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인데 나가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만들어본 버킷리스트

이슬 2026. 4. 21.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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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불안 길들이기] 고속도로 운전, 새벽 러닝 등 열 가지... 더는 웅크리지 않겠다는 다짐

2023년부터 생긴 불안장애로 일상의 영역이 좁아진 사람이 도전하지 못했거나 도전하지 않았던 것들을 해보는 이야기를 씁니다. <기자말>

[이슬 기자]

2022년의 어느 날, 동트기 전 새벽 달리는 택시 안이었다. 밤샘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도로는 한산했고 택시는 속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난생처음 겪는 감각이 몸을 덮쳤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온몸이 뜨거워졌다가 순식간에 차가워졌고, 마치 지구의 핵을 향해 끝없이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생경했던 증상 중 또렷했던 감각은 단 하나였다. 곧 죽을 것 같다는 확신. 결국 기사에게 차를 세워달라고 요청했다. 그것이 내 공황의 시작이었다.

얼마 후, 그것은 나를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과로도, 특별한 사건도 없었다. 빨래를 개며 동료와 메신저를 주고받던 평범한 일상 속이었다. 시야가 흐려지더니, 급작스럽게 온몸을 감싸는 선득한 기운, 단숨에 세상과 내가 격리되고, 아가미 없이 깊은 물 속에서 허우적대는 기분.

공황장애 이어 불안장애까지
▲ 응급차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artististanbul on Unsplash
이번에는 더 심각했다. 호흡이 막히고 팔다리가 경직됐다. 소파에 쓰러진 내 주변을 고양이가 뱅글뱅글 돌았다. 온 힘을 짜내 119를 불렀고, 응급실에서 과호흡과 공황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나는 그날 구급대원에게 종이봉투 호흡법을 배웠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숨 쉬는 법을 다시 배우게 될 줄은 몰랐다.

진단서에는 정신과 질환 진단 시 부여되는 'F 코드(정신질환 질병코드)'가 붙었다. 'F'라는 진단코드가 붙는 순간 실비 보험 청구도 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2016년 1월 1일 이전에 가입한 실비(실손)보험의 경우 F코드 실비 청구가 불가하다). 몸도 마음도 낙제점을 받은 기분이었다.

문제는 그 뒤였다. 응급호흡법을 익히고 공황장애도 잘 견디고 있던 내게 2023년, 불안장애라는 파생 질환이 하나 더 따라붙었다. 공황이 가끔 오는 일이라면 불안은 만성이었다. 작은 이유로도, 혹은 이유가 없어도 나는 내내 불안했다. 지하철과 비행기를 피하게 됐고, 밤이 되면 외출이 두려웠다. 불면증이 시작됐고 가방 속에는 늘 호흡을 위한 종이봉투와 처방 약이 들어 있었다. 삶의 반경은 점점 좁아졌다.

설상가상으로 2024년 초 건강검진에서 '비파열성 뇌동맥류' 진단까지 받았다. 매년 추적 관찰이 필요하다는 말은 불안을 증폭하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비파열성 동맥류 진단을 받은 후 수술 치료받지 않고 추적하는 환자가 비파열성 뇌동맥류가 없는 사람들에 비해 정신질환을 앓을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진단 후 치료받지 않은 비파열 뇌동맥류 환자의 정신 질환 위험 증가: 전국 코호트 연구 결과' - 이대목동병원 신경과 이향운, 신경외과 양나래 교수 2024.10)도 나왔다. 내가 해당하는 얘기였다. 다시 불안이 시작됐다.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늘어날수록 불안함이 엄습해 세상을 피하기 시작했다. 겨울이면 가장 좋아하던 러닝조차 멈췄다. 혹시라도 뛰다가 쓰러지면 어떡하지, 하는 과민한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래의 내 모습을 그려봤다. 여행을 그렇게나 좋아하는 내가, 러닝을 그렇게 좋아하는 내가, 밖을 나가는 게 두려워 집안에만 웅크린 채 늙어가는 노년이라니.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구나. 그때부터 불안을 공부했다. 벤 알드리지의 <불안함에 편안함을 느껴라>라는 책도 만났다. 스토아 철학과 인지행동치료의 연결을 설명하는 이 책의 핵심은 단순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다."

그러면서 인지행동치료를 우리를 괴롭히는 건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저자는 자신의 '컴포트존(불안과 스트레스 없이 익숙하고 편안한 안락지대를 뜻하는 말)'을 넓히기 위해 일부러 31가지의 불편한 과제들을 수행한다. 그는 낯선 이에게 말을 거는 일부터 트라이애슬론(수영, 사이클, 마라톤을 결합한 스포츠) 완주까지 하나씩 도전한다. 저자에게 이 과정은 불안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불편함에 익숙해지는 과정이었다.

꼭 벤 알드리지처럼 인지치료의 목표를 거창하게 잡아야 하는 건 아니다. 유튜브에 출연한 어느 유명 배우는 마음이 불안할 때마다 힘들고 번거로운 일을 하나씩 해내며 중심을 잡는다고 말했다. 그래야 도태되지 않고, 어려운 일이 와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거였다. 일부러 손이 닿지 않는 그릇을 꺼낸다든가, 안 해본 운동을 시도해 보는 등 자신에게 귀찮은 일들을 해나간다고 했는데, 내겐 이 또한 컴포트존을 넓혀가는 훈련으로 보였다.

불안을 친구로 삼기

생각해 보니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불안장애로 지하철을 타는 것조차 두려워졌을 때였다. 평생 지하철을 피해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 어느날은 약을 들고 탑승을 시도했다. 견디기 힘들면 약을 먹으면 된다는 비상책이 있는 것만으로 훨씬 마음이 안정됐다.

그렇게 점차 탑승 횟수를 늘려갔고, 나중에는 약 없이도 지하철을 탈 수 있게 됐다. 불안은 한 번에 사라지지 않았지만, 내가 견딜 수 있다는 증거는 남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훈련을 다른 불안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올해 작성한 '컴포트존 넓히기 리스트'. 이 목록을 모두 실행해 보려 한다.
ⓒ 이슬
그렇게 올해 다이어리에 새해 목표가 아닌 조금 다른 목록을 적었다. 이름하여 '컴포트존 넓히기 리스트'. 그동안 두려움과 불안 때문에 미뤄두었던 일들을 하나씩 꺼내 적었다. 고속도로 운전하기, 약 없이 비행기 타기, 혼자 여행하기, 아직 어둠이 남아 있는 새벽에 러닝하기 등. 누군가에겐 별일 아닐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손에 진땀이 배어나는 일이었다.

올해 안에 이 목록을 모두 실행해 보겠다고 마음먹었다. 직접 적어 내려간 리스트를 다시 바라보는 순간, 앞이 아득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곧 생각을 고쳐 잡았다. 결국 두려움의 본질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마주하는 나의 반응에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니까. 어쩌면 이 실험의 출발점은 새로운 도전이 아니라, 내 반응을 관찰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대학교 시절 채플 수업에는 P와 NP라는 평가 방식이 있었다. 출석 기준을 채우면 P(패스 Pass), 그렇지 못하면 NP(논 패스Non-Pass)가 부여됐다. NP를 받은 한 친구는 엄마에게 이를 '나이스 패스 Nice Pass'라고 설명했다. 친구는 위기를 모면하려고 NP를 새롭게 해석했다. 어쩌면 삶은 이처럼 해석의 기술인지도 모른다.

내 진단서에는 여전히 F코드가 붙어있다. 하지만 나는 F코드를 Fault(폴트, 결함)가 아닌, Friend(프렌드, 친구)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불안을 제거해야 할 결함이 아니라, 함께 가야 할 친구로 보는 것. 회피하고 미루기보다, 불안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보는 일을 하려 한다. 이 글은 나의 불안 극복기가 오늘부터 시작되었다는 일종의 선언이자 더는 웅크리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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