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옥의 시선] 한국적인, 너무도 한국적인 성과급 논쟁

하현옥 2026. 4. 22.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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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현옥 논설위원

세상사 참 알 수가 없다. 지금이야 사상 최대의 반도체 호황 속에 고액 성과급을 둘러싼 내홍을 겪고 있지만, 삼성전자의 시계를 3년 전으로만 돌려보면 그때는 암울한 전망으로 가득했다. 주가는 떨어졌고,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에서 밀리며 반도체 분야의 초격차를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신에 휩싸였다. 적자로 ‘법인세 납부액 0원’을 기록하며 덩달아 정부 곳간까지 쪼그라들었다. 성과급은 가당치도 않았다.

인공지능(AI) 열풍이 모든 걸 바꿨다. 반도체 호황 속 이익은 쌓여가고 있다. 나눠 먹을 파이가 커졌다. 경쟁사인 SK하이닉스의 ‘통 큰 성과급’은 조바심을 부추겼다. 내 몫을 제대로 챙기겠다며 노조는 파업도 불사할 태세다. 성장 동력과 초격차 유지를 위한 연구·개발(R&D) 및 설비 투자 등 자원 배분의 우선순위를 둘러싼 고민은 찾아볼 수 없다. 주주 배당(11조1000억원)을 압도하는 성과급(최소 40조원)을 요구하며 회사의 주인이 주주냐 근로자냐는 질문에 귀를 막았다. ‘물 들어왔을 때 노 젓자’는 듯 성과급을 향해 돌진 중이다.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 지부 조합원들이 지난 17일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과반노조 공식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SK하이닉스가 쏘아 올리고, 삼성전자로 옮겨붙은 채 현대차 등 다른 기업으로 번질 형국인 성과급 논쟁은 너무도 한국적이다. 일단 부러움과 시샘이 묘하게 버무려진 채 특정 회사의 성과급이 모두의 관심사가 됐다. 임직원도 아니고 주주도 아닌 이들이 남의 회사의 성과급을 두고 왈가왈부한다. 거액의 성과급이 뒤흔들 부동산 시장 전망이 난무하고, 수많은 이가 다른 회사의 미래를 걱정하는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그런 까닭에 노조는 성과급을 둘러싼 사측과의 줄다리기와 함께 세간의 곱지 않은 시선과도 싸워야 한다. 시의적절하게 혹은 운 좋게 반도체 호황 사이클에 올라탄 실적을 근로자 개개인의 성과로 인정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주택 가격 급등에 기댄 대출 증가로 사상 최대의 이익을 낸 은행의 ‘성과급 잔치’에 대한 비판과 오버랩된다. ‘횡재세’ 운운까지 닮은꼴이다. 성과급에 세금을 왕창 물리거나 지역화폐로 지급하게 하자는 막가파식 주장까지 쏟아진다. 일반인의 성과급 반대 1인 시위도 진행될 정도다.

「 성과급 주면 이공계 산다는 노조
나눠먹기식 평등주의에 균열도
다른 산업과 기업까지 일파만파

반도체 업계의 역대급 실적과 높은 성과급 기대감으로 SK하이닉스 지원 열기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16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취업 베스트’ 매대에 SK그룹 입사 관련 교재 ‘SKCT’가 진열돼 있다. 뉴스1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해 경쟁사에 버금가는 성과급을 달라는 노조는 사회적 책임을 끌어들인다. 삼성전자 노조는 본인들이 돈을 많이 받아야 이공계가 살고 의대 쏠림이 해소된다고 주장한다. SK하이닉스의 파격적인 성과급에 ‘하닉고시’가 등장하고 반도체 계약학과의 인기도 상승 중이다. 그렇다고 ‘이공계 살리기’를 성과급의 근거로 삼기엔 논리가 박약하다.

가장 한국적인 건 성과급에 침투한 평등주의다. 성과에 대한 보상임에도 ‘직원 일괄 지급’처럼 ‘한국인에게 마음의 습관과도 같은 평등주의’(송호근 한림대 석좌교수)가 성과급의 기본값이 되어버린 탓에 곳곳에서 파열음과 균열이 이어진다. 획일적이며 일률적인 보상 구조가 안고 있는 무임승차는 성과급의 기본 취지를 이미 퇴색시켰다.

게다가 직무와 성과에 따른 차등 보상보다는 ‘N 분의 1’식 나눠 먹기가 되면서 핵심 기술 개발 등 전문성에 대한 보상은 희박해졌다. 그런 탓에 석·박사급 연구 인력과 현장 생산직 인력 사이의 갈등의 골도 깊어지고 있다. 능력보다는 ‘어떤 줄(산업)’에 섰느냐가 ‘성과급 잭팟’의 결정 요인이 되면서 “반도체 업계의 역대급 성과급이 오히려 이공계 생태계를 망가뜨리는 가속 페달이 될 수 있다”는 날 선 지적까지 나온다.

산업과 기업별 상황은 안중에도 없이 성과급 요구는 유행처럼 일파만파 번져간다. 반도체 업계의 역대급 성과급을 지렛대 삼아 주요 대기업 노조는 회사를 압박하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올해 임금 협상에서 지난해 회사 순이익의 30% 재원을 성과급으로 요구하기로 했다.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쓰겠다는 SK하이닉스와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으로 요구하는 삼성전자 노조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성과급 키 맞추기’에 돌입하는 모양새다.

기업 성장의 과실을 직원이 나누자는 요구가 무조건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회사가 이익 배분에 소홀했던 측면도 있다. 그럼에도 특정 기업의 성과급에 수많은 이들이 입을 대는 너무나도 한국적인 이 성과급 논쟁은 그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고 온갖 곳에 간섭을 해대는 한국인의 ‘오지라퍼’ 성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 바탕엔 노력이나 기여에 대한 냉정한 평가에 기반한 차등 지급이 아니라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로또인 양 변질된 ‘성과급 파티’가 불러온 불편함 탓이다. 성과급이 정말 성과급다웠다면 애당초 벌어지지 않았을 논쟁이다.

하현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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