이상 ‘공급의 문제’로 설명할 수 없다. 문제의 본질은 비정상적인 인력 유출 구조에 있다. 2024년 기준으로 간호사 면허 소지자 중에 임상 현장을 떠나 있는 ‘유휴 간호사’는 20만 명을 넘었다. 전체 면허 소지자의 약 40%나 된다. 인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버티지 못하고 떠나는 구조가 고착된 것이다. 더 심각한 점은 어렵게 현장으로 복귀한 간호사들조차 절반 이상인 52.7%가 다시 떠나는 현실이다. 이는 현행 의료체계가 숙련 인력을 붙잡지 못하는 구조적 실패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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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병원 간호사 1인당 환자 30명
고강도 업무, 지탱 힘든 인력 구조
유연근무 도입, 임금체계 개편을
」

일각에서는 임금 문제를 원인으로 지목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업계 최고 수준의 처우를 제공하는 상급종합병원의 재퇴사율이 55.7%로 가장 높다는 사실은 이를 방증한다. 간호사들이 현장을 떠나는 이유는 돈이 아니라 감당할 수 없는 업무 강도와 이를 지탱하지 못하는 인력 구조에 있다.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는 상급종합병원이 9∼10명, 일반 병원은 30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반면 미국과 호주 등 선진국은 4∼7명 수준을 법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 격차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위험의 경계선’이다.
실제 병원 현장에서는 위험이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수도권의 한 종합병원 내과 병동에서는 야간 근무 간호사 2명이 40명 가까운 환자를 맡는 극한 상황이 반복된다. 어느 날 새벽에 고령 환자가 호흡 곤란을 호소했지만 동시에 다른 병실에서 낙상사고가 발생하면서 대응이 지연됐다. 결국 해당 환자는 상태가 급격히 악화한 뒤에야 집중 치료로 전환됐다. 담당 간호사는 “조금만 더 빨리 확인했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자책했지만,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중환자실 상황은 더 긴박하고 위태롭다. 한 대학병원에선 인력 공백 때문에 기준보다 많은 환자를 담당하던 간호사가 동시에 두 환자의 상태 변화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한 환자의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는 중에 다른 환자의 산소포화도 저하를 즉각 인지하지 못했다. 결국 의료진 전체가 긴급 대응에 투입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런 상황은 몇몇 특정 병원의 문제가 아니라 인력 기준이 무너진 구조에서 반복되는 예고된 위험이다.
지역사회 간호 분야 상황은 더 심각하다. 방문간호사의 80%가 퇴사하고, 요양시설도 60% 안팎의 높은 이탈률을 보인다. 유연한 근무를 기대하며 진입하지만, 낮게 책정된 수가와 불규칙한 일정, 고립된 노동이 현실이다. 한 방문간호사는 “하루에 여러 지역을 이동하며 고위험 환자를 혼자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는데 지원 체계는 거의 없다”고 고충을 토로한다.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24년 말 기준으로 20%를 넘어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대한민국 의료가 숙련 의료 인력의 희생과 헌신만으로 지탱하겠다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지속하기도 어렵다.
이처럼 ‘사람이 떠나는 구조’를 방치한 채 신규 인력만 충원하는 방식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다르지 않다. 이제는 ‘유입’이 아니라 ‘유지’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첫째, 간호사 1인당 환자 수의 법제화가 시급하다. 이는 노동 조건을 넘어 환자 안전을 지키는 최소한의 기준이다. 둘째, 생애주기별 선택형 유연근무제를 도입해 경력 단절을 줄이고 숙련 인력이 현장에 남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지역사회 간호 보상 체계를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 방문간호 수가를 현실화하고 안전 수당, 심리지원 체계 구축은 필수다. 넷째, 숙련도를 반영한 합리적 임금체계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 전문성과 책임이 정당하게 보상받을 때 직업의 지속 가능성이 확보된다.

유휴 간호사는 단순한 잠재 인력이 아니다. 훈련돼 있어서 즉시 투입 가능한 핵심 자원이다. 그런데도 이들이 돌아오지 못하고, 돌아와서도 다시 떠나는 현실은 현행 의료체계가 그 가치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어떻게 간호사를 더 뽑을 것인가’가 아니라 ‘왜 간호사가 떠날 수밖에 없는가’를 질문해야 한다. 간호사가 ‘버티는 직장’이 아니라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대한민국 의료를 살리는 출발점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신경림 대한간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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