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의 마음 읽기] ‘나’라는 님

2026. 4. 22.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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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시인

올해는 봄이 더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것 같다. 봄비가 내려 온갖 곡물이 잠을 깨고, 봄비가 곡물을 윤택하게 한다는 곡우가 엊그제였다. 곡우 무렵에는 한 해의 벼농사를 위해 볍씨를 담근다. 또한 찻잎을 딸 때이기도 하다. 녹차 가운데 가품(佳品)인 우전차가 만들어지는 때가 곡우 전후이다. 일교차가 꽤 심하지만, 벌써 이렇게 기온이 올라가도 되나 싶을 정도로 더운 느낌마저 든다.

「 나는 나를 스치고 지났을 뿐
내 이름 부르며 칭찬한 적 없어
‘나’라는 님을 잘 모셔야

김지윤 기자

집으로 배달되어 온 문학잡지를 읽었다. 봄에 관한 시편에 특별히 눈이 갔다. 송재학 시인은 ‘수런거리는 꽃’이라는 제목의 시에서 “한 다발의 꽃을 샀다 이것은 봄비라고 불러도 괜찮을 것”이라면서 “튤립과 카라의 노란색을 가득 안는 순간 봄은 우주의 어떤 감정 표시”라고 썼다. 봄의 감흥을 물씬 느끼게 했다. 또 박순원 시인은 제목을 ‘봄’이라고 단 시를 통해 “오늘 기분 아주 꽃 같네” “오늘 기분 아주 나비 같네” “오늘 기분 아주 아지랑이 같네”라고 적었는데, 이것은 우리가 뭔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에, 가령 “오늘 기분 개떡 같네”라고 중얼거리듯 말하는 것을 익살스럽게 변용한 것이었다. ‘개떡’이라는 단어를 ‘꽃’과 ‘나비’, ‘아지랑이’로 대신한 것이었다. 시를 읽으면서 혼자 벙싯 웃었다. 화창한 봄날에 ‘개떡’이라는 말을 입에 담을 일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최근에 나무를 옮겨 심고, 분갈이를 하고, 모종을 텃밭에 심었다. 곡괭이로 땅을 파서 뒤집은 후에 골을 내고 각종 채마(菜麻)의 모종을 심었다. 물뿌리개로 물을 주고 나니 제법 텃밭이 자리를 잡은 듯했다. 두어 달 후에 작물이 자라 있을 풍경을 상상하는 순간 텃밭이 커지고 늘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기분이 산뜻했다. 곡괭이와 호미를 쥐고 텃밭에서 나오면서 잠깐 뒤돌아 텃밭을 다시 보았다. 나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법 근사하네요. 문태준님, 고생했어요.” 나는 모자를 쓰고 장갑을 낀 내게 칭찬을 했다.

내가 나에게 칭찬을 한 적은 그동안 드물었다. 더군다나 내가 내 이름을 불러 칭찬한 적은 살아오면서 거의 없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나는 나의 좋고, 나무랄 곳 없는 점에 대해선 내 이름을 불러가며 아낌없이 칭찬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변화는 사소하다면 사소한 일에서 비롯되었다.

얼마 전 『아모스 할아버지의 눈 오는 날』이라는 책을 선물 받았다. 그림책이었다. 책에서 아모스 할아버지는 뜨개질을 해 동물 친구에게 나눠준다. 할아버지가 뜨개질로 만든 것은 그 동물이 좋아하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그 동물이 좋아하는 것을 평소에 유심히 살펴보았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폭 싸이는 느낌을 좋아하는 거북이에게는 담요를 짜서 입혀준다. 축제 분위기가 나는 밝은 옷차림을 좋아하는 부엉이한테는 화사한 스웨터를 짜서 건네준다.

이 대목은 내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곰곰이 질문하게 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내게 자상하게 물어보거나 귀를 기울여서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나를 그냥 스치고 지나갈 뿐이었다. 심지어 가끔은 나를 퉁명스럽게 대했고, 어떤 일을 하고 난 후에도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여겼다. 나를 칭찬하는 일에 인색했다. 고비를 넘기거나, 좋은 일이 있어도 속마음으로 혹은 작은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면서 칭찬을 한 적은 없었다. 지인과도 이 문제에 대해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우리는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나 자신에게 따뜻한 말을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내 이름을 불러줘야 한다는 것에 대해 크게 공감했다.

김개미 시인이 쓴 동시 ‘나님’을 이틀 전에 읽었다. 그동안의 나처럼, 자신에게 칭찬하는 일에 박하거나 부끄러워 해온 분들에게 읽어드리고 싶다. 시는 이러하다. “옷을 멋지게 입으셨네요/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으셨나 봐요/ 좋은 냄새가 나요/ 걸음은 또 어쩜 그리 경쾌하신가요/ 당신은 오늘 아침 만난 사람 중에/ 가장 매력적이에요/ 오늘 즐거운 일이 있을 거예요/ 아무도 이런 말을 안 해 줘서/ 내가 가끔 나에게 해 준다/ 나님, 아주 훌륭하십니다!” ‘나’라는 님을 잘 모셨으면 한다.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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