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먼저 퇴근할게요"...진짜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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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유림 기자]
하루를 일과 육아로 쪼개가며 매일 전전긍긍하는 동료. 그런 맞벌이 동료의 옆에서 자리를 지키며 야근하는 동료. 먼저 퇴근하는 발걸음의 무거움. 남아서 일하는 어깨의 무거움. 당신은 어느 쪽인가?
나는 오래도록 '그 구도 밖'에 있었다. 미혼이었을 때도, 결혼 후 아이가 없었을 때도, 맞벌이 동료를 의식하며 일해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 먼저 퇴근한 자리를 내가 지키고 있다는 생각에 어깨가 무거워진 적도, 육아휴직이 뜨거운 이슈로 느껴진 적도 없었다. 워킹맘을 부러워해본 적은 더더욱.
그게 지금으로부터 대략 10년 전이다. 저출생이 지금처럼 국가적 화두가 아니었던 시절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그 구도는 바뀌었다. 나도 그 한가운데로 들어왔고, 그제야 비로소 양쪽의 무게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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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옆 동료가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매일 나보다 2시간 먼저 퇴근한다면? 그걸 기꺼이 긍정할 수 있을까. |
| ⓒ pixabay |
두 시간표가 정확히 겹친다. 맞벌이 부모가 아이를 직접 등하원시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제3자가 개입하거나, 부모 중 누군가가 근무시간을 조정하지 않는 한.
이 물리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육아시간'이다.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루 최대 2시간의 근로시간 단축을 보장하는 이 제도는, 유급이라는 점에서 꽤 선진적인 정책이다. 예컨대 오전 9시 30분 출근, 오후 4시 30분 퇴근을 선택하면 아이의 등하원과 부모의 출퇴근이 현실적으로 맞물릴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최소한의 마지노선이다. 이 2시간이 없으면 일하는 부모가 아이를 직접 케어할 방법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그 물리적 불가능함이 지금 대한민국 초저출생 현실을 상당 부분 설명해준다. 그래서 최소한 공공에서부터 육아시간이라는 현실적 대안을 찾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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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맞벌이 부모가 아이를 직접 등하원시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
| ⓒ pixabay |
저출생이 사회적 문제인 건 안다. 아이를 낳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런데 내 옆 동료가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매일 나보다 2시간 먼저 퇴근한다면? 그걸 기꺼이 긍정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선뜻 "그럼요"라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육아시간을 쓰는 쪽도 이 긴장을 모르지 않는다. 주변의 시선이 있고, 분위기가 있고, 눈치라는 게 있다. 최대한 집중해서 일하고, 동료에게 업무가 넘어가지 않도록 애쓴다. 그럼에도 '먼저 나간다'는 사실 자체가 부담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쓰는 쪽은 눈치를 보고, 쓰지 않는 쪽은 억울하다. 이 감정의 간극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이 갈등은 정말 사용자와 비사용자 사이의 문제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두 감정은 진짜지만, 그 화살이 향해야 할 곳은 동료가 아니다.
육아시간을 '특혜'로 보는 시선과 '정상화'로 보는 시선이 충돌하는 한, 제도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현장의 갈등은 사라지지 않는다. 법과 제도는 바뀌었는데 그것을 받아들이는 조직 문화와 구성원의 인식이 따라오지 못할 때, 그 간극이 눈치와 억울함으로 채워진다.
나는 육아시간을 쓰면서 미안하지 않았다. 주어진 시간 안에 집중해서 내 몫을 끝냈고, 동료에게 업무를 넘긴 적이 없었다. 미안함은 실제로 민폐를 끼쳤을 때 드는 감정이어야지, 제도를 쓴다는 사실 자체에 붙어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눈치는 봤다. 그 눈치는 내가 만들어낸 게 아니라, 제도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문화가 만들어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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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육아는 개인의 선택이고, 그 불편함도 개인이 감수해야 한다'는 오래된 전제가 조직 안에 살아있는 한, 육아시간을 쓰는 사람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
| ⓒ pixabay |
필요한 건 두 가지다. 하나는 관리자와 조직의 인식 변화다. 육아시간을 쓰는 직원에게 "덕분에 우리 팀이 아이 키우기 좋은 곳이 됐네요"라고 말할 수 있는 문화, 그 제도가 조직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것임을 리더가 먼저 이해하고 먼저 말하는 문화. 다른 하나는 구성원 모두를 대상으로 한 교육이다. 저출생이 왜 사회적 문제인지, 일-가정 양립제도가 왜 존재하는지, 그 비용을 개인이 아닌 사회가 함께 부담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것이 입사 교육과 조직문화 교육 안에 자리잡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제도를 당당하게 쓰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눈치를 보며 쓰는 한 명보다, 당당하게 쓰는 한 명이 조직 문화를 더 빠르게 바꾼다. 제도가 진짜 제도로 자리잡으려면, 그걸 쓰는 사람이 당당해야 한다. 그 당당함이 쌓여야 비로소 "원래 이렇게 쓰는 것"이라는 문화가 된다. 누군가 '미안'하면, 누군가는 '억울'한게 당연하다.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문화, 억울해 하지 않아도 되는 문화. 그것은 법 조항 하나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매일 아침 같은 사무실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연습이 쌓여야 만들어진다.
먼저 퇴근하는 발걸음이 가벼워도 된다. 남아서 일하는 어깨가 더 이상 무겁지 않아도 된다. 그 두 무거움을 덜어내는 건, 결국 제도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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