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난 곰, 긴장한 일본… ‘어반베어’의 때이른 귀환[이세계도쿄]
마당·등굣길·산책로 등 거침없이 등장
충돌사고 빈발… 농작물·식량 피해도
기온 상승·이른 해빙에 활동 앞당겨져
“도시 인근 월동↑… 잠 깨면 마을로”

지난 21일 오전 10시쯤 일본 이와테현 시와초 산간마을의 계곡에서 실종자를 수색하던 남성 경찰관이 곰의 습격을 받아 다쳤다고 지역 민영 IBC이와테방송이 보도했다. 경찰관은 얼굴과 팔을 물려 10여㎞ 떨어진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송 당시 의식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곰은 포획·사살됐다.
이날 일로 올해 이와테현에서 곰에 당한 사람은 3명으로 늘었다. 당시 주변에는 여러 명의 경찰관이 실종자 수색에 투입돼 있었다고 한다. 이와테는 그렇지 않아도 ‘곰 트라우마’가 큰 지역이다. 지난해 곰에 습격당해 숨지거나 다친 사람이 40명으로 사상 최다였다. 주택 거실에 있던 여성과 노천탕을 청소 중인 직원이 각각 곰에 공격당한 사례는 전국을 충격에 빠뜨렸다.
지난해 일본을 공포에 떨게 한 곰 출몰 이슈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 봄을 맞아 동면에서 깨어난 곰들이 산림을 벗어나 주택가와 도심까지 내려오는 ‘어반베어’ 현상이 올해도 두드러진다. 곰은 열도 각지에서 민가와 논밭, 자동차 도로와 하천 산책로, 학교·병원 주변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고 있다. 활동 시기는 예년보다 당겨졌다. 지방자치단체들은 때이른 곰의 귀환에 조기 경보를 발령하고 총기 규제를 완화하는 등 긴급 대응에 나섰다.

곰은 출동한 경찰과 시 관계자, 시 의뢰를 받고 온 사냥꾼 등과 10시간 넘게 대치했다. 시는 예외적 총기 사용 허가인 ‘긴급 총렵’을 발령했다. 그대로 둘 경우 주민 피해 우려가 크다고 판단했다. 마취총으로 제압한 뒤 오후 7시30분쯤 전기창으로 처리. 처음 목격된 지 14시간여 만이었다.
이 사건 직후에도 센다이 일대에서는 재차 곰이 목격됐다. 21일 새벽 1시20분쯤 미야기노구 JR히가시센다이역 인근 주택가에서는 몸길이 약 1m 곰 1마리가 도로를 달려 숲으로 들어갔다. 주변에는 초·중학교가 있었다. 19일 밤에는 센다이 인근 고속도로에서 곰이 경차와 충돌해 즉사했다.
일본에서 곰이 가장 많이 목격되는 지역은 미야기·이와테 등 혼슈 동북부 6개현을 아우르는 도호쿠 지방이다. 사과로 유명한 아오모리, 토종 대형견 아키타견의 고장 아키타, 체리(사쿠란보) 산지로 잘 알려진 야마가타, 2011년 대지진 당시 쓰나미 피해를 크게 입은 후쿠시마가 도호쿠에 속한다.
이 지역은 숲 면적이 넓으면서 도시가 산에서 가깝다는 특징 때문에 먹이를 찾아 나선 곰이 사람과 맞닥뜨리기 쉽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농지나 마을 관리가 느슨해진 탓에 야생동물 활동 범위가 확대된 측면도 있다.
미야기와 아키타는 현 전역에 ‘곰 출몰 경보’를 발령했다. 각각 역대 가장 이른 경보다. 곰 출몰 건수가 급증했다는 의미다. 아키타는 이달 1~14일 곰 목격 건수가 75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배 증가했다. 이 지역은 지난해 곰에 의한 인명 피해자가 67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미야기는 19일 기준 이달 목격 건수가 48건으로 경보 발령 요건인 과거 5년 같은 달 평균의 1.5배(44건)를 넘겼다. 가장 많은 12건이 센다이에서 보고됐다. 곰 출몰 경보가 4월에 발령되기는 처음이라고 미야기현은 설명했다.

지난 19일 새벽 0시53분쯤 홋카이도 삿포로시 주오구 주택가에서는 몸길이 약 2m 정도로 추정되는 성체 불곰이 목격됐다. 인근 주민이 집 안에서 창밖을 내다보다 우연히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주민과 곰의 거리는 약 10m였다. 곰은 목격 직후 산림 방향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같은 주오구에서는 지난 14일 오전 5시50분쯤 병원 직원이 창밖을 보던 중 약 20m 떨어진 산기슭에서 곰을 발견하기도 했다. 몸길이가 약 2m에 달했다고 한다. 곰은 산의 사면을 따라 북쪽으로 천천히 이동하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약 100m 거리에 초등학교가 있었다.
같은 날 오후 7시쯤 시로이시구 하천부지에서는 개를 산책시키던 여성이 곰으로 추정되는 동물이 다가오는 것을 발견하고 인근 자택으로 피했다.
홋카이도 동부 어촌 앗케시정에서는 지난 17일 아침 출근하려고 집을 나서던 주민이 마당에서 사슴 사체를 발견했다. 조사 결과 사슴 사체는 배 부위가 곰에게 파헤쳐져 먹힌 흔적이 뚜렷했다. 근처에서는 곰 배설물이 함께 발견됐다. 경찰과 지자체는 곰이 먹이를 찾아 다시 나타나거나 인근에 잠복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나가노에서는 지난해 주거 지역에서 보고된 곰 목격 정보가 1324건이었다. 사람이 습격당한 사례는 11건. 16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혼슈 중앙 내륙 산간 지역으로 알프스 산맥에 둘러싸인 나가노는 대표적인 곰 서식지다. 이 지역 공식 관광 마스코트 ‘알쿠마’가 빨간 사과 모자를 쓴 초록색 곰이다. 나가노에는 현재 약 5730마리의 반달가슴곰이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나가노를 비롯한 주부 지방은 도호쿠 못지않게 곰과 인간의 생활권이 겹치는 영역이 많다. 올해는 눈이 빨리 녹으면서 곰 활동이 더 활발해진 모습이다.
쌀이 유명한 니가타현도 최근 곰 출몰 신고가 급증했다. 이달 보고된 사례만 90건에 달한다. 나가오카시 민가 근처에서는 지난 19일 새끼 곰과 몸길이 1.2m 성체 곰이 잇따라 목격됐다. 앞서 15일에는 이 지역 하천 인근 제방에 설치된 함정에 곰이 걸려 포획됐다. 20일 오전에는 니가타현 조에쓰시 구간 고속도로를 달리던 차량이 도로를 횡단하던 1m 크기 곰과 충돌했다.
니가타현 다이나이시는 지난해 11월 발생한 등산객 사망 사고 영향으로 특정 등산로를 올해 11월까지 전면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발견된 등산객 시신에서는 곰에 물린 것으로 보이는 상처가 확인됐다. 이토이가와시는 곰의 은신처를 없애기 위해 하천변 수목 벌채 작업을 시작했다.
역시 주부 지방인 도야마현에서는 지난 13, 14일 오사와노 지역 주택단지와 어린이집 인근에서 이틀 연속 새끼곰이 나타나 경찰이 경계를 강화했다. 경찰은 방재 무선을 통해 외출 자제를 요청했다. 각각 후지산 경관으로 유명한 야마나시현과 시즈오카현 등 다른 주부 지역에서도 이달 곰이 목격됐다.

간토는 인구 밀집 지역인 만큼 곰 출몰 피해 위험이 크다. 이 때문에 당국은 간토를 집중 관리 지역으로 지정해 대응하고 있다.일본 정부는 2030년까지의 간토 지역 목표 곰 개체수를 2000마리로 설정한 상태다.
간토 지역 지자체들은 곰이 시가지로 침입하는 상황에 대비해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가나가와현 하다노시는 수도권 최초로 주택가 곰 출몰을 상정한 긴급 총렵 훈련을 실시했다. 이바라키현은 반달가슴곰 관리 계획을 개정해 시가지에 나타난 곰을 지자체 판단으로 즉시 사살할 수 있도록 했다.
시마네현, 오카야마현, 야마구치현 등 서일본 지역에서도 최근 곰 목격 신고와 대응 훈련이 잇따르고 있다. 도호쿠나 홋카이도에 비하면 곰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지만 최근 시마네와 오카야마를 중심으로 사람의 생활권 근처에 곰이 출현하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 이들 지자체는 곰과 마주쳤을 때의 대응법 교육과 폭죽을 이용한 퇴치 등으로 대응 중이다.
현재 일본에서 곰 출몰 공포로부터 자유로운 지역은 규슈와 오키나와 정도다. 후쿠오카·나가사키·구마모토 등이 속한 규슈는 일본 정부의 곰 피해·신고 집계 대상에서 아예 빠져 있다. 구마모토의 마스코트가 볼 빨간 흑곰인 ‘구마몬’이지만 정작 규슈는 2012년 반달가슴곰 멸종을 선언했다.

지난 10일 새벽 0시30분쯤 이와테현 모리오카시에서는 곰이 주택 창고에 들어가 보관 중이던 사과를 먹어버렸다. 18일 오후 홋카이도 시모카와정에서는 2m 크기의 곰이 사료용 옥수수밭에서 발견됐다. 곰 출현에 대비해 순찰 중이던 마을 사무소 직원이 확인했다. 차량 경적을 울려 쫓아냈다고 한다.
주택가 등에서 배를 채워 본 곰이 늘어나는 것도 시가지 곰 출몰 증가 요인으로 꼽힌다. 한 번이라도 민가 주변에서 농작물이나 음식물 쓰레기 등을 먹어본 곰은 계속해서 사람의 거주지 근처에 머물거나 다시 찾아오게 된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일종의 학습 효과가 누적되고 있다는 얘기다.
산림생태학자인 가미야 도모히코 니가타대 명예교수는 지난 20일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도토리를 먹는 데 익숙한 개체는 숲에 머물겠지만 사람 사는 곳에서 먹이를 확보하는 법을 배워버린 곰은 계속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눈에 띄는 특징은 곰의 활동 재개 시기가 예년보다 이르다는 점이다. 올해 2~3월 평균 기온이 예년보다 높게 형성되면서 곰들이 겨울잠에서 일찍 깨어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적설량이 많은 도호쿠·홋카이도·나가노·니가타 등지에서는 예년보다 빠른 해빙이 진행된 것으로 관측된다.
최근에는 곰들이 시가지 주변에서 겨울을 보내는 경향도 보이는 것으로 분석된다. 산 깊은 곳이 아니라 도심 인근 숲에서 월동을 하면서 잠에서 깨자마자 곧바로 주택가나 아파트 단지에 나타나는 사례가 빈번해졌다는 설명이다.
일본 반달가슴곰 연구소 관계자는 시가지에 출몰하는 곰에 대해 “굳이 산 깊은 곳에서 내려올 시기가 아니다”라며 “도시 지역에서 겨울을 나며 성장한 ‘어반 베어’일 가능성이 높다”고 후쿠시마TV에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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