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이명세의 계엄 다룬 정치 다큐, 뭐가 특별하냐면
[하성태 기자]
'이미지의 황홀경 혹은 과잉의 수사학', '촬영과 조명, 사운드의 삼위일체', '몽환적이고 황홀한 비주얼과 반대로 중요치 않은 이야기 구조'.
이명세는 이명세였다. 세월이 무색하게도,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이명세 감독의 영화 < M >을 수식한 표현들은 이랬다. 당시 영화계나 관객들은 한국영화 최고의 비주얼리스트라 칭송받는 노 감독의 이 야심작을 어리둥절하게 받아들였던 것도 사실이다.
이후 우여곡절과 절치부심의 시간이 찾아왔다. 1998년 <개그맨>으로 장편 데뷔한 그 비주얼리스트가 어느새 한국영화계를 지키는 노장 감독이 됐다. 구구절절 설명하기에도 영화 같은 시간이었으리라. 2026년, 스스로 "세계적인 제작자"라고 밝힌 방송인 김어준이 제작하고 자신을 "신인 (다큐) 감독"이라 소개한 이명세 감독이 연출한 시네마틱 다큐멘터리이자 12.3 비상계엄을 소재로 한 <란 12.3>이 오는 22일 개봉을 앞뒀다.
역시나 '이명세가 이명세'했다. 다큐라는 장르 앞에 '시네마틱'이란 수사를 붙인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극에서 다큐로 장르를 전환했을 뿐 앞서 소개한 영화 < M >때 그 이명세만의 인장이 더욱 도드라졌다. 절차탁마란 표현 역시 결코 과하지 않다.
그리하여 (21일 오전 8시 기준) 예매율 1위(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다. <왕과 사는 남자> 열풍이 지나간 자리를 <란 12.3>이 꿰찼다. 한 주 뒤 개봉하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를 제쳤다. 12.3 비상계엄 1주년을 기념해 선보인 숱한 장편 정치 다큐멘터리들과 비교해 이명세 감독의 <란 12.3>은 무엇이 그토록 특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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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세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란 12.3> 스틸컷 |
| ⓒ 프로덕션 에므 |
이야기 구조도 확연하며 탄탄하다. <란 12.3>은 하늘이 돕고 시민들이 스스로 도운 바로 그 12.3 비상계엄 극복의 서사, 계엄 선포에서 해제까지 단 하룻밤에 벌어진 바로 그 역사적 사건을 다룬다. 천만 관객을 흥분케 했던 <서울의 봄>의 그 클라이맥스를 떠올리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찬찬히 따져 보면 작품은 사실 '명세가 하고 싶은 것 다 해' 수준이다. 기존 12.3 비상계엄을 찍어 놓은 갖가지 푸티지(footage 클립영상)을 모으고 모아 활용한 다큐멘터리라는 걸 고려해도 더욱 독보적이다. 물론 애니메이션을 포함해 새로 찍은 장면들도 없진 않다. 그럼에도 이런 주제를 가지고 이미지의 황홀경이라 일컬을 수 있을 '촬영과 조명, 사운드의 삼위일체'를 완성하는 작품을 완성하기란 쉽지 않을 터.
짧은 호흡의 컷들과 감시 카메라 특유의 정지 화면이 보기 좋게 배치되고 교차된다. 유행을 넘어 이제는 지겨워진 드론 샷들도 이보다 더 활력을 줄 순 없다. 폰 카메라로 찍은 국회 정문 앞 혼란의 순간들도 기존 핸드헬드 촬영들과 무리 없이 동화된다. 편집의 승리이자 예민한 영화적 감각이 펼쳐 낼 수 있는 어떤 경지에 가깝다.
이를 완성하는 절대 요소는 바로 조성우 음악감독의 끝날 것 같지 않은 음악이다. 조성우 감독은 이명세 감독과 <인정사정 볼 것 없다>부터 <형사 DUELIST>, < M >까지를 함께한 바 있다. <란 12.3>을 통해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감독인 그는 '시네마틱'이란 요소에서 영화음악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또 극장 체험으로서의 영화에서 음악이 얼마나 위대하고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지를 몸소 경험케 해 준다. 내레이션 하나 없는 <란 12.3>에서는 특히나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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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란 12.3> |
| ⓒ 프로덕션 에므 |
관객들이 12.3 이후 1년이 넘도록 반복해 시청해 온 그 장면들이 맞다. 안귀령 당시 민주당 대변인과 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가 계엄군과 대치했던 영상들을 비롯해 전 세계 언론이 주목했던 그 장면들도 물론 확인된다. 핵심은 이걸 어떤 서사와 호흡 안에 배치하느냐다.
이명세 감독은 '그날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느냐'란 단순하고 선명한 명제 아래 편집의 원칙을 세워 놓고선 말 그대로 '승리의 서사'에 집중한다. 선과 악이, 주인공 집단과 빌런 집단이 선명하게 대치하는 구조다. 물론 그 중심엔 의원들과 국회 직원들, 시민들이 계엄을 막아내고자 하는 노력이 총체적으로 담겼다. 그래서 배경이 되는 장르는 중심 장르는 어쩔 수 없이 정치 스릴러요, 정치 서스펜스 물이다.
이명세 감독이 하고 싶은 걸 다 한 결과는 본질로의 회귀다. 내레이션 없이 영상 속 음성들로 영화 전편을 채운 <란 12.3>은 일부 무성영화의 특성들을 본격적으로 소환한다. 일부 장면은 내란 세력들의 음성을 자막으로, CCTV 영상을 당연히 흑백으로 처리하면서 꽤 근사한 그때 그 시절 고전 무성영화들을 연상케 한다.
영화 전편이 그런 본질적인 물음들로 가득 차 있다. 영화적 활력이란 무엇인가부터 촬영과 편집, 음악 활용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할 수 있는 화면과 구성이 돋보여서다. 심지어 애니메이션 시퀀스조차 미국 그래픽노블 스타일부터 일본 레트로 게임에서 가져온 듯한 영상으로 차별화를 시도한다. 스타일의 장인이라 불리던 이명세 감독이 그간 이런 장편 작업을 어찌 참아왔을까 하는 물음이 들 정도이면 덧붙일 말이 없을 수준 아닐는지.
제작자 김어준과 12.3 비상계엄
그렇다고 소재를 넘어서는 이미지의 과잉을 우려할 필요는 없다. 내란에서 '란'을 따온 <란 12.3>는 기본적으로 내란 세력을 소재 삼은 통렬한 풍자극이자 비상계엄을 해제하고 내란을 극복한 의원들과 시민들을 향한 찬가다. 감독 이명세의 비주얼과 스타일은 그 감정을 고양케 하는 영화적이고 예술적인 매개일 뿐이다. 형식이 그 메시지를 넘어설 순 없다.
그리고 제작자 김어준. 그는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에만 4편을 제작한 다큐멘터리 제작자다. 그 김어준이 거장이라 칭송해 마지않는 이명세 감독과 손을 잡은 <란 12.3>이 지금껏 쏟아져 나왔고 앞으로도 공개 대기 중인 12.3 계엄 소재 다큐들 중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어떠한 위치를 점하게 될지 사뭇 궁금해진다.
'삶이란 무엇인가'. 고등학생이던 이명세 감독이 영화감독이 되는 꿈을 품었을 때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라고 한다. 실로 오랜 기간 절치부심해 내놓은 그 노장 감독이 지금 12.3 비상계엄을 경유해 '영화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는 중이다. 그에 대해 2026년 관객들은 어떤 답을 내놓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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