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넣어두자, BTS의 컴백을 진정으로 즐기는법
[김영실 기자]
나는 취미가 많은 사람이다. 필사도 하고, 문구류를 좋아하고, 식물을 키우고, 건강관리와 사진에도 마음을 쏟는다. 그러다 보니 여러 오픈채팅방에 들어가게 된다. 어떤 방은 조용하고 어떤 방은 활발하다. 그런데 어떤 방에는 유난히 부지런한 운영진이 있다. 그들은 챌린지를 만들고, 인증 이벤트를 열고, 참여를 독려한다. 처음에는 그런 열의가 고맙다. 적막하던 공간에 온기가 돌고, 혼자 하던 일이 함께하는 일이 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문제는 바로 그다음부터다. 자유롭게 드나들던 공간에 조금씩 리듬이 생기고, 그 리듬은 어느 순간 암묵적인 규칙처럼 작동한다. 인증 사진이 올라오고, 수행 목록이 쌓이고, 성실하게 따라가는 사람들의 이름이 반복해서 눈에 들어오면, 나는 어느새 취미를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취미 생활의 성실함을 증명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나는 이런 순간마다 비슷한 질문 앞에 선다. 좋아하는 마음은 어디까지 자발적이고, 어디서부터 타인을 압박하는 규율이 되는가. 강요는 대개 노골적인 명령의 형태로 오지 않는다. 오히려 함께하면 좋겠다는 말, 분위기를 살리기 위한 제안, 모두를 위한 이벤트라는 이름으로 더 부드럽게 스며든다. 그래서 더 거절하기 어렵다. 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피로를 느낀다.
방탄소년단의 월드투어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그 익숙한 감각을 다시 떠올렸다. 여느 팬덤이나 그렇듯 공연과 컴백의 시기에는 가장 열성적인 움직임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어떤 이들은 음원 플랫폼에서 곡을 반복 재생하고 다운로드하며 순위를 올리는 데 힘을 보탠다. 어떤 이들은 공연을 앞두고 소속사가 올린 응원법을 숙지하며, 어느 순간에 어떤 목소리로 함께 호흡할지를 미리 익힌다. 팬들은 단지 무대를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무대의 일부가 되기 위해 준비한다. 나 또한 내 상황과 역량 안에서 음원을 듣고, 응원법을 살펴보며 그 일부가 된다.
나는 그 풍경의 아름다움을 안다. 한 대상을 향한 애정이 이토록 정교한 실천으로 조직될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 경이롭다. 하지만 나는 그 아름다움을 오래 바라볼수록, 그 안에 섞여 있는 다른 감정도 함께 보게 된다. 처음에는 사랑이었던 것이 어느 순간 의무가 되는 장면, 자발적인 참여였던 것이 점차 성실함의 기준으로 바뀌는 장면 말이다. 문제는 그 행동들이 어느 순간 '진짜 팬이라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처럼 여겨질 때 생긴다. 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 같고, 빠지면 미안해지고, 충분히 하지 못하면 어딘가 부족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마음. 바로 그때 좋아함은 조용히 성실함의 시험으로 바뀐다.
생각이 여기까지 닿던 중, 쓰레드의 한 포스팅에 눈이 머물렀다. 같은 공연을 보러 가는 사람들끼리 긴 시간을 함께 이동하는 그 좁은 공간에서, 누군가 다른 사람이 스밍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어깨너머로 휴대전화 화면을 들여다봤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 대목에서 불편함을 넘어 섬뜩함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공연을 향해 들뜬 마음으로 함께 가는 길에서조차, 같은 아티스트를 사랑하는 팬이 동행이 아니라 점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뜻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 글에서 더 놀라웠던 것은 그 행동을 문제 삼는 댓글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 침범을 낯설어하지 않는 분위기, 타인의 사적인 화면을 들여다보는 일조차 팬심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 그때 나는 과열된 팬덤의 문제가 개인의 지나친 열정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침범에 대한 집단적 무감각에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과도한 팬덤을 생각할 때 나는 종종 BTS의 〈Pied Piper〉(2017년, Love Yourself 承, 'Her'에 수록)를 떠올린다. 이 곡은 피리 부는 사나이의 비유를 끌어와, 자신들의 콘텐츠에 빠져 책임을 미루는 팬들의 상태를 장난스럽지만 분명하게 비춘다. "조금만 더, 한 번만 더, 조금 더 가까이 오라"는 가사는 팬심을 설레이게 하고 유혹하지만, 동시에 "시험공부해", "뮤직비디오는 나중에 해석해"라며 팬들이 삶의 균형을 지키기를 노래한다.
반면 〈Fake Love〉(2018년, Love Yourself 轉 'Tear'에 수록)는 그 경계의 끝에서 맞닥뜨리는 내면을 보여주는 곡처럼 느껴진다. 이 노래는 "널 위해서라면"이라는 말이 어떻게 자기 상실로 기울 수 있는지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자신을 지우고, 상대가 좋아할 모습으로만 존재하려는 마음은 더 이상 건강한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어 BTS는 〈소우주〉(2019년, Map of the Soul: Persona에 수록)에서 "하나의 사람, 하나의 역사 / 하나의 사람, 하나의 별"이라고 노래한다. 이 곡은 우리 개개인이 고유한 하나의 별이자 자신만의 우주를 품은 존재라는 메시지이다. 한 사람을 하나의 우주로 바라본다는 것은, 그의 속도와 방식, 빛과 어둠까지도 고유한 것으로 존중하는 일일 것이다.
물론 팬덤은 사람을 연결한다. 같은 대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기쁨을 알아보고, 낯선 이들과도 깊은 유대감을 느끼게 만든다. 어떤 날에는 그것이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는 한 곡의 위로로 하루를 버티고, 누군가는 한 번의 공연으로 오래된 슬픔을 건너가며, 누군가는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마침내 자기 자리를 찾는다. 사랑이 사람을 살리는 방식은 분명히 존재한다.
어쩌면 건강한 팬심과 과열된 팬심의 경계는 행동의 종류에 있지 않은지도 모른다. 같은 스트리밍도, 응원법을 익히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즐거운 응원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벗어날 수 없는 의무일 수 있다. 그 행동을 할 때 내 마음은 어떠한가. 결국 그 경계는 행동 자체가 아니라, 그 행동을 떠받치고 있는 마음의 결일 것이다.
방탄은 사랑을 노래하는 그룹이다. 군백기를 거쳐 다시 완전체로 돌아오면서, 그들은 더 안전하고 익숙한 길 대신 자신들의 정체성을 전면에 세운 음반을 들고 나왔다. 그렇다면 그런 방탄에게 팬덤이 할 수 있는 진짜 사랑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미 충분히 자신들의 길을 걸어온 이들을 믿어주는 일에 가까울 것이다. 어떤 지표나 순위로 불안을 달래기보다, 그들이 왜 다시 이런 음악을 택했는지,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지키려 하는지를 들으려는 태도 말이다. 팬덤이 해야 할 일은 방탄이 자유롭게 노래하고 더 멀리 자랄 수 있도록, 넓은 신뢰로 그 곁을 지키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그 불안을 조금 놓아주었으면 한다. 어떤 지표나 순위가 아니어도, 응원법의 완벽함이 아니어도, 방탄소년단의 음악은 이미 많은 사람들의 삶 안에 충분히 깊이 도착해 있다. 그리고 이것은 팬덤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며 붙드는 많은 좋아함들, 관계들, 일들 역시 어느 순간 의무가 되곤 하니까. 그러니 각자의 삶에서도 한 번쯤은 물어보면 좋겠다. 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침범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지금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사랑은 나를 넓히고 있는가. 불안보다 기쁨이 더 큰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BTS의 음악을, 그리고 자기 삶의 좋아함을 지치지 않고 오래도록, 자유롭고 충만하게, 아낌없이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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