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원 넘은 기름값, 중동사태는 장기화…커지는 최고가격제 딜레마

남수현 2026. 4. 21.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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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이 2000원을 넘어선 가운데 20일 오전 경북 포항시 남구 철강공단에 있는 한 주유소에서 경유가 휘발유보다 30원 비싸게 판매되고 있다. 뉴스1


전국 휘발윳값이 L당 2000원을 넘어선 가운데, 오는 24일 4차 석유 최고가격 적용을 앞두고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민생 물가 안정을 위해 최고가격제를 계속 시행한다는 기본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중동 사태 장기화로 고유가 여파가 길어지면서 가격 통제 정책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 지에 대한 우려도 고개를 들고 있다.

21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날 오후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가격은 L당 2003.81원으로, 중동 전쟁 직전인 지난 2월 27일(1692.58원) 대비 18.4% 올랐다. 경유는 L당 1997.67원으로, 25.1% 올라 2000원에 바짝 다가섰다. 휘발유와 경유 모두 큰 폭으로 오른 것 같지만, 정부의 최고가격제로 국제 가격에 비하면 상승 폭이 크지 않다. 같은 기간 싱가포르 현물시장 가격(MOPS)에 따르면 휘발유는 49%, 경유는 66.9% 급등했다.

물가 부담을 덜겠다는 취지로 최고가격제를 시작한 정부로서는 최고 가격을 크게 인상하거나 시행을 중단하기 쉽지 않다. 실제 정부는 3차 최고가격 설정 때 민생 물가 영향을 고려해 2차와 같은 수준(L당 휘발유 1934원, 경유 1923원)으로 동결을 결정했다.

양기욱 산업통상부 산업자원안보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중동 전쟁이 지속되며 국제 유가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최고가격제가 물가 안정 등 민생 경제에 기여하고 있다”며 “화물차 운전자, 농업인 등 생계형 소비자와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19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유가 정보가 게시돼 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19일 휘발유 전국 평균 가격은 전날 대비 0.42원 상승한 리터당 2001.93원, 경유 평균 가격은 전날 대비 0.35원 상승한 리터당 1995.62원을 기록하고 있다. 뉴시스


문제는 지속 가능성이다. 정부는 가격 통제로 발생하는 정유사 손실을 추후 재정으로 보전해야 하는데, 국제 가격과 국내 최고 가격 사이 격차가 지속될수록 정유사 손실도 불어날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국민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정부는 일단 6개월 시행을 전제로 4조2000억원을 추가경정예산에 편성했다. 하지만 손실 규모를 정확히 추산해 반영한 게 아닌 만큼 추후 부담이 늘어날 수도 있다.

정부의 고육책에도 에너지 소비 절약으로 충분히 이어지지 않고 있는 점도 문제다. 산업부에 따르면 최고가격제 시행 이후인 3월 넷째주 휘발유·경유 판매량은 73만1000KL로 1년 전보다 약 9.0% 증가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국무회의에서 “일부에서 오히려 소비가 늘고 있다더라”며 에너지 절약을 당부한 이유다. 4월 첫째주와 둘째주엔 각각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2%, 11.3% 감소하긴 했지만, 에너지 위기 심각성에 비하면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다. 올 여름 더위가 예년보다 일찍 시작돼 냉방 수요가 늘면 에너지 위기가 심화할 우려가 크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가격을 올려 절약을 유도해야 하는데, 가격 상한제를 유지하면 에너지 절감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며 “석유를 비싼 가격에 계속 수입하면 무역수지가 악화하면서 원화 약화에 따른 물가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가격 통제 부작용을 고려해 해외 주요국은 세금을 낮추거나 보조금을 지급하는 식으로 고유가에 대응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최근 마련한 에너지 위기 대응책 권고안에서 주 1회 재택근무와 대중교통 보조금 확대, 태양광 세제 지원 등 석유 수요 절감에 초점을 맞춘 방안을 제시했다.

다만 정부는 한국만 석유제품 가격을 억제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산업부가 이날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경우 전쟁 전 대비 현재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각각 약 7.3%, 9.4% 증가해, 한국보다 증가 폭이 낮았다. 양기욱 실장은 “일본은 상당한 보조금을 투입해 우리보다 상승률이 낮다”며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주요국도 우리나라와 상승률이 유사하다”고 말했다.

세종=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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