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갔다가 돌아섰다... 무인매장에 막힌 76세의 발걸음
[이온유 기자]
지난 19일 오후 2시, 강원도 춘천시의 한 24시간 프린트 무인매장 앞. 박아무개(76)씨가 잠시 멈춰 섰다. 매장 안에 들어갔다 나온 그는 다시 내부를 들여다보더니 이내 발길을 돌렸다.
"저기는 혼자 못 들어가요. 기계로 복사해야 한다는데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그는 10분을 더 걸어 직원이 있는 매장을 찾았다.
무인매장이 빠르게 늘고 있다. 2025년 말 기준, 전국 무인매장은 약 1만 2000개로, 3년 전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24시간 운영과 인건비 절감이라는 장점을 앞세워 동네 곳곳에 파고든 이 가게들은 노인들에게 또 다른 벽이 되고 있다. 키오스크 앞에서 당황해 그냥 나오거나 물건을 사지 못한 채 발길을 돌리는 일이 반복된다.
화면 앞에서 멈춰버리는 노인들
기자는 이날 박씨에게 무인매장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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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인물을 출력하는 컴퓨터 앞. 작은 글씨와 복잡한 화면 구성이 고령층의 접근을 어렵게 한다 |
| ⓒ 본인 |
무인매장의 키오스크는 노인들에게 특히 진입장벽이 높다. 글씨가 작고 화면 전환이 빠르며 실수했을 때 도움을 요청할 직원도 없다. 키오스크 앞에서 "내가 이용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뒤에 있는 사람이 눈치를 계속 줘요"라는 상황이 무인매장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문제는 노인들의 선택지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인건비 부담으로 일반 소매점이 문을 닫고, 그 자리를 무인매장이 채우는 흐름이 전국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노인 인구 비율이 높은 지방 소도시나 농촌 지역일수록 이 현상은 더 뚜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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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시간 프린트를 제공하는 무인매장 |
| ⓒ 본인 |
정부도 이 문제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5년 5월, 키오스크를 설치한 업장에 노인과 장애인을 도울 보조 인력 배치를 의무화하는 시행령을 시행했다. 보조 인력 대신 실시간 음성 안내나 보조 앱을 갖출 경우에도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인정하며, 위반 시 최대 24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규정이 무인매장에 실질적으로 적용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무인'을 내세우는 사업 모델에 보조 인력 배치를 강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소상공인의 부담을 이유로 시정 기간을 1년으로 두는 등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노인 복지 분야 사회복지사 정아무개(41)씨는 지난 20일 기자에게 제도의 한계를 이렇게 짚었다.
"어르신들이 키오스크를 못 쓰는 게 단순히 교육을 받으면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에요. 손 떨림이 있거나 눈이 나빠지면 아무리 배워도 힘들어요. 무인매장이 늘어나는 속도에 비해 대책이 너무 느립니다."
무인매장은 분명 많은 이에게 편리한 공간이다. 그러나 그 편리함이 모두에게 동등하게 열려 있지는 않다. 빠르게 확산되는 무인화의 물결 속에서 노인들은 점점 더 좁아지는 선택지 앞에 서 있다. 키오스크 화면 앞에서 멈춰 서거나 아예 발길을 돌리거나.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은 이미 현실이다. 2025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의 20%를 넘어섰다. 무인매장의 확산을 막을 수 없다면, 적어도 그 안에서 노인들이 소외되지 않을 방법을 지금보다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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