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로운 공간에서 울린 소리, 아이 눈이 두 배로 커졌다
[이정현 기자]
주말이면 아이들과 무엇을 할지 고민을 한다. 이왕이면 부모인 나도 즐거운 일을 찾는다. 지난 주말엔 흥미로운 공연 포스터에 끌려 서울 종로구 대학로로 향했다. 대학생 때부터 종종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러 오던 곳이었다.
대학로의 상징이기도 한, 마로니에 공원에 도착하고 보니 공연 시간이 한 시간 남짓 남았다. 무대도 있고, 놀이터도 있는 큰 광장 같은 공원에는 많은 예술가들이 길거리 공연을 하고 있었다.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르는 가수, 좌판을 깔고 마술을 보여주는 마법사, 태권도 공연을 하는 아이들, 그리고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의 얼굴에는 봄꽃 같은 설렘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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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소리가 나는 그림 |
| ⓒ 이정현 |
가구란 주인의 취향과 안목, 그리고 삶의 서사가 배인 존재가 된다. 인간과 관계를 맺은 사물은 사용할수록 생명력이 깃들고, 그렇게 서로에게 기대며 일상을 살아간다. - 강현아
작품을 보다 보니 내가 밥을 먹고, 몸을 누이는 일상의 평범한 공간과 가구들을 새롭게 보였다. '예술이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게 함으로 당연하다고 느끼던 것들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눈과 마음을 열어주는 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숨어있던 소리가 깨어나다
미술 전시를 본 후, 공연 시간이 다 되어 공연장으로 향했다. 공연은 7주간 이어지는 북극곰 가족극 페스티벌의 첫 번째 프로그램인 '미스터리 미스터 리'였다.
무대와 객석이 거의 붙어있는 작은 소극장에 들어서니 공연의 제목처럼 신비한 공간 안에 신기한 악기들이 가득 놓여있었다. 드라이아이스 연기가 낮게 깔려 더욱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얼마 후 레게 머리를 한 '미스터 리'가 나와 자신의 독백으로 무대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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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스터리 미스터리' 공연 |
| ⓒ 이정현 |
그는 우리의 몸뿐 아니라 바닥, 벽, 천장 등을 두드리거나 천장에 늘어진 줄 같은 것을 당기거나 하며 연주를 이어갔다. 우리를 둘러싼 공간 속에 숨어있던 소리가 깨어나 모든 사물들이 저마다의 소리를 내며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루프스테이션을 활용하여 여러 소리들을 조화롭게 쌓아 음악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또 여전히 계속 새로운 도전과 시도를 한다며 물로 연주하는 것도 보여주었다. 물을 튕기거나 손으로 젓거나 조개 껍질 등 다양한 성질의 물체를 넣어 소리와 음악을 만들어내는 모습에서 절로 감탄이 나왔다. 마치 뿌리를 깊이 내린 나무가 더 멀리 가지를 뻗어내듯, 음악의 근원에 닿고자 했던 노력들로 그는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1시간 내내 땀을 흠뻑 흘리면서도 행복하게 웃으며 공연을 하는 '미스터 리'를 보고, 나는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남들이 잘 가지 않은 길을 걸으며, 결국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는 그의 몸은 악기였고, 그의 삶은 음악이고, 예술이었다. 그는 '국내 1호 바디퍼커셔니스트'로 서울드럼페스티벌 등 여러 축제 기획과 교육 등으로 그 영감을 나누며 살아간다고 했다.
예술적 체험이 바꾸는 일상
공연장을 나서며 아이들은 "엄마, 저분은 사람이 아닌 것 같아. 1시간 내내 말하면서 저렇게 많은 악기도 연주했잖아"라고 말했다.
"오잉, 그럼 사람 아니면 뭐 같아?"
"산신령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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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
| ⓒ 이정현 |
원초적인 리듬과 타악기의 소리 때문이었는지, 1시간 동안 땀을 뻘뻘 흘리며 공연을 꽉 채운 그의 열정 때문인지, 그 진동과 파동이 여전히 내 몸과 마음에 흐르고 있었다. 문득,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다녀오고 나면 한 해를 살아낼 힘을 얻는다'는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그러다 '왜 인간은 노래하고, 춤추고, 그림을 그리고, 글 쓰고 싶어하는가?', '왜 우리는 공연을 보고, 전시를 보고, 책을 읽는가?'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내 안의 깊은 곳에서 '어쩌면 그것은 반복되는 일상 속에 마비되어있는 우리의 깊은 본능을, 살아있다는 감각을 흔들어 깨우기 위함이 아닐까?'라는 대답이 나왔다.
분명한 건, 이러한 예술적 경험을 통해 일상을 다시 새롭게 바라보며 살아갈 눈과 힘을 얻었다는 것이었다. 다양한 전시와 공연이 가득한 대학로에 올 때마다 아이들 안의 세계도 그만큼 넓고, 깊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대학로는 티켓 값도 저렴한 편이고, 소극장에서 배우나 공연자들과 더 가깝게 호흡하며 관람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대부분의 미술 전시는 무료이며, 마로니에 공원 곳곳에서도 여러 예술가들이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펼쳐 어디서나 예술이 강줄기처럼 이어지고 흐른다. 이번 주말 아이들과 함께 대학로에서, 눈과 귀와 마음이 열리고, 다시 한 주를 살아갈 힘을 충전하시길 강력히 추천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SNS와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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