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드릴까요" 소리가 끊이지 않아...그 마라톤 대회의 정체

홍윤희 2026. 4. 22.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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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희의 다채로운 세상] 장애·비장애 러닝 커뮤니티 '배프런' 공동크루장 김남영

[홍윤희 기자]

 배프런 공동운영자인 김남영님이 지난 18일 열린 키움런에서 뛰고 있는 모습. 김남영님 오른쪽이 배프런 커뮤니티를 처음 함께 만든 구민승님이다.
ⓒ 김남영
김남영(30)은 장애인식개선 강사이자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당사자다. 강릉을 기반으로 학교와 공공기관을 오가며 교육 활동을 펼치는 한편, 장애·비장애인이 함께 달리는 50여 명이 모인 러닝 커뮤니티 '배프런(배리어프리 베스트프렌드 런)'의 공동크루장이다. 그는 배프런 활동을 위해 강릉과 서울을 자주 오간다. 사단법인 무의가 지난 18일 주최한 배리어프리 마라톤 '키움런2026'에 휠체어 바퀴를 굴려 10km 구간을 완주한 그를 만났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이 뛰는 법

- 배리어프리마라톤 키움런에 참여했다. 기록은 어땠고,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였나.

"내가 운영하는 배프런 커뮤니티 15명 회원들과 함께 참가했다. 휠체어 러너 4명, 시각장애 2명, 청각장애 3명이었다. 나는 수동 휠체어로 참가했다. 10km를 1시간 9분에 끊었다. 70분 안에 들어오는 것이 목표였는데 사실 중간중간 오르막과 내리막길이 4회 있어서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달성해서 정말 기뻤다. 올해 1월 10km 실내 레이싱에서 1시간 6분이 나왔는데, 만약 키움런 코스에 오르막 내리막이 없었다면 그보다 더 빨랐을 수도 있다.

달리고 나서 정말 행복했다. 함께 뛰어준 페이스메이커 러너들은 나보다 훨씬 빠른 사람들이었는데, 내 페이스에 맞춰 같이 달려준 게 감동이었다. 끝나고 감사 인사를 전했더니 오히려 그분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해줬다. '같이 뛰는 재미를 알게 됐다'고. 다른 마라톤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매력을 느끼게 된 계기가 됐다."
 키움런에 참여한 배프런 크루들. 휠체어에 앉은 사람이 김남영 공동대표.
ⓒ 김남영
- 장애·비장애 러닝 '배프런'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다. 시작한 계기는?

"2023년 서울 용산 '청년지음' 청년센터에서 '청년이 만드는 사이드 프로젝트' 공모 사업에 선정된 게 계기가 됐다. 모임 비용을 지원해주는데 알고 지내던 구민승 형이 먼저 제안했다. '장애·비장애 청년이 함께하는 러닝 모임을 해보자, 우리한테 딱 맞는 사업 같다'는 것이었다.

민승 형과는 2018년 기독교 연합 동아리(수련회)에서 같은 조로 처음 만났다(김남영님은 강원대, 구민승님은 한림대를 졸업했다). 민승 형 아버지가 청각학 박사이자 교수님이라 민승 형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청각장애 당사자들을 만나왔고 당시에는 청각장애인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제대로 친해진 것은 2022년 함께 식사를 하면서였다. 둘 다 장애인식개선강사로써 첫발을 내딛는 해였고 운동을 좋아했던 우리는 '같이 달려보자'고 의기투합했다."

- 원래 달리기에 관심이 있었나.

"2016년 대학교 1학년 때 한 기업 대외활동을 통해 친해진 특수체육과 형이 여름에 '발달장애인 러닝대회가 있다'며 나가자는 데 호기심으로 따라나섰다. 5km를 55분 만에 완주했다. 도움을 많이 받았고 성취감도 컸지만, 동시에 '힘들다'는 느낌이 강하게 남았다. 코스에 자갈밭길이 있었다. 휠체어 참가자는 나 혼자였다. 기록 발표 포토존 단상에는 턱이 있었다. 이후로 마라톤에 대한 관심을 한동안 끊었다.

그래도 운동 자체는 좋아해 헬스는 꾸준히 했다. 민승 형과 '한번 달려볼까'라는 이야기가 나온 뒤 2023년 그 대회에 다시 나갔다. 그런데 자갈밭길은 그대로였고, 무대에는 턱이 있었으며, 장애인 화장실은 여전히 없었다. 운영진을 찾아가 '이런 부분을 바꿔달라'고 제안했다. 그 대회 후 민승 형이 말했다. '우리가 직접 장애·비장애인이 함께 달리는 프로젝트를 만들어보자. 그러면 진짜 배리어프리 세상이 오지 않을까.'

이후 '청년지음'센터 프로그램에 합격해 3개월 지원을 받았다. 장애·비장애 러닝크루를 모은다고 하니 우리 예상보다 훨씬 많은 20명이 신청했다. 10명만 받을 수 있어 면접까지 봐야 했다. 선발된 크루 중에는 청각장애 당사자 2명도 있었다. 매주 금요일 한 번씩 모여 달렸다. 그냥 달리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나는 장애인식 개선 교육을, 민승 형이 장애인 스포츠 강의를 맡아 진행했다. 용산역 센터에서 노들섬까지 실제로 이동해보며 경로를 어떻게 배리어프리하게 바꿀지도 이야길 나눴다. 마지막엔 한강공원에서 1km를 함께 달렸다.

3개월 프로젝트 기간이 끝나고 이 모임을 자체적으로 이어 가기로 했다. 본격적인 '배프런'이 2024년 10월 출범했다. 처음엔 지인 포함 10명으로 시작했다. 오픈채팅방과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든 뒤 정기 러닝을 시작했다. 매달 한 번 용산에 정기적으로 모여 장애 비장애 크루들이 함께 달린다.

3km로 시작한 정기러닝은, 멤버가 늘면서 5km로 늘리고 페이스별로 조를 나눴다. 장애 당사자 멤버들이 하나둘 합류하기 시작했다. 주변 휠체어 이용자들에게 먼저 권유하기도 했다. 지금은 휠체어 러너 6명, 시각장애 러너 2~3명, 청각장애 당사자 5~6명 등 15명 정도의 장애 당사자가 함께하고 있다.

달릴 때마다 장애 러너와 페이스메이커 러너를 매칭한다. 처음에는 '짝꿍'을 고정으로 붙였는데, '나도 속도를 내고 싶다' 비장애인 러너들의 피드백과 '내가 너무 도움만 받는 존재가 된 것 같다'는 장애인 러너들의 피드백을 통해 그때그때마다 유동적으로 1대1 매칭으로 바꾸고 1km를 뛰는 데 5분대·6분대·7분대 페이스로 조를 나눠 '이달에는 속도를 내고 싶으면 빠른 조로 가세요' 하는 식으로 유동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모임을 하면서 꼭 하고 싶었던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같이 달리는 것, 다른 하나는 러닝 코스에 오기까지의 환경 자체를 배리어프리하게 만드는 것이다. 물리적 환경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적어도 우리가 함께 달리는 규칙과 원칙만큼은 배리어프리하게 만들어보자는 방향으로 갔다."

- 당사자 러너들의 실력도 올라갔나.

"바로 그것이 배프런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동휠체어를 타던 멤버가 있었다. 처음 배프런에 지원했을 때의 동기가 '내 휠체어로 한번 달려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많이 힘들어했지만, 한두 번 함께 뛰고 서로 도우면서 끝까지 완주한 뒤의 성취감이 컸다. 이후 이렇게 말하더라. '회사 출근할 때 이제 전동 말고 수동 휠체어로 간다. 수동으로 가니 자신감이 생기고, 그게 일에서도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예전엔 남한테 부탁만 했는데 이제는 남이 나한테 부탁을 한다.' 결국 그 멤버는 휠체어를 아예 수동으로 바꾸고 업무 능률까지 올라갔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희열을 느꼈다. 이건 단순한 러닝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일이구나 싶었다.

비장애인 크루들도 비슷하다. 처음엔 '장애인이 달릴 수 있어?'라는 의구심을 갖고 왔다가, 활동을 하면서 '속도는 느려도 누구나 달릴 수 있다'는 시각으로 바뀐다."

'눈총'이 없었던 마라톤 대회
▲ 키움런에서 전체 러너에게 배포된 함께러너 교육 키움런에서는 장애-비장애 러너들이 안전하고 즐겁게 뛰게 하기 위해 전체 러너에게 함께러너 동영상 교육을 배포했다
ⓒ 홍윤희
- 배프런 활동을 보고 올해 '키움런' 함께러닝 워크숍에 함께 하겠냐고 먼저 인스타그램 DM을 보냈는데 흔쾌히 받아주셨다. 키움런을 알고 있었나?

"사실 2025년 키움런이 열린다는 걸 알고 신청하려 했는데 이미 마감된 뒤였다. '이건 꼭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아쉬워하던 차에 이사장님이 연락을 주셔서 정말 반가웠다."

- 워크숍에서 제안한 내용 중 실제 대회에 어떤 점이 잘 반영된 것 같나?

"러너들의 인식 수준이 다른 대회와 비교가 안 되게 좋았다. 워크숍에서 함께 내용을 만든 '함께러너' 교육이 역할을 한 것 같아서 뿌듯했다(그는 '함께러너' 교육 영상 제작을 위해 오르막과 내리막에서 휠체어 러너를 돕는 방법을 직접 시연하기도 했다).

키움런을 직접 뛰면서 교육 효과가 실제로 있다는 걸 느꼈다. 휠체어로 달리다 보면 '잠시만요, 지나갈게요' 해야 할 때가 있다. 다른 러닝 상황에서는 그런 순간에 사람들이 곁눈질로 마뜩잖은 시선을 주는 걸 느끼곤 했다. 그런데 키움런에서는 그런 '눈총'이 없었다. 오히려 응원이 쏟아졌다. 자원봉사자들도 계속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하세요'라며 먼저 다가왔다(실제로 키움런에서는 자원봉사자들에게도 별도로 사전교육을 했는데, 임의로 돕지 말고 도움이 꼭 필요한지 먼저 물어본 뒤 도우라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나의 경우 네 명이 둘러싸고 함께 뛰어줬는데도 옆에서 '도와드릴까요'라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오르막에서 혼자 올라가고 있을 때도 '밀어드릴까요'라며 다가왔다. 다들 교육 영상을 보고 와서 물어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리막에서는 내가 직접 속도를 제어하며 내려갔는데, 자원봉사자들이 주변에 인파가 몰리지 않도록 도와줬다.

교육 내용에 워크숍에서 제안한 내용으로 구성되는 것을 보니 신기하고 보람이 컸다. 예를 들어 우리 내부에서 좀 더 이야기해서 청각장애 관련 부분을 보강해 달라고 했는데 그게 교육에 들어갔다. 청각장애 러너들은 뒤에서 누가 '지나갑니다' 하고 외쳐도 듣지 못할 수 있다. 그러면 말한 사람 입장에서는 '왜 안 비켜' 하면서 뒤를 돌아보게 되고, 그 눈길에 청각장애 러너들이 위축된다. 이 내용이 '함께러너' 교육에 반영되었고, 원하는 청각장애 러너들에게는 '청각장애가 있습니다'라는 스티커도 배부했다. 그런데 함께러너 교육은 얼마나 들었나?

- 1000명이 들었다. 사실 좀 놀랐다. 선착순 500명에게 추가 굿즈를 준다고는 했지만 그저 마라톤에 참여하기 위해 17분짜리 교육을 듣고, 퀴즈를 푸는 게 녹록한 일은 아니니까.

"정말 대단한 일이다. 함께러너 교육 영상을 봤는데 단순한 마라톤 안전 교육이나 '장애 러너를 어떻게 돕는가' 수준을 넘어 사실상 장애인식 교육이다. 게다가 교육만 듣고 끝난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함께 뛰면서 장애 러너를 만났으니, 그 효과는 두세 배가 됐을 것이다."

'장애인을 도와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는 이유
 키움런 내리막 코스 답사에서 안전하게 내려가는 방법을 시연하고 있는 김남영님(앞)과 캥스터즈 김강 대표.
ⓒ 홍윤희
- 사전 답사는 어땠나.

"솔직히 첫 코스의 내리막길을 처음 봤을 때 아찔했다. 경사가 생각보다 꽤 있어 걱정이 많이 됐다. 그래도 대회 당일에는 휠체어 전문 핸들러가 배치되고 '함께러너' 교육까지 진행됐고, 코스에는 만일을 대비해 커다란 스펀지를 배치했다.

또 서강대교에 노면이 울퉁불퉁한 구간이 있었는데, 키움런 팀도 이 부분을 고민했던 것 같고 답사에 동행한 다른 휠체어 러너가 의견을 준 덕에 당일 바퀴가 걸리지 않도록 깔개가 네댓 개 깔렸다. 도로가 파인 구간은 키움런 팀에서 서울시에 민원을 넣어 메우는 공사도 했더라. 답사를 가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사실 교육을 하면서 장애 러너를 비장애 러너가 일방적으로 돕는다는 개념으로 보이게 하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했다.

"모두가 함께 달리는 경험이 참가자 몇천 명의 마음에 남았을 것이다. 일반적인 러닝 대회에서 장애 러너를 실제로 만날 기회는 거의 없다. 그런데 이번 키움런에서 교육을 받고 실제 뛰는 경험을 한 러너들은 이후 일상에서 장애 당사자를 마주쳤을 때 인식이 다를 수밖에 없을 거다.

반대로 장애 당사자 입장에서도 함께러너 교육을 받으면서 '나는 도움을 받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러너를 도울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자존감과 자신감이 생겼을 거다. 나 자신도 '함께러너' 스티커를 붙이고 뛰었다. 다른 러너가 어려운 상황에 있었다면 나도 당연히 도왔을 것이니까.

같이 뛴 사람 중에는 강릉에서 올라온 이도 있었다. 뇌병변 장애가 있는 아들의 휠체어를 밀며 함께 뛰는 아버지였다. 그 말고도 장애가 있는 자녀와 함께 뛰는 비장애인 부모들을 여러 명 봤다. 그 가족들, 특히 자녀들이 '서로가 서로를 도울 수 있다'는 메시지를 얻어갔을 거다.

내가 그랬듯이, 장애당사자들, 특히 지체장애 당사자들의 경우 초·중·고 시절에 자기와 비슷한 장애 당사자를 볼 일이 드물다. 이런 대회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에는 나와 같은, 다양한 장애인이 있고, 장애와 상관없이 우리 모두는 달릴 수 있고 서로 도울 수 있다'는 경험을 하게 된다. 얼마나 큰 의미인가."

- 앞으로의 계획은?

"배프런 러닝을 넘어 장애·비장애인은 물론 고령자와 어린이까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스포츠와 놀이의 장을 만드는 게 목표다. 당장은 배프런을 더 탄탄히 운영하면서 멤버도 100명까지 늘리려 한다.

장애인식개선 교육으로 학교에도 자주 나간다. 배프런에서 비장애인·장애인 러너가 서로 파이팅을 외치고 하이파이브 하는 장면을 보여주면, 학생들은 '휠체어도 달릴 수 있어요?'라며 신기해한다. 그래서 수업 말미에는 항상 '장애·비장애를 떠나 서로 응원하는 파이팅 문화를 학교에서도 재미있게 만들어보자'고 제안한다.

일방적으로 '장애인을 도와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 '필요할 때 도와주는 친구'라는 말을 쓴다. 그래야 학생들이 마음에 부담 없이 받아들인다. 교육이 끝나면 가끔 학생들이 다가와 이런 말을 한다. '사실 제 친척 형이 장애인이에요. 서로 도울 수 있다고 해주셔서 고마워요. 가족 모임에서 피하기만 했었는데, 이번엔 제가 먼저 인사해 볼게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SNS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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