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대신 잠 택하는 대한민국…‘슬리포노믹스’ [스페셜리포트]

정다운 매경이코노미 기자(jeongdw@mk.co.kr), 이채원 매경이코노미 기자(lee.chaeweon@mk.co.kr) 2026. 4. 22.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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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에선 직장인의 점심 러시가 시작될 시간이다. 그러나 어떤 이는 식사를 뒤로한 채 중심가에 위치한 TP타워 지하 1층 ‘아크앤북&적당카페’로 향한다. 서점 겸 카페인 이곳은 겉보기엔 여느 커피숍과 다를 바 없지만,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다섯 칸의 비밀스러운 공간이 보인다. 바로 ‘쪽잠 공간’이다. 계산대 직원에게 문의하면 이용금액을 결제하고 부스 한켠을 배정받는 식이다. 이날은 11시 30분이 채 되기 전에 자리가 마감됐다. 이곳 쪽잠 공간의 이용금액은 1시간에 1만원. 이용객에는 정해진 시간에 일어날 수 있도록 진동벨과 귀마개, 안마의자 리모컨이 든 키트가 제공된다. 부스 안에는 안마의자와 발 받침대, 슬리퍼, 담요가 준비돼 있다.

인근 회사에 근무하는 30대 직장인 A씨는 “출퇴근 시간이 길어 아침 일찍 일어나다 보니 점심시간을 활용해 낮잠을 잔다”며 “한 달에 5~6번은 이곳에 와 잠을 잔다”고 전했다. 칸막이로 분리된 공간 덕분에 주변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쉴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았다.

점심시간 풍경이 달라졌다. 식당 대신 수면 공간으로 향하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서울 여의도·강남 일대 수면 카페와 안마의자 매장은 오전 11시 40분이면 이미 만석이다. 영화관까지 낮잠 서비스를 도입하며 수요를 흡수하고 있다. 한 주에도 수차례씩 수면 공간을 이용하는 직장인이 적지 않다.

쪽잠 공간은 10년 전에도 유행했던 사업이다. 그러다 코로나19 팬데믹과 함께 한동안 주춤했는데, 최근 ‘쉼라운지’ ‘쉼스토리’ ‘나비잠 안마의자’ 등 체인점이 들어서면서 다시 활성화되는 추세다. 강남역 낮잠 공간 쉼스토리 이용료는 1시간당 8000원. 하지만 점심시간이 시작되면 이미 수면실 침대는 만실이다. 쉼스토리를 운영하는 정운모 씨(70)는 “점심시간에는 항상 낮잠을 자려는 직장인들로 가득 찬다”며 “한 달에도 몇 번씩 방문하는 단골들도 많다”고 답했다.

메가박스 강남점도 직장인 쪽잠족을 겨냥했다. 메가박스는 강남·구의이스트폴 지점에서 낮잠을 잘 수 있는 ‘메가쉼표’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백색소음이 나오는 리클라이너 상영관에서 최대 2시간 동안 잠을 잘 수 있다. 근처에서 근무한다는 직장인 B씨는 “회사에서 낮잠을 자는 건 눈치가 보여 편한 공간을 찾게 된다”며 “약속 없는 점심시간에 또 찾아올 듯하다”고 말했다.

수면 부족이 일상화되면서 수면 공간뿐 아니라 부족한 잠을 채우기 위한 소비가 시장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한국수면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수면 시장 규모는 2011년 4800억원에서 지난해 약 5조원으로 10배 이상 성장했다. 침대와 이불 등 침구류 중심이던 시장은 이제 수면 카페, 안마의자, 웨어러블 기기, 건강기능식품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여의도 TP타워 지하 1층에 위치한 ‘아크앤북&적당카페’ 안쪽에는 쪽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이채원 기자)
침구에서 시작된 수면 시장

‘잠들기까지 전 과정’ 시장으로

국내 수면 시장이 커지면서 기업 간 경쟁 구도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과거 침대·매트리스 중심이던 시장은 이제 수면 공간, 데이터, 생활 소비까지 아우르는 ‘수면 솔루션 산업’으로 확장됐다.

전통적인 축은 여전히 침대·매트리스 시장이다. 시몬스, 에이스침대, 씰리침대 등 기존 강자들은 프리미엄 전략과 기술 고도화로 시장 주도권 방어에 나섰다. 독립 수면 구조, 체형 맞춤 설계, 모션베드 등 기능 중심 경쟁이 치열하다. 수면의 질을 높이기 위한 기술력과 브랜드 신뢰도가 핵심 경쟁 요소다.

반면 후발 주자인 한샘, 신세계까사, 코웨이 등 토털 리빙 기업들은 매트리스 렌털, 패키지 할인, 체험형 매장 확대 등을 통해 진입 장벽을 낮추고 고객 접점을 넓힌다. 코웨이는 렌털 모델을 앞세워 초기 비용 부담을 줄이며 중저가 시장을 빠르게 파고드는가 하면, 신세계까사는 프리미엄 수면 브랜드 ‘마테라소(MATERASSO)’를 운영하는 식이다. 침대 단일 제품이 아닌 ‘수면 환경 패키지’를 판매하는 전략이다.

수면 공간을 파는 시장도 빠르게 성장 중이다. 수면 카페와 안마의자 매장, 영화관 낮잠 서비스가 대표 사례다. 이들은 침대가 아닌 ‘시간’을 판다. 30분에서 2시간 단위로 이용권을 판매하며, 직장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수요를 흡수한다. 리클라이너 좌석, 백색소음, 차단된 공간 등 ‘짧지만 깊은 휴식’을 제공하는 것이 경쟁 포인트다.

기술 기반 시장인 슬립테크도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웨어러블과 가전을 통해 심박수, 호흡, 체온, 수면 단계 등을 기반으로 개인 맞춤형 수면 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수면 관련 소비는 생활 영역으로도 번지고 있다. 29CM에 따르면 수면용품 거래액은 최근 최대 3배 증가했다. 수면 안대, 파자마, 암막커튼 등 제품뿐 아니라 차, 건강기능식품까지 수요가 확대되고 있다. 오늘의집, 올리브영 등 플랫폼들도 수면 관련 카테고리를 강화하며 ‘숙면 루틴’ 소비를 끌어들이고 있다.

올리브영은 올 초 웰니스 큐레이팅 플랫폼을 표방한 ‘올리브베러’ 매장을 서울 광화문과 강남에 각각 열었다. 여기서 ‘잘 쉬기(Relax Well)’ 코너를 마련해 수면 관련 상품을 집중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멜라토닌을 활용한 건강기능식품부터 잠옷, 수면안대, 아로마 용품, 차까지 수면 보조 상품을 폭넓게 구성했다. 올리브영에 따르면 지난 3월 한 달 멜라토닌 관련 상품 수는 전년 동기 대비 약 6배 증가했고, 온열안대와 아로마 등이 포함된 ‘릴랙스용품’ 카테고리 매출도 약 40% 늘었다. 올리브영 관계자는 “수면의 질을 극대화하려는 ‘슬립 맥싱’ 트렌드가 확산하면서 관련 상품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고 전했다.

강남 ‘쉼스토리’에는 침대를 포함해 다양한 수면 공간이 있다. 많은 직장인이 이 공간을 이용한다(위). 메가박스 강남점은 오후 12시~2시까지 ‘메가쉼표’ 이벤트를 진행한다. 이용객에게는 온열안대가 무료로 증정된다(아래). (윤관식, 이채원 기자)
‘만성피로’에 빠진 2030세대

건강 위해 수면용품 수집한다

과거 수면 시장은 중장년층 중심의 ‘건강 관리’ 영역에 가까웠다. 불면증 개선이나 노화 대응 수요가 핵심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양상이 달라졌다. 수면 부족이 일상화되면서 2030세대가 주요 소비층으로 빠르게 유입되고 있다. 낮잠 공간, 슬립테크 기기, 수면용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젊은 소비자 비중이 늘어나는 흐름이다.

2030세대가 슬리포노믹스 주요 소비층으로 떠오른 배경에는 만성적인 수면 부족이 있다. 한국은 ‘만성피로 사회’로 불릴 만큼 전반적인 피로도가 높다. 슬립테크 기업 에이슬립이 발표한 ‘2026 대한민국 수면 리포트’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 수면 시간은 5시간 25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수면 시간은 2021년 기준 8시간 27분으로, 격차가 크다. 2030세대 평일 평균 수면 시간도 5.9시간에 그친다.

대한수면연구학회 ‘2024년 한국인 수면 실태’ 보고서는 한국인이 늦은 취침으로 ‘만성 수면 결핍 상태’에 놓였다고 진단한다. 취침까지 걸리는 평균 시각은 0시 51분으로 미국(0시 24분), 아시아(0시 26분), 유럽(0시 27분)보다 30분가량 늦다.

직장인이 체감하는 수면 시간은 더 짧은 경우가 많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5월 한 달간 수면장애로 병원을 찾은 20~30대는 41만2000명으로 2년 전보다 32% 늘었다.

양광익 순천향대 천안병원 신경과 교수는 “2030세대는 사회 진출을 시작한 초기 연령대”라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스트레스, 본인이 맡은 일에 열중하고 성과를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시기”라고 전했다. 이어 “늦은 시간까지 업무·회식 등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이 수면 부족의 주된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불규칙한 생활 패턴도 수면 질을 떨어뜨린다. 한국인 평균 수면 효율은 82%로 권장 수준보다 8%포인트 낮고, 수면 중 각성 시간은 평균 39분이다. 깊은 잠이 들지 못하고 자주 깨는 ‘수면 파편화’ 현상이 나타난다.

잠들기 직전 전자기기 사용도 수면에 악영향을 끼친다. 여기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세대가 바로 20~30대다. 디지털에 친숙한 세대일수록 이른바 ‘디지털 불면증’을 겪는 것이다. 변정익 강동경희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잠이 들기 전 디지털 기기 빛에 노출되는 것은 멜라토닌 분비를 줄여 수면에 전혀 도움되지 않는다”며 “특히 디지털 기기를 많이 이용하는 것은 젊은 세대다 보니 그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면 부족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웰니스 열풍’도 수면 영역으로 확산했다. 변 교수는 “수면 부족은 우울 등 정서 문제와 삶의 질 저하로 이어진다”며 “수면 관리에 대한 관심이 커진 배경”이라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역시 “2030세대가 숙면을 취하는 것을 자기 계발에 도움이 된다고 인식한다”며 “그러다 보니 관련 용품에 과감하게 투자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20~30대의 경우 장비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소비 성향이 시장 확대에 불을 지폈다. 수면 관련 상품이 다양해지면서 ‘수집형 소비’가 나타났다. 수면 관련 용품을 수집하듯 구매하면서 시장이 커졌다는 의미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20~30대는 어떠한 활동을 할 때 최대한의 효율을 내기 위해 다양한 제품을 많이 갖추려 하는 세대”라며 “러닝 문화가 확산하자 운동화, 러닝 조끼, 모자 등 관련 용품을 연이어 소비하는 습관을 보였던 것과 비슷한 사례”라고 답했다.

‘올리브베러’ 광화문점 ‘잘 쉬기(Relax Well)’ 코너에서는 잠옷·수면안대·건강보조식품 등 수면 관련 상품을 집중적으로 판매한다. (CJ올리브영 제공)
슬리포노믹스 전망은 ‘매우 밝음’

상업화 경계·사회적 노력 동반돼야

전문가들은 슬리포노믹스 시장이 일시적 유행을 넘어 지속 성장할 것으로 본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수면은 삶과 밀접하지만 그동안 과소평가됐다”며 “산업 육성은 국민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김덕파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현재 슬리포노믹스 시장이 기존 제품들을 한 단계 발전시킨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며 “숙면은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 중 하나이기 때문에 관련 기술·산업은 계속해서 고도화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는 “최근 다양한 분야 기업들이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며 “여러 기업이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 개발을 목표로 합동 플랫폼을 형성하는 움직임이 확대 중”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슬리포노믹스 산업이 건강에 직결된 영역인 만큼 불확실한 정보나 제품을 제공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변정익 교수는 “슬립테크는 의료 전문성이 명확하지 않은 영역이 많고, 의학적 검증과 전문가 연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양광익 교수도 “보조제·영양제의 부작용과 안전성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사회적으로도 숙면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곽금주 교수는 “전체적으로 지나친 경쟁이나 스트레스에 대한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며 “기업 차원에서도 휴식 공간을 마련하거나 탄력근무제를 시행해 수면 시간을 보완하려는 노력도 동반돼야 한다”고 전했다.

인터뷰 | 신원철 대한수면연구학회장
“ ‘꿀잠’ 위해선 생체리듬 안정·디지털 디톡스 필수”
신원철 대한수면학회장 제공
잠이 곧 보약이라는 말은 오래된 격언이다. 그만큼 수면의 중요성은 오래전부터 강조돼왔다. 최근 슬리포노믹스가 주목받는 배경이기도 하다. 수면의학 전문가 신원철 대한수면연구학회장(강동경희대병원 신경과 교수)을 만나 수면 실태와 개선 방법을 들었다. 신 회장은 구독자 10만명이 넘는 유튜브 채널 ‘SLEEP Dr. 신원철 꿀잠튜브’도 운영 중이다. 그에게 한국인들의 수면 실태와 개선 방법을 들어봤다.

Q. 의료 전문가로서 슬리포노믹스 현상과 전망에 대해 평가한다면.

A. 수면이 ‘건강 인프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다만 의료계에서는 ‘보조’와 ‘치료’를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수면 환경 개선 중심의 슬리포노믹스는 보조 역할은 할 수 있지만, 불면증·수면무호흡증 같은 수면장애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수면의 진단·치료 연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산업이 발전해야 한다. 소비자가 스스로 수면 문제를 인지하고 제품을 구매하는 단계에서 더 나아가 적절한 시점에 전문 진료로 연결되는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

Q. 진료 현장에서 포착한 2030세대의 특징적인 수면 문제는.

A. 20대 후반 직장인들은 자신의 수면 패턴을 ‘야행성’이라고 진단한다. 이들 상당수는 실제로 수면위상지연장애(DSPD), 즉 생체시계가 일반인보다 2~4시간 늦게 맞춰진 상태다. 새벽 2~3시가 돼야 잠이 오고 오전 10~11시에 깨는 생체리듬인데, 사회생활을 위해 억지로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는 것이다. 실제로 멜라토닌 분비 시점도 일반인보다 몇 시간 늦다.

Q. 수면 부족이 지속될 경우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A. 직장인 관점에서 특히 큰 영향은 의사결정 능력 저하다. 수면 6시간 이하 상태가 2주 이상 이어지면 인지 기능이 24시간 깨어 있는 수준으로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대사 건강도 악화한다. 수면 부족은 식욕 조절 호르몬을 교란해 체중 증가와 혈당 불안정을 유발한다. 자율신경계 불균형도 초래해 고혈압·당뇨·우울증 위험을 높인다. 아무리 열심히 운동하고 식단을 관리해도 제대로 잠자지 못하면 대사 건강을 유지하기 어렵다.

Q. 바쁜 직장인도 실천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면 개선 방법은.

A. 기상 시간을 고정해야 한다. 주말에도 기상 시간을 평일과 같게 맞추면 생체시계가 안정돼 취침 시간도 자연스럽게 앞당겨진다. 이는 수면의학에서 가장 효과가 검증된 단일 행동 변화다.

잠들기 1시간 전에는 스마트폰을 멀리해야 한다. 이것이 어렵다면 최소한 밝기를 가장 낮게 설정하고 황색 필터를 켜 멜라토닌이 제대로 분비되도록 해야 한다. 오후 2시 이후에는 카페인을 줄이고, 낮에 15분가량 햇볕을 쬐는 것도 숙면에 효과적이다.

점심시간 ‘쪽잠’ 직접 자보니
도심 속 휴식 공간…직장인도 낮잠이 필요하다
사진 : 윤관식 기자
지난 4월 14일 낮, 점심도 거른 채 강남 한복판에 있는 ‘쉼스토리’에 도착했다.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이 주로 찾는 수면 공간에서 ‘낮잠 타임’을 체험해보기 위해서다. 원래라면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 줄을 서 있을 시간이다. 이들을 지나쳐 잠을 자러 간다는 게 어색했다. 평소 낮잠을 거의 자지 않는 편이라 낯설었다. 그러나 이내 피곤함이 몰려왔다. 전날도 새벽 1시가 다 돼서야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이다. 수면 시간은 5시간 30분이 채 안 된다.

입구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느껴지는 건 편안한 음악이다. 카페 특유의 소음 대신 낮은 조도의 조명과 잔잔한 음악이 공간을 채운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잠을 보충하려는 이용객을 위한 배려다.

직원이 간단한 이용 방법을 설명했다. 이용 장소에 따라 요금이 다르고 기본 이용 시간은 1시간이다. 30분 단위로 요금이 추가된다. 두 다리를 뻗고 누울 수 있는 수면석을 선택했다. 이용 요금은 1시간에 8000원, 음료는 무료로 제공된다. 물가를 고려하면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이다.

수면실에는 침대 9개가 있다. 기자가 배정받은 것은 9번 침대다. 마지막 남은 자리를 운 좋게 얻었다. 커튼을 열자 작은 1인용 공간이 나타났다. 안에는 침대와 담요, 온열매트가 갖춰져 있다. 숙면을 위한 소음 차단 헤드폰과 귀마개도 준비돼 있다. 삭막한 도시 속에서 발견한 한 줄기 오아시스 같았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자 온몸에 힘이 풀렸다. 평소라면 스마트폰을 먼저 들여다봤겠지만, 이곳에서는 화면을 껐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의식이 흐려졌다. 수면 부족 탓인지 빠르게 잠이 들었다. 온열매트 덕에 몸도 한층 이완됐다. 한 시간이 지나 진동 알람이 울려 잠에서 깼다. 머리가 맑아진 느낌이다. 카페인을 마셔도 풀리지 않던 몽롱함이 사라지고 집중력이 돌아왔다. 짧은 시간이지만 머리를 리셋한 기분이다. 침대에서 일어나 담요를 정리하는 사이 다른 칸에서도 알람이 울렸다. 서로 말을 나누진 않았지만 같은 이유로 이곳을 찾았다는 은근한 공감대가 느껴졌다.

밖으로 나오자 다시 시끌벅적한 강남 거리가 펼쳐졌다. 그러나 몸 상태는 달랐다. 한 시간 전과 같은 거리인데도 발걸음이 가벼웠다. 이 기운으로 오후 일과를 버틸 힘이 생겼다. 바쁜 직장인에게 커피 대신 낮잠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정다운 기자 jeong.dawoon@mk.co.kr, 이채원 기자 lee.chaewe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56호(2026.04.20~04.2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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