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 길어지면 한국도 안전하기 어렵다 [월간중앙]

2026. 4. 21.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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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초대석]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생존론

동맹과 명분 모두 잃는 미국, 중국은 대만 무력 통일 기회 찾으려 할 수도
주한미군 기지 타격 대상으로 삼을 것…전작권·핵 잠재력 채비 갖춰야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난 4월 13일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발 ‘전쟁 후폭풍’을 피할 방법으로 “나토 회원국 등과의 공동 이니셔티브”를 강조했다. 최영재 기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5년째 전쟁 중인 가운데 중동전쟁이라는 ‘핵폭탄’까지 터지면서 전 세계가 비상이다. 불행 중 다행 격으로, 전쟁 6주차 만에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양측이 호르무즈해협 개방 등을 조건으로 ‘2주 휴전’에 합의했지만, 협상은 결렬 상태다. 한국 대표 외교 안보 전문가로 꼽히는 송민순(78) 전 외교통상부 장관을 급히 찾은 이유다.

송 전 장관은 1975년 외무부 공무원으로 시작해 2008년 장관 퇴임 때까지 33년간 한 우물만 판 외교통이다. 18대 국회 외교통상위원 활동 경력과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 시기까지 더하면 외교 분야에서만 42년간 활동한 베테랑 중 베테랑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호르무즈 ‘역봉쇄’ 카드를 꺼내든 지난 4월 13일 오후 서울 한남동에 자리한 송 전 장관의 개인 집무실에서 그와 마주했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종언

Q : 최근 국제 정세를 보면 규범보다 힘이 앞서는 양상이다. 지금 상황을 ‘질서의 변화’로 보는지, 아니면 ‘질서의 붕괴’로 여기는지 궁금하다.
A : “지금은 기존 미국 중심의 평화 질서, 소위 ‘팍스 아메리카나’가 붕괴되는 과정이다. 새로운 국제 정치 구조가 등장하고 있다. 이를 ‘세력권 질서’로 정의하고 싶다. 미주 대륙과 태평양 지역은 미국이 관리하고, 동아시아와 서태평양 등 아시아 지역은 중국이 중심이 되고, 동유럽 등 유라시아 대륙은 러시아가 관장하고, 서유럽은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얘기다. 다만, 중동의 경우 이 같은 세력권에 속하지 않고, 우크라이나 역시 러시아와 서유럽 세력권에 끼여 있는 구도다. 나는 중동전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의 근본 원인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Q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주도해 온 국제 질서 원칙을 스스로 흔드는 모습도 보인다. 국제법과 규범이 약화한 지금 상황이 특정 지도자에 의한 일시적 현상인지, 아니면 구조적 변화인지도 의문이다.
A : “트럼프 개인에 의한 일시적 현상보다는 구조적 변화에 가깝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뒤 약 80년에 걸쳐 세계 각국에 군대를 파견해 안전을 지켜왔지만, 자국민들은 그 자체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자신들의 세금이 쓰이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미국 내 산업 중 약 30%를 차지하던 제조업 비율이 10% 미만으로 감소하면서 안정적인 일자리 부족과 양극화 현상도 심각한 상황이다. 현 정부는 물론 차기 정부도 자국민들의 이 같은 불만을 외면할 순 없을 것이다. ”

Q : 평생을 외교 현장에서 보냈다. 지금 상황이 과거 냉전시대나 격동기와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 수준인가?
A : “그 어느 때보다도 불안정한 상황이다. 어느 쪽에서 뭐가 터질지 모른다. 냉전시대에는 어느 한쪽에 붙어 있으면 안전한 상태가 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 경계가 허물어져 피·아 식별이 안 되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전선이 불분명한 상황이라는 뜻이다. 이는 조 바이든 전 대통령 집권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지금은 미국이 전쟁을 하고 있는데, 유럽 주요 동맹국들이 죄다 전쟁에 반대하고 있다. 미국과 가장 특수한 관계인 영국마저 미군 항공기가 자국에서 발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 않나? 옛날 같으면 상상도 못할, 동맹의 이완 내지는 균열 현상이 현실이 됐다. ”

Q : 한·미 관계도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A : “그렇다. 과거 북한 억제 위주로 배치했던 주한미군을 이제는 중국을 견제하는 데 주로 쓰겠다는 것 아닌가. 간단히 이야기해 한반도 방위는 한국이 알아서 하고 미국은 핵우산 위주로 돕겠다는 이런 거대한 변화에 맞닥뜨려 있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 스스로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게 아닌, 적극적으로 대응을 해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Q : 과거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균형자가 아닌 촉진자가 돼야 한다”고 주창한 바 있다. 지금처럼 룰이 깨진 상황에도 그 논리가 유효한가?
A : “우리가 미국과 중국이 서로 부딪히는 거대한 힘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다만, 우리가 한반도 문제, 그중에서도 특히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 사이 이견을 좁히는 타협의 ‘촉진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에서 썼던 표현이다. 우리가 북핵 문제와 관련해 미국을 설득하고 중국과도 조율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을 끌어오는 식으로 가다 보면 미국과 중국이 적어도 한반도 문제를 두고선 충돌하지 않을 것이란 논리였다. 그런데 지금은 북한이 이미 핵 보유국이 돼버렸다. 우리가 촉진자 역할조차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런 차원에서 내가 지난해 출간한 〈좋은 담장 좋은 이웃〉, 이 책 제목 자체가 질문의 답이 될 수도 있겠다. 서로의 실체를 인정하고 견고한 담장으로 경계를 분명히 하면서 장기적으로 좋은 이웃으로 살아가는 길을 찾는 것을 최선의 현실적 선택으로 본 것이다.”


성난 트럼프 달랠 해법은 또다른 동맹

Q :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들이 중동전쟁에 협력하지 않는다면서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일방적으로 끌려가지 않을 방안이 있다면…
A : “우리로서는 유럽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일본 및 호주 등과 보조를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 물밑에서 이들과 공동 이니셔티브를 추진하면서 함께 미국을 설득해 나가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본다.”

Q : 주제를 좀 바꿔보자. 김정은은 한반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며 통일 담론 자체를 폐기했다. 이는 과거 장관께서 이끌어 낸 9·19 공동성명 정신과 배치된다. 북한의 이런 태도 변화는 단순한 전술적 변화인가, 아니면 전략의 근본적 전환인가?
A : “전략의 전환이다. 북한은 세습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구조, 특히 ‘두 국가’ 구조를 고착시키려 할 것이다. 김정은이 ‘적대적 두 국가론’을 공식화한 게 지난 2023년이다. 일종의 커밍아웃을 한 셈인데, 북한은 1980년 후반부터 남한과 다른 두 국가로 살고 싶어 했다. 그런데 핵을 손에 쥐게 되면서 두 국가론을 주장할 자신감을 갖게 된 거다. 한편으로는 북한 주민들이 남한과의 생활수준 차이도 알게 됐다. 만약 통일이 이뤄진다면 결국 남한이 북한을 흡수 통일하는 게 불가피하다는 인식도 생기는 것이다. 이처럼 북한의 독재 체제가 설 땅을 잃게 되는 위험이 커지는 것을 인지하면서 적대적 두 국가론을 공식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6년 9월 11일 한·체코 정상회담장에서 체코 총리를 기다리다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워싱턴을 방문하고 돌아온 송민순 당시 안보보좌관과 대화하고 있다. [중앙포토]


핵보유국 북한, 좋은 이웃이면 어떤가

Q :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기존 ‘통일·대화 프레임’을 유지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보나?
A : “지금 북한이 핵을 가지고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상태 아닌가? 상황이 이런데 북과 대화가 되고 통일이 가능하겠나? 좁은 방 안에서 한쪽이 수류탄으로 다른쪽을 위협하고 있는데 어떻게 평화적 공존이 가능하겠냐는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의 기존 평화 공존과 통일 정책은 현실성이 없다. 북이 핵을 손에 쥔 순간부터 구도가 다 바뀌었다는 얘기다. 기존 우리 통일 정책으로는 서로를 자극하면서 안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통일로 가는 길도 더욱 멀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그런 측면에서 통일의 씨앗을 조금이라도 남겨두려면 우선 분명한 담장을 세우고 정상적인 이웃관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Q : 〈좋은 담장 좋은 이웃〉에서 평화적 목적의 우라늄 농축과 잠재적 핵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인가?
A : “그렇다. 우리가 미국에 일방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동시에 북한 위협에 대응하려면, 첫째는 우리 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행사해야 하고, 둘째는 당장 핵무기를 만들 순 없더라도 우라늄 연료 농축 같은 평화적 핵을 통해 잠재적 핵 능력을 갖춰야 한다. 또한 북한과는 기존의 남북 특수관계가 아닌 정상적 이웃 관계를 설정해야 한다. 아울러 이런 정책에 대해 국내적으로 통합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런 네 가지 경로에 기초한 대응 전략을 책에 담았다.”

Q : 한국이 우라늄을 농축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A :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다. 우리가 우라늄을 농축하려면 한·미 원자력협정을 개정해야 하고 미국이 무조건 반대할 것이라는 별의별 얘기들이 있는데, 사실과 다르다. 2015년 개정된 한·미 원자력협정의 제11조는 농축·재처리를 포함한 핵물질 형상 변경은 양국 간 고위급협의를 통해 20% 미만의 농축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과의 사전협의라는 조건이 있지만, 원자력협정의 개정까지 필요한 건 아니다. 북한은 핵을 가졌고 주한미군의 존재와 운용 방식도 유동적일 수 있는 상황이다. 미국의 핵우산이 영원하지도, 확고하지도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한편에는 북한의 핵 위협 아래, 다른 한편에는 미국 핵우산의 위력 아래 살면서 우리 자체의 핵 잠재력 이야기마저 꺼내면 안 된다는 생각은 동의할 수 없다. 왜 그렇게들 핵 논의 자체에 거부 반응을 보이는지 모르겠다.”

Q : 미국이 이란을 공격한 가장 큰 이유가 우라늄 농축 때문 아닌가?
A : “당초 합의된 우라늄 농축 농도 3.67%를 넘어 60% 수준으로 올렸기 때문이다. 이 수준을 넘어 90% 수준까지 도달하면 그건 곧 핵무기를 의미하는 것이다.”

Q : 연장 선상에서 한국이 현실적으로 취할 수 있는 가장 정교한 안보 카드는 무엇일까?
A : “현재의 한국 안보 구도는 우리의 재래 군사 능력과 미국의 핵 우산을 결합시킨 상태다. 이에 더해 군사 작전권을 한국이 행사하고, 기존 미국의 핵 우산을 보완하는 한국 자체의 잠재적 핵 능력 확보가 중요하다. 북한과도 정상적 이웃 관계를 새로이 설정할 필요가 있다. 북한도 다분히 이런 관계를 찬성할 소지가 있다. 정상적 이웃 관계란 옆집이 불쑥 끼어들어서 ‘콩 놔라 팥 놔라’는 식으로 간섭하지 않는 관계를 말한다. 우리가 북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들 하는데, 북한 핵을 현 상태에서 일단 동결하고 장기적으로 폐기하는 방안을 염두에 두는 말이다. 북한은 이미 한국을 충분히 위협할 만큼의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 그 상태에서 동결하고, 북한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면서 현상을 인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또 북한이 누리는 핵의 효용과 포기할 경우 겪어야 할 위험을 계산하면 장기적으로 포기시키는 것도 기대 가능한 목표가 될 수 없다.”
송 전 장관은 “2015년 개정된 한·미 원자력협정의 제11조는 농축·재처리를 포함한 핵물질 형상 변경은 양국 간 고위급협의를 통해 20% 미만의 농축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우리가 미국에 일방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동시에 북한 위협에 대응하려면 전시작전통제권의 행사와 함께 잠재적 핵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영재 기자


외교·안보 노선 전환 불가피

Q : 과거 6자회담 경험에 비춰볼 때, 현 상황에서 다시 협상 국면이 열릴 가능성은 어느 정도로 보나?
A : “제로에 가깝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없는 데다가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서로 타협할 수 있는 여지도 없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이 여러 문제로 대립 중인 마당에 20년 전 6자회담할 때처럼 단순히 한반도 문제를 중심에 두고 대화 테이블을 마련한다? 실현 가능성이 없는 얘기다.”

Q : 미·중 경쟁이 구조화한 상황에서 한국의 전략적 공간이 좁아지고 있다. 장관께서는 ‘미군이 운전대를 쥐고 한국은 조수석에 앉아 운전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구조’라고 한·미 관계를 묘사했다. 따라서 ‘의존형 동맹’을 넘어 ‘자립형 동맹’으로 가야 한다고 했는데, 이를 실천할 구체적이고도 전술적인 첫걸음은 무엇인가?
A : “앞서 얘기한 전시작전통제권의 행사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우리 스스로 도저히 전쟁을 치를 능력이 안 됐기 때문에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미군 사령관에게 권한을 넘겼지만, 지금은 다르다. 1980년대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국군 현대화 계획인 ‘율곡사업’을 진행한 이래 40년 이상 기간 동안 유사 시 우리 스스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군사 역량을 키워왔다. 내가 보기에는 오는 2030년 전에는 우리가 스스로 운전대를 잡는 것이 두루 이익이다. 이는 미국도 원하는 바다. 우리가 우리 군대의 작전을 통제하면 미군이 떠날 것이라고들 걱정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일본과 독일만 보더라도 운전대는 그들이 잡고 미국은 조수석에 앉아 있는 형태다. 우리 역시 스스로 운전대를 잡고 미국은 옆 좌석에서 돕도록 하면 된다.”

Q : 한국은 그동안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외교적으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 왔다. 이게 앞으로도 유용한 카드라고 생각하나?
A : “그 반대가 돼야 한다. 전략적으로 명료해야 한다는 뜻이다. 미국은 우리의 생사와 직결된 동맹국이다. 중국은 지리적·경제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우호국이다. 동맹국과 우호국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더욱더 명료하고 한결같은 자세를 보여야 한다. 미국 앞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중국 만나서는 저렇게 말하는 모호한 입장을 취하면 자칫 더 큰 곤경에 처할 위험이 있다. 인간 관계에서 흔히들 쓰는 말 중 ‘얍삽하다’는 표현이 있지 않나? 외교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전략적 모호성은 상대에게 얕은 꾀를 쓰면서 자기 이익만 챙기려는 식으로 비쳐질 수 있는 악수에 속한다. 그런데 아직도 장소에 따라 한 입으로 두 말하는 경우들이 있어서 걱정이다. 나중에 그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Q : 앞으로 한국이 벗어 던져야 할 전략적 오류가 있다면…
A : “우선, 앞서 수차례 강조한, 미국에 의존하던 안보적 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음, 중국에 공동운명체 같은 미래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현실적으로 자유민주적 가치 체계를 가진 한국이 일당 독재 체제의 중국과 어떻게 공동운명체가 될 수 있나? 서로 잘 지내도록 하는 수준이 지향점이어야 한다. 그런데 아직도 공동운명체를 꺼내는 사람들이 있다. 셋째는 북한의 비핵화가 가능할 것이란 지극히 비현실적인 목표를 걸어 두는 것이고, 마지막 오류는 중국이 한국 주도의 한반도 통일에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다. 이 네 가지가 우리가 벗어 던져야 할 전략적 오류들이다.”
송 전 장관은 지난해 10월 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는 “대한민국 외교·안보 해법이 상당 부분 담겨 있을 것”이라고 했다. [사진 교보문고]


상대가 누구든 할 말은 바로 해야

Q :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이스라엘군의 인권 침해 문제 등을 지적한 것을 두고 정치권이 대립하고 있다. 여당은 이에 대해서도 정부가 표방하는 일종의 ‘실용 외교’라는 입장인 반면, 야당은 ‘외교 참사’의 원인이 됐다는 주장인데…
A : “우선, 외교를 실용적으로 하는 것과 ‘실용 외교’를 표방하는 것은 정반대의 길이다. 외교 정책에 있어서 실용이라는 팻말을 다는 것부터가 난센스이기 때문이다. ‘실용’을 갖다 붙이는 순간 달면 삼키고 쓰면 내뱉는, 자기 필요에 따라 왔다 갔다 하는 신의가 없는 그런 상대로 비쳐질 수 있어서다. 그렇지만 실제 외교는 실용적으로 하는 게 맞다. 외교는 단어 하나하나에 신중해야 하는 법이다. 둘째, 대통령의 SNS 글이야말로 반실용적이었지 않았나? 불필요한 논쟁을 불렀다. 지금 이 상황에서 굳이 적을 만들 필요까진 없었다. 외교적으로 보면, 한편은 미국이 이스라엘과 함께 움직이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원유의 대부분을 수입하는 중동의 안정에 도움이 되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Q :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돼 간다. 그간 외교·안보적 성과를 꼽는다면…
A :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세계 질서가 흔들리는 난관 속에서 미·중·일 관계 등을 두루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다만, 북한과의 관계 설정에 있어서의 실책은 짚고 넘어가고 싶다. 북한과의 관계도 안정적으로 가져가고자 하는 건 좋다. 그런데 지난번에 드론 문제 가지고 북한에 유감이라고 표현한 건 사실상의 사과다. 이건 아주 잘못된 거다. 왜냐, 그동안 북한도 우리 영토에 몇 차례에 걸쳐 드론을 보낸 적이 있다. 그러면 이럴 때는 우리가 먼저 사과를 할 게 아니라 문제를 한가운데로 끌고 와서 쌍방이 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협의를 하든지 해야지, 거기다 대고 잘못했다고 그러면 어떡하나? 결국 정치인들이 자신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서 저지른 일로 보이는데, 이거는 아주 잘못된 거다.”

Q : 향후 한국이 맞게 될 외교적 변수들은 무엇이라고 보나?
A : “외교 변수라기보다도 안보 측면에서 크나큰 변수, 아니 위험 요소가 있다. 중국이 대만 문제를 두고 미국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도 엄청난 위험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지금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는 대만 통일이 숙원이다. 그런데 지금 중국이 무력을 쓸 수 있는 충분한 기운이 서서히 일고 있다. 만약 중동전쟁이 장기화한다면 미국은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무기 재고를 위시한 군사력 투사능력도 낮아지고 동맹국도 거의 없는 위기로 미끄러져 들어갈 가능성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그때를 기회로 간주할 수 있다. 만약 이 가정이 현실이 돼 대만 주변에서 미군과 중국군이 충돌한다면 주한미군의 전력이 투입되면서 한국도 사실상 자동적으로 연루될 수밖에 없다. 중국은 평택을 위시한 미군기지를 원점으로 삼아 타격해 무력화시키고자 할 것이다. 만약 중동전쟁이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처럼 길어져 미국의 힘이 빠질수록 중국이 대만을 무력으로 통일시키겠다는 의지는 그에 비례해서 강해지지 않겠나?”
송민순 전 장관은 “중동전쟁이 길어져 미국의 힘이 빠질수록 중국이 대만을 무력으로 통일시키겠다는 의지가 강해질 수 있다”면서 “만약 대만 주변에서 미군과 중국군이 충돌한다면 중국은 평택을 위시한 미군기지도 원점으로 삼아 타격해 무력화시키고자 할 것”이라고 했다. 사진은 3월 6일 경기 평택 주한미공군 오산기지에 대기 중인 미군 수송기. [연합뉴스]


샌드위치 속 터진 케첩 신세 면하려면…

Q : 그런 최악의 상황을 피할 방법은 없나?
A : “적극적으로 대비하는 수밖에 없다. 군사 작전통제권의 행사를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촉즉발 위기 속에 대만 사태에 동원되는 미군의 통제를 받아야 하는 한국의 군사안보 구조를 생각해봐라. 얼마나 불안한가. 가능한 조기에 스스로 우리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행사함으로써 주한미군과 우리 군을 유연하게 운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위기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잠재적 핵 능력 보유 필요성도 연장선상에 있다. 중국이 우리 영토를 쉽게 타격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주저하게 만드는 그런 대비책에 도움이 될 수 있다.”

Q : 마지막 질문이다. 외교관으로 일할 때나 장관 재임 시절 원칙과 현실이 충돌하는 순간도 많았을 텐데, 그럴 때 판단 기준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당장 내일을 예측하기 힘든 이 시대에 외교·안보 관료 등에게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 점이 있을 것 같아 묻는다.
A : “내 경험만 가지고 얘기하면, 나는 공무원 생활을 오래 했다. 퇴직 후엔 비록 비례대표였지만 국회에서도 활동을 했다. 직업외교관과 정치인 양쪽의 고충을 이해한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한국은 선거가 굉장히 잦다. 문제는 정치인들이 선거라는 단기적 정치적 필요에 매이게 된다. 공무원들에게 직간접적 압박을 가한다는 점이다. 정치인들은 당장 선거에서 이기는 게 최우선이다. 반면 공무원은 아무래도 국가의 장기적 이익을 상대적으로 더 위에 두고 판단하게 된다. 내가 무슨 엄청난 애국자라서가 아니다. 많은 공무원이 몇 십년 일을 하다 보면 그렇게 훈련이 된다. 나는 이를 후천적 DNA라고 생각한다. 그런 갈등이 생길 때마다 원칙에 충실하려고 애썼다. 적어도 퇴직 후 영혼이 편해야 하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아서는 안 될 것 아닌가? 물론 그 과정에서 실수도 있고 모자란 부분도 있었지만, 원칙을 지키기 위해 늘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

최은석 월간중앙 기자 choi.eu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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