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리스크’에 커지는 에너지 우회로…공급망 다변화하는 K-정유

호르무즈 해협의 지정학적 불안이 커지면서 에너지 안보에 비상등이 켜졌다. 이에 국내 정유업계는 높은 중동 의존도를 해소하기 위해 대체 항로와 도입선을 확보하는 공급망 다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호르무즈를 우회하는 새 에너지 경로가 원유 수급의 핵심 축으로 부상하는 모습이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호르무즈 리스크에 대응해 4월부터 6월까지 비중동 지역 원유 도입 시 발생하는 운임 차액을 100% 환급해주는 한시적 긴급 지원책을 가동하고 있다. 이는 원거리 수송에 따른 높은 물류비 장벽을 정부가 직접 낮춰줌으로써, 정유사들이 경제적 부담 없이 호르무즈를 우회하는 대체 공급망을 확보하도록 독려하는 실질적인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
HD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6월 캐나다산 원유 약 54만8000배럴을 도입한 데 이어, 캐나다산 원유를 포함한 비중동 원유 도입선 다변화와 공정 최적화를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HD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원유 수급 불안정성 해소 목표로 하고 있다”며, “중동산 외 다양한 대체 원유를 도입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전략은 회사의 높은 고도화 설비와도 맞닿아 있다. HD현대오일뱅크는 고도화율이 국내 최고 수준인 41.7%로, 성질이 유사한 중질유 계열 원유를 비교적 유연하게 처리할 수 있는 설비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이에 따라 가격과 물류비를 함께 고려할 때 캐나다산 중질유 같은 대체 원유가 실질적인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HD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기존에는 경제성이 높은 중동의 중질유(Heavy Crude) 기반 설비에 최적화돼 있었으나, 이미 70년대부터 의존율을 100%에서 60~70%까지 낮춰오며 다양한 원유 테스트를 거쳐왔다”고 설명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가 대주주인 에쓰오일(S-OIL)은 타 정유사와는 다른 구조적 안정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에쓰오일은 호르무즈 해협 대신 사우디 서부의 얌부항을 경유하는 홍해 루트를 통해 원유를 수급하고 있다. 얌부항은 사우디 동부 유전에서 서부 해안까지 연결된 약 1200km의 동서 파이프라인을 활용하기 때문에, 해협 봉쇄의 영향권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강점이 있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사우디아람코와의 안정적인 장기 거래 구조가 있어 홍해 얌부항을 통한 수급이 원활하다”며 “이미 검증된 장기 계약 물량을 바탕으로 대응하고 있어 현재로서는 미국이나 캐나다산 원유를 별도로 검토할 필요성은 크지 않다”고 밝혔다. 이는 정유사별 지배구조와 수급 채널에 따라 대응 전략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우회로 개척의 장애물은 남아있다. 장거리 운송에 따른 물류비 상승과 태평양 수송로의 선박 규모 제한 등 물리적 한계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특히 캐나다 밴쿠버항의 경우 수심 문제로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의 접안이 어려워 환적 비용이 추가로 발생할 수 있다. 한 관계자는 “정부가 한시적으로 가동 중인 운임 100% 환급 정책이 중동 프리미엄을 상쇄하는 실효적 장치가 될 수 있지만, 정책 종료 이후에도 경제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기술적인 공정 최적화 리스크도 넘어야 할 산이다. 원유는 산지마다 성분이 달라 설비와의 궁합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성상이 다른 원유를 무리하게 투입할 경우 설비 손상과 품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수천억 원대 손실로 번질 수 있다. 정유사들이 새로운 지역의 원유를 상시 도입하기 전 배합 조정과 시험 가동에 공을 들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태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연구실 실장은 “에너지 안보는 도입선 다변화라는 한 포인트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비축유 확보와 수요 감축 등 총체적이고 긴 호흡의 정책이 병행되어야 한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원유 도입선 다변화가 일시적인 대책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인 공급망 안정화 시스템으로 정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수민 기자 breathmi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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