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영화 다 봤다"는 프랑스 청년이 잔나비 때문에 푹 빠진 일
세계 젊은이들과 함께 유기농사를 짓습니다. 세계 속에 한국 문화가 어떻게 자리 잡는지 나름 최전선에서 관찰해왔습니다. 우리가 잘 몰랐던 한국, 새로운 한국의 모습을 다시 만납니다. <기자말>
[조계환 기자]
"저는 마엘(Maël Deback)이고 23살 프랑스 사람입니다. 예전부터 도시를 벗어나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농장 소개글을 보고 가고 싶어졌어요. 프랑스의 영화관에서 영사기사로 일했고, 오랫동안 한국 문화(음악, 영화, 드라마, 책, 미술)를 거의 매일 접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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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장 주변이 매일 더 짙은 녹색으로 변해간다. 마엘과 3월부터 봄 농사를 같이 하고 있다. |
| ⓒ 조계환 |
"저는 음악, 영화, 자연을 좋아하고 우리 주변 곳곳에 존재하는 시적인 감성과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걸 좋아해요. 차를 탈 땐 창가 자리를 선호하고, 아침에 만화 보는 것을 좋아하죠.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한동안 한국에서 살아보고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은 최고의 거장"
마엘은 영화 제작을 전공하고 영화감독을 꿈꾸는 청년이다. 영화관에서도 일하고, 소외된 지역 청소년들에게 영화 제작을 가르치는 봉사 활동을 하기도 했다. 슬로베니아에서도 1년 동안 지역 사람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아이들에게 단편 영화 제작 방법을 가르치는 워크숍을 진행했다.
"박찬욱 감독은 제가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영화감독입니다. 저를 감동시키고 꿈을 꾸게 합니다. 박찬욱 영화라고 하면 어둡고 폭력적인 면을 떠올리는 사람도 많지만, 저는 그의 영화가 폭력보다는 주로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아름답고 시적이에요. 그는 폭력과 사랑, 두 가지 영역을 너무나 아름답고 섬세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저에게는 최고의 거장입니다."
만약 박찬욱 감독과 함께 일할 기회가 생긴다면 어떻게 할지 물었더니, 마엘은 그냥 영화 제작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찰하고 싶다고 했다. 어떻게 그런 예술적인 영화가 탄생할 수 있는 건지 아직도 잘 믿기지 않기 때문에 일단 직접 보고 싶다고. 제일 좋아하는 박찬욱 감독 영화는 <사이보그지만 괜찮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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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엘은 영화 제작을 전공하고 영화 감독을 꿈꾸는 청년이다. 함께 애호박을 심었다. |
| ⓒ 조계환 |
한국인 원어민과 연습하기 위해서 앱을 활용했는데, 오픈 채팅에서 만난 한국인이 잔나비의 'November Rain'이라는 노래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당시 저는 한국 음악이라고 하면 아이돌 음악만 알고 있었는데, 잔나비 노래를 한번 듣고서 완전히 팬이 됐어요."
코로나 기간 동안 한국 문화가 전세계에 폭발적으로 퍼져나갔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사람들의 구체적인 이야기로 전해 듣는 것은 언제나 흥미로운 일이다. 마엘은 잔나비를 시작으로 다양한 한국 음악과 미술, 책 등을 만나게 되었다고 했다.
"잔나비의 모든 노래를 들어봤어요. 특히 두 번째 LP '전설'의 커버를 그린 콰야 작가에게 반해서 그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봤는데, 순식간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가 되었어요. 콰야 덕분에 관심이 없었던 그림에도 흥미가 생겼고, 그렇게 한국 문화에 푹 빠지게 되었어요."
처음에 영화로 시작되었다가 언어로, 음악으로, 그림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한국 문화의 재발견 과정이 재미있다.
"잔나비를 시작으로 다양한 한국 음악을 듣게 되었어요. 개인적으로 한국 아이돌 음악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중독성 있고 신나는 한국 록 음악을 제일 좋아하고 일렉트로닉, 왈츠, 발라드, 랩, 펑크, 포크 등 다양한 장르를 즐겨 들어요. 잔나비, 한로로, 너드커넥션, 자우림, 오방신과, 이승윤, 산울림, 이문세, 무키무키만만수 등의 음악을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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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사 일 마치고 함께 호떡을 만들어 먹었다. |
| ⓒ 조계환 |
"2022년 인천에서 열린 잔나비의 연말 콘서트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에 열흘 동안 머무른 적이 있어요. 정말 잊지 못할 경험이었고, 인생 최고의 시간이었어요. 많이 울고 웃고, 롤러코스터처럼 온갖 감정을 느꼈어요. 이번에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한국에 온 뒤로 오방신과 공연도 두 번이나 보고, 홍대 라이브 클럽 페스티벌에 가서 이승윤 공연도 봤어요."
현재 마엘은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얻어서 한국을 1년 동안 여행하고 있다. 수원, 인천, 부산, 안동, 제주 등을 여행했다. 왜 1년이나 시간을 내서 한국을 여행하고 있는지 물어봤다.
"평소 한국 문화를 좋아해서 꼭 한국을 제대로 느끼고 싶었어요. 한국은 너무 아름답고 흥미로운 나라라서 가능하다면 모든 도시와 시골을 다 가보고 싶어요. 혼자 여행하면서 많이 느끼고, 특히 언어와 문화적 규범이 다른 상황에 대처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어요."
마엘은 농사일은 처음이라 처음에는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괭이질, 호미질에 익숙해져갔다. 팜스테이 한 달이 조금 넘어가는 요즈음엔 능숙하게 농사일을 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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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엘과 함께 심은 청경채가 예쁘게 자라고 있다. |
| ⓒ 조계환 |
도시의 카페에서 쑥차라떼를 즐겨 주문하던 마엘은, 농장에 와서 실제로 들판에서 자라는 쑥을 처음 만났다. 향긋한 쑥을 친구에게도 선물하고 싶다며 쉬는 시간에 조용히 쑥을 뜯곤 한다.
"한국을 알게 되어 너무 좋습니다. 이렇게 강렬하고 매력적인 문화를 만들어준 한국 사람들에게 감사해요. 한국 음식, 음악, 영화 모두 너무 좋아요. 한국 덕분에 박찬욱 감독, 콰야, 잔나비를 알게 되었고, 맛있는 떡볶이도 먹게 되었네요. 혹시 이 기사를 읽는 분들 중에서 프랑스 청년과 단편 영화를 만들고 싶은 분이 있다면 꼭 연락주세요! 한국 사람들과 새로운 장르의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마엘이 농장에 머무는 동안 김치통이 빠르게 비어간다. 요즘에는 김치를 외면하는 한국 젊은이도 적잖은데, 외국 친구들이 한국 음식을 더 사랑해주니 좋다. 마엘 덕분에 우리는 한국 문화를 새롭게 다시 만나고 있다. 우리가 잊었던 가수들, 노래들이 새롭게 느껴진다. 마엘이 한국을 여행하며 많은 영감을 얻어 앞으로 세계적인 영화감독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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