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희-전종서가 내뱉는 욕설, 꼭 이래야 했을까?
[박재우 기자]
배우 한소희와 전종서. 이 두 이름의 조합만으로도 2026년 초 극장가는 뜨거웠다. 이환 감독의 <프로젝트 Y>는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 두 여성의 질주를 담아내며 감각적인 영상미를 뽐낸다. 그러나 스크린이 꺼진 뒤 남는 잔상은 공허하다. 80억 금괴를 향한 그녀들의 질주가 왜 이토록 허전하게 느껴지는지, 그 속사정을 들여다봐야 한다.
이환 감독의 전작 <박화영>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이번 작품에서 기묘한 이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전작에서 인물들이 뱉어내던 욕설은 세상의 무관심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비명'이었다. 그 거친 말 한마디에는 아이들의 멍든 속살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욕설은 서사의 장식이 아니라 인물과 삶, 그 자체였다.
<프로젝트 Y>의 욕설은 결이 다르다. 미선(한소희 분)과 도경(전종서 분)이 내뱉는 거친 말들은 인물의 처절한 실존에서 기인하기보다 하나의 캐릭터 코드처럼 기능한다. '강한 여자'라는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호출되는 언어들은 내면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채 표면을 떠돈다. 그 결과 욕설은 인물의 매력을 강화하기보다 피로감을 안긴다. 언어가 캐릭터에서 분리될 때, 관객은 인물에 감정 이입하는 대신 그저 '구경'하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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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프로젝트 Y> 스틸컷 |
|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
한국 여성 누아르의 수작 <차이나타운>(2015)은 보스에게 '엄마'라는 호칭을 부여하며 여성 특유의 비정한 위계와 생존 논리를 새롭게 구축했다. 그 영화에서 주인공이 여성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서사의 모든 층위에 새겨져 있었다. 반면 <프로젝트 Y>는 주인공을 남성으로 대체해도 서사의 본질이 흔들리지 않는 범죄 액션의 문법을 그대로 따른다. 두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사실은 서사의 조건이 아니라 캐스팅의 선택으로만 남는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왜 여성이어야만 하느냐는 질문에 영화는 끝내 답하지 못한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는 빌런 캐릭터인 '황소(정영주 분)'에게서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황소는 조직의 해결사이자 토사장(김성철 분)의 오른팔로, 삭발에 가까운 파격적인 비주얼과 압도적인 힘을 과시한다. 그녀는 거침없는 폭력을 행사하며 주인공들을 위협하는 강력한 벽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황소라는 인물을 뜯어보면, 누아르 장르의 전형적인 '힘세고 싸움 잘하는 남성 행동대장' 공식을 성별만 바꿔 그대로 가져온 것에 불과하다. 만약 황소를 '남성 행동대장'으로 바꾸고, 두 주인공을 '힘없는 남성'으로 바꾼다면 이야기에 어떤 균열이 생길까? 놀랍게도 아무런 위화감이 없다. '여자가 다 한다'는 식의 홍보 수사를 완성하기 위해 기존 누아르의 상투적인 인물 배치 위에 여성 배우들을 끼워 맞춘 인상이 짙다. 이는 장르의 전복이 아니라 단순한 성별의 치환이며, 여성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활용하기보다 도구적으로 소비하는 데 그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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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프로젝트 Y> 스틸컷 |
|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
그러나 여기서 가장 뼈아픈 균열이 발생한다. 가영이 두 딸을 마주하며 짓는 기이한 미소는 배우 김신록의 연기력 덕분에 찰나의 공포와 긴장을 선사한다. 하지만 정작 그 미소가 어떤 삶의 궤적과 상처에서 기인했는지 영화는 끝내 설명하지 않는다. 세 인물 사이에는 분명 복잡한 욕망의 그물망이 존재하지만, 영화는 그 그물망을 끝까지 당기지 않는다.
배우의 연기가 서사의 빈칸을 메우려 안간힘을 쓸수록 영화의 구조적 결함은 역설적으로 더욱 도드라진다. 가영의 냉혹함이 인물의 내면에서 충분히 소화되지 않은 채 서사의 편의에 따라 소비되면서 그녀는 입체적인 인물이 아닌 극의 파국을 위해 소환된 장치로 전락하고 만다.
스타일과 서사 사이의 간극
<프로젝트 Y>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영화가 가장 공을 들인 곳에서 가장 큰 소외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젖은 아스팔트 위로 번지는 네온, 두 배우의 몸이 만들어내는 긴장감 넘치는 미장센은 탁월하다. 그러나 스타일이 서사를 앞질러 달릴 때, 관객의 눈은 열리지만 마음은 닫힌다.
영화를 보는 동안 '멋있다'는 감각과 '이것이 왜 중요한가'라는 질문 사이에서 관객은 길을 잃는다. <박화영>에서 보여준 힘은 인물의 실존이 화면을 뚫고 나오는 것이었다. <프로젝트 Y>에서 화면은 아름답지만, 그것을 뚫고 나오는 실존의 무게는 느껴지지 않는다.
<프로젝트 Y>는 한국 영화계에서 보기 드문 여성 투톱 장르 영화라는 점만으로도 상징적인 자리를 차지한다. 한소희와 전종서라는 두 배우가 스크린에서 충돌하는 광경은 그 자체로 파괴력이 있고, 이 영화가 열어젖힌 시장의 가능성은 실재한다. 여성 장르 영화에 대한 관객의 갈증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 그것만큼은 <프로젝트 Y>가 증명한 성과다.
그러나 이 영화는 동시에 이미지만으로 서사의 빈곤을 가릴 수 없다는 교훈을 남긴다. 진짜 '걸크러시'는 거친 입담이나 쉴 새 없이 내뿜는 담배 연기 속에 있지 않다. 인물의 선택이 '이 사람만이 이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는 필연적인 납득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관객은 인물과 함께 달린다. 그 가능성이 다음에는 서사로 완성되기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브런치(@4indie)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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