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스타 선장 된 ‘루저’…3000배와 차 한잔이 바꾼 항로 [안혜리의 인생]

안혜리 2026. 4. 22.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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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현 선장 인터뷰


지난 2024년 11월 첫 선장을 맡은 배의 선박조종실(bridge)에 선 이동현 선장. 그는 오늘도 전 세계 11개국 30명 선원의 안전을 책임지며 인도양을 항해하고 있다. 연 6개월 근무에 연봉은 3억원이다. [사진 이동현]
중동산 원유 핵심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와 개방·재봉쇄 반복으로 불안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 국적선 20여 척을 비롯해 전 세계 선박 2000여 척이 두 달 가까이 여기 고립된 탓에 다양한 국적의 선원 2만여 명이 식량·식수 부족과 의료서비스 문제로 고통받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과연 실제 선상 생활은 어느 정도로 심각할까. 비단 전쟁으로 인한 위협뿐 아니라 한 번 승선하면 오랜 기간 망망대해를 항해하며 뭍 사람은 감히 상상도 못 할 다양한 위험과 맞닥뜨려야 하는 선원의 삶이 궁금해졌다.

그렇게 닿은 게 영국 글래스고에 본사를 둔 세계 5위권 초대형 에너지 해운사 씨피크(Seapeak, 옛 Teakay) 이동현(37) 선장이다. 누적 조회 수 1900만에 육박하는 유튜브 채널 '비타민Sea' 운영자이자 지난해 11월『선장의 항해일지』를 낸 저자이기도 하다. 그는 국립목포해양대 졸업 후 입사한 한국 선사(SK해운)에서 4년 만에 일등항해사가 될 정도로 가파른 진급을 거듭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안주할 만도 하지만 이등항해사로의 강등과 월급 반 토막을 감수하면서까지 개인송출(해외 선사와 직접 계약)에 도전한 끝에 지난 2019년 6월 씨피크의 첫 한국인 선원이 됐고, 그곳에서도 또 2024년 7월 이례적으로 빨리 선장으로 진급했다. 삼수하고도 해군사관학교에 실패해 도망만 치던 '루저'가 동료 선원들로부터 '슈퍼스타 리(Lee)'로 불리게 된 데는 드라마틱한 깨달음이 있었다.

「 운동·공부·학교 적응 못 한 청춘
포기 고리 끊었더니 인생 달라져
영국계 선사 초고속 선장 승진
더 큰 꿈에 선상서 로스쿨 도전

1척당 3000억 원을 웃도는 초대형 LNG선을 타고 인도를 떠나 남아공 희망봉과 나미비아를 거쳐 앙골라에서 LNG를 싣고 방글라데시로 향하던 이 선장을 지난 16일 오후(한국시각) 일론 머스크의 위성 인터넷 서비스 '스타링크' 덕분에 화상으로 만나 2시간여 동안 그의 호르무즈 경험과 꽤나 굴곡진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은 인도양에 있는 그의 시각에서 정리했다. 안혜리 논설위원


해적보다 더 무서운 이것


"치직치직. "
초단파(VHF) 해상무선통신기의 잡음 사이로 이란 해양경찰(코스트 가드)의 고압적 질문이 들려왔다.
" "어느 나라 선박인가. 선장 국적은 어디인가. " " 주파수 닿는 거리의 배는 다 같이 들을 수 있는 공통 채널이었지만 이번 타깃은 내가 책임진 배였다.
" "영국 선주, 바하마 국적 선박, 한국인 선장이다. " " 이란 해경은 적대국 배가 아닌 걸 확인하고 나서야 통행을 허가했다.

지난해 9월, 자기네 해역이 아니었는데도 그 직전 6월 이란-이스라엘 단기전 여파로 이란은 이렇게 호르무즈 해협 통행을 감시·차단하며 긴장을 높여가고 있었다. 통상 편의치적(FOC)에 따라 선주(해운사)는 세금 혜택 등을 고려해 배 국적을 파나마나 바하마·마셜 제도 등으로 선택할 수 있다. 선장은 선사와 선박, 그리고 본인까지 세 국적에 따른 리스크를 전부 다 책임져야 한다는 얘기다.

호르무즈 해협 해도. 일반지도에는 안 보이지만, 고속도로처럼 중앙의 완충지대를 사이에 두고 올라가는 배와 내려가는 배의 통항하는 방향이 정해진 분리통항수역(TSS)이 있다.

지난 2월 말 발발한 이란 전쟁 이후 호르무즈 해협을 오가는 선박에 대한 국내외 일반의 관심이 치솟으며 선원 안전에 대한 우려가 쏟아진다. 지난 1년에만도 카타르와 오만 등 중동을 비롯해 미국·유럽·아시아를 항해한 내가 느끼기에 긴장의 밀도는 조금 올라갔지만 아주 위협적이지는 않다. 묶인 배들 대부분이 카타르·쿠웨이트 인접 1시간 거리에 정박하고 있기에 돈이 문제일 뿐 식량·식수 공급엔 아마 큰 어려움이 없을 거다.

사실 우리는 평소 이와 비슷하거나 더 안 좋은 상황과 늘 맞닥뜨려왔다. 가령 항해사 시절 소말리아해협에서 해적을 만나기도 했다. 당시 사설 무장보안요원 세 명이 승선 중이었는데, 사격준비태세를 갖춰 예의주시하다 해적선이 우리 배로 뱃머리를 튼 순간 경고사격을 해서 쫓아냈다.

원양 상선을 탄다는 건 이런 거다. LNG 운반선처럼 기술과 안전 측면에서 까다로운 배는 특히 더 그렇다. 그래서 운항 중 훈련이 일상이다. 40여 가지 중 가장 자주 하는 건 매주 구역 바꿔가며 하는 화재 훈련이다. 훈련 고지 않고 "엔진룸에서 불이 났다"며 실전처럼 대응하기도 한다. 한 번은, 인원점검 후 두 명을 끝내 못 찾았는데 빌딩 한 채 규모 기관실을 닫고 CO2 소화기로 진압하라고 명령한 적도 있다. 만약 그 안에 선원이 있었다면 두 생명을 잃는 결과를 초래할 어려운 결정이지만, 선장은 맨 마지막 순간 이런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이외에 매달, 또 위험 구간 일주일 전엔 무조건 해적 침입 대응 훈련을 한다. 해적이 오는 방향이나 폭발물 소지 여부 등 다양한 시나리오에 따르는데, 정말 심각할 경우 외부에서 문을 못 열고 30일 이상 버틸 긴급 식량 등이 있는 시타델(비상 대피소)이라는 특수 격실에 들어가 구조를 기다린다. 때론 배를 버리는 퇴선 훈련도 한다.

2020년 영국회사로 이직한 후 이등항해사 시절 세계 각국에서 온 선원들과 함께. [사진 이동현]

사실 전쟁·해적보다 자상 등 수술을 요하는 선원 부상이 더 큰 위험으로 다가온다. 선박엔 마약성 진통제를 포함해 육상에서 구할 수 있는 모든 의약품을 구비하고 있고, 모든 항해사는 응급 구조 자격이 있다. 스타링크로 원격의료 지원도 받을 수 있지만, 육지까지 1~2주 걸리는 바다 한가운데서 수술해야 하는 환자가 생기면 정말 방법이 없다. 20~30년 전에는 선원들이 아예 맹장 때고 배를 탄다는 말도 있었는데, 이젠 그 정도는 아니지만 위험의 수준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천주교 신자 '루저'의 3000배


방향을 잃고 방황하던 20대 초반엔 정말 힘들었다. 해군사관학교 가겠다고 아버지 실망시키며 태권도 선수 생활 접고, 입시학원에선 제일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었는데도 재수·삼수 실패하고, 쫓기듯 간 해양대에서도 제대로 적응 못 해 1학기 만에 또 지인이 소개해준 거창의 한 절(해인사 말사인 '행복한 절')에 도망쳐 들어갔다. 매일 새벽 108배 하고 울력(육체노동)하고, 불과 사흘째에 야반도주를 고민했다. 그 시절 난 그렇게 계속 포기만 하는 '루저'였다.
해양대 3학년 때 동기들과 함께 '행복한 절' 은산스님을 찾았다. [사진 이동현]
밤새 고민하다 도망 대신 주지 스님(은산) 말씀대로 3000배를 하기로 했다.
"이것도 못 하면 속세로 돌아가시게. "
너무 힘든데 시간은 안 가고, 시작하자마자 후회했다. 고작 30분쯤 흘렀나. 문득 "이것도 포기하면 그냥 나가 죽자" 싶었다. 그렇게 7시간, 3000배를 마쳤다. 당시 두 달의 단기 출가 와중에도 머리 깎고 행자복 입은 채 성당 미사는 빠지지 않았던 나 프란체스코는 3000배 이후 '뒤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뜻의 무후(無後)라는 법명을 받았다.

살면서 처음으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수한 이 날의 경험은 내 인생을 바꿨다. 여전히 나는 물론 돌 무렵인 내 아들 역시 유아세례 받은 천주교 집안이지만 이후 이 법명에 걸맞은 삶을 살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단기 출가 마치고 학교로 돌아와 쓴 일기엔 이렇게 적혀 있다. '창과 방패를 내 마음에 다 갖고 나왔다. '

사실 3000배가 전부는 아니었다. 스님이 어느 날 물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든 없든, 원하는 걸 가지든 못 가지든, 다시 말해 어떤 조건이 주어져도 행복할 방법이 있는데 해볼 테냐. "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스님은 답을 알려주는 대신 매일 내게 차만 따라줬다. "온전히 차에만 집중하라"면서. 차담 수행이었다. 그리고 정말 이때 터득한 집중하는 힘이 이후 학교에서 공부하든 배를 타든 인생의 고비고비마다 정말 대단한 힘을 발휘했다. 과거 매사 부정적이었던 나였는데,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면서 뭘 하든 늘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졸업 후 탱커(원유선) 항해사로 시작해 특유의 엘리트주의 만연한 LNG선에서 하루하루 버거웠을 때나,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진급하던 항해사 시절 영어 쓸 일 없는 전원 한국인 국적 선원으로 이뤄진 한국 선사 LNG선에서 영화 '어비웃 타임'을 100번 이상 돌려보며 매일 하루 3시간 이상 영어 공부에 매진해 결국 개인송출을 이룰 때도.

지난 16일 3000억원짜리 LNG선을 타고 뱅골만을 운항하던 이동현 선장과 화상 인터뷰를 했다. 2022년 7월 스타링크 위성이 나오기 전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스크린 캡처]

그리고 지금은 또 다른 도전 중이다. 원격수업으로 시티 세인트 조지(City St.George's University of London) 로스쿨에서 해상법을 공부하고 있다. 졸업 후 영국 본사 육상 직을 포함해 런던에 모여있는 세계 최고 수준 해상 관련 금융사나 국제해사기구(IMO) 등에 진출할 가능성을 열어놓기 위해서다. 혹은 선장 경력을 몇 년 더 쌓아 한국에서 도선사(pilot)에 도전할 수도 있다.

뭐든 궁극적 목표는 하나다. 당장은 내가 책임진 선원이 행복하게 머물다 안전하게 돌아가는 것, 길게는 나와 가족, 내 주변 사람 모두 행복할 수 있도록 날마다 마지막 날처럼 열심히 살아가는 것. '어바웃 타임' 중 좋아하는 대사로 글을 맺는다.
" "그저 하루하루를, 이 특별하고도 보통인 삶의 마지막 날처럼 살아갈 뿐이다(I just try to live every day as if it was the full final day of my extraordinary, ordinary life). " "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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