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란 사이 신뢰는 제로”… 美 스스로 좁혀버린 협상의 길
‘오바마 지우기’로 핵 협상 목표↑
온건파 참수로 대화 창구도 막혀

미국과 이란의 2차 종전 협상 무산은 미국이 어느 정도 자초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협상 도중 거듭된 군사행동으로 이란의 신뢰를 상실한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전보다 더 나은 핵 협상을 공언하면서 해법을 찾기 쉽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이란 수뇌부에 대한 참수작전으로 협상에 무게를 두는 이들과의 소통이 어려워진 결과이기도 하다.
협상의 걸림돌 중 하나는 양국의 상호 불신이다. 미국은 지난해 6월 ‘미드나잇 해머’(한밤의 망치) 작전을 감행해 이란의 핵 시설 3곳을 공습했다. 당시 기습 타격은 “향후 2주 내 이란 공격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예고한 지 이틀 만에 이뤄졌다. 지난 2월 28일 개전 첫날 이란 수뇌부가 대거 사망한 이번 전쟁도 협상 도중 시작됐다. 카림 사자드푸르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은 2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미국과 이란 간 신뢰는 항상 낮았지만 지금은 완전히 사라졌다”며 “이란은 미국이 언제든, 심지어 협상 중에도 공격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전임 민주당 정부보다 진전된 핵 합의를 이루겠다는 트럼프의 목표설정도 협상의 발목을 잡고 있다. 트럼프는 2015년 오바마 행정부가 체결한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역대 최악의 거래”라며 비판해 왔다. 그는 이란과 2차 휴전 협상 물밑 논의를 진행 중이던 지난 20일 트루스소셜에 “우리가 이란과 추진 중인 합의는 버락 후세인 오바마와 ‘슬리피(졸린)’ 조 바이든이 체결한 이란 핵 합의로 불리는 JCPOA보다 훨씬 좋을 것”이라고 강조하는 등 오바마보다 나은 합의를 반복해서 강조해 왔다.
결국 미국은 이번 협상에서 JCPOA 에 담겼던 우라늄 농축 수준 제한과 우라늄 비축량 제한을 넘어 이란의 영구적 핵 포기 수준을 달성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핵 농축 최대 5년 중단을 제안하고 저농축 우라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이란이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중동연구소의 알렉스 바탄카 선임연구원은 블룸버그에 “트럼프 대통령이 스스로 궁지에 몰아넣은 셈”이라며 “그는 이란 측에 점점 더 큰 소리로 소리치는 것이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 전략적 실수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숙청으로 이란 지도부 내 온건파가 사라지며 대화할 상대마저 줄었다. 대표적 협상파로 꼽혔던 알리 라리자니 전 최고국가안보회의(SNSC) 사무총장은 지난달 17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숨졌다. 이후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출신으로 강경파로 분류되던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회 의장이 실권자로 떠올랐다.
이후 지도부 내 강경파 목소리가 더욱 커져 한때 강경파로 분류됐던 갈리바프 의장은 현시점 협상파로 분류되는 상황이 됐다. 강경파 중에서도 급진주의자로 꼽히는 아흐마드 바히디 IRGC 총사령관에 비하면 대화 의지가 있다는 평가다. 다만 이란 지도부 내 판세는 바히디 총사령관에게 기운 것으로 알려졌다.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모즈타바 하메네이보다 바히디 총사령관이 최종결정권자에 가깝다는 분석도 있다. 이스라엘 국가안보연구소의 이란 전문가 베니 사브티는 폭스뉴스에 “바히디가 갈리바프 의장이나 심지어 모즈타바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을 수 있다”며 “설령 그들이 서로 협력하고 있더라도 현재로서는 그(바히디)가 더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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