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로 수출된 네이버 '디지털 트윈'…로봇 빌딩 1784 가보니
100여대 로봇 어라이크로 제어·현장 자료도 수집
길 잃지 않고 엘리베이터 타고 배송
코엑스 실내 건물서 길찾기에도 활용

(성남=연합인포맥스) 윤영숙 기자 = 경기 성남시 분당구 네이버 제2사옥 '1784'. 점심시간이 지나자 스타벅스 앞에 줄지어 선 로봇들이 하나둘 움직이기 시작했다.
직원이 로봇에 음료를 넣자 로봇 '루키(Rookie)'는 곧바로 배달에 나섰다. 건물 안 어딘가에서 커피를 주문한 직원에게 음료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1784 안에서는 이런 장면이 낯설지 않다. 100여 대의 루키가 지하 8층부터 지상 28층까지 오가며 택배와 음료, 도시락을 나른다. 네이버가 건물 전체를 디지털 트윈으로 구현한 지 약 4년이 지났지만, 1784는 여전히 주요 투어 코스다.

기자가 찾은 지난 21일에도 방문객들은 루키에 대한 설명과 함께 네이버가 구현한 디지털 트윈 기술을 둘러보고 있었다.
네이버 관계자는 "보기에는 단순히 배달만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렇게 큰 규모의 건물에서 층 간 이동까지 하며 서비스를 하는 곳은 전 세계적으로도 드물다"며 "지금도 디지털 트윈 기술을 보기 위해 투어를 오는 분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CEO)도 같은 코스를 둘러봤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 2022년 건물 전체에 디지털 트윈 구현…'어라이크'가 제어
네이버는 2022년 공개한 제2사옥 1784 건물 전체를 디지털 트윈으로 구현했다. 이를 바탕으로 서비스 로봇 운영, 인프라 제어, 시뮬레이션, 클라우드 기반 운영 등 다양한 실험과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겉으로 보면 루키는 음료를 나르는 소형 배송 로봇이지만, 실제 움직임은 단순한 실내 주행과는 다르다. 건물 여러 층을 오가야 하고, 엘리베이터와 출입문 등 각종 인프라와도 연동돼야 한다. 여러 대의 로봇에 임무를 배정하고 충돌 없이 동선을 짜는 작업도 동시에 이뤄진다.

이 같은 운영의 바탕에는 네이버랩스의 디지털 트윈 솔루션 '어라이크(ALIKE)'가 있다. 네이버는 1784 건물 전체를 디지털 트윈화해 관련 데이터를 클라우드에 저장하고, 이를 기반으로 로봇의 위치와 이동 경로를 정밀하게 제어하고 있다. 현실의 1784와 동일한 가상 공간이 디지털 상에 구현돼 있고, 루키는 이 정보를 바탕으로 현재 위치를 파악해 길을 찾는다.
현장에서 시연된 기술은 이를 직관적으로 보여줬다. 관계자가 태블릿으로 복도 공간을 비추자 시스템은 곧바로 사용자가 건물 내 어느 지점에 서 있고, 어느 방향을 바라보는지를 디지털 트윈 상에 표시했다. 사진 한 장만으로 현실 공간의 위치를 디지털 공간에 대응시키는 기술이다.

이처럼 사진 정보를 바탕으로 디지털 트윈 상 위치를 파악하는 기술이 로봇에도 적용된다. 이 기술은 실내 공간에서 특히 중요하다. 위성항법장치(GPS)가 잡히지 않는 실내에서는 로봇이 스스로 현재 위치를 정확히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네이버는 비전 기반 측위 기술을 활용해 로봇의 위치를 인식하고, 이를 토대로 실내 주행과 배송 서비스를 구현하고 있다. 루키가 복도에서 방향을 틀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목적지까지 길을 잃지 않고 도착하는 배경이다.
1784가 특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로봇 몇 대가 움직이는 건물이 아니라, 건물 전체가 하나의 디지털 트윈 위에서 작동하는 실증 공간이기 때문이다. 로봇 서비스는 물론 인프라 제어와 시뮬레이션, 클라우드 기반 운영까지 한 건물 안에서 동시에 이뤄진다.
업계에서는 1784를 디지털 트윈 기반 공간지능 기술의 대표적 테스트베드로 평가한다.

◇ 서울시 지도 플랫폼 이어 사우디로 수출
네이버는 이곳에서 축적한 기술을 국내는 물론 해외로도 확장하고 있다.
네이버의 디지털 트윈은 서울시 3차원 지도 플랫폼 'S-Map' 구축에 활용됐다. 서울시 전역에서 17일간 촬영한 2만5천463장의 항공사진으로 3D 모델로 복원, 이를 통해 도시 전체를 디지털 트윈으로 구축한 것이다. 서울시는 디지털 트윈을 통해 도시계획 심의나 소방시설물 관리를 넘어 향후 도로 자율주행 등에도 활용할 예정이다.
네이버의 디지털 트윈은 사우디아라비아 5개 도시로도 수출됐다. 이미 사우디 프로젝트는 메카·메디나·제다 등 3개 주요 도시에는 디지털 트윈 구축을 완료했다. 구축 면적은 서울시의 11배를 웃도는 약 6천800㎢ 수준이다. 1784에서 검증한 공간지능·클라우드·로봇 운영 기술이 해외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사업화 단계에 접어든 셈이다.
네이버는 디지털 트윈 기술의 활용처가 서비스 로봇에만 그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코엑스 같은 복잡한 대형 실내 공간에서는 길찾기 서비스에 적용되고 있으며, 향후에는 증강현실(AR) 글래스 기반 안내 서비스로도 확장할 수 있다.

1784에서 움직이는 것은 로봇만이 아니다. 건물 전체가 현실과 가상을 맞물리며 하나의 좌표 체계 위에서 작동하고 있었다.
판교의 한 빌딩에서 검증된 네이버의 디지털 트윈은 이제 로봇 배송을 넘어 실내 내비게이션과 스마트 빌딩, 해외 도시 인프라 수출로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네이버 디지털 트윈의 또 다른 특징은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까지 핵심 기술을 자체적으로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업계에서는 외산 장비와 범용 솔루션을 조합해 서비스를 구축하는 사례가 적지 않지만, 네이버는 모바일 매핑 시스템 등 핵심 장비를 자체 개발하고 있다. 현장 요구가 달라지면 장비와 알고리즘을 동시에 손볼 수 있어 속도와 유연성, 데이터 최신성 측면에서 차별화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디지털 트윈은 단순한 민간 기술을 넘어 전략 자산의 성격도 띤다. 도시의 건물, 교통, 재난, 행정 정보가 집약된 고정밀 공간 데이터는 그 자체로 국가 인프라에 가깝기 때문이다.
해외 빅테크 플랫폼에 전적으로 의존할 경우 데이터 주권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네이버의 어라이크는 단순한 신사업을 넘어 한국형 디지털 생태계의 한 축으로도 평가된다.

출시 4년 차에 접어든 어라이크는 이제 '보는 지도'를 넘어 '움직이는 인프라'로 진화하고 있다. 자율주행용 HD맵, 증강현실, 스마트 빌딩, 도시 환경 시뮬레이션, 소방 시설 관리 등으로 활용처도 넓어지고 있다.
1784 안에서 시작된 작은 이동은 이미 서울을 넘어 중동의 사우디까지 닿았다. 디지털 트윈이 현실의 복제품을 넘어, 현실을 다시 설계하는 운영체제로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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